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125
125화 너, 채용
“둘이 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밌게 해?”
이야기에 합류한 건 샤디아였다.
계절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옷차림을 하고 가까이 들러붙으니 눈 둘 곳이 곤란한 참이었지만, 전혀 당황스럽진 않았다.
“좀 떨어져라.”
“아이, 참.”
내가 샤디아의 이마를 밀어냈다.
샤디아는 툴툴거리면서도 더는 귀찮게 들러붙지 않았다.
서지유가 그런 우리 둘을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늘 느끼는 거지만, 아저씨는 샤디아 씨한텐 참 단호하네요.”
“뭐?”
“그래. 나 인기 많다구. 네가 말 좀 잘해 줘.”
그런 이야기라면 간접적으로나마 듣긴 했다.
샤디아가 왔을 때 매출이 늘어난다는 건 그런 뜻이었다. 남자 손님들이 더 많이 오거나, 평소보다 오래 남아 있다거나 할 테니까.
“당연하잖아. 이래 봬도 유부남이고.”
내가 어깨를 으쓱하자 샤디아가 풉- 하고 입을 가리고 웃었다.
그런 샤디아를 노려보자, 샤디아는 시선을 피하며 딴청을 피웠다. 뒤통수에 손을 붙이고 슬쩍 고개를 돌렸다.
‘이 녀석…….’
클레어와 나의 관계가 가짜라는 건, 물론 가깝거나 믿을 만한 사람에게만 알려 둔 내용이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샤디아는 그 목록에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왠지 알고 있는 듯한 눈치. 단순히 짐작하고 있는 걸로 보이진 않았다.
“말처럼 당연한 게 아니라고요.”
“응?”
서지유의 목소리였다.
“유부남이라고 해서 반드시 의리를 지키라는 법은 없다고요. 실제로 밤에 장사하다 보면 누가 봐도 유부남으로 보이는 배불뚝이 아저씨든, 생긴 걸로만 봐선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멀끔하게 생긴 아저씨든…….”
“…….”
서지유가 어두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 모습에 나와 샤디아 모두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아직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애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오는 걸 보는 게 즐거운 기분은 아니었다. 아무리 세상이 그런 법이라 해도.
“…너 야간 장사는 그만둬라, 그냥.”
그 말밖에 해 줄 수가 없었다.
* * *
‘여기도 아니었나.’
애초에 큰 기대 없이 온 곳이기도 했다. 오랜만에 얼굴이나 한번 볼까 했을 뿐.
온 김에 샤디아에 대한 것도 확인하긴 했으니. 겸사겸사 시간을 아낀 셈이기까지 했다. 가장 찾기 어려운 인물들 중 하나였으니.
‘그쪽이 최악이지.’
아크투러스 투기장에서 만났던 녀석들 중 하나를 다시 찾아야 하는 거라면. 보통 귀찮은 일이 아니리라 예상됐다.
불야성은 도시를 지배하던 조직이 와해되고 격동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어, 아직도 세력 구도가 안정적으로 정리되지 않았다고 들었다.
투기장에 참가했던 놈들은 원래 그 도시에 눌어붙어 있는 애들은 드물었으니, 소식도 모르는 놈들을 수소문해서 찾아다녀야 할 거고.
“근데 자기, 그건 뭐야?”
“뭐가.”
“주머니에 넣고 있는 거 말이야.”
“…….”
주머니 속에 뭔가 있긴 하지만. 갑자기 물어볼 이유가 보이질 않았다.
“주머니 속에 뭔가 흉악한 걸 숨기고 있지 않아?”
샤디아가 들여다 볼 것처럼 시선을 낮추며 물었다.
물어본 사람이 샤디아라는 점을 떠올리면, 서양권에서 여자가 남자에게 던지는 추파 중 하나에 그런 이야기가 있다고 듣긴 했다. 주머니 속에 들은 게 뭐냐고 물어보는 건 남성기를 의미한다는…….
내가 표정을 찌푸리고 물었다.
“성희롱이냐?”
“아니, 아니! 이번엔 농담 아니고! 진짜 물어보는 거라구! 주머니에 뭐 있잖아? 그렇지?!”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내가 주머니에서 망량이 주었던 나무 고둥을 꺼냈다. 망량의 누이라는 ‘이매’의 흔적을 찾는 효과를 지닌 아이템이었다.
고둥이라고 해서 유달리 특별한 크기는 아니었다. 귀에 대거나 입으로 불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 단순히 손가락 정도의 크기. 지갑이나 핸드폰보다도 작고, 차 키 같은 거라고 생각해도 이상할 거 없었다.
그걸 굳이 콕 집어서 물어볼 이유가 마땅치 않아서 찔러 본 거였다. 당황하는 꼴을 보니 모르면서 하는 말은 아니었군.
