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203
203화 동업자
“좋아. 모두 모였구만.”
고철민의 도착을 마지막으로 청진명이 선언했다.
이곳엔 청진명의 팀원이 모두 모여 있었다. 팀장인 청진명에서부터 송민아, 고철민, 정하준. 그리고 마지막으로 막내인 클레어까지 전부.
청진명이 그 면면을 둘러봤다.
고철민은 상당히 거창하게 저지르고 왔는지 숨을 고르고 있었다. 마력을 아끼기 위해 답지 않게 몸으로 뛰는 것도 서슴치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 외의 다른 이들도 상당히 초조한 듯한 얼굴이었다.
그 심정을 헤아리는지 청진명이 거두절미하고 이야기를 꺼냈다.
“다들 오면서 봤겠지만, 지금은 어딜 가도 갑작스러운 습격이 펼쳐지고 있다.”
“설마 누님네 동네도?”
“그래. 지금 전국이 난리야.”
송민아가 고개를 저었다.
각자 다른 동네에 살고 있는 팀원들이었지만, 모두 소란이 터진 곳을 지나쳐서 이곳에 도달했다.
하나의 게이트가 터졌다면 이런 식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 일대에 피해가 있을지언정, 그것이 다른 지역까지 널리 퍼지는 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다는 건 이게 단순히 하나의 게이트에서 벌어진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했다.
적어도 둘 이상. 규모를 보면 수십 개까지도 추정할 수 있었지만.
‘그런 일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던 사건을 앞에 두고, 한 명이라도 힘을 보태야 하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이 나라 최고의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청진명의 팀이 도시 외곽에 집결한 이유가 따로 있었다.
청진명이 손가락을 가볍게 뻗었다.
“뭔가가 북쪽에서 남하하고 있다.”
“뭔가라니…….”
애매한 표현이었다.
그래도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야 할 필요가 있는 상대라면, 쉬운 상대가 아니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
“보스급 몬스터입니까? 등급 추정은요? 설마 S급…….”
S급이란 말은 측정 불가라는 말과 비슷했다. 그 이상의 등급은 없었다. 측정기의 측정 상한을 넘어선 것을 모두 그렇게 부르고 있기 때문에.
S급 몬스터를 상대하는 게 두려운 건 아니었다. 그런 몬스터는 이미 자주 상대해 본 경험이 있으니까.
문제가 있다면 이곳이 던전 안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거, 쉽지 않은데…….”
주변이 망가질 걸 고려하면서 싸우는 건 익숙하지 않았다. 익숙하다고는 해도, 화력을 조절하면서 상대해도 좋을 정도로 만만한 상대들은 아니었다.
게다가 청진명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등급은 측정할 수 없더라고.”
“그니까, S급…….”
“아니. 말 그대로 측정 불가였다.”
“예? 그기 뭔 소립니꺼?”
지금까지의 상식을 부인하는 듯한 말에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
“측정기로 쐈는데 마력이 전혀 검출되지 않았어. 상공에서 분명히 거대한 몸뚱이는 눈에 보이는데, 신기할 정도로 마력이 감지되지 않더라고.”
“직접 봤습니까?”
“어.”
청진명이 급히 협회에서 공수한 헬기를 타고 그 모습을 확인하고 팀원들을 호출한 것이었다.
그 몸체는 마치 산과도 같았다. 거대한 크기를 가진 몬스터가 느릿하게 서울을 향해 걷고 있었다.
그 속도는 결코 빠르지 않았지만, 도달하게 된다면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리란 걸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런 커다란 몸을 가진 몬스터는 자연적으로 축적할 수 있는 마력의 용량 또한 커다랗기 마련이었다.
그런데도 마력이 측정되지 않았다는 건 기이한 일.
“오히려…….”
헬기 위에서 직접 봤던 청진명은 무언가 기묘한 감각을 느꼈다.
먼 거리였지만 작은 감각도 놓치지 않고 붙잡으려 한 결과. 본질적으로 무언가 다른 존재라는 의심이 피어올랐다.
“마력이 아니라 좀 더 따끔따끔한 느낌이 들었는데……. 뭐, 이건 참고만 하고.”
“……?”
다들 의아하게 여기며 그냥 넘어갔지만, 단 한 사람. 클레어는 어딘가 익숙한 표현에 머리를 싸맸다.
‘마력이 아니라……?’
그 고민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아무튼! 당장 튀어 가서 해치우자 이말 아입니까?”
“뭐, 그렇지.”
“그럼 출발합시더!”
정보가 없어 조심해야 하지만,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을 수만도 없었다.
이러고 있는 동안에도 동시다발적으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으니까. 여기를 빠르게 정리하면 다른 곳을 도우러 갈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다른 팀원들도 생각이 일치하는 듯했다. 저런 위협을 가만히 내버려 둘 생각은 아무도 없어 보였다.
