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2
2화 돌아왔
차원 균열에 몸이 닿으면 마력을 각성하지 못한 평범한 사람은 다진 고기가 되어 버린다. 초등학교만 나와도 아는 사실이었다.
내가 그 말이 틀렸다는 걸 깨달은 건 20대 초반의 봄이었다.
“꼬마야!”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차원 균열이 앞서 걷던 꼬마 아이를 집어삼키려고 했을 때, 내 몸 하나 건사하는 것조차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나는 재빨리 도망치는 것 대신 그 꼬마를 잡아당겨 멀리 밀치는 것을 택했다.
그 짧은 시간에 점 하나 크기였던 균열이 아가리를 벌려 내 몸을 집어삼켰다. 한 번 붙들리면 절대 빠져나갈 수 없다는 말은 진짜였다. 허리 아래로 감각이 전혀 없었다.
“아, 아저씨!”
꼬마는 내가 내동댕이치는 바람에 자빠져 무릎이 까져 있었다. 차라리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몰랐다면 좋으련만, 녀석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후회와 공포로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나는 억지로 입가를 끌어 올렸다.
“아저씨가 아니라 형이라고 불러, 인…….”
후욱!
균열이 온몸을 집어삼켜 뒷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몸에선 아무 감각도 느껴지지 않고, 눈으로 보이는 것 하나 없었다. 다만 정신만은 또렷했다. 죽음이란 게 원래 이렇게 선명한 건가, 하고 의문을 가지고 시간의 흐름만을 느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 보니, 보름달이 뜬 대나무 숲이었다.
* * *
이곳에 와서 스승님을 모셨다.
정말 많은 걸 배웠지만, 스승님이 스스로 가르침이라 칭하는 건 단지 하나의 말에 불과했다.
은혜는 절대로 잊지 말고,
원망은 언젠가 잊으라고.
무림인은 은원을 잊지 않는다고 한다. 은혜를 잊지 않는 건 상대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서고, 원망을 잊지 않는 건 자신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들은 목숨보다 체면을 중요시했다.
스승님은 그런 분이 아니셨다.
“알겠느냐? 율아.”
“…예.”
“그래, 약속이다…….”
그리 말씀하시며 스승님은 눈을 감았다.
그러나 못난 제자는, 가르침의 반밖에 배우지 못한 것이었다.
가장 먼저 스승님의 죽음에 일조한 쓰레기들을 찾아가 손을 썼다. 정말 딱 정당한 만큼이었다. 팔이나 다리를 못 쓰게 되어 금분세수를 하게 된 놈도 있었지만, 그래도 쌌다. 어쨌거나 누구 하나 목숨을 빼앗지는 않았다. 그래야만 스승님을 뵐 면목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림인이란 은원을 잊지 않고 체면을 목숨보다 중시해서 제 친구, 가족, 동문이 당했다는 소식에 줄줄이 꿰이는 소시지 같은 놈들이었다.
그런 놈들을 일일이 상대하다 보니 어느새 어느 무림 정파의 장문인이라든가, 어느 세가의 후기지수, 사파인지 흑도인지 모를 놈들까지 가리지 않고 맞이하게 된 것이었다. 손속을 두는 게 어려워져 피를 보는 것도 마다하지 않게 됐다.
오늘은 달이 밝았다.
안력을 기른 무림인에겐 대낮과도 같은 밝기였다.
그러니 그들이 작전을 실행한다면 오늘과 같은 날이었다. 예상을 하고 있었으므로 대나무 사이로 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에도 놀라지 않았다.
“천라지망을 펼쳤네.”
인삿말도 없이 전하는 담담한 통보. 피차 인사를 나눌 사이는 아니었다.
노인은 검존. 이름 붙이길 좋아하는 무림인들이지만, 지존이나 신선, 황제와 같은 이름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게 아니었다. 그 이름을 지킬 자격이 있는 자에게만 허락되는 위명이었다.
노인이라고 칭하는 건 백발과 주름진 얼굴 때문. 그러나 몸은 그 어떤 젊은이와 비교해도 탄탄한 근육과 골격을 자랑하고 있었다. 정순한 기는 고요한 바다와도 같았다. 쌓아 올린 기술 역시 세월이 무색하지 않을 터였다.
그리고 이자가 천라지망을 펼쳤다고 하면, 그런 그가 믿을 만한 인물들이 이 주변을 빈틈없이 에워쌌다는 뜻.
그러나 전혀 두렵지 않았다.
“고래를 잡으면 그물이 찢어질 텐데요.”
“그 정도 각오도 없이 그대를 상대하러 오진 않지.”
나는 무림의 공적이 되어 있었다. 그들에겐 체면을 이유로 사람을 기백 죽이는 자보다, 은원을 따지지 않는 내가 더욱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였다. 결국 난 정사를 막론한 최우선 문제였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이렇게 불렀다.
“수라.”
검존이 주변을 둘러보고 물었다.
“그대도 짐작한 게 아닌가? 최후를 맞이할 장소론 썩 나쁘지 않군.”
“그런 건 아닙니다. 단지 이곳은… 내 고향 비슷한 장소라서 말이죠.”
“고향? 이 대나무 숲이?”
물론 주변엔 민가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그야 난 여기서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원래 세계에서 이쪽 세계로 전이해 온 장소가 여기였을 뿐. 그때도 이렇게 보름달이 떠 있었다.
