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212
212화 모두 잿더미로
“뭐라고?”
청진명이 땀을 닦으며 물었다.
청진명과 그 팀원들은 도율의 지시에 따라 현무의 움직임을 멈추기 위해 그 다리를 공략하고 있었다.
제아무리 단단한 몸뚱이를 가지고 있다 해도, 필연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부분은 보다 부드럽기 마련.
다리의 관절 부분을 공략하면 된다는 말과 함께 그 위치에 대한 정보를 받았는데.
‘말이 쉬웠지.’
비교적 연약하다는 관절 부위.
그곳에 청진명과 팀원들이 아무리 공격을 쏟아 부어도 생채기 하나 만드는 것조차 힘에 부칠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으니 계속해서 화력을 부딪치고 있었다.
…문제는.
-나……. 쓸모없어?
송민아에게는 그럴 만한 기술이 없다는 점이었다.
딱히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지만. 일부러 언급하길 피했지만. 청진명을 비롯한 다른 팀원들이 모두 막강한 위력을 가진 고출력의 기술을 하나 이상 가지고 있을 때.
송민아는 맨몸으로 싸우는 헌터답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웬만한 덩치를 가진 몬스터도 목을 조르고 관절을 꺾어 버릴 수 있는 송민아였지만. 현무의 다리는 거대한 건물과도 같은 크기를 자랑했다.
제아무리 팔을 벌리고 마력을 뻗어도 아무런 틈이 보이지 않았다.
-…나, 연락 담당이라도 할게.
-어……. 혼자 행동하는 건 위험할 텐데, 꼭 그럴 필요는…….
-다녀올게…….
결국 다름 팀원들이 묵묵히 공격을 퍼붓는 동안, 송민아는 현무에서부터 떨어져 바깥과 연락을 취하러 다녀왔다.
이곳은 알 수 없는 기운이 짙어 전파나 마력을 통한 통신이 전혀 불가능했다.
덕분에 송민아가 직접 바깥에 다녀와 전하는 이야기를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다행인 건 그게 희소식이란 점이었다.
“바깥 상황 괜찮대.”
“그거 진짜냐?”
“설마 누님이 이 상황에 구라를 치겠심까?”
송민아가 고개를 끄덕이고 설명했다.
“그래. 진짜. 아까 전부터 다른 요괴들은 영문을 알 수 없지만 모두 쓰러지는 중. 지금 피해를 수습하는 중이래.”
“흠…….”
그건 다행이었다.
시민과 도시를 습격하는 자잘한 놈들이 없어졌다면, 더는 초조해할 이유가 없었다.
‘이도율인가…….’
이런 상황을 수습하고 있는 인물이라면, 도율 정도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애초에 이 커다란 괴수, 현무의 상대법을 가르쳐 준 것도 그였으니까.
그러나 아직 감탄할 때가 아니었다.
“다 좋은데, 이놈은 와 아직도 움직이는 깁니까?”
현무는 아직도 멀쩡히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도심으로의 행진은 아직 멈추지 않았다.
다른 요괴들이 모두 쓰러지고 있는 와중에, 덩치만큼이나 질긴 생명력 때문에 조금 오래 걸리는 것뿐인지.
아니면.
“이놈은 우리들 몫이란 거겠지.”
청진명이 어깨 위로 창을 올려놓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너른 풍경을 눈에 담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초조해할 이유는 없어졌다. 방해가 있어서 집중하지 못했다는 변명도 먹히지 않는다.
하나뿐인 임무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국내 최고의 헌터 팀이라고 칭할 자격이 없었다.
“그럼, 다시 가 보자고.”
분발해야 할 때였다.
* * *
“마지막이군.”
도율은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어김없이 다시 살아난 망량이었지만, 몇 번이나 요기의 수복을 관찰하다 보면 알 수 있었다.
더 이상의 여분은 없었다. 그 말인 즉, 바깥의 모든 요괴들을 긁어모았다고도 볼 수 있었다.
“벌써 그렇게 됐네.”
망량 또한 숨기지 않고 밝혔다. 지금이 그의 마지막 목숨이라는 것을.
그마저도 완전하지 않아, 망량의 목숨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미약하게 붙어 있을 뿐이었다. 상처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간신히 숨을 쉬는 게 고작이었다.
그리고 도율은 폭풍이었다.
‘하지만…….’
아직 한 가지 남아 있는 의문점.
그렇게 요기가 모자라다면, 여기 가까이에서 엄청난 힘을 갖추고 있는 존재에게로부터 가져오면 될 일이었다.
그건 바로 사신수, 현무였다.