“짜식들……. 그래, 좋아. 갈까.”
청진명이 출발을 지시하기 직전.
누군가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잠깐 기다려 주십시오.”
“……?”
생소한 남자의 목소리.
안경을 끼고 진회색 머리카락을 말끔하게 빗어 올린 남자. 반듯한 정장 차림이 매일 입는 옷처럼 익숙하게 잘 어울리는 인상의 남자였다.
그 얼굴을 모르는 자는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백우진?”
전 플레이아데스 길드의 부길드장.
모를 수가 없는 자였다.
* * *
“그쪽도 데려가 달라고?”
갑작스레 등장한 백우진이 요청한 건 합류였다.
“예.”
당당히 요구하는 백우진을 송민아가 아니꼬운 눈길로 바라봤다.
백우진도 다소 뻔뻔한 부탁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저자세로 애원하듯 나가 봤자 들어주지 않을 거란 걸 잘 알고 있었다.
“부탁드립니다.”
거기에 넘어갈 송민아가 아니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야 그쪽은…….”
“좋아.”
“뭐?!”
허락한 건 청진명이었다.
송민아가 도끼눈을 뜨고 노려봤지만 청진명은 백우진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옆에서 정강이를 걷어차며 대체 무슨 생각이냐고 잔소리를 해도 개의치 않고.
그러나 청진명에게도 조건이 있었다.
“단. 면접 봐서.”
“면저업?”
이건 또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
송민아는 청진명의 생각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른 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청진명은 손가락으로 클레어를 가리켰다.
“면접관은 막내다.”
“…네?”
“뭐야?!”
“자, 나머지는 출발 준비하자.”
청진명이 송민아를 끌고 사라졌다. 고철민과 정하준도 두 무리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한숨을 쉬고는 청진명의 뒤를 따랐다.
어쨌거나 출발 준비를 하고 그 몬스터를 사냥하러 가야 하는 게 급선무였다.
백우진이란 놈이 갑자기 끼워 달라고 해서 거기서 멋대로 죽거나 해도 결국은 자업자득일 테니. 거기서 겁에 질려 도망치기라도 하면 차라리 나을 거고.
“…….”
“…….”
이곳엔 백우진과 클레어만이 어색하게 남아 있었다.
두 사람 다 원래 말수가 많은 편은 아니어서 원활하게 대화가 시작되진 않았다. 얼굴은 알지만 친한 사이도 아니었다. 사적으로 안부를 물을 사이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래도 면접관 감투를 쓴 클레어가 먼저 사무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갑자기 뭐죠? 불쑥 찾아와서. 지금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는 알고 하는 말인가요?”
“알고 있습니다. 북쪽에 나타난 요괴를 처치하러 가는 길 아닙니까?”
“요괴……?”
백우진의 입에서 나온 생소한 단어.
백우진 또한 헌터 업계에 오랫동안 있었으니, 몬스터란 말을 달리 표현하는 방법들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나타난 것들은 몬스터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몬스터가 아닌 다른 표현을 사용했을 뿐이었다.
그건 도율이 알려 준 말이었다.
“모르는 겁니까? 북쪽에서 발견된 요괴, 커다란 몸체를 가지고 있는데 거북이의 모습에 꼬리엔 뱀이 달려 있는 형태입니다. 이름은…….”
“잠깐.”
클레어가 검 위에 손가락을 얹으며 말을 끊었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알죠?”
“데려가 주시면 제가 아는 건 전부 알려 드리겠습니다.”
“질문에 대답부터 하세요.”
백우진은 평범한 인간이었다. 클레어가 마음만 먹는다면 단칼에 목숨을 끊을 수도 있었다.
백우진은 육식동물 앞에 맨몸으로 서 있는 인간이나 다를바 없었다.
“또 당신네 길드가 저지른 짓인가요?”
“…….”
현재 백우진의 소속은 플레이아데스 길드가 아니었다.
그래도 그곳의 부길드장이었던 꼬리표는 언제까지나 그에게 달라붙어 있었다. 초대 길드장의 아들이기도 하니까, 벗어날 수 없다고는 알고 있었다.
게다가 길드는 사라진지 오래였지만, 길드에서 해왔던 일들은 아직 남아 있는 것들이 있었다.
당장에 백수아만 해도 그런 존재 중 하나였다.
“대답하세요.”
클레어는 어느새 검을 뽑아 백우진에게 겨누고 있었다.
무고한 인간에게 검을 겨누는 건 헌터로서 바람직한 행동은 아니었다. 평소의 클레어라면 결코 하지 않을 일이었다.
