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210
210화 바보 동생 놈이
“이쪽이야.”
이매가 앞장서 걸으며 백우진과 흰돌이를 안내했다.
「이거 함정 아니야? 따라가면 우리 다 죽는 거 아니냐고…….」
“아직도 그 소립니까.”
흰돌이에게는 백우진이 이미 설명을 끝마친 지 오래였다.
저 이매라는 여자는 과거 자신의 아버지의 동료였다는 것과, 정체는 확실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믿을 만한 사람인 것 같다는 것은.
그래도 흰돌이는 완전히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진짜 괜찮은 거 맞지?」
“안 괜찮으면, 방법이라도 있습니까?”
백우진의 질문에 흰돌이가 짧은 고민 후에 대답했다.
「생각해 보니 없네.」
곧 쫓아온다던 도율은 여전히 감감무소식이었다.
그 도율이니 무언가 큰일을 당했을 리는 없고. 이쪽에 합류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생겼으니까 거기에 시간을 쏟고 있는 게 분명했다.
흰돌이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오, 나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발이 빠른 건 자신이 있었으니. 여차하면 이 샌님을 입에 물고 튀면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가장 좋은 건 그럴 만한 일이 없는 거겠지만.
“이런 곳이…….”
그들이 향하고 있는 곳은 어느 동굴의 안쪽이었다.
이토록 크고 넓은 지역이니 작은 동굴 하나 정도는 있어도 이상할 것 없었지만. 동굴은 마치 누군가 파놓은 것처럼 길게 이어졌다.
그뿐만 아니라 어디론가 이어지고 교차되는 것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반듯하지 않은 도시 교통망과도 같이 길이 나있었다.
“혈관 비슷한 거지.”
이매의 설명이었다.
현무의 커다란 몸뚱이 겉면에 있는 숨구멍으로 진입해, 복잡한 혈관을 타고 내려가고 있는 중이라고.
“피는 흐르지 않습니다만…….”
“다른 게 흐르고 있지.”
“다른 거라면?”
“느껴지지 않아?”
이매는 답하지 않고 걸음을 멈추고 가볍게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백우진으로선 한시라도 바삐 움직이고 싶은 기분이었으나, 길을 안내해야 할 이매가 그러고 있으니 방법이 없었다.
결국 그녀를 따라 눈을 게슴츠레 감고 무언가를 느껴 보려 애썼다.
‘바람……?’
뭔지 모를 감각에 집중해 보니, 이매의 말대로 확실히 무언가 흐르고는 있었다. 피는 아니었다. 바람도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히 무언가가 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힘찬 맥박 아래에서 꿀렁이며 흐르고 있었다.
“어쩔 수 없나. 배울 수가 없었을 테니.”
이매가 씁쓸하게 웃었다.
“그래도 감각은 깨우치고 있는 게 대단하네. 혼자서는 안 되는 걸 텐데. 아니면, 언제 한 번 느껴 본 적이 있니? 그것도 말이 안 되긴 하는데.”
“…….”
언제 한 번 비슷한 걸 느껴 본 적 없냐는 이매의 질문.
백우진은 요괴라는 존재들을 생전 처음 보았다. 아마 모든 인간들이 그럴 것이었다. 그들이 상대하던 건 요괴가 아닌 몬스터였으니까.
그러나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냐고 묻는다면.
‘…있다.’
짚이는 게 있었다.
도율과 처음 만났을 때, 그가 발산했던 압박감. 당시엔 마력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럴 리가 없었으니.
그게 백우진의 감각을 틔워 줬던 것이었다.
“느껴지지? 지금 이곳으로 막대한 기가 모이고 있다는 거.”
“음…….”
이매의 말대로 막대한 양의 무언가가 이곳을 향해 들이닥치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힘으로 주위에 있는 모든 걸 빨아들이는 구멍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이매는 그 중심지를 향해 백우진을 안내하고 있었다.
「진짜야. 도대체 무슨 짓을 꾸미고 있길래…….」
흰돌이가 이를 딱딱 부딪치며 증언했다.
“설마 이 중심지에…….”
“그래 맞아.”
이매가 혈관의 안쪽을 향해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네가 찾는 아이는 이 안쪽에 있어.”
그렇기에 백우진을 여기로 안내하고 있는 것이었다.
“우린 심장으로 갈 거야.”
현무의 심장.
그들의 목적지였다.
* * *
“야, 한나은! 너 괜찮아?!”
서지유가 소리쳤다.
가게의 안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던 테이블과 의자들이 한바탕 엎고 지나간 것처럼 뒤집어져 있었다.
그 잡동사니 더미를 밀어내고 한나은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물론이지! 나 완전 멀쩡해.”
“너……! 피 나잖아!”
서지유의 말대로, 한나은의 이마에서 굵은 핏방울이 뺨을 타고 턱까지 흐르고 있었다.
