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204
204화 빌리겠습니다
“야, 너 뭐냐?”
부아앙!
불법 개조한 바이크를 타고 비탈길을 종횡무진으로 달리는 송민아가 물었다.
바람과 엔진 소리에 목소리 따윈 금방 흩어질 법도 했지만, 송민아의 등에 착 달라붙어 있는 청진명에게는 분명히 들렸다.
각성자인 두 사람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뭐냐니. 뭐가?”
“백우진, 저 녀석 말이야.”
송민아가 가리킨 건 끈질기게 뒤따라오는 차량을 운전 중인 백우진이었다.
대뜸 찾아와서는 몬스터 토벌에 같이 데려가 달라니. 원래 같았으면 각성자도 아니면서 그런 부탁을 하는 백우진을 정신병자 취급하고 내쫓았어야 했다.
하지만 팀장인 청진명이 별다른 조건도 없이 수락해 버린 탓에 이렇게 백우진이 합류해 있었다.
“제정신으로 할 짓이 아니잖아. 무슨 꿍꿍이야? 너 뭐, 저 인간이 죽기라도 바라는 거야?”
물론 정말 그렇게 된다면 현장 지휘자인 청진명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
죽일 생각으로 데려가는 건 아닐 테고. 당연히 데려간 이상 목숨을 보존해 주는 건 그들의 몫이었는데.
굳이 그런 귀찮은 일을 자처할 이유를 송민아는 알 수 없었다.
“딱히. 저 녀석도 죽을 생각은 아닐 테고.”
청진명은 백우진의 의도를 알지는 못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니까 데려가 달라고 하는 거겠지. 이 불가사의한 현상에 대해 어느 정도 짚이는 것도 있는 모양이고.”
“그것만으로?”
송민아가 의심스럽게 눈초리를 좁혔다. 운전 때문에 앞을 봐야 하는 탓에 뒤에 있는 청진명을 노려볼 순 없었지만.
“너, 저 인간이랑 아는 사이지.”
송민아가 짐작을 던지자 청진명이 시인했다.
“그래, 맞아.”
“뭐?! 너…!”
그건 갑작스럽게 바이크를 멈춰 세울 정도로 놀라운 대답이었다.
물론 송민아가 달리는 바이크를 멈춘다는 선택을 하는 일은 없었다. 기체가 조금 휘청거리는 것으로 그칠 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청진명은 심장이 떨어지는 듯했다.
“야, 야! 운전! 운전!”
청진명이 등 뒤에서 송민아의 어깨를 두드리는 가운데, 송민아가 더욱 거칠게 바이크를 흔들었다.
“대답이나 해! 언제부터 알고 지낸 거야?!”
만약 플레이아데스 길드와 엮인 거였다면 이대로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자신에게 말도 하지 않고 다른 길드와 몰래 연락을 취하고 있었던 거라면. 로얄로드 길드장인 최윤호도 당연히 몰랐을 거고. 하필이면 엮여도 그런…….
그런 송민아의 어림짐작을 예상했는지 청진명이 덧붙였다.
“길드 때문에 아는 건 아니고.”
“그럼 뭔데?! 뭐 낚시나 등산이라도 같이하냐?”
“그것도 아니고…….”
청진명에겐 달리 취미가 없었다. 그런 데에 시간을 쓸 틈이 없다는 걸 송민아도 잘 알고 있었다.
길드가 무너지고 난 후의 백우진 역시 달리 외부 활동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으니, 어디선가 사교적인 활동을 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청진명이 바람 소리에 흩어질 듯이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선배거든.”
“선배라고?”
청진명의 대답에 송민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우리보다 어리지 않나?”
“맞는데.”
“근데 무슨 선배야, 선배는. 팍 씨.”
그저 농담으로만 여기는 송민아와 달리, 청진명의 대답은 진지했다.
“사형이라고.”
“갑자기 사형은, 내가 널 사형시키고 싶…….”
그렇게 대답하던 송민아가 갑자기 말을 멈추고 물었다.
“잠깐. 사형이라니, 설마 그 사형? 그러니까, 화랑원 선배라고?”
“그래.”
화랑원(花郞園).
마력을 운용하기 용이한 근거리 무기를 주로 익히는 각성자들을 위해 냉병기의 시대가 재래했을 때, 전통적이고 현대적인 무술을 가르치는 국가 조직이었다.
무술가나 각성자들로 구성된 사범들 아래에서 검이나 창을 비롯한 각종 무기술을 가르치는 곳이었다.
그리고 청진명이 창을 배운 것 또한 그곳에서였다.
“백우진이 화랑원 출신이었다고?!”
