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205
205화 서둘러
“어떤 생물이든 약점은 있다.”
현무의 위에 올라타기 전, 청진명은 당당히 그렇게 선언했다.
지금까지 헌터로 활동해 온 그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냉정히 생각해 보면 쓰러뜨릴 수 없는 적 따위는 없었다.
피와 살로 이루어진 짐승은 피가 흐르는 것이 생명의 원천이었다. 커다란 혈관이나 심장을 손상시키면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은 존재들 또한 각자 나름의 약점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었다.
세월의 흐름을 피한 마법사, 리치들은 성물함을 통해 영혼을 간직하기에 그것을 파괴하면 처치할 수 있었고. 자동으로 움직이는 골렘들은 몸에 새겨진 핵심 명령어를 지우면 작동을 멈췄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헌터로 살아남을 수 있었고, 그건 의심할 여지 없는 사실이었다.
“…근데 이거 생물 맞냐.”
현무의 등 위에 오르고 나니 정말 이 정도 크기의 생물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인지 믿기지 않을 지경이었다.
“작은 섬이라 해도 되겠는데?”
“어지간한 생채기로는 기별도 안 가겠어.”
“마법 포격도 별로 소용이 없었고…….”
그 이야기가 나오자 고철민이 의기소침하게 어깨를 늘어뜨렸다.
“길게 생각할 시간 없어. 지금 이 순간에도 현무는 서울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평소의 상황이었다면 모를까. 지금과 같이 다른 요괴들의 출현으로 혼란스러운 상태에서는 제대로 된 대피도 될 수 없었다.
“지금 이런 게 도시에 도착하면…….”
“개작살 나는 거지.”
“걷기만 해도 그럴 텐데. 이거 나중에 입에서 광선이라도 쏘는 거 아임까?”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송민아가 철썩하고 고철민의 등짝을 후려갈겼다.
“일단 흩어져서 조사해 보자고.”
그렇게 간단하게 세 개의 조로 나눠 두 사람씩 짝을 지어 현무의 약점을 찾아보기로 정해졌다.
청진명과 송민아. 고철민과 정하준. 그리고 클레어는 군식구 백우진과 함께였다.
“왜 또…….”
클레어가 한숨과 함께 이마를 짚었다.
껄끄러운 상대여서 가능하면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팀원들과 모두 함께 있을 때라면 그나마 나았지만, 둘만 남게 되는 건 최악의 조합이었다.
찌릿.
클레어가 백우진을 노려봤다. 각성자가 아니니까 빠르게 이동하는 것도 한계가 있고. 호신 무기랍시고 창을 쥐고는 있지만, 그것도 결국 마력이 없으면 있으나 마나 한 것이었다.
그런 클레어의 불만을 이해한다는 듯 백우진이 담담하게 말했다.
“실제 상황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이 발생할 경우엔 버려도 됩니다. 적어도 발목을 잡지는 않을 테니.”
자기 목숨조차 내다 놓은 배려였지만, 클레어는 싸늘하게 코웃음쳤다.
“내가 당신들 같은 인간인 줄 알아요?”
“…….”
클레어가 말하는 당신들은 플레이아데스 길드를 말하는 것이었다.
부와 권력을 긁어모으기 위해서는 사람 목숨이나 도덕, 윤리와 같은 것들을 등한시할 수 있는 집단. 피해자인 클레어에겐 그렇게 비쳤고, 실제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백우진 또한 클레어에 대해 떠올렸다. 사람 대하는 게 딱딱하긴 하지만, 헌터로서의 의무나 공익을 위하는 데에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여자였다.
즉.
‘상극이군.’
사이가 좋아질 거란 기대는 갖지 않는 편이 좋아 보였다.
애초에 기대한 적도 없었지만.
* * *
[그쪽은 뭐 좀 있냐?]“아뇨.”
주기적인 보고 시간.
연락할 틈도 없이 급한 일이 생겼을 때를 대비해, 주기적으로 서로 생존 신고를 하는 것이었다.
연락을 받지 않는 팀원이 발생하면 즉시 합류해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백우진은?]청진명의 물음에 클레어가 잠시 뒤를 돌아보고 짧게 답했다.
“멀쩡해요.”
[그래?]앞장서 길을 헤쳐 나가는 건 클레어였지만, 백우진도 나름대로 잘 따라오고 있었다.
각성자가 아닌 만큼 슬슬 힘에 부쳐도 이상할 것 없었지만. 지금까지는 싫은 소리 없이 따라오고 있었다.
[알았다.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네.”
보고가 끝난 후.
걸음을 멈춘 클레어가 백우진을 향해 턱짓했다.
