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21
21화 너는 이쪽이야
“태호야! 나은아!”
1층 로비로 돌아오자 내가 데려온 두 명의 아이들을 보고 아주머니가 달려오셨다.
“안 다쳤어?! 무슨 일 없었고?”
“…그럼. 별일 없었지!”
“하이고, 다행이다.”
아이들이 무사한 걸 확인한 아주머니가 내게 와 연신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자꾸 손을 잡으려는 아주머니의 손길을 피하며 클레어 씨의 곁으로 돌아왔다.
가면을 쓰고 있어 다행이었다. 떨떠름한 표정이 드러나지 않아도 됐으니까.
감사를 받는 건 내게 있어 어색한 일이었다. 내가 힘을 쓰고 난 후엔 언제나 분노와 두려움, 그리고 질투를 받기 마련이었기에.
자기 체면을 무시하고 주변인을 건드렸다는 분노, 직접 당한 놈이나 소문을 들은 놈들의 두려움, 그리고 간혹가다 있는 내 성장세를 보며 질투를 느끼는 놈들까지.
그런 나를 보며 클레어 씨가 슬쩍 웃었다.
“재밌는 구경을 다 하네요. 그쪽이 당황하는 걸 다 보고.”
“…어떻게 알았어요?”
“그렇게 쭈뼛거리면 누구나 다 알죠.”
그렇게 티 났나?
어쩌면 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해 느끼는 거부감이 드러난 걸지도 모른다.
“별일 없었죠?”
“아직은요.”
“아직? 왜 불안하게 아직이에요?”
이대로 아무 일 없으면 좋잖아요.
하지만 클레어 씨는 상황을 그렇게 낙관적으로만 보지 않았다.
“A급 게이트가 출현한 것 치고 몬스터의 유출이 적어요. 등급을 잘못 측정한 거라면 다행이지만, 요즘 측정 장비가 좋으니 그럴 일은 없다고 치면…….”
“치면?”
클레어 씨가 무어라 대답하려는 사이, 백화점을 보호하기 위해 내려가 있던 방벽이 위로 올라갔다.
몬스터는 아니었다. 몬스터였다면 정상적인 방법으로 방벽을 해제하는 게 아니라 부수고 들어왔을 테니까. 애초에 방벽을 해제한 건 이곳 지점장이었다.
“지원 병력이 도착했답니다!”
백화점의 정문 출입구로부터 등장한 건 몇 명의 헌터들이었다. 같은 집단 소속인지 유니폼을 비슷한 형태로 갖춰 입은 자들이었다.
뒤따라 오던 헌터들은 각자 주변으로 퍼져 경계를 섰고, 선두에서 걷던 헌터만이 계속 걸어 들어와 클레어 씨와 나란히 마주 보고 섰다.
작달막한 키와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여자.
나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일전에 클레어 씨를 따라 매니저 일을 하다가 한 번 얘기를 나눴었던, 주하린이라는 여자였다. 클레어 씨와는 같은 아카데미 출신 동창이라는.
주하린은 클레어 씨와 마주 보더니 대뜸 말했다.
“좆됐어.”
“…….”
클레어 씨는 주하린이 무슨 말을 꺼낼지 모두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거, 변종 게이트다.”
* * *
지원 온 헌터들은 ‘대현’ 길드 소속이었다. 이 백화점의 이름도 ‘대현 백화점 논현점’이었고.
대현은 4강 길드 중에 유일하게 다양한 산업에도 손을 뻗치고 있는 대기업이었다. 생산, 건설과 같은 2차 산업부터 교통, 무역 등과 같은 3차 산업. 그리고 정보, 지식 산업인 4차 산업. 마지막으로 게이트의 등장 이후로 도래한 마석과 부산물을 통한 5차 산업, 통칭 헌터 업계까지.
대현 그룹의 물건을 쓰고 싶지 않으면 한국에서 나가는 수밖에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커다란 덩치를 자랑하는 슈퍼 대기업.
그곳의 초대 회장인 주대현의 손녀딸이, 바로 이 주하린이다.
“귀하신 분…….”
“뭐, 그렇지. 근데 얜 누구야?”
“현장 조력자예요.”
주하린이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고 물었다.
“이 웃기는 가면이?”
“…저게 웃겨요?”
“웃기긴 웃기잖아. 뭐, 애들이나 쓰고 다니게 생긴 가면을……. 야, 너 헌터 맞냐? 얼굴 까 봐.”
“아, 저, 그게. 하하…….”
주하린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짓궂게 물었다. 문제는 이게 클레어 씨가 사 준 가면이란 점이었다. 게다가 ‘불야성’에 방문했을 때 그녀도 비슷하게 생긴 고양이 가면을 쓰고 있었다. 마음에 드는 시리즈인 것 같은데.
주하린은 나를 놀리느라 클레어 씨의 표정이 싸늘해진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뭐, 얜 됐고. 그래서 다시 본론인데.”
“네.”
“게이트에서 몬스터 별로 안 나왔었지?”
“맞아요.”
