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202
202화 이쪽이 더 급해
“이거… 놓으십시오!”
서오가 신음했다.
거대한 주작으로 변한 서오는 지금, 도율에게 덜미를 잡혀 고개를 절벽의 바위 틈새에 처박은 채였다.
도율의 손아귀가 서오의 고개를 계속해서 짓누르고 있었다. 거대한 날개를 아무리 퍼덕거려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무슨 힘이……!’
결국 힘으로 밀어내는 것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서오는 몸을 불꽃으로 변화시켜 도율의 손아귀 사이를 빠져나왔다.
도율이 꽉 붙잡고 있던 깃털이나 목덜미는 모두 아지랑이처럼 흔들리며 손틈 사이로 흩어졌다.
사방으로 퍼진 불꽃은 다시 한 점에서 모이더니 공중에서 날갯짓하는 새의 형상을 이루었다.
“인간 주제에……!”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서오의 몸을 둘러싼 불꽃이 점점 더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메마른 절벽이 아니라 풀과 나무가 자란 산등성이였다면 불이 붙고도 남을 정도의 온도.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이미 화염에 몸부림치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상태로, 도율이 중얼거렸다.
“먼저 이놈부터 치워야겠군.”
도율이 손가락을 펴 검결지를 만들었다.
길게 뻗은 손가락을 휘둘러 내공을 담으면, 그 동작을 따라 번개와 같은 속도로 검격이 뒤를 이었다.
“여뢰(如雷).”
후욱!
도율의 검격이 서오의 몸을 꿰뚫고 지나갔다.
불꽃으로 이루어진 몸은 검격에 닿아 분명히 한차례 크게 흩어졌지만, 그게 전부였다. 불꽃은 다시 갈라진 부분을 메우며 모여들어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서오가 입가를 비틀며 웃었다.
“소용없습니다. 그런 공격은 몇 번을 해도 제게 상처 입힐 수 없습니다.”
“그래 보이네.”
불꽃으로 이루어진 몸은 단순한 검격으로는 손상을 줄 수 없었다.
진짜 검으로 베어 낸 것이 아닌, 내공을 담아 만들어 낸 허상의 검기. 그렇기 때문에 실체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모두 베어 낼 수 있었다.
불꽃을 베어 내는 것도 도율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지만.
‘손맛은 있었는데.’
서오는 멀쩡하게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도율의 검격이 잘라 낸 날갯죽지는 아무런 피해도 없어 보였다.
베이기는 베였으나, 그 상처를 회복하는 수단이 있는 것이었다.
‘하긴.’
주작과 불꽃은 환생의 상징. 그러니 아무리 베어 낸다 하더라도 다시금 살아날 수 있었다.
‘그럼 어쩐다.’
다시 회복할 수 없도록 저주를 담는다거나 하는 방법이 떠올랐지만, 그런 건 도율의 전공이 아니었다.
지금 당장 급조해 낸다고 해서 사신수의 격에 걸맞은 저주를 심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자. 이렇게 되면 인내심 싸움입니다.”
서오가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동굴 안에 있는 듯했던 망량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이곳에는 주작 서오만이 남아 도율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거면 충분했다. 애초에 망량이 이곳에 남은 목적이 도율을 붙잡아 두는 것이었으니까.
서오는 그 역할에 자신이 있었다.
‘정말 단순한 소모전으로 가는 수밖에 없나?’
별로 합리적인 교환은 아니라 여겨졌다.
도율의 공격에 사용하는 내공과 서오가 회복에 사용하는 힘. 둘 중 뭐가 먼저 바닥날지 계속해서 겨루는 건.
자신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상대가 유도한 상황에 뛰어들어 싸우는 상황이었다.
특기가 아닌 실체가 없는 허상을 상대로 싸우는 일에, 상대는 몸을 수복하는 것이 특기인 상황. 굳이 그 상황에 어울려 줘야 할 이유가 없었다.
특히 지금은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다. 한시 바삐 인간계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 그렇게 시간을 소모하는 건 망량의 의도대로였다.
‘이긴다 하더라도…….’
요괴들의 총공세가 온전히 남아 있는 상황에서 내공을 적잖이 소모해야 하는 선택 자체가 달갑지 않았다.
