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183
183화 어떻게요?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합니까?”
도율이 백우진에게 물었다.
백우진은 평소와 같이 무표정하게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티 나지 않게 손가락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의 습관이었다. 생각할 게 있을 때 손가락을 작게 두드리는 버릇.
백우진과 가까이 붙어 지내다 보니 눈치챌 수 있었다.
도율의 말에 백우진 또한 크게 숨기는 기색 없이 인정했다. 그는 지금 어떤 생각에 골똘히 잠겨 있었다.
“아까 있었던 일에 대해서 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까 있었던 일?”
도율이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백우진이 카르멘으로부터 진한 작별 선물을 받았던 일.
“역시 좀 더 머무를걸 그랬습니까?”
“…그거 아닙니다.”
백우진이 정색하고 대답했다.
백우진이 생각하고 있던 건 카르멘과의 일이 아니었다. 그보다 이전, 미하일에게 들었던 내용에 대해서였다.
“그 시설은 사육장이라고 했죠.”
“그랬죠.”
도율의 예상대로 그곳은 사육장이었다.
동물이 아니라 인간을, 그것도 각성자만을 모아 놓은 사육장.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은 실험과 관찰이었다. 무슨 명령이든 듣는 강력한 각성자, 혹은 마력을 추출하는 노예. 그걸 얻기 위한 것이라면 이해할 수 있었지만.
중요한 건 성별과 연령이 제한된 이들만이 그곳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끝까지 듣지 못했죠.”
분근착골.
도율의 고문에 공포에 떨면서도 미하일은 그것만큼은 대답하지 않았다. 죽는 것 이상으로 두려운 일을 앞에 두고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은 아니었다.
그건 미하일도 정말 이유를 모르기 때문이다.
-정말이다! 난 백건우, 그 인간에게 들은 설명대로 한 것뿐이야!
‘백건우…….’
그는 백우진의 숙부이자 플레이아데스 길드의 길드장이었던 남자였다.
길드는 현재 사라지고 없었지만, 이전에 들었던 내용을 바탕으로 이러한 사육 시설을 구성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는 건 이 시설은 원래부터 있던 게 아니라, 백수아를 위해 공을 들여 조성한 환경이라는 뜻이 된다.
‘어째서?’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서는 미하일 또한 아는 게 없었다.
만약 아는 자가 있다면…….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숙부겠지.’
백건우는 죽었다.
그의 소유물 중 가장 크고 가치가 있었던 길드는, 그간의 행적을 문제 삼아 완전히 분해되었다.
주요한 간부들 역시 대부분이 도율의 손에 죽거나 실형을 선고받았다.
백건우가 지내던 저택이나 별장, 가지고 있는 자료들 또한 국가나 협회의 손에 넘어간 걸로 알고 있었다.
백우진은 당시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자세히 아는 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필요할 것 같았다.
“돌아가면 저는 숙부가 갖고 있던 것들을 찾아보겠습니다.”
“숙부라…….”
“도율 씨도 짚이는 부분이 있다면 알아봐 주길 부탁드립니다.”
운전대를 잡은 도율의 손가락에 살짝 힘이 들어갔다.
알아보려 한다면 얼마든지 알아볼 수 있었다. 당장에 백수아를 데려간 망량에게 물어보면 되니까. 그라면 모든 이야기를 알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하는 건 상관 없었지만.
도율이 곁눈질로 백우진을 훔쳐보며 물었다.
“아직 포기하지 않은 겁니까?”
망량은 백우진의 눈앞에서 백수아를 데려갔다.
그리고 도율은 백우진에게 망량이 백수아의 진짜 가족이라 설명했다. 백수아에게서는 망량의 누이인 이매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졌다.
백수아가 정말 이매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비슷한 무언가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조카 같은 거겠지.’
그렇게 따지자면, 실제로는 생판 남남인 백우진보다는 망량이 데려가는 게 맞는 걸지도 모른다.
“확실히 하고 싶은 것뿐입니다.”
백우진이 시선을 창가로 옮겼다.
* * *
“저어, 여기는……?”
백수아는 그림으로 그린 듯한 풍경 속에 도착해 있었다.
동화나 영화처럼 화려하고 환상적인 공간은 아니었다. 그러나 누런 종이 위에 검은 먹으로 그린 듯한 고즈넉한 장소였다.