그러나 그 상대가 백우진이라는 것은, 그녀에게서 평소와 다른 반응을 이끌어 내기에 충분한 이유였다.
클레어의 재촉에 백우진은 여전히 동요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제가 이에 관한 내용을 알고 있는 건 당신이 말하는 그 길드와는 무관합니다.”
“그럼 어떻게?”
“이건……. 이도율 씨한테 들어서 알고 있는 겁니다.”
“…뭐라고요?”
클레어의 검이 조금 가라앉았다.
거기서 도율의 이름이 왜 나오냐는 듯한 반응이었다.
백우진이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도율이 클레어에게 말하지 않았으리란 건 짐작했지만, 그 비밀을 자기 입으로 깨게 생겼으니. 염치가 없기도 했다.
그래도 지금은 필요한 일이었다.
백우진이 안주머니에서 코팅된 종이 두 장을 꺼냈다. 새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 구겨진 듯한 종이였다.
“이도율 씨와 최근에 같이 일했던 사람. 접니다.”
“…당신이?”
백우진이 꺼낸 건 비행기 표였다.
러시아 모스크바행 비행기. 얼마 전 도율이 다녀온 곳이었다. 그 날짜가 정확히 기록된 티켓이었다.
클레어가 티켓의 날짜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확인은 이미 끝났지만, 깊이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이었다.
‘하필이면…….’
클레어는 아직도 플레이아데스 길드에 앙금이 남아 있었다.
도율이 길드를 박살 낸 것도, 잔당이 모두 처분을 받은 것도 알고 있었다. 백우진은 거기서 빠져나왔다는 것 또한.
하지만 법적 처분이 기분까지 설득해 주는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도율에게도 남의 일은 아니었다. 클레어의 매니저인 도은은, 다름 아닌 도율의 가족이었다. 어쩌면 자신보다 더 감정의 골이 깊은 상태일 수도 있는데.
용서한 건지, 아니면 이용하는 건지.
“하아.”
클레어가 검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싸늘한 눈초리로 쏘아붙였다.
“당신이 죽든 말든. 저는 신경 안 쓸 거예요.”
멋대로 따라왔으니 도움은 바라지 마라.
겁 좀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달리 백우진은 태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되레 인사를 받고야 말았다.
* * *
“이거 어쩐다.”
준비된 차량은 한 대였다.
작은 차는 아니었지만, 장비를 싣고 나면 여섯 명이나 타기엔 자리가 모자랐다.
“운전은 제가 하겠습니다.”
백우진이 운전기사를 자처했지만, 고철민이 막아 세웠다.
“동작 그만! 그렇게 말하고 널찍한 운전석 차지하려는 속셈인 거 모를 줄 아나?!”
“…그럼 아무 데나 상관없습니다.”
“아이다! 운전이나 해라!”
그래도 운전대를 잡는 건 귀찮았다.
그때 송민아가 대수롭지 않게 해답을 내놓았다.
“뭐가 문제야? 나도 바이크 끌고 왔는데.”
“누님 바이크… 말입니꺼?”
“뒤에 한 명 더 탈 수 있어.”
“…….”
고철민이 마른침을 삼켰다.
송민아의 바이크는, 대외적으론 비밀이고 팀원들 사이에서 조용히 쉬쉬해 주고 있지만. 마석으로 개조를 마친 녀석이었다.
속도가 엔진의 한계를 뛰어넘어서 각성자가 아니고서야 도저히 가속을 버틸 수 없는 놈이었다.
뒤에 탄 사람도 목숨을 걸지 않으면 위험했다. 아니, 여차할 때 달리는 바이크 위에서 뛰어내려 무사히 착지할 능력이 없으면 탈 생각을 하지 않는 게 좋았다.
일반인인 백우진을 태운다는 건 어불성설. 하지만 남은 인원들은…….
“가위!”
고철민이 기습적으로 외치자 청진명이 다음 말을 받았다.
“바위!”
정하준이 마무리 지었다.
“…보!”
네 사람의 손 모양이 교차했다.
결과는 단번에 정해졌다. 지목된 건, 가위 사위에서 홀로 보자기를 낸 청진명이었다.
“오예!”
고철민이 싱글벙글하며 차량에 올라탔다. 이어서 클레어와 정하준도 탑승했다. 이곳엔 네 사람이 타게 됐다.
“음악, 틉니까?”
“지금 놀러 가는 줄 알아요?”
“실례. 동업자의 습관이라.”
“…뭐라고요?”
이곳도 숨 막히긴 마찬가지였다.
고철민이 창문을 내려 죽상을 하고 헬멧을 쓰는 청진명과 눈을 마주쳤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었심더…….”
“역시…….”
청진명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송민아의 바이크가 순식간에 최고 속력으로 치달으며 달려 나갔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