어쩌면 망량이 서오를 이곳에 남겨 둔 이유가 그것일지도 몰랐다.
도율이 온전한 상태로 이곳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것.
“당신이 제아무리 강한 인간이라 하더라도, 살아온 세월의 길이는 고작해야 눈 깜빡할 정도에 불과하겠죠.”
인내심 싸움은 자신이 한 수 위라는 말.
도율은 공중에서 날개를 휘저으며 비웃는 서오를 올려다봤다.
“그야 그렇겠지.”
그렇게 인정하는 말을 한마디 내뱉고는 손을 뻗었다.
“뭡니까? 그 손은?”
서오가 비웃음을 머금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제 와서 손이라도 잡자는 겁니까?”
“설마.”
도율이 중지와 엄지를 붙였다.
“좋은 생각이 떠올라서.”
“좋은 생각……?”
도율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그 손길을 타고 검은 불티가 튀어나왔다. 검은 불꽃은 그 손길을 따라 끝없이 뻗어 나갔다.
길게 뻗은 검은 줄기가 서오의 불길을 두른 몸뚱이에 닿았다.
“삼매진화(三昧眞火).”
도율이 내공을 불어넣자 검은 선 위로 꽃이 피어나듯 불꽃들이 터져 나갔다.
도화선을 따라 목적지에 도착한 검은 불꽃들이 온통 붉은 서오의 불꽃을 검게 물들였다. 불꽃을 잡아먹고 불꽃을 태우는 불꽃. 한 단계 상위의 불꽃이었다.
“크윽… 소용없습니다!”
그건 확실히 서오의 불꽃보다 상위의 격을 자랑했지만.
같은 불꽃이라는 속성을 가진 서오에게는 결정적인 타격을 주지 못했다. 아무런 영향이 없는 건 아니었어도, 서오는 여전히 삼매진화의 불꽃을 견디고 있었다.
이대로 최대한 도율의 내공이 소모되도록 유도한다면. 그것이 서오의 목적이었지만.
‘이건……?!’
그저 검은 불꽃이 몸을 뒤덮은 채 타오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검은 불꽃은 조금씩 서오의 몸을 뒤로 밀어내고 있었다. 앞쪽의 불꽃이 흩어지며 뒤쪽에 조금씩 더 짙게 타오르고 있었다.
마치 바람이 불어 불길이 밀려나듯 서오의 몸을 이루고 있는 불꽃 또한 삼매진화와 함께 밀려나고 있었다.
“나중에 보자.”
서오를 멀리 떨어뜨려 놓기 위한 도율의 계략이었다.
“이……!”
서오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소리쳤다.
“아무런 근본도 없는, 되는 대로 주워 만든 누더기 따위가!”
그 말을 들은 도율이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가, 이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뭐, 그렇긴 하지.”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신기해서 조금 놀라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모욕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아니었다.
도율이 펼치는 무공은 서오가 알고 있는 상식의 틀에 갇혀 있지 않았다.
‘근본이 없다라…….’
도율이 펼치는 무공에 대한 정확한 평가라고 볼 수 있었다.
어쨌거나 저 귀찮은 녀석을 당장은 쫓아낼 수 있으니. 무슨 소리를 듣더라도 기분 좋게 흘려 넘길 수 있었다.
서오가 안간힘을 쓰며 날개짓을 했지만, 앞으로 날아가고자 하는 불꽃들은 모두 흩어져 사라지고 말았다. 그렇게 서오는 절벽으로부터 떨어져 어딘가를 향해 계속해서 밀려 나갔다.
도율의 내공이 삼매진화를 계속해서 불태우는 한 영원히.
즉, 여기서 나갈 때까진 방해받을 일이 없다는 뜻이었다.
「대협, 아까 그 말은…….」
흰돌이가 가까이 다가와 물었다.
「아, 아니. 역시 됐습니다.」
흰돌이가 질문을 다시 집어넣었다.
도율도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꺼내고자 하면 긴 이야기가 될 텐데,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었으니까.
“일단 여기서 탈출하자.”
「타십쇼.」
흰돌이가 커다란 형태로 변했다.