“아~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냐. 나 각성자잖아. 침 바르면 금방 나아.”
한나은은 애써 웃으며 대답했지만, 서지유는 눈치챌 수 있었다. 이미 제법 지쳐 있었다는 걸.
제아무리 각성자라 해도, 정식으로 헌터가 되기엔 아직 한참 멀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처음 보는 몬스터들을 갑작스럽게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상 사태에는 숙달된 헌터도 침착하게 대응하기 힘들 텐데, 평소보다 체력 소모가 많은 건 뻔한 일.
“저거…….”
설상가상으로.
지금까지 고작해야 들개 정도 크기의 송사리들만 찾아오던 가게의 앞에, 척 봐도 거대한 괴물이 다가오고 있었다.
머리의 크기만 해도 작은 가게를 꽉 채울 수 있을 것 같은 거대한 구렁이가 아스팔트 도로 위에 긴 자국을 남기며 주위를 헤집고 있었다.
곧 이곳을 발견하고 부수기 위해 오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남지 않았다.
“…넌 먼저 도망쳐.”
“뭐?! 그게 무슨 소린데? 그럼 넌?”
“난 괜찮아. 각성자잖아.”
“각성자는 무슨 신이고 무적이냐?! 튀어야지!”
“소중한 가게잖아.”
서지유에게 이 가게는 아버지와의 새출발을 의미하는 장소였다.
망가진 자재는 새로 사들이면 되고, 피해로 인한 손해액은 보조금을 수령하면 된다. 설령 건물 자체가 무너진다 해도, 새로운 세 자리를 알아보면 그만이다.
그런 이성적 판단과 다르게, 이곳을 벗어나고 싶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모한 길에 친구를 내몰 수는 없었다.
“썅…! 누가 보면 지가 사장인 줄 알겠네! 됐으니까 튀자고!”
“음, 아니면 내가 미끼가 돼서 시선 좀 끌어 볼까?”
“너 발 느리잖아, 미친년아!”
“헤헤.”
그건 각성하고 나서도 나아지지 않는 점이었다.
실랑이를 하는 사이에 구렁이가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거대한 존재가 드리우는 그림자에 서지유가 시선을 돌렸다.
“헤헤고 나발이고, 우린 다 뒤졌다.”
서지유가 가게 뒷문으로 도망칠 길을 떠올리는 사이.
거대한 구렁이가 신선한 영혼을 취하기 위해 고개를 쏜살같이 들이밀었고, 유리로 된 가게 입구가 박살 난 순간.
푸슉!
구렁이의 머리가 깔끔하게 잘려 힘을 잃은 채 가게 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그 절단면으로부터 울컥울컥 피가 쏟아져 내렸다. 피와 함께 무언가가 함께 흘러나왔지만, 서지유는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안녕, 아가씨들♥ 무사했니?”
머리가 잘린 구렁이의 몸뚱이 위에 가벼이 내려앉고, 가볍게 손을 들어 인사하는 건 샤디아였다.
그녀의 양손에는 커다란 원반 형태의 무기가 들려 있었다.
“언니……!”
“웬 난리가 났길래 와 봤는데, 역시 너희 여기 있었구나.”
샤디아가 폴짝 뛰어내리고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가뜩이나 난장판이 되어 있던 가게 안에 구렁이의 머리까지 들이닥쳐 완전히 폐가가 되어 있었다.
벽에 덕지덕지 묻은 피를 보며 샤디아가 사과했다.
“가게를 더럽힌 건 미안해?”
“…아뇨, 덕분에 살았는데요. 벽지 정도야 보상 처리하면 금방이고…….”
야무지게 대답하는 서지유를 대견하게 바라보면서도, 샤디아는 눈꼬리를 휘며 웃어보였다.
“나, 협회 소속 아니라서 보상금 안 나올걸?”
“네……?”
게이트 발생과 같은 재난과 헌터들의 구제 활동에 의한 피해는 모두 협회에서 보상을 담당한다.
그러나 반대로 협회의 소속이 아닌 자들이 무언가를 하다가 발생한 일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는다는 뜻.
샤디아는 ‘불야성’에 있던 각성자였으니. 협회의 테두리 안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언니, 싸제였어요?!”
“내가 말 안 했니? 미안♥”
샤디아가 깔깔거리며 소리 높여 웃었다.
그러나 그때.
주변으로 더 많은 이들이 몰려들었다. 피 냄새를 맡은 건지, 아니면 이곳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인간을 쫓아온 건지.
아까 그 구렁이와 비견될 정도로 거대한 요괴들이 가게 주위로 삼삼오오 모여들고 있었다.
샤디아는 두 소녀를 곁눈질하며 중얼거렸다.
“으음, 아무리 나라도 이건 좀.”
본래 샤디아는 가벼운 몸놀림으로 상대의 공격을 피하고 일방적으로 공격을 퍼붓는 스타일이었다.