클레어 씨의 대답에 맞춰 나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게이트란 본래 몬스터를 쏟아 내는 구멍. 그러나 A급 게이트인 것 치고, 내가 마주친 몬스터들은 하나같이 잔챙이였다. 이곳을 지키고 있던 클레어 씨도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우리 쪽 장비로 측정해 봐도 저거 A급이더라. 근데 나오는 게 없다? 그럼 뭐겠어?”
“그야…….”
“변종 게이트지.”
둘이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시선을 마주쳤다.
“근데 변종 게이트가 뭡니까?”
내가 손을 들고 묻자 주하린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돌아봤다.
“이 똘빡은 대체 뭐야?”
“말넘심…….”
“헌터가 변종 게이트도 모르는 게 말이 돼!? 야! 너 라이선스 등록 몇 년도에 했어!”
그런 거 한 적 없다.
매니저 일을 하면서 이런저런 공부를 하긴 했지만, 대부분이 인물과 시설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헌터 업계의 세력 구도와 각 단체의 주요 인물에 대한 내용은 배웠다.
그 내용이 먼저여서 던전이나 게이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직 배우지 못했다. 기본적인 거라면 알고 있지만, 변종 게이트는 심화 내용이었다. 평소엔 겪을 일이 없으니까.
주하린이 왁왁 성질을 내는 걸 가볍게 무시하고 클레어 씨가 설명했다.
“비유하자면 게이트는 콜라예요. 게이트가 발생하는 건 뚜껑을 따고 속에 든 콜라를 쏟아 내는 것과 마찬가지죠.”
“그럼 변종은 뭐죠? 콜라가 안 쏟아지면 좋은 거 아닙니까?”
주하린도 설명에 가담했다.
“그건 이거야, 이거.”
주하린이 오른손을 가볍게 쥐고 팔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
“…….”
“뭐야? 왜 그런 눈으로들 봐?”
…뭐라 답해야 하지.
고개를 돌려 보니 클레어 씨도 어색하게 바라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그녀가 딴청을 피웠다.
“이게 이해가 안 돼? 이거라니까, 이거?”
“아, 알겠으니 그만하죠. 콜라를 흔드는 거다, 이거죠?”
“그래. 입 아프게 설명을 해 줘야 알겠어?”
주하린이 툴툴거렸다.
비유였지만 정식 용어도 있었다. 변종 게이트는 일반 게이트와 달리 몬스터를 쏟아 내지 않고 안에 쌓아 두는데, 이게 언젠가 쌓여서 폭발하는 걸 ‘브레이크’라고 불렀다.
그렇게 되면 수많은 몬스터가 게이트 주위로 폭발하듯 터져 나온다. 그렇게 출몰한 몬스터가 단숨에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것.
그러나 그 이전에, 한계까지 압착된 몬스터들이 현대로 넘어오며 밀어내는 힘으로 주변의 땅이나 건물을 부수는 것도 문제였다.
“우리 백화점 하나 무너지는 걸론 끝나지 않을걸.”
마른하늘에 떨어지는 고깃덩어리들인 셈이다. 몬스터들은 체중이 나가는 편이니 그런 게 수없이 떨어지면 산사태나 다름없다. 주변의 도로나 옆에 있는 다른 건물들도 모두 위험했다.
“막는 방법은요?”
“스트라이크.”
주하린이 머리 위로 손을 뻗었다. 의기양양한 미소와 함께.
“쳐들어가는 거지. 역으로.”
그 말에 내가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봤다.
천장으로 가려진 시야를 뚫고, 정안으로 바라보는 백화점의 상공. 수십 미터 떨어진 머리 위에 막대한 존재감을 내뿜은 존재가 있었다. 검고 진한 기운이 잔 위로 넘쳐흐르는 것 같은 느낌.
근원은 그 게이트였다.
“그거 아주 재밌겠는데요.”
내 말에 주하린이 하핫 웃으며 등을 두들겼다.
“뭐야! 너 보기보다 배포가 있잖아!”
이 여자는 또 힘 조절 하는 법을 잊었다.
* * *
“전 반대예요.”
맥을 자른 건 클레어 씨의 한 마디였다.
반대라는 건 스트라이크 작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서울시 한복판이 초토화되는 걸 막으려면 무조건 작전을 수행해야 했다. 사명감이 강한 클레어 씨가 그런 걸 두고 볼 리가 없다.
그녀가 반대하고 있는 건 그 작전에 내가 참가하는 거였다.
“무슨 소리야. 지금 한 명 한 명이 급한데.”
“그렇게 사람이 필요하면 당신이 데려온 길드원들이라도 데려가면 되잖아요.”
“얘들은 여기 지켜야지. 시민들 불안해하는 거 안 보여?”
주하린이 클레어 씨에게 이마를 대고 속삭였다.
“그리고, 얘들 사실 등급 그렇게 안 높아. 어차피 변종 게이트니까 몬스터 상대할 일 별로 없을 거라서 대충 데려온 거야. 사람들 안심시키려고. 게이트에 데려갈 만한 인재들은 아니라고.”
“…….”
그 말에 클레어 씨도 수긍했다.