도율을 등에 태운 흰돌이가 자세를 웅크렸다. 곧 네 발로 달리기 시작하더니 벽으로 막혀 있는 곳을 향해 용맹하게 돌진했다.
쾅!!
「아악!」
벽에 머리를 들이박은 흰돌이가 코를 감싸쥐고 바닥 위를 굴렀다.
진작 내린 도율이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실패했군…….”
역시 쉽게 빠져나갈 순 없었다.
* * *
“아오, 씨. 집에서 디비 자고 있었는데 이게 다 뭔 난리래?!”
고철민이 소리쳤다.
연락을 받고 급하게 나와 봤더니 사방이 온통 난리가 나 있었다.
팀장인 청진명에 부름에 고철민은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장비를 챙겨 급하게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보게 된 풍경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게이트…인가?!’
거리에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헌터들도 모두 길거리에 나와 시민들의 대피를 돕거나 달려드는 몬스터를 상대하고 있었다.
‘무슨 경보도 없이……!’
원래는 던전과 게이트로 이어지는 균열이 나타나기 전에 발생하는 전조를 파악해 그 탄생을 미리 알리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특히 땅이 좁고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는 한국에서는 나름대로 잘 작동하는 시스템이었다.
기계를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이 난리가 날 거라면 무언가 신호가 있어야 했다.
‘그런데…….’
도시 한복판에서 징조도 없이 갑작스럽게 이 많은 몬스터들이 쏟아진 것도 놀랍다면 놀라운 일이었지만.
고철민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뭐지, 이놈들은……?’
그 역시도 나름대로 S급 헌터에 준하는 존재라 불리며 수많은 던전과 게이트를 공략해 왔다.
그러나 지금 거리에서 맞닥뜨린 존재들은 분명히 그가 아는 것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몬스터가 아닌 건가……?’
이형의 모습을 하고 사람들을 공격하는 존재. 그러나 그가 알고 있던 몬스터들과는 전혀 다른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게다가 다른 것은 생김새뿐만이 아니라…….
‘뭐지, 이 느낌은?’
느껴지는 기운 또한 이질적이었다.
그때 그의 단말기로 재차 청진명의 연락이 왔다.
[오고 있냐?]“어어, 형님! 출발은 했는데, 여 완전히 난립니다! 이거……!”
[거긴 거기 사람들한테 맡기고 여기로 당장 와라.]“예?!”
고철민이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상황이 썩 좋지는 않았다. 당장 누군가 죽어 나가거나 건물이 무너지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일손이 부족해서 사방에 고함과 비명이 메아리쳤다.
이대로 가다간 파국을 맞이할 게 뻔해 보이는 상황. 누군가 돕지 않으면 죽거나 다치는 사람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았다.
이곳 또한 도와야 할 사람이 많았지만. 청진명은 고철민을 채근했다.
[이쪽이 더 급해.]“예……?”
청진명이 짙은 한숨과 함께 내뱉은 소리였다.
확실히 청진명도 가능하면 주위를 돕고 싶어 할 성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원들부터 급하게 불러 모은다는 건, 그들이 힘을 합치지 않고는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가 있다는 걸 의미했다.
“그렇심꺼…….”
당장은 인력이 모자란 것처럼 보이지만, 곧 충원될 것이라고.
[그래, 그러니까…….]“그럼 둘 다 하겠심다.”
[뭐?]고철민이 마력을 달궜다.
“사람들도 도우면서 약속 장소로 곧장 날아가겠심더. 그럼 문제없죠?”
[인마…….]지장이 없을 리는 없었다.
고철민은 마법사. 마력을 소모할수록 강력한 공격을 퍼부을 수 있는 포대였다. 그것에만 능한 건 아니었지만, 팀에서 가장 자신 있는 역할은 화력 담당이었다.
그러니 가능한 마력을 온존한 채로 올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성격 상 저런 걸 내버려 두고 오라고 해 봐야 제대로 집중할 수 있는 놈도 아니었다. 한계를 맞이하게 내버려 둬야 극한까지 뛸 수 있는 놈이기도 했다.
[…오기나 해라.]결국 청진명은 허락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