“잠깐 쉬죠.”
“…아직 걸을 수 있습니다.”
백우진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태연한 얼굴과 달리 제법 땀을 흘리고 있었다.
“효율적이지 않다고 판단한 거예요. 움직이기 불편한 옷에, 무거운 짐을 들고 이동하는 건.”
“괜찮…….”
“좀 더 정보를 얻으려고요.”
정보라 함은, 백우진이 알고 있는 이 괴수 현무에 대한 정보를 말했다.
“이 거대한 산과 같은 지면이 등껍질이고, 그 꼬리에는 커다란 뱀이 달려 있다고 했죠? 그게 이 녀석의 약점인가요?”
“거기까지는 듣지 못했습니다.”
“누구한테요?”
“아까도 말하지 않았습니까. 이도율 씨에게 들은 거라고.”
“흐음…….”
백우진이 숨을 고르고 물었다.
“아직 의심하는 겁니까? 제가 이도율 씨와 함께 일했다는 걸.”
비행기 티켓을 보여 주긴 했지만, 그게 확실한 증거는 아니었다.
백우진이 자기 입으로 실토했다.
“확실히 아까 보여 드린 티켓은 정황상의 증거일 뿐입니다.”
우연히 도율이 러시아에 간 날짜에 맞춰 비슷한 비행기 표를 두 개 구해 놓은 것일 수도 있었다. 약간의 조사를 거치면 누구나 부릴 수 있는 수작이었다.
그러나 클레어가 고개를 저었다.
“그 부분을 의심하는 건 아니에요.”
“그렇다면?”
“뭐, 그냥…….”
클레어가 헛기침을 흠흠 하더니 물었다.
“둘이 무슨 일을 했는지 궁금해서…….”
“……?”
백우진이 의아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도율과 백우진이 어떤 이유와 목적으로 함께했는지가, 지금 상황에서 중요한 정보인 건가?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적어도 백우진이 보기엔 그랬다.
“그게 왜 궁금…….”
그리 되물으려던 백우진이 말을 멈췄다.
클레어가 아닌 척 초조하게 손끝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백우진은 이해하고 말았다.
“두 사람은 계약 부부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군요.”
“…네?”
갑작스러운 백우진의 말에 클레어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물론 지금에 와서야 의심받을 만한 이유는 없었지만.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한 게 사실이었기 때문에 완전히 태연하기는 어려웠다.
“가, 갑자기 무슨 말인가요? 저희……. 음, 방송에도 나오고 그랬는데.”
“그건 저도 확인했습니다.”
방영 당시에 본 건 아니었다. 백우진은 그런 데에 관심이 없으니까.
도율과 일하게 되었을 때 그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뒤늦게 참고삼아 시청한 것이었다.
“유달리 애정 행각도 선을 지키는 느낌이었고. 아무래도 그런 상황이 있었으니,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제 지레짐작이었던 모양이군요. 사과드리겠습니다.”
백우진이 고개를 숙였지만 클레어는 속 시원하게 기뻐할 수가 없었다.
“…뭐, 됐어요. 그건…….”
클레어가 말을 돌렸다.
“그래서 도율 씨는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죠?”
“그건 저도 모릅니다.”
“같이 일한다면서요?”
백우진이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조금 진취적인 편이라서.”
제멋대로란 뜻이었다.
클레어가 마음속 깊이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그래도 혼자 여기까지 따라오는 건 너무 위험하지 않나요? 사촌도 데리고 있잖아요.”
클레어가 말하는 백우진의 사촌이 바로 백수아였다.
망량이 데려간 후로 보지 못했던 아이.
하지만 백우진은 도율에게 어느 정도 들은 것이 있어 알고 있었다. 그 망량이란 남자는 요괴들을 이끄는 수장이며, 이 괴수 또한 요괴의 일종이라는 것을.
지금까지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요괴들이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들이닥친 것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 이유가 있는 곳에 백수아 또한 있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었다.
“그래서 온 겁니다.”
짧게 함축해 대답한 백우진.
클레어가 순식간에 그를 걷어찼다.
다소 힘 조절이 대충이었던 발길질을 맞고 날아가며, 백우진은 거대한 뱀의 아가리가 다가오고 있는 걸 발견했다.
동시에 클레어가 검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턱을 벌린 채 들이닥치는 주둥이의 크기가 하늘을 덮을 정도였다. 뛰어서 피하기엔 이미 늦었다.
“정말 약점인지, 한번 보죠.”
쿠웅!
거대한 입이 클레어를 덮었다.