“어.”
“왜? 각성자도 아니면서?”
송민아의 물음에 청진명이 쓰게 웃었다.
그야 각성자가 아니라면 굳이 본격적으로 무기술을 배울 필요가 없었다. 일반인이 몬스터로부터 몸을 지키고 싶다면 차라리 비싼 돈 주고 산 마나 건이 제 몫을 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러나 백우진이 화랑원에 다닌 건 그의 의지가 아니었다.
“성창 백건우. 그 사람 아들이잖아.”
어린 시절의 청진명이 가장 동경하던 인물의 이름이기도 했다.
“4살 때부터 창을 쥐었다더군.”
청진명이 창을 배운 건 각성자가 된 이후였다.
그야 각성자가 되기 전엔 굳이 칼자루를 쥐고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할 필요가 없었으니, 그전까지는 아무것도 배운 적이 없는 생초짜였다.
그나마 어린 나이에 각성한 덕에 남들보다는 배움이 빨랐다. 재능도 있었고. 나름대로 화랑원에서 촉망받는 신인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기보다 어린, 그러나 경력은 긴 소년이 있었다.
그게 바로 백우진이었다.
“어머니 등쌀이었겠지. 아버지를 닮아 훌륭한 각성자가 되어야 하니, 펜보다 먼저 창을 쥐게 했다 들었어.”
아직 각성하지도 않았는데 화랑원에 보내진 백우진은, 어린 일반인의 몸으로 각성자의 수준에 맞춘 혹독한 수련을 따라가야만 했다.
성인이 된 청진명은 본격적으로 헌터 활동을 시작했다. 당연히 더는 화랑원에 드나들지 않게 됐다.
스승의 날에나 홍삼 세트를 들고 찾아 뵈었던가.
-으하하, 고맙다! 넌 우리 화랑원의 자랑이야, 인마. 애들이 얼마나 네 얘길 하는지……. 평소에도 간간이 와서 수업 좀 봐주면 안 되겠냐?
-이것도 바쁜 시간 내서 온 겁니다. 누가 이런 땀내 나는 곳에 돌아오고 싶어 하겠습니까? 의리죠, 의리.
-아오, 이 자식이.
그런 백우진의 눈에 들어온 건, 다른 아이들에 비해 훌쩍 큰 키를 가진 누군가였다.
진중한 얼굴로 쉬는 시간도 없이 창을 수련하는 청년. 화랑원 출신의 청진명은 얼굴을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백우진.
청진명의 눈은 다른 사람이 각성자인지 아닌지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에도 백우진은 여전히 각성하지 못한 채 맨몸으로 창을 쥐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사범이 혀를 찼다.
-이젠 늦었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었다.
10대 후반에 들어서면 새로이 각성자로 거듭날 확률은 지극히 낮아진다. 대부분의 각성자가 10대 초중반에 각성 과정을 거친다.
그렇기에 각성자 전용 교육기관도 고등학생의 나이에 맞춰 구성되어 있고, 드물게 편입생이 도중 입학하기도 하지만.
-벌써 내년이면 성인이다.
백우진에겐 그 기회가 오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
청진명이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봤다.
기본적으로 쾌활하고 사람들과 원만히 잘 지내는 성격 탓에 대부분과 얼굴을 트고 인사를 하고 지냈지만, 백우진만은 예외였다.
화랑원에 다니던 당시, 유명한 사람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떠받들어지고, 자기보다 나이도 어린 주제에 선배 항렬에 들어가 있는 백우진과는 일부러 말을 트지 않았다.
어린 치기에 했던 일이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차라리 다행이라고 여겨졌다.
인사라도 나눠야 했다면 피차 마음이 불편했을 테니까.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래. 또 오고.
이듬해.
청진명이 다시 한번 화랑원을 방문했을 때 그곳에 백우진은 없었다.
-각성은 못 했어도 실력은 진짜니까 여기 남아서 사범이라도 해 보라 했었는데…….
스무 살이 되고 생일을 맞이했을 때. 백우진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것처럼 창을 반납하고는 말했다고 전해졌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 이야기는 송민아가 알고 있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내용이었다.
“음…….”
백우진이 플레이아데스의 부길드장이 되어 인터뷰 따윌 진행했을 때, 그 자리에 오르기 전까지 어떤 노력이 있었냐는 질문을 들었을 때.
-아무것도.
-…예?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백우진은 그렇게 대답했다.
당시 금수저 재벌 2세의 막말로 파문이 되어 일파만파 퍼져 나갔었기 때문에 송민아도 잘 알고 있었다. 마구 씹어 댔던 기억이 아직 남아 있었다.
