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145
145화 기대 이상
“그럼 간다.”
소년이 주먹을 내질렀다.
닿지 않는 거리에서 뻗어지는 일격. 그러나 그것에 수반되는 파괴력은 지금까지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위력이었다.
“-Devora(삼켜라).”
힘의 격류가 말 그대로 도율을 삼키기 위해 달려들었다.
등 뒤에는 마침 도율이 걸어왔던 그 결계의 절단면이 있었다. 그 너머에 백우진이 있었고, 사장을 비롯한 다른 직원들도 차례차례 있었다.
게다가 소년의 말대로라고 하면, 그 결계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듯하니. 이 공격을 무시했다간 참상이 일어날 게 뻔했다.
“후.”
도율이 가볍게 숨을 뱉었다.
이렇게 단순 무식하게 위력을 때려 박은 건 익숙한 일이 아니었지만.
못해서 안 하는 건 아니었다.
조심스럽게, 끝 모를 내공이 잠들어 있는 단전의 뚜껑을 열었다.
한낱 인간의 몸에 갇혀 있는 천지개벽의 힘이 빛을 향해 아우성쳤다. 당장이라도 쏟아져 나와 사방을 헤집어 놓고 싶다는 듯이.
도율이 눈을 감고 그 모든 혼란을 잠재웠다.
격렬한 파괴의 파동이 바깥세상을 어지럽히는 소리도, 안쪽의 힘이 꿈틀거리며 마음을 어지럽히는 소리도 모두 사그라들었다.
아무것도 배운 적이 없던 도율은 스스로 힘의 형태를 결정해야만 했다. 머릿속에 어렴풋이 그린 이미지를 하나의 확실한 형태로 빚어 내기 위해 말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능히 하늘에 닿아.
별을 떨어뜨렸다.
“비성(飛星).”
터널 속이 빛으로 가득찼다.
도율의 손끝에서 터져나간 기가 모든 것과 마찰하며 빛과 열을 자아냈다. 빛의 궤적이 별똥별처럼 반짝임을 흩뿌리며 지나갔다.
치이익-!
소년의 일격과 닿았을 때, 그렇게 타들어 가는 소리를 내며 비등하게 세력을 견주었지만.
쌔애액!
견고한 힘의 덩어리에 구멍을 뚫고 우위를 점한 건 도율의 내공이었다.
온통 백색의 열로 가득한 터널이 사방을 구분할 수 없이 밝게 빛나고 나자, 터널은 서서히 어둠을 되찾았다. 전등 따위는 모두 깨진 지 오래였기 때문에, 완전한 어둠이었다.
“…….”
도율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전에 없던 위력의 기술을 써 본 긴장감이었다.
“쳇.”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소년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이전과 같은 마력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도율이 목소리가 들린 방향에 가 보니, 소년은 위를 향해 대자로 뻗어 있었다.
그 온몸에는 금이 가 있었다. 심지어 머리의 일부와 한쪽 눈이 깨져 날아가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럴싸한 겉면만이 존재했을 뿐. 도자기처럼 속이 텅 비어 있었다.
“인형……?”
“아~ 아끼는 거였는데. 망가지고 말았네.”
소년이 푸념을 투덜거렸다. 하지만 원망스러운 기색은 없었다.
오히려 반대.
“이봐, 너.”
소년이 한쪽만 남은 눈을 굴려 가까이 와 내려보고 있는 도율을 바라봤다.
“이름이 뭐지?”
“이도율.”
도율이 대답하자 소년 또한 이름을 밝혔다.
“내 이름은 라크자르다.”
라크자르.
도율이 그 이름을 기억했다.
지금까지 내 본 적 없는 힘을 끌어내게 만든 적인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지금 도율이 상대했던 소년의 육신이 단순한 인형에 불과했다는 사실이었다.
아직 끝장난 게 아닌 데다가. 본체는 이보다 더 강할 게 분명했으니.
“나도 하나 묻지.”
“어. 그러든지. 대신 하나만이야. 시간 별로 없거든.”
망가진 몸과의 연결이 약해지고 있다는 듯. 소년의 몸은 점점 생동감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소년의 눈동자가 초첨을 잃고 천장을 향해 있었다.
도율이 간단히 질문했다.
“넌 사도(使徒)냐?”
사도.
언젠가 망량에게 들었던 존재. 그리고 주대현 역시 그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러자 소년, 라크자르가 다시 한번 힘겹게 눈을 굴려 도율을 향해 시선을 맞췄다. 그리고 무구한 소년처럼 웃었다.
“마계로 와라.”
“…….”
마계.
처음 들어 보는 말이었지만, 그게 단순히 던전이나 게이트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또 놀아 보자.”