정식으로 파티를 꾸려서 진형을 갖춰 나아가는 던전 공략과 달리, 이번 스트라이크 작전은 공격으로부터 파티를 보호해 줄 탱커도, 다친 사람을 회복시켜 줄 힐러도 없다. 제 앞가림은 스스로 할 줄 아는 사람만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공방 밸런스가 잘 잡힌 클레어 씨는 최적의 인재였다.
“A급 변종 게이트면, 스트라이커로 S급 3명은 필요하지. 여기엔 너랑 내가 있으니 일단 두 명은 채웠고.”
“당신이 S급은 아니잖아요.”
“나 실력은 S급인데?”
클레어 씨의 지적에 주하린이 뻔뻔하게 대답했다. 라이선스와 별개로 갖고 있는 실력엔 자신이 있다는 듯이. 클레어 씨도 그 부분은 지적하지 않았다.
“아무튼. 다른 S급이 올 때까지 세월아 네월아 기다릴 순 없잖아. 얘라도 데리고 가야지.”
“…이 사람의 뭘 믿고요.”
“야, 여우. 너 등급 뭐냐?”
나는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을 마쳤다.
S급이라고 하면 정체가 탄로 날 가능성이 높았다. S급은 수가 워낙 적어서 서로가 서로를 모두 알고 지내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적어도 업계 관계자라면 처음 보는 S급은 없다고 여겨지는 수준.
그렇다고 B급이라고 하면 왠지 놔두고 갈 것 같았다. A급 게이트라는 등급이 붙은 건 A급 헌터부터 활동할 수 있기 때문일 테니까.
“A급입니다.”
“역시. 처음 보는데 올라온 지 얼마 안 됐지? 그럼 뭐, 포텐셜은 그보다 높을 수도 있고.”
“…….”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하는 나를, 클레어 씨가 사납게 쏘아보았다.
확실히 쐐기를 박기 위해 내가 입을 열었다.
“저도 가기 싫습니다.”
“뭐?”
내가 말을 돌리자 주하린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뭐 하자는 놈이냐는 듯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반응이 내가 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헌터가 될 때 다짐했습니다. 내가 아무리 두려워도, 내가 물러서면 우리 국민, 우리나라가 위험해진다고. 그러니까 설사 죽는 한이 있어도! 이 한 몸 불사르자고!”
“여우…….”
“으아아! 대한민국 만세!”
내가 주먹을 들고 소리치자 주하린이 박수를 쳤다.
“합격!”
그리고 자기 손뼉 대신 내 등을 팡팡 두드렸다.
“요즘엔 이런 애들이 없어. 헌터가 돈 잘 번다니까 다 한탕 하러 온 놈들뿐이야. 등급이 올라가도 돈 되는 던전만 돌려고 한다니까? 이 업계엔 너 같은 인재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감사합니다.”
“야, 너 소속 있냐? 우리 길드 올래?”
“말씀은 감사하지만, 마음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생각 있으면 연락해.”
주하린이 명함을 건네줬다. 아무나 주는 거 아닐 텐데. 쓸 일은 없을 테지만, 일단 지갑에 고이 넣어 뒀다.
“좋아. 난 길드에 연락 좀 돌리고 올 테니까 잠깐만 기다려.”
주하린이 작전 계획 보고를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클레어 씨가 나를 불렀다. 그 어느 때보다 싸늘한 분위기였다.
“미쳤죠?”
“…구경만 할게요.”
“진짜 미쳤어요?”
클레어 씨가 따졌다.
“변종 게이트에선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요. 제가 같이 간다고 해도 지켜 줄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고요.”
“괜찮아요.”
“뭐가 괜찮아요!”
“전 클레어 씨를 믿으니까요.”
내 말에 클레어 씨는 말문이 막힌 듯 침음을 흘리다가 고개를 숙였다.
“말이나 못 하면…….”
클레어 씨에겐 바로 옆에 있던 나를 납치당하게 내버려 뒀다는 부채 의식이 있다. 실패한 기억을 덮으려면 성공 경험이 필요하다. 이번 작전은 그 기회였다.
클레어 씨의 성실한 성격을 이용하는 건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는 일이었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미 늦었어.’
이럴 땐 가면이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자, 가자!”
주하린이 돌아와 손가락을 뻗었다.
위로 오르는 계단을 타고 옥상의 문을 열자, 고층 특유의 바람이 불며 게이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백화점의 옥상, 공원처럼 조성된 공간에 끼어든 이물질 하나. 주변의 풍경 위로 그어진 실금들. 그 실금은 공간 자체가 파편으로 갈라져 있기에 생긴 것들이었다.
파편의 중앙에는 검게 소용돌이치는 무언가가 있었다.
“가자.”
주하린이 망설임 없이 몸을 집어넣었다. 다음은 클레어 씨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뒤따랐다.
게이트를 넘는 순간 몸이 부유하는 느낌이 들었다. 검은 통로 속을 지나며 몸이 낙하하고 있었다. 그렇게 이곳과 이어진 다른 공간으로 도약하려는 순간.
「너는 이쪽이야.」
콱. 하고 어떤 손아귀가 나를 붙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