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214
214화 부탁 하나 합시다
“번개를 붙잡겠다고?”
청룡이 비웃음을 흘렸다.
“번개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 중 가장 빠르다.”
파직!
청룡이 푸른 번개가 되어 벼락처럼 땅 위에 내려섰다. 도착한 곳은 도율의 눈앞이었다.
청룡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는 도율을 치켜뜬 눈으로 노려봤다.
“해 봐.”
도율이 손가락을 움직이는 사이, 청룡은 어느새 다시 공중에 떠올라 있었다.
그 움직임을 눈으로 따라갈 수는 있었지만, 아무래도 쫓아가는 건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상대는 공중에 떠 있었다.
‘공중 부양은 못 하는데.’
청룡이란 녀석은 공중을 자유롭게 떠다닐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허공에서 허공으로의 이동도 가능할 게 뻔했다. 일일이 지면을 박차야 하는 도율이 불리한 건 사실이었다.
‘경공을 잘 응용해 보면…….’
가능성을 점치던 도율이 고개를 저었다.
가벼운 나뭇잎을 밟을 수 있는 거라면 몰라도, 아무것도 없는 하늘에서 새로이 도약하는 건 상당히 비효율적인 일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청룡을 쫓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확실히 재빠른 놈이지만.’
그 빠르기를 활용해서 등을 돌리고 도망치는 건 아니라는 점이 중요했다.
청룡은 번개와 같이 재빠르게 거리를 벌렸다가 줄였다가 하고 있었지만. 도율에게서 완전히 거리를 벌리며 도망치지는 않았다.
자존심 때문이었다.
‘도망칠 생각이 없다는 게 다행이군.’
도망치는 청룡을 붙잡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짓이었다.
그러나 청룡은 지금, 도율을 앞에 두고 도망친다는 선택 자체를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한낱 인간보다 약할 리가 없다는 자신감. 그리고 속도의 우위를 바탕으로 뿜어져 나오는 우월감. 설령 힘에서는 밀린다 해도, 싸워서 질 만한 상대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 방심을 이용한다.’
도율의 분석은 정확했다.
하늘에서 청룡이 도율을 내려다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아까…….’
여의주를 불러내 번개를 내리쳐도 끄떡없는 걸 보면 평범한 인간은 아니었다. 단순히 몸이 튼튼한 것만으로는 그 번개의 세례에서 멀쩡할 수 없다.
인간이라지만, 나름대로 도력(道力)에 대해 깨우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멀쩡할 리가 없었다.
‘인간 주제에…….’
청룡이 불만스럽게 눈썹을 찌푸렸다.
하찮은 인간들이 하늘에 닿기 위해 도술이니 선술이니 하는 걸 배우고 갈고닦는다는 이야기는 들어 봤지만. 그걸 눈앞에서 보게 되니 참을 수 없는 구역질이 밀려왔다.
벌레가 사람 말을 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애초에 그 망량이 직접 알고 지낼 정도의 인간이니, 그 정도는 받아들여야 하는 걸지도 몰랐다.
‘칫…….’
청룡에게 있어 인간이란 대등한 높이에서 바라보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래 봐야 인간.’
결국은 모두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 갈 수밖에 없는 자들이었다.
그들이 머리를 조아려 비를 내려 주십사 하면, 청룡은 상공을 가로지르며 비구름을 몰고 왔다. 그렇게 비를 뿌려 주면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는 것이 인간이었다.
그것이 고작해야 수백 년도 지나기 전의 일이었으니.
‘보주로는 답이 안 보이고.’
보주는 귀찮은 일을 대신 행해 주는 매개체에 불과했다.
그를 통해 원거리에서 손쉽게 위력적인 공격을 퍼부을 수 있는 건 사실이었지만, 보다 정교하고 수준 높은 공격을 행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런 술식을 짜 넣는 건 귀찮기도 하고, 제아무리 보주라 불리는 물건이라 해도 청룡의 도력을 버텨 낼 재간이 없었다.
‘어쩔 수 없나.’
이 귀찮은 인간을 손봐 주기 위해서는 직접 손을 써야만 한다.
청룡이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살짝 시험해 볼까.’
청룡이 손톱 끝을 날카롭게 다듬었다.
슉!
재빠르게 다가가 도율의 살갗을 베어 내고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러자 도율은 뒤늦게 상처를 손으로 덮으며 청룡의 자취를 쫓았다. 그러나 청룡은 이미 한참 전에 공격을 끝마치고 상공으로 돌아와 있었다.