이런 식으로 사람이나 장소를 지키며 싸우는 건 적성에 맞지 않았다.
“우리 그냥 튈까?”
차라리 그게 맞겠다고 판단한 순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기회를 노리듯 호시탐탐한 눈빛으로 다가오던 거대한 요괴들이 갑자기 실이 끊어진 것처럼 한 마리씩 픽픽 쓰러지기 시작했다.
“으응?”
갑자기 죽은 척을 하는 것도 아닐 테고.
샤디아가 훌쩍 뛰어 요괴들에게 다가가 확인해 보니, 정말로 죽어 있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람.”
알 수는 없었지만, 덕분에 살았다.
* * *
“어떻게 된 거지?”
다시금 되살아난 망량을 향해 도율이 물었다.
“아까보다 느려졌는데.”
망량의 부활에는 현저한 속도 차이가 생겨났다.
죽자마자 살아났던 때와 달리, 지금의 망량은 바닥에 누워 있는 시간이 제법 길었다.
지금의 망량도 바닥에 누워 있었다. 단번에 재생되었던 아까와 달리, 부글거리며 천천히 상처를 수복해야만 했다.
망량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어쩔 수 없잖아. 이 근처에 있는 영혼은 모조리 써 버렸는걸. 덕분에 멀리 있는 것까지 회수하고 있지.”
바다 건너 오느라 시간이 좀 걸려. 망량이 그렇게 덧붙였다.
게다가 망량 정도 되는 존재를 부활시키려면 역시 질과 양을 따져야 했으니. 조그마한 것까지 그러모아 부활에 사용하려니 병목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망량이 중얼거렸다.
“이제, 얼마 안 남았어.”
완전히 몸을 수복시킨 망량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일일이 기다려 줄 필요 없는데.”
망량은 도율을 향해 웃음 지었다.
“날 막아야 하잖아? 여유 부릴 때가 아닐 텐데.”
꺼림칙한 말이었다.
망량은 도율에게 지금까지 손도 쓰지 못하고 당하기만 했다.
수십, 수백 개나 가지고 있는 목숨을 소모하고도 도율에게 상처를 입히긴커녕. 체력조차 제대로 빼놓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저렇게 여유로운 말을 하다니. 무언가 꾸미고 있는 게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게 소원이면 그렇게 해 주지.”
결국 백귀야행으로부터 사람들을 지킬 것도 생각한다면, 이대로 계속해서 망량의 목숨을 앗아 갈 수밖에 없었다.
도율이 다시금 싸움을 시작했다.
* * *
“이 일을 벌이는 게 당신 동생이란 말입니까?”
“그래.”
이매의 말에 백우진이 의아함을 느끼며 물었다.
“당신은 아버지의 동료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인간들을 도우려 했던 것 같은데, 왜 동생이라는 자는…….”
“뭐, 글쎄.”
망량의 목적은 복수.
그러나 그에 연관된 당사자인 백우진에게 그 말을 곧이곧대로 전하는 건 내키지 않았다. 오랜 친구의 아들이니, 조금은 사정을 봐주고 싶었다.
“원래 말을 잘 안 들었어.”
“…그래서, 혼만 남은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우릴 돕겠단 겁니까?”
이매의 상태에 대해서도 전해 들었다.
이미 몸은 한참 전에 죽었고, 영혼의 일부만이 어딘가에 남아 있었지만. 이 일을 계기로 조금이나마 힘을 되찾아 임시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이매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뭐, 내 피붙이가 저지른 일이니까. 내가 수습해야지.”
“피붙이…….”
“왜, 너는 동생 없어?”
“예. 아버지께선 이미 오래전에 타계하셨기에.”
“…아, 미안.”
이매가 눈에 띄게 침울해졌다. 단순히 말을 잘못 꺼내서 미안해진 것 치고는 과한 반응이었다.
그렇게 어색한 침묵으로 계속해서 나아가던 와중. 백우진이 물었다.
“…여긴 원래 이렇습니까?”
심장으로 향하는 길.
그곳에 가까워질수록 무언가의 흐름은 점점 더 강해졌다. 그것은 점점 뚜렷한 색채를 띄기 시작해, 백우진도 그게 일종의 기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현무의 심장이라 불리는 거대한 방을 앞에 두고서는 완전히 격류가 되어 있었다.
거대한 강풍을 마주한 것처럼 앞으로 나아가거나 눈을 뜨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내가가가각 수상하다다다… 햇짜아아아아」
전음으로 말하는 흰돌이의 목소리는 기의 격류에 파묻혀 거의 들리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 사태는 이매로서도 상정 외였는지, 눈을 찌푸리고 있었다.
“벌써…….”
이매가 굳세게 걸음을 내디뎠다. 이런 상황일수록 서둘러야 했다.
“이 바보 동생 놈이……!”
한시가 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