* * *
「그러니까, 원래는 틈이 있는데…….」
도율은 아직 흰돌이와 함께 망량의 공간 안에 갇혀 있는 채였다.
그림과 현실의 세상을 오가는 흰돌이의 능력으로 이곳을 탈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망량이 허락하는 상태에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도율을 풀어놓고 싶지 않은 망량이 이곳의 경계를 단단히 잠가 놓은 탓에, 흰돌이의 능력으로도 돌아갈 수 없었다.
“그럼 어쩌지?”
그 능력의 주인은 흰돌이였으니. 흰돌이의 조언을 들어야 했다.
「음……. 일단은 이곳의 중심지로부터 멀어진 구석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경계로 다가가면 도망치기 쉬울 테니까.」
“여긴 어느 정도지?”
「제법 중심 쪽인 것 같습니다.」
“그런가.”
절벽은 망량의 가옥으로부터 제법 먼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중심이라고 한다면 그 가옥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이 거의 중심에 가깝게 여겨진다면.
저택이 아니라 이곳이 정말 중심이거나, 아니면.
‘저택에서부터 이곳까지.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로 여기가 넓다는 뜻인가.’
이곳은 망량의 파경대계. 그의 내공을 둘러 만든 흐름으로 구성한 경계의 안쪽 공간이었다.
원래도 크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크리라 생각하진 않았다.
‘이상하군.’
이 정도로 어마어마한 내공을 운용할 수 있다면, 차라리 자신과 전면전을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았는데.
망량은 굳이 모습을 숨기고 도율을 이곳에 가두는 것을 택했다.
‘왜?’
도율이 흰돌이를 옆구리에 끼고 빠르게 내달렸다.
흰돌이는 차원을 넘는 데 힘을 써야 하기에, 직접 들고 뛰고 있었다.
“이 정도면 어떠냐?”
한참이나 달린 도율이 흰돌이에게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음, 아직도 너무 중심인 것 같습니다.」
“아직도?”
경공을 사용해 상당히 먼 거리를 이동했는데도 여전했다.
흰돌이가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흰돌이 또한 믿고 싶지 않다는 듯 몸을 떨었다.
「여기 설마, 어마어마하게 넓은 건…….」
그때 도율이 등을 돌리고 다시금 몸을 날렸다.
「뭐 하는 겁니까, 대협?! 반대로 가면…!」
지금까지 달려왔던 것이 모두 허사가 되는데.
그러나 도율은 답하지 않고 흰돌이를 옆구리에 끼운 채 묵묵히 내달렸다.
그렇게 한참이나 경공을 펼쳐 마침내 도착한 곳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도착한 곳. 끝없이 이어진 돌계단 위에 위치한 망량의 가옥이었다.
그곳에 도착하자 도율이 물었다.
“여기선?”
「마찬가집니다, 대협…….」
등잔 밑이 어둡길 바라기라도 한 건지, 이곳으로 돌아와 봤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두 헛된 일이었다.
「혹시 여기서 평생…….」
“아니, 알았다.”
「정말입니까, 대협?!」
“그래.”
도율이 내린 결론.
그것은 망량이 지금 실시간으로 중심지를 옮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마치 트레드밀 위를 달리는 것처럼 아무리 멀어지려 해도 제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변하는 것은 풍경뿐. 이 세상의 중심은 언제나 도율에게 맞춰져 있었다.
‘내공 때문인가.’
도율은 이곳에서 가장 커다란 내공을 지닌 존재였다. 중력처럼, 커다란 힘을 지닌 존재를 중심으로 만드는 게 가능한 게 틀림없었다.
‘그래서 모습과 기척을 숨긴 거군.’
망량이 모습을 감추고 최대한 그 힘을 잠재운 것 또한 도율을 유일한 구심점으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그럼……. 그 망량이란 놈을 찾아야 하는 겁니까?」
흰돌이의 물음에 도율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방법을 파악한 이상 굳이 돌아서 갈 필요가 없었다.
“틈을 만들 테니 준비해. 길게는 못 하니까, 바로 빠져나가야 한다.”
「알겠습니다!」
도율이 내공을 끌어 올렸다.
어느 정도로 해야 하는지 가늠이 잘되지 않았다. 평소대로 압도적인 힘으로 밀어붙이면 되는 일이 아니었다.
죽지야 않겠지만, 전투 불능이 되는 건 곤란했으니까.
「헌데, 어떻게……?」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촤악!
도율의 손날이 스스로의 몸을 찔렀다.
「대협!!」
흰돌이가 경악하며 소리쳤지만, 도율은 침착하게 대꾸했다.
“서둘러.”
그곳으로부터 내공의 비틀림이 발생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