이곳에서는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어쩌면 여기서는 시간조차 제대로 흐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당분간은 여기서 지내자꾸나.”
망량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곳은 망량의 은신처였다. 곳곳에 높게 깎아지른 산이 보였다. 지금 있는 곳도 상당히 고도가 높은 듯, 구름이 바닥 언저리에 걸쳐 있는 듯했다.
그래도 왠지 모르게 불편하다거나 무섭다는 기분보다는, 편안하고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 기분이 드는 것 자체가 부자연스러워서, 백수아는 경계를 풀지 않고 물었다.
“…당신은 누구시죠?”
그 질문을 받은 망량은 곤란하다는 듯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글쎄, 뭐라고 하면 좋을까…….”
그건 망량에게 있어서도 한마디 말로 확실하게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대답을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일단은 피곤할 테니 쉬자꾸나. 옷도 갈아입고.”
망량의 말에 백수아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걸치고 있는 것은 단 하나. 검은 정장 재킷이었다. 많이 허전했지만 몸을 덮을 정도로는 커다랬다.
그걸 준 사람은 백우진이었다.
지금에 와서는 꿈결 같은 장면이었다. 외국의 조직이 관리하는 깊은 지하실에, 찾아오는 이라고는 그 조직원밖에 없는 곳. 다른 이들에게는 그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았을 게 분명한 그곳에.
백우진이 어떻게 올 수 있었던 건지, 지금 생각해 봐도 믿기지 않았다.
그에 비하면 지금 이렇게 생소한 풍경 속에서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와 함께 있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백우진이 찾아왔었다는 유일한 증거. 그게 바로 이 재킷이었다.
백수아가 재킷 자락을 움켜쥐었다.
“저기…….”
“서오.”
망량이 손가락을 튕기자 검은 까마귀가 날아왔다.
“부르셨습니까, 주인님?”
“갈아입을 옷을 부탁해. 방 하나도 준비해 주고.”
“알겠습니다.”
까마귀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날아갔다.
‘방금 까마귀가…….’
준비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서오가 부리에 주머니를 물고 나타나, 그 안에서 백수아의 몸에 딱 맞는 크기의 옷을 꺼내 주었다.
떠밀리듯 백수아가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지금 입고 계신 옷은 처분해 드릴까요?”
방에 함께 들어온 까마귀가 물었다.
‘진짜 말하는 까마귀다…….’
그 광경을 백수아가 신기하게 쳐다보면서 대답했다.
“아, 아뇨. 보관해 주세요…….”
“하지만 아가씨께 어울리는 옷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도요.”
그러자 까마귀 서오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더는 따지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분부대로.”
서오의 대답에 백수아가 안심하듯 작게 숨을 내쉬었다.
* * *
“끝났군.”
백수아를 방에 들여보낸 망량은 툇마루에 앉아 경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발치에 깔린 구름 위로 솟은 산봉우리와 그 아래에 펼쳐진 희뿌연 내리막길과 자연 경관.
하나의 도시. 그 이상의 크기를 자랑하는 이 모든 공간이 전부 망량의 대주천 아래에 있는 영역. 파경대계였다.
이곳의 자신을 비롯한 다른 요괴들이 모두 생태계를 이루고 지내고 있었다.
그리고 외부에서는 이 공간을 일절 찾아낼 수 없도록 철저히 숨기고 있었다. 그것이 망량이 가진 속성이었으나.
어느새 곁에 돌아온 서오가 덧붙였다.
“바깥 세계에 나서고 마셨으니…….”
사바세계에 발을 들이고 나면, 순수함은 사라지고 자취가 남는다.
이 공간은 더이상 누구도 찾을 수 없는 숨겨진 공간이 아니게 된 것이었다. 그런다 한들 아무나 찾을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망량이 숨고자 했던 상대는 이 틈을 놓칠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까진 철저히 바깥에 나서지 않고, 이 공간 안에서 조용히 작은 요괴들만을 보내곤 했다.
도율을 부를 때에도 까마귀 서오를 보내 이곳으로 초대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아까 백수아를 데려오기 위해 인간 세상에 직접 발을 들여, 지금까지의 은신을 허사로 만들고 말았다.
“다른 애들한테 미안하네.”
“아닙니다. 지금까지 주인님께서 숨겨 주신 덕분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이니, 배은망덕하게 주인님을 탓할 순 없지요.”