그 말을 단말마로 하듯, 소년의 몸이 생기를 잃고 완전히 축 늘어졌다. 결국 연결이 끊기고 만 것이다.
혼자 남은 도율이 중얼거렸다.
“마계라…….”
결국 그곳에 가게 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 * *
“괜찮습니까?”
결계가 풀리자마자 백우진이 다가와 물었다.
“보다시피.”
도율이 상처 하나 없는 몸을 자랑했다.
비록 옷은 이곳저곳 찢어져 있긴 했지만. 군수 업체 사장이 고심해서 고른 경호원들이 손 하나 못 쓰고 당한 존재를 상대로 그 정도 피해밖에 없는 건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뒤를 이어 사장 임수길이 달려왔다.
“자네, 괜찮나?!”
후다닥 달려온 임수길이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백우진을 향해 헤헤 웃더니 조심스레 물었다.
“그, 혹시 물건은…….”
그게 목적이었나.
도율이 한숨을 쉬었다.
“빼앗겼습니다.”
“뭐?!”
임수길이 입을 떡 벌렸다.
사실이었다.
워낙 격한 싸움이었기에 물건이 있다는 사실도 잊고 싸웠지만. 결국 이 모든 게 에테리움 파편이라는 물건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후 도율이 물건을 찾으려 했지만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설마 격한 싸움 끝에 흔적도 없이 부숴 버리고 만 건 아닐지. 혹시 배상을 해야 하는 건가, 하고 도율이 식은땀을 삐질 흘리는 와중.
소년의 몸이었던 인형에 쪽지가 하나 남아 있었다.
[참고. 물건은 내가 가져간다. 너 정도 되는 놈이라면 모를까. 돼지들에게 물려줄 물건이 아니야.]‘어느 틈에 그런 쪽지까지…….’
어느 정도 계획된 일이라는 예상이 들었다. 큰 기술을 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물건을 몰래 훔치는 데에도 신경을 썼던 건가.
‘당했군.’
한 방 먹었다.
뒤에 있는 사람들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과 전에 없던 위력의 기술을 사용하느라 놓치고 말았다.
“아니, 그걸 뺏기면 어떡하나!”
임수길이 억울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제 딴에는 돈 주고 산 물건이니 아깝다고 생각할 만도 했지만…….
백우진이 앞을 막아섰다.
“목숨을 부지한 게 어딥니까? 그나마 여우 씨가 없었으면 죄다 죽은 목숨이었을 겁니다.”
“그, 그건 그렇지만…….”
그건 그렇다는 듯, 사장이 반박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이 믿고 있던 경호팀들은 결국 제대로 손을 쓰지 못하고 당한 건 사실이었다.
그래도 그들을 탓할 순 없었다. 그들은 상대가 사람인 걸 상정하고 만들어진 조직이었으니까.
상대가 팀을 이뤄 몰래 물건을 훔치려고 작정한 집단이었다면 내가 나설 기회도 크지 않았을 거다. 보안이니 작전이니 하는 건 잘 모르기도 하고.
“애초에 계약서에 명시하지 않았습니까. 저희는 어디까지나 인명 피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보조할 뿐. 물건의 소유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그건 그렇지만…….”
백우진과 임수길 사장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도율에겐 그걸 지켜볼 시간이 없었다.
“백란 씨.”
“예.”
“전 급히 가 볼 데가 있습니다. 여긴 맡겨도 되겠습니까?”
라크자르의 말에 의하면, 지금 이곳에 와 있는 사도는 총 둘이었다.
에테리움 파편을 회수하러 온 라크자르와 그 에테리움 파편을 가져간 헌터 집단에 대한 본보기를 보이겠다는 누군가.
그게 누군지는 몰라도, 라크자르와 같은 수준의 존재라고 한다면.
‘위험하다.’
잠깐 버티는 거라면 몰라도,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런 도율의 말에 백우진이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예. 가 보십시오.”
믿음직하군.
이곳은 백우진에게 맡긴 채. 도율이 몸을 날렸다.
“어?! 자네, 어디 가나? 자네!”
뒤늦게 임수길의 목소리만 메아리쳤다.
* * *
“아~ 져 버렸다.”
옥좌 위에 앉아 있던 소년, 라크자르가 눈을 뜨고 폴짝 뛰어내렸다.
은색 머리카락과 붉은 눈동자. 고귀한 생김새를 지닌 소년은,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이 그러한 것처럼 풍부한 감정 표현을 자랑했다.
깍지를 낀 손을 뒤통수에 대고 짐짓 커다란 한숨을 내쉬는 행동에, 주변에 있던 누군가 날카롭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물었다.
“졌다고? 네가?”
“그래. 그렇다니까.”