“아, 그거.”
“…….”
샤디아는 결백이 증명돼 다행이라는 듯 안도하며 고둥을 가리켰다.
“한 번도 꺼낸 적 없는데. 어떻게 알았지?”
“내가 눈이 좀 좋거든.”
샤디아가 자신의 눈동자를 가리켰다.
황금색 눈동자에는 확실히 알 수 없는 기운이 서려 있었다. 확실히 기감을 통해 평범한 눈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불야성에선 가면을 쓴 채 맨얼굴을 밝힌 적이 없었는데. 한눈에 맨얼굴의 나를 알아보고 말을 걸어오기까지 했으니.
그 비결이 바로 이 눈이라는 건가.
‘그런데 어쩐지…….’
샤디아는 아까에 비해 확연히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었다. 평소엔 늘 들러붙지 못해 안달이었던 녀석인데, 왠지 지금은 멀어져 있었다.
전혀 이럴 녀석이 아닌데.
샤디아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아닌 척하지만 내가 들고 있는 고둥을 힐끔 훔쳐보고 있었다.
‘설마…….’
나는 고둥에 걸린 목걸이 끈을 손에 쥐고 샤디아를 향해 뻗었다.
그러자 샤디아는 눈을 돌린 채 고둥을 쥔 손을 슥 피했다. 심히 부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무언가가 밀어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거리를 두고 있었다.
좀 더 확실히 알기 위해 몇 번 더 샤디아를 향해 가까이 뻗어 보자, 샤디아는 매번 고둥을 피했다.
“저기, 그만하지 않을래, 자기? 괴롭히는 건 침대 위로도 충분하니까…….”
“헛소리 집어치워.”
누가 들으면 오해할 소리를.
그나저나 이로써 확실해졌다. 샤디아가 이 고둥을 피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황이 말해 주고 있었다. 아까 내 주머니 속에 ‘흉악한’ 것이 있다고 말한 것도 그렇고. 고둥을 들이대면 피하는 것도 그렇고.
꺼내기 전부터 알아볼 정도로, 이 고둥으로부터 무언가를 느끼고 있다는 뜻인가?
“왜 이걸 피하지?”
“…눈치챘잖아. 거기선 안 좋은 기운이 느껴진다니까.”
“안 좋은 기운?”
“으음. 뭐라고 할까. 불길하다고 해야 하나, 꺼림칙하다고 해야 하나. 닿기만 해도 더러워지는 것 같은 그런 느낌?”
그런 느낌이 느껴진다고?
이 고둥은 망량이 준 것으로, 나무를 깎아 만든 것이었다. 정확히 무슨 나무인진 모르겠지만 나쁜 품질은 아니었다. 표면이 매끈하고 무늬가 고풍스러웠다.
겉으로 보기에도 그랬고. 기감을 펼쳐 안까지 살펴봐도 달리 특별한 무언가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샤디아가 장난을 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장난으로 치면 평소의 태도가 더 가까웠고, 지금은 진심으로 보였다.
샤디아는 모처럼 진지한 얼굴로 충고했다.
“무슨 일로 그런 걸 갖고 다니는 건진 모르겠지만, 그만두는 게 좋아.”
“음…….”
허투루 하는 소리는 아니겠지.
그 충고가 진심에서 새어 나온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만둘 생각이 없었다.
딱히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개인적인 위험을 무릅쓸 정도로 성격이 좋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건 망량의 물건이었다. 내가 알고자 하는 것, 그리고 얻고자 하는 것과 가장 연이 깊어 보이는 인물.
수상하다면 오히려 더 자세히 알아야만 했다.
“그런데, 너.”
“응?”
“내가 이거 주머니에서 꺼내기도 전에 알아봤지.”
“으응……?”
내 물음에 샤디아가 당황하면서도 대답했다.
“그… 렇지? 그렇게 기운이 강한 물건은 보통 숨긴다고 숨겨지는 게 아니니까…….”
“호오.”
이건 써먹을 수 있겠는데.
내가 알기로, 이 목걸이를 통해 ‘이매’라는 여자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건 둘이 공명共鳴하기 때문이다. 같은 성질을 가진 것들이 반응하는 형상.
그걸 알아차리기 위한 촉매로 이 고둥을 받고 돌아다니는 거였는데.
‘얘가 있으면…….’
촉매인 고둥은 보험으로 갖고 다닌다 쳐도. 굳이 번거롭게 고둥의 공명을 감지하러 다닐 필요 없이.
‘그냥 슥 둘러보기만 해도 해결 아니야?’
훨씬 효율 좋은 방법을 발견했다.
“뭐, 뭐야? 왜 그러는데?”