‘상당한 요기를 가져올 수도 있을 텐데, 그러지 않고 있다. 불가능한 건가?’
그 의문에 답하듯 망량이 입을 열었다.
“그래, 맞아. 사신수는 특별하거든.”
사신수는 망량이 명령을 내리고 목숨을 거둘 수 있는 백귀 중 하나가 아니었다.
대부분이 망량의 말에 따라 주고 있지만, 실제로는 대등한 협력 관계라고 볼 수도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 그런 망량에게 충성을 바치지 않는 자도 있었다.
쿠르릉!
커다란 바위가 수많은 자갈로 부숴지는 것과 같은 소리를 내며, 푸른 벼락이 도율과 망량 사이에 내려앉았다.
거기에서 나타난 한 소년이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불만을 표했다.
“너무 이르잖아.”
푸른 머리카락과 황금빛 눈. 뺨에는 파란 비늘이 붙어 있었다.
소년의 발은 땅 위에 닿아 있지 않았다. 그 대신이라고 하듯 꼬리가 공중을 천천히 휘젓고 있었다.
“얼마 못 죽였어. 그래도 약속은 지키는 거겠지?”
“…물론입니다.”
“좋아. 그거면 됐어.”
소년이 만족스럽게 턱을 치켜들었다.
‘…청룡인가.’
도율이 그 모습으로부터 정체를 유추했다.
모든 요괴들이 한낱 요기가 되어 사라진 지금, 남아 있는 것들은 사신수들뿐.
백호의 자리는 비어 있는 상황에, 현무는 커다란 몸을 이끌고 이동하고 있다. 주작은 이미 한 번 모습을 봤으니.
새로운 얼굴을 한 이 녀석의 정체는 청룡이 분명했다.
“갑자기 튀어나와서 뭐냐, 넌?”
“아~.”
공중에서 빙글 돈 청룡이 여유롭게 웃으며 답했다.
“미안하게 됐어. 이 녀석 목숨은 내가 가져가기로 했거든.”
“뭐?”
도율 또한 망량과 결판을 낼 작정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새로운 누군가 등장해 망량의 목숨을 가져가겠다고 할 줄은 몰랐다. 그것도 망량과 한패라고 생각했던 사신수 중 한 명이.
‘어떻게 된 거지?’
청룡이 뒤에 있는 망량을 가리켰다.
“이 녀석은 어처구니없는 약골이지만, 가지고 있는 왕의 그릇만큼은 쓸 만하거든.”
“왕의 그릇?”
“그래. 난 그걸로 용왕이 될 거다.”
용왕.
사신수 청룡으로도 모자라, 한층 위의 존재로 거듭나겠다는 생각이었다.
“자, 인간! 너는 운이 좋아. 하찮은 핏줄인 건 마음에 안 들지만, 나는 자비로우니 용서하지. 왕의 탄생을 목도하는 첫 번째 관객이 될 기회를 부여하마!”
그렇게 말한 청룡이 돌아보고 망량을 바라본 후, 그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너……! 왕의 그릇은 어디에 있어!”
“벌써 들켰나요?”
“네놈……!”
청룡이 분노로 이를 빠득 깨무는 사이, 망량이 느긋하게 설명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시죠. 왕의 그릇은……. 한 인간에게 옮겨 놓았습니다. 계약의 연장입니다. 당신에게는 어려운 일도 아닐 테니까요.”
“하.”
청룡이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릇이 어디에 있는지 짧은 시간 내에 파악하고, 그게 그리 멀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망량의 말대로 인간 몇 죽이고 그릇을 빼앗는 건, 청룡에겐 손쉬운 일이었다. 번거롭다는 표현조차 불필요했다.
하지만 더는 망량을 살려 둘 이유가 없었다.
“왕을 능멸한 죄다.”
푸슉!
청룡의 발톱이 망량의 상처 입은 몸을 꿰뚫었다.
망량의 몸이 힘을 잃고 축 늘어졌다. 이번이야말로 마지막이라는 듯, 그의 몸이 서서히 흩어져 바람과 함께 흩어졌다.
“그럼…….”
청룡이 왕의 그릇을 회수하러 비행하려는 앞을, 도율이 막아섰다.
“응? 뭐냐?”
그 모습을 본 청룡이 코웃음을 쳤다.
“그렇게나 왕의 탄생을 목도하고 싶은 거냐? 좋아. 어마어마한 충성심이구나. 따라와도 좋다.”
청룡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의 앞에 푸르스름한 구슬이 떠올랐다.
“단. 왕의 앞을 가로막은 책임을 물은 후에도 살아 있다면 말이지.”
청룡의 구슬이 도율을 향해 푸른 번개를 쏘아 보냈다.