라크자르가 시원스레 인정하자, 그녀가 인상을 찌푸리고 핀잔을 줬다.
“인간을 상대로? 그럴 리가 없잖아. 또 무슨 놀이를 하다가 일을 그르친 거야?”
“그르친 적 없거든.”
라크자르가 입술을 내밀었다.
“없기는 뭐가 없어? 넌 예전부터 늘 그랬잖아. 쉽게 끝낼 수 있는 걸 질질 끌기나 하고. 다 잡은 물고기를 놓아 주질 않나. 변덕도…….”
“아, 시끄러워. 잔소리는.”
라크자르가 손바닥으로 귀를 틀어막다가 눈을 가늘게 뜨고 쏘아붙였다.
“인간들은 너 같은 여자를 아줌마라고 한다더라.”
“아줌마……?”
나이를 먹지 않고, 생식 활동을 하지 않는 사도들에게 그러한 개념은 없었다. 인간들이 쓰는 단어도 치환할 의미 없는 울림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아줌마 소리를 들은 그녀의 눈꼬리가 꿈틀거렸다.
그 찰나를 놓치지 않은 라크자르가 히죽 웃으며 재잘거렸다.
“그래. 아줌마, 아줌마, 아줌마.”
“그믄흐르…….”
“아핫. 목에 주름진 거 봐.”
라크자르가 웃음을 머금고 손으로 입을 가리자. 마침내 폭발하기 직전인 듯 그녀의 핏대가 선명하게 솟아올랐다.
그러나 그때, 무거운 목소리가 깔렸다.
“-그만.”
그러자 사소한 다툼이 멎었다.
라크자르가 딴청을 피우며 휘파람을 불었고, 카랑한 목소리의 주인 또한 입술을 깨물며 우아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엄숙한 목소리의 인물이 라크자르를 향해 물었다.
“그자가 나타나서 방해했나?”
“그자라니… 누구? 망량?”
“그래.”
그러자 라크자르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며 비웃었다.
“그 녀석은 겁쟁이잖아. 뒤에서 수작질이나 부릴 줄 알지. 정면에 나와서 우릴 상대할 자신은 없는 놈인걸. 어디 틀어박혀서 숨어 있기나 하지.”
직접 나선 게 아니라면, 아끼는 화신체(化身體)를 보낸 라크자르가 졌다는 이야기를 꺼냈을 리가 없다. 직접 나서지도 않고 수작을 부리는 정도로 그를 방해할 수 있을 순 없을 테니.
그가 아니라면.
다른 누가 있다는 거지.
그 의문을 해소해 주기 위해 라크자르가 답했다.
“무인(武人)을 만났지.”
“무인이라면…….”
“왜, 있잖아.”
라크자르가 히죽 웃고는 설명했다.
“그때 그 운 없던 녀석.”
“…….”
운 없던 녀석이라는 것은, 예기치 않게 다른 세상으로 날아가 버린 놈을 말하는 것이었다.
모처럼 열었던 차원의 문을, 엉뚱한 녀석이 차지해 버렸으니. 하지만 그 당사자도 보물을 차지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불행한 사고에 당한 셈이었다.
설마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렇다는 건, 그때 느꼈던 그 파장은.”
얼마 전.
마계에 있던 사도들조차 느낄 정도로 강력했던 내공의 파동.
그들은 잠정적으로 망량이 그들이 눈을 뗀 사이에 무언가 몰래 일을 벌인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한 사람, 격하게 반론했던 자가 있었다.
물론 근거가 없다는 미명하에 묵살되었지만.
“내가 말했지! 망량 그 겁쟁이가 밖에 나와서 뭔가를 했을 리가 없다고!”
잔뜩 신이 난 라크자르가 싱글벙글 웃었다.
“돌아온 거라고! 그때 그 인간이!”
그런 라크자르를 보며,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옆에 있던 여성체가 쏘아붙였다.
“흥. 네가 거짓말을 하는 건지 어떻게 알아?”
“하? 초 치지 마, 이 아줌마야.”
“아줌…….”
빠드득.
이가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라크자르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런 그를 향해 무거운 목소리가 물었다.
“어땠지?”
많은 것이 함축된 질문.
그러나 라크자르는 곧바로 대답했다.
“기대 이상.”
비록 화신체라고는 하나. 거기에서 낼 수 있는 화력을 웃도는 힘을 지녔고. 심지어 그게 전력으로 보이지도 않았으니.
라크자르에게는 예상외의 선물이 도착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말했다는 건. 허투루 볼 상대가 아니라는 걸 의미했다.
“앞으로 재밌어지겠다. 그치?”
“…….”
라크자르에게 있어 재미란.
다른 이들에게는 골치 아픈 일이란 것을 의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