“이루지 못할 일에 자기 인생을 모조리 쏟아부은 놈이었지. 그 기분, 너라면 어느 정도 이해하지?”
“흥…….”
실실 웃으며 묻는 청진명의 말에 송민아가 입을 꾹 닫았다.
바이크가 한층 더 거친 배기음을 뿜어냈다.
* * *
“야…….”
송민아가 문득 든 위화감을 바탕으로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설마 저거야?”
송민아가 가리킨 건 아까 전부터 보이던 거대한 산이었다.
한반도에 안 그래도 넘치는 게 산이니까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자세히 보면 그건 단순한 산이 아니었다.
거대한 몸뚱이를 가진 무언가가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청진명이 손날로 차양을 만들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청진명이 헬기 위에서 보고 온 거대 생명체가 눈앞에 있었다.
송민아의 바이크가 긴 스키드마크를 남기며 멈췄다. 그러자 뒤따라오던 차량도 멈추고 사람들을 쏟아 냈다.
다른 팀원들도 청진명과 송민아의 시선을 따라 상대의 정체를 확인했다.
“이런 씨……. 이 크기가 말이 돼? 뭔데, 이거?”
말 그대로 산과 같은 크기였다. 산등성이처럼 커다란 등껍질이 둥그렇게 위로 솟아 있었다. 그 위로 나무가 나라 있어 움직이는 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백우진이 설명했다.
“사신수 중 하나인 현무입니다. 거북이와 뱀이 하나가 된 형상을 갖고 있고, 보이는 만큼이나 튼튼하다고 하죠.”
“그게 사실이야?”
“믿을 만한 정보입니다.”
현무가 나타나기도 전에 그 이름과 생김새를 알려 줬던 도율이 말해 준 것이니, 지어낸 얘기는 아닌 게 분명했다.
무언가 유효한 정보는 더 없을까. 고민하던 찰나 고철민이 앞서 걸었다.
“튼튼이고 나발이고, 표적이 이래 크면 내만 고맙제.”
고철민이 마력을 쏟아부었다.
“급하니까 간 안 보고 바로 갑니더.”
고철민의 발밑으로 거대한 마법진이 활성화되었다.
둥근 테두리 속에 가득 채워진 기하적인 도형과 구석 구석 자리한 주문들 위로 마력이 채워졌다. 대가를 충분히 지불한 마법이 위력을 보여 주기 위해 준비되어 있었다.
“빵야!”
마지막으로 좌표 설정을 끝마치자 막대한 마력이 고삐를 풀고 달려 나갔다.
주위를 모두 집어삼킬 것만 같은 흉포한 섬광이 상공을 크게 가로지르며 거대한 산 위로 떨어졌다.
구궁!
뒤늦게 거센 바람이 불어오며 돌이나 나무 조각들이 들이닥쳤지만, 손 틈새로 비치는 현무는 신음 하나 없이 멀쩡히 하던 행동을 계속하고 있었다.
“멀쩡한 거 같은데?”
“이상하다……. 이럴 리가…….”
고철민이 중얼거렸다.
마법은 분명 절호조의 위력으로 발사되었다. 목표가 워낙 큰 탓에 그럴 리는 없었지만, 다른 곳에 빗나가기라도 했으면 지진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송민아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래도 튼튼하다는 건 정말인 것 같네.”
“가까이 붙어서 약점을 찾아보는 수밖에요.”
“응. 그렇겠다.”
결국 팀원들이 모두 현무의 위에 올라타 약점을 조사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백우진도 거들었다.
“저도 가겠습니다.”
“야, 넌 어디까지…….”
여기 혼자 내버려 두는 것도 위험하지만, 같이 저 거대한 괴수 위에 올라타는 것도 만만치 않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송민아가 말리려던 사이, 청진명이 차원 보관함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써.”
“이건…….”
청진명이 던져 준 건 한 자루의 창이었다.
“중고긴 해도 쓸 만할걸.”
“저는…….”
“호신용이야, 호신용.”
너무 의미 가지지 말라며 청진명이 가볍게 손을 팔랑거렸다.
“…그럼, 빌리겠습니다.”
백우진이 창을 받아 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손아귀에 감기는 창대의 감각이 낯설기 짝이 없었다. 뭘 어떻게 다루면 좋을지 생각나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몸에 새겨 뒀던 흔적만은 고스란히 남아 자세를 이끌어 냈다.
청진명이 씩 웃고는 정면을 돌아봤다.
“그럼 가 보자고.”
괴물을 고꾸라뜨릴 방법을 찾으러 갈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