본래 망량이 가진 힘은 이 정도가 아니었으나, 모두를 수용하기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고 있었다.
그런 망량을 탓할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주인님껜 어쩔 수 없는 일 아니었습니까.”
“그래…….”
망량에게 있어서 하나뿐인 혈육인 이매의 흔적이 더없이 강하게 느껴지던 순간이었다.
더는 참고 기다릴 수 없었다. 나중에 다시 한 번 더 도율을 불러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물어볼 수도 있었지만, 지금 때를 놓칠 수 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그 판단 자체는 틀리지 않았던 것 같지만, 역시 문제는.
“사도들이 들이닥치겠지.”
사도들이었다.
마계의 지배자. 그들과 망량의 관계는 썩 좋은 것이 아니어서, 굳이 지나치다 마주칠 일 없으면 그만인 정도로 그치지 않았다. 숨어 있는 것을 찾아내 끝장내러 올 만큼.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철저히 숨어 있던 것이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되었으니. 사도들이 어떠한 움직임을 보일 게 분명했다. 어쩌면 대부분의 전력이 이쪽을 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전면전을 펼친다면 망량의 세력이 훨씬 약했다. 전력을 잃기 전에도 그랬으니, 지금은 더욱 큰 차이가 날 게 분명했다.
하지만 비보만 있는 건 아니었다.
“…그 남자가 도와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서오가 묻는 남자가 누구인지 망량 또한 알고 있었다.
이도율.
함께 사도를 적으로 두고 있는 자로서, 적의 적은 동료라고 할 수도 있지만. 동료는 동료일 뿐, 동족이 아니었다.
“글쎄. 모를 일이지. 어쩌면 양동 작전을 펼칠지도 모르고…….”
마계에서 인간계와 망량을 동시에 공격한다면. 인간인 도율이 어느 쪽을 돕기 위해 움직일지는 뻔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걸 비판할 수도 없는 법이었다.
“어쨌든. 대비는 철저히 해야겠지.”
망량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 * *
「엇, 대협?! 언제 돌아오셨습니까?」
“방금.”
도율이 집에 돌아오자 반기는 건 흰돌이 뿐이었다.
“클레어는?”
「사장님이라면 일 나가고 없는데요. 아, 참. 근데 대협 큰일 났습니다.」
“큰일?”
「사장님이 이를 갈고 있던데요. 왜 연락을 안 하냐고. 해외 로밍도 안 하고 그냥 간 거 아닙니까?」
“…그게 뭔데?”
도율이 되묻자 흰돌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도율이 뒤늦게 핸드폰을 확인해 보자 그제야 밀린 메시지들이 쌓여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원래 연락이 많이 오는 편은 아닌 덕에, 쌓여 있는 메시지는 대부분이 클레어가 보낸 것이었다.
「쯧쯧. 사람이 이렇게 문명의 이기에 어두워서야……. 21세기 사는 거 맞습니까?」
생각해 보면 외부와의 연락 같은 잡다한 일은 모두 백우진이 도맡아 해 줬기 때문에, 도율은 그냥 몸만 따라다녀도 되는 수준이었다.
「까딱하면 러시아행 비행기를 끊을 뻔했지만, 이 제가 몸소 애교를 부려 막아 냈죠. 큰 건 하나 했으니 칭찬해 줘도 좋습니다.」
클레어까지 집을 비우면 흰돌이는 혼자서도 집을 봐야 한다.
그게 문제는 아니었다. 오히려 살판 났다고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지나 않으면 다행인 수준이었다.
하지만 클레어는 흰돌이를 그렇게 보고 있지 않으니. 가능한 아는 사람에게 맡기거나 해야 할 필요가 있었지만.
애교로 해결한 건 그 부분이었다.
“그래. 그건 잘했고, 나랑 일 하나만 더 하자.”
「예……?」
도율의 말에 흰돌이는 등골을 타고 소름이 올라오는 걸 느꼈다.
「아니, 대협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는 건 분명 쉬운 일이 아닐 텐데…….」
“할 수 있어.”
「무슨 일인지도 안 알려 주고요?」
도율이 잠시 고민하더니 답했다. 딱히 표현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차원 이동.”
「예……?」
그 말을 들은 흰돌이가 발톱을 세워 자신을 가리켰다.
「제가요?」
“그래.”
「…어떻게요?」
진지하게 물어보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