샤디아가 뒷걸음질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샤디아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 채용.”
“…나?”
샤디아가 자신을 가리키며 물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중얼거렸다.
“나쁜 예감밖에 안 들어…….”
샤디아가 울상을 지었다.
* * *
“미안! 많이 기다렸어?”
주하린이 뛰어오며 물었다.
기다리고 있던 남자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여우 가면을 쓴 남자, 도율이었다.
오늘은 오래 전부터 약속했던 밥 약속이 있는 날이었다. 주하린이 빚을 갚기 위해 그리 하겠다고 말했던 것을 행동에 옮기는 중이었다.
도율은 굳이 그럴 필요 없다고 한사코 거절했지만, 주하린은 의외로 집요하게 따지고 물었다.
‘대기업 후계자라서 그런가…….’
도율은 생각했다.
빚을 남겨 두면 어떤 후환으로 다가올지 모르는 위치인 만큼, 쌓인 업보와 은혜는 그때그때 청산하는 강박이 있는 걸지도 모른다고.
“그런데 오늘은 제복이 아니네요?”
“응? 아, 알아보는구나.”
주하린이 낯부끄럽다는 듯이 대꾸했다.
대현 길드에서 일괄적으로 제공하는 제복이 아니었다. 모처럼의 사복 차림이고, 언니인 주예린으로부터 받은 옷도 있었지만.
그래도 어쩐지 셔츠를 입지 않으면 진정이 되지 않아 비슷하게 입고야 말았다.
“오늘은 딱히 일 때문에 만나는 건 아니니까. 그렇지……?”
“그렇죠?”
일 때문이 아니라고 강조하는 건.
사적으로도 함부로 다른 사람에게 빚 지고 다니지 않는다는 의미일까. 과연 대기업 후계자는 사생활도 철저하군.
도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음…….’
그러던 도율이 고개를 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먼 곳을 응시하는 듯한 눈으로 주위를 한 바퀴 돌자, 주하린이 의아하게 물었다.
“왜 그래?”
“다섯……. 전부 다 왔군요.”
“……!”
도율이 센 건 집행부의 머릿수였다.
상당히 먼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었지만. 집행부가 따라붙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나면, 나머지를 모두 찾는 건 손쉬웠다.
도율이 기감을 펼쳐 시계 초침이 돌듯 주위를 한 바퀴 크게 훑고 나면. 이미 한 번 손을 섞었던 상대인 만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심지어 아티팩트나 스킬을 사용해 은신 상태에 들어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들이 기를 숨겨 주는 건 아니었으니까.
“쳇. 괴물 자식.”
그 사실을 알 리가 없는 집행부원들이 저 멀리서 도율이 눈치챘다는 사실을 전달받고 혀를 찼다.
“미, 미안. 내가 한사코 말렸는데…….”
격한 회의가 있었다.
이건 딱히 대현의 후계자로, 혹은 대현 길드의 대표 이사로서 나가는 게 아니라. 인간 주하린으로 나가는 자리에 불과하다고 했지만.
-그렇다면 더더욱 내버려 둘 수 없습니다!
집행부는 더더욱 굳세게 결의를 표했다.
외출하기 전부터 한바탕하고 올 수도 없는 법이니. 결국 마음대로 하라고 소리치고 약속 장소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살짝 늦은 건 덤이었다.
“아뇨. 오히려 수고를 덜었습니다.”
“응? 무슨 뜻이야?”
“아. 아무것도.”
도율이 고둥을 통해 지난 인연을 되짚어 거스를 때 가장 찾기 어렵다고 생각한 건 불야성에서의 인연이었지만.
그다음은 당연히 집행부였다. 주대현의 명령만 듣고, 각자 할 일이 바쁜 놈들을 한 자리에 모으거나 일일이 찾아가기가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닐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한 자리에 모여 주니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저기 말이야…….”
“네?”
주하린이 핸드백에서 티켓 두 장을 꺼냈다.
“바, 밥 때까지 시간이 좀 남는데, 영화라도 보지 않을래?”
“영화…….”
도율이 대답 없이 중얼거렸다. 그러자 주하린이 당황하며 물었다.
“혹시 별로 안 좋아해? 영화?”
“…아뇨. 그건 아니고.”
도율이 신기하다는 듯 영화 표를 응시했다.
“그러고 보니, 본 적이 없구나 싶어서.”
돌아온 후. 도율은 아직도 영화관에 가 본 적이 없었다.
여유가 없었다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여태 그런 방면으론 생각이 닿지 않았다. 영화 같은 건 되게 평범한 건데도.
“아, 그렇구나…….”
그리 말하는 걸 듣고 주하린은.
불끈.
남몰래 주먹을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