‘뭐, 이 정돈가.’
청룡이 손가락을 바라보며 씨익 웃음지었다. 그 끝엔 핏방울이 걸려 있었다.
아무리 망량을 몰아붙였다 해도, 결국 그뿐. 망량은 개인이 특출나게 강한 놈은 아니었다.
천차만별. 수없이 많은 요괴들의 서로 다른 형질을 가진 요기를 한데 묶을 수 있는 왕의 그릇. 그걸 물려받은 놈이기에 특별할 수 있었던 것뿐.
그 왕의 그릇만 있다면, 모든 요괴들의 의지를 하나로 묶을 수 있었다.
‘그걸 제 몸 지키는 데 쓰지 않다니, 미련한 놈이다만.’
멍청한 선택을 한 왕을 둔 덕분에, 요괴들 대부분이 산화하지 않았나.
‘어차피 곧 내 것이 될 테니까.’
자신을 막을 수 있는 건 더 이상 어디에도 없었다.
청룡의 공격이 이어졌다.
번개와 같은 속도로 접근해 날카로운 손톱으로 도율의 피부를 베어 냈다. 청룡의 신체는 그 자체로 도력의 결정체이기 때문에, 공격당하는 순간 파훼하는 게 아닌 이상 막을 순 없었다.
애초에 인식이라도 제대로 가능하다면의 이야기였다.
청룡의 공격이 점점 빠르고 매서워졌다. 초에 한 번. 그것을 쪼개 절반으로 나누고, 쪼개고 쪼개어 나누어진 찰나의 시간 속을 채워 나갔다.
그럴수록 도율의 몸에 상처가 늘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온몸이 피로 적셔져 있었다.
“끝이다!”
청룡이 손가락을 길게 뻗었다.
번개와 같은 속도로 달려들어 팔을 뻗었다. 최고의 속력에 그 이상의 빠르기를 더한, 광속의 일격이었다.
목표는 단전이었다. 머리와 심장과 단전. 세 가지 약점 중, 두개골과 갈비뼈로 보호받지 못하는 가장 취약한 부위.
목소리보다 빠르게 청룡의 손톱이 도율의 뱃가죽을 뒤집어 놓았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무슨……?”
손에 걸리는 감각이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허공을 휘젓는 것과 같았다.
청룡이 손을 향해 시야를 내려다보니, 도율의 배 앞엔 검은 구멍이 있었다. 그 주먹만 한 구멍을 통해 청룡의 팔이 쑥 들어가 있었다.
머리 위에서 도율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첨이군.”
도율에게도 일종의 도박이었다.
청룡이 어디를 노릴지, 보고 반응하는 건 불가능했다. 이걸 동시에 세 개나 만드는 것 또한 무리였다.
도율 역시 예상을 해야만 했고.
그 노림수가 맞아 들었다.
“이게… 무슨?!”
청룡이 팔을 뽑으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번개가 되어 달아나려 해도 팔이 붙잡힌 상태에선 빠져나갈 수 없었다.
‘이건 대체……?!”
들어갈 땐 빨려 들어가듯 쉽게 들어갔지만, 뽑을 순 없었다.
“흑응공(黑凝工).”
도율이 입을 떼자 검은 구슬이 엄청난 힘으로 청룡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으극……!”
청룡이 안간힘을 써도 거기서 빠져나갈 순 없었다. 빠져나가긴커녕, 잡아먹혔던 한쪽 팔뚝이 점점 끌려 들어가 어깨까지 들이닥쳤다.
“이런 젠…자앙!”
청룡이 어깻죽지를 스스로 잘라 냈다.
팔을 버리기로 판단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고작해야 한 명의 인간을 상대하면서, 그 미물이 부린 술수에 당해 팔을 잃어야 한다니.
스스로 그 판단을 내리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서걱!
팔을 떼어 낸 청룡이 곧바로 몸을 번개로 바꾸고 검은 구멍으로부터 멀리 떨어지려 했지만.
“걸려들었군.”
그게 바로 도율의 노림수였다.
“무슨……?!”
번개가 된 청룡은 오히려 아까보다 더 큰 인력을 느끼고 있었다.