말해 봤자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이기에 말할 생각이 없었다. 내가 더는 대화할 생각이 없다는 걸 눈치챈 검존이 칼을 뽑았다.
달빛이 밝으면 도망치는 자를 추적하기 좋을진 몰라도, 내게도 유리한 점이 한 가지 있었다. 빛을 머금은 검신이 한층 선명해져 움직임이 눈에 훤히 보였다.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가 파스스스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윽고 소리가 멎었다.
* * *
“쿨럭!”
손바닥을 펼쳐 장을 내지른 내가 놀라움을 느끼고 움직임을 멈췄다.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었다. 내력을 담은 장법으로 옆구리를 타격해 내장을 진탕으로 만든다. 그러면 내공을 운용하기만 해도 극심한 격통을 느끼게 된다. 그게 내 계획이었다.
문제는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성공했다는 점이다. 내가 상대하는 게 검존이라 불리는 노인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검존도 노림수가 없는 건 아니었으나, 고작해야 내 허벅지에 칼침을 놓는 정도였다. 작은 상처는 아니지만, 내장이 뭉개지는 것과 비교하면 교환비가 성립하질 않는다. 저쪽은 즉시 치료하지 않으면 곧 죽음에 이를 정도의 치명상이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검존이 내 노림수를 파악하지 못하고 당해 줬을 리는 없었다.
“싸우다 죽고 싶었던 겁니까?”
무림인은 그런 경향이 있었다. 간혹 그런 이들이 찾아왔다. 딱히 나에게 은원도 없으면서 내 악명만을 듣고 찾아온 이들이.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강자와 싸워 보고 그대로 죽더라도 그만이라는 마음가짐인 작자들이.
내 짜증 섞인 물음에 검존이 피가 끓는 목으로 껄껄 웃더니 대답했다.
“클클. 뭇 사내들의 꿈 아니겠나.”
“난 아닙니다. 죽을 거라면 침대에서 죽을랍니다.”
“이런……. 수라라고 불리던 사내의 최후가 그리 소박해서야 쓰나.”
나로선 말년에 피 쏟으며 죽는 게 더 사양하고 싶은 일이었다.
“자네는 더 강해지고 있어, 싸움을 반복할수록……. 끝을 모르게, 두려울 정도로.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자네를 처리해야겠다는 결심이 든 걸세.”
노인은 옛날얘기를 하듯 읊조렸다.
허벅지의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이 정도 상처를 갖고 있다고 해서 순순히 붙잡힐 내가 아니다. 그건 날 상대한 이 노인이라면 더더욱 잘 알고 있을 터였다. 정말 날 처리하고 싶었다면 지원이 올 때까지 끈질기게 버텨야 했다.
그러나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앞뒤가 맞지 않는 말. 의문을 느낄 무렵, 노인이 빙긋 웃었다.
“그래서 자네를 쫓아내기로 정했네.”
“쫓아……?”
노인이 의복을 젖혔다. 그곳엔 빼곡할 정도로 잔뜩 노란 종이가 붙어 있었다. 그건 주술에 사용하는 부적이었다.
“내 심장의 피로 발동하는 주술이지. 자네 덕에 수고를 덜었어.”
노인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부적 위를 쓸어내렸다. 그러자 피를 머금은 부적들이 기이한 빛을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애초에 검존은 주술사가 아니었다. 아무리 부적을 쓴다고 해도, 고강한 내력이 담긴 심혈을 촉매로 쓴다 해도 나올 수 있는 주문의 위력이란, 그 대가로 치러진 것 이상을 바랄 수 없었다.
그보다는 차라리 그의 검 한 수가 더 위협적일 테니, 검존이 목숨과 맞바꿔 발동할 이유가 없었다.
“설마 천라지망이란 건…….”
“눈치챘나? 이 모든 게 자네를 포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술을 발동시키기 위한 술진이었다는 걸.”
주술의 발동을 지시한 검존. 그리고 주변에 있는 수많은 무인… 으로 가장한 주술사들. 말 그대로 무림 전체를 적으로 돌린 자 정도가 아니면 맛볼 수 없는 규모의 협공이었다.
기이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이 주변 일대의 기의 흐름이 마구 휘몰아치고 있었다.
마지막임을 예감하자 단 하나가 마음에 걸렸다.
“스승님 말씀, 들을걸.”
딱히 이런 최후를 맞이하게 돼서 후회하는 건 아니었다. 단지 스승님의 유일한 제자였던 내가 그 가르침을 똑바로 행하지 못한 게 부끄러웠을 뿐이다.
“잘 가게. 자네가 내 마지막 상대라… 참으로 즐거웠다네.”
유언과도 같은 검존의 작별 인사를 들으며, 나는 눈앞에 벌어진 현상에 눈을 크게 떴다. 검은 점이었다. 아주 옛날에 보았던 그…….
검은 점은 몸집을 불리더니 내 몸을 집어삼켰다.
* * *
시간이 지나 눈이 부셔 눈을 떠 보니 햇살이 나를 비추고 있었다. 나무가 무성히 자란 산속이었다. 대나무는 아니었고, 소나무였다.
무작정 걸어 산을 내려와 보니 익숙하면서도 생소한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 이름이 무엇인지 떠올리는 데 한참이나 걸렸다. 내 생각에 확신을 더하기 위해 그 단어를 입에 담아 보았다.
“아스팔트 포장 도로…….”
당연히 저쪽 세계에선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던 문명의 산물.
“돌아왔다.”
그제서야 실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