도율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중2병이 덜 나았군.”
도율이 손바닥으로 번개를 쳐 냈다.
* * *
“하아, 하아…….”
주작 서오가 날개를 접으며 현무의 혈관을 타고 들어갔다.
비행 능력이 온전하지 않은 탓에 동굴과 같은 벽에 몸을 부딪쳐야 했지만,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이 망할 불꽃……!’
서오의 상태가 온전하지 못한 건 모두 도율이 붙여 놓은 검은 불꽃, 삼매진화 때문이었다.
불꽃 그 자체를 신체로 삼는 주작이기에, 의지대로 다룰 수 없는 이물질이 섞여 있는 건 치명적이었다.
‘게다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어.’
삼매진화의 불꽃은 꺼지지 않고 점점 더 크게 타오르고 있었다.
서오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본래의 불꽃이 점점 더 미약해지고 있었다. 이대로 다룰 수 있는 불꽃을 모두 잃어버리고 나면, 사라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 전에… 확인해야만 해……!’
백귀의 주인이자, 자신의 주인인 망량. 그가 자신의 목숨과 모든 요괴들의 목숨을 바쳐 가며 하고자 했던 일.
그것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뒷받침하는 것이 서오의 마지막 남은 의무였다.
서오가 날개조차 펴지 못하고 몸을 끌 듯이 현무의 심장을 향해 이동했다.
‘조금만 더 가면…….’
지친 몸을 이끌고 마침내 도착한 심장부.
서오가 볼 수 있던 건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그 모든 일의 중심에 이매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게…….”
서오가 불같이 분노했다.
“무슨 짓입니까, 이매 님!”
이매가 힘겹게 눈을 떴다.
“…서오.”
낭패였다.
이매는 지금 넘치는 요기가 백수아 대신 백우진에게 흘러 들어갈 수 있도록 조정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지금 상황에서 방해를 받는다면 두 사람의 목숨을 보장할 수 없었다.
“망량 님이 모든 걸 바쳐서 이루려고 했던 건, 모두 당신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런 당신이, 당신 손으로 이 모든 일을 망치겠다는 겁니까?!”
“…….”
“망량 님은… 매일 후회하셨습니다! 당신과의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해, 혼자 보낸 것을. 비굴하고 비겁한 선택을 해 누이를 잃었다고 자책했단 말입니다!”
비록 의견 차이가 있어 헤어지고 말았지만, 어디선가 건강히 살아 있을 거라는 믿음과 달리.
이매는 이미 죽은 목숨이었다.
망량은 이매의 죽음이 자신과 모든 요괴들의 선택으로 인한 것이라 믿었다. 그 잘못을 되돌리기 위해 모두의 목숨으로 되갚아야만 한다고 결정했다.
모두가 그 말에 따랐다. 망량은 요괴들의 왕이었기에.
“그래도 나는…….”
이매의 말이었다.
“그게 옳다고는 생각 안 해.”
이매는 인간을 배웠다.
나약하고 금세 죽고 마는, 덧없는 일생을 살지만.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며 별에 소원을 빌어, 그 바람이 영원히 이어지길 기도하는 자들.
그런 이매의 말을 들은 서오가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하하… 그렇군요.”
분노가 머리 끝까지 차올라, 서오는 한층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그런데 지금, 꽤 바빠 보이시는군요. 저 또한 이매 님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실 거지요?”
이매는 백우진의 등으로부터 손을 뗄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건 입을 여는 것뿐이었다.
“…그러지 말아 줘. 부탁이야.”
“하하, 하하하! 그게 답니까?”
“제발…….”
이매의 애원이 무색하게, 서오가 불꽃을 피웠다.
가지고 있는 불꽃은 얼마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삼매진화의 불꽃에 온몸을 좀먹히고 만다.
서오는 남은 불꽃을 유의미하게 사용할 방법을 정했다.
“모두 잿더미로.”
이 공간을 모두 불태우는 것이었다.
이매에게는 그만두라고 소리칠 여력조차 없었다. 그사이 서오가 얼마 남지 않은 불꽃을 긁어모았다.
콰아!
불꽃이 공기를 거세게 밀어내며 이매를 향해 쏘아졌다.
이매는 마지막 순간까지 백우진의 등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은 죽다 살아난 몸. 불에 타 죽는 한이 있어도 상관 없었다.
그러나 다소의 열기가 느껴지는 한이 있어도, 불꽃이 백우진과 이매를 집어삼키지는 않았다.
“……?”
이매의 눈앞에 하얀 털을 가진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었다.
“너는……!”
「크으으……!」
하얀 털이 검은 재가 되어 흩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