지면에 두 다리로 땅을 붙이고 있을 때보다 더욱 커다란 끌림. 번개의 몸은 전속력으로 달아나려는 시도가 무색하게 순식간에 검은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번개를 끌어당기는 힘. 자기장이었다.
“과학의 승리다, 이 녀석아.”
콰직!
도율이 흑응공을 깨뜨렸다.
* * *
“후우. 빡셌구만.”
흑응공 속에 넘칠 정도로 가득찼던 기가 마침내 소멸했다.
그걸 확인한 도율이 쭈그려 앉아 이마를 쓸어 올렸다. 이마를 타고 흐르던 피를 닦아 내니 앞이 좀 볼만했다.
“이도율 씨!”
후우웅!
거센 바람 소리와 함께 흰돌이를 탄 백우진이 나타났다.
「와, 미친.」
그렇게 나타난 흰돌이는 얼떨떨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현무의 심장부에서부터 여기까지, 순식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다.
원래도 누굴 태우고 달리는 것엔 자신이 있었지만. 지금은 마치 바람을 타고 한순간에 도착한 듯한 빠르기였다.
“백우진 씨?”
도율이 보는 백우진의 모습은 전과 달라져 있었다.
머리카락은 여전히 잿빛이었다. 하지만 늘 쓰고 있던 안경을 양복 주머니에 집어넣은 걸 보니, 단순히 잃어버린 건 아니었다. 더는 불필요하다는 뜻이었다.
무엇보다도 겉모습 이상으로 바뀐 건, 그에게서 어떠한 힘이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힘의 정체는…….
‘망량……. 아니, 요기(妖氣)인가.’
백우진이 다가와 물었다.
“…괜찮습니까?”
표정이 제법 심각했다.
도율은 피투성이로 쭈그려 앉아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으니, 걱정할 법도 했다.
백우진이 내미는 손을 잡고 일어나며 도율이 답했다.
“별거 아닙니다. 그보다, 그 힘은…….”
“조금, 그렇게 됐습니다.”
백우진이 어깨를 으쓱했다.
사정을 이야기하려면 조금 말이 길어져야 했다. 이매에 대한 것도 그렇고, 갑작스레 나타난 주작 때문에 상황이 급박해진 것 또한 한몫 거들었으니.
“아이는 무사합니까?”
“덕분에요.”
백우진이 흰돌이의 등을 가리켰다. 거기엔 백수아가 잠들어 있었다.
“이 일은 꼭 갚겠습니다.”
백우진이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온갖 위험한 곳에도 데리고 다니며 부려 먹을 생각으로 잘해 주고 있었다. 일반인인 백우진에겐 목숨의 위험을 감수해야 할 정도의 일이 될지도 몰랐다.
‘오히려 잘됐네.’
머리가 잘 굴러가는 백우진이 몸까지 튼튼해졌다면 다행이었다.
아직 싸움에 관련된 경험은 없으니 전선에 투입할 순 없어도, 제 한 몸 지킬 능력이 있는 건 큰 장점이었다.
사실 자기 몸 하나 지키는 게 전부라고 하기엔 과분한 힘이었지만.
‘너무 자주 쓰게 하는 건 안 좋겠지.’
도율과 달리, 백우진이 지니고 있는 건 요괴들이 다루던 요기였다.
인간의 몸으로 너무 자주 썼다간 어떠한 반동이 찾아올 줄 모르니, 정말 필요한 순간에만 꺼내는 게 좋아 보였다.
결국, 망량과 함께 모든 요괴들은 소멸했다.
그렇게 이 일이 마무리될 거라 생각했던 도율이,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몸을 뻣뻣하게 굳혔다.
“무슨 일입니까?”
“백우진 씨.”
도율이 무거운 목소리로 부르자, 백우진이 덩달아 긴장했다.
“…예.”
“빚 갚겠다고 했죠?”
“물론입니다.”
“그럼 당장 부탁 하나 합시다.”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절해선 안 된다는 직감이 들었다.
* * *
“이게 되네.”
청진명이 창도 손에서 놓은 채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웠다.
온몸이 땀에 젖은 채 거친 숨을 내뱉고 있었다. 전장 한복판에서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이었지만, 다른 팀원들도 지적하지 못했다.
온 힘을 다 쏟아 내고 지쳐 있는 건 다른 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청진명의 팀은 모든 마력을 쥐어짜 낸 끝에 간신히 현무의 다리를 부수고 움직임을 제지할 수 있었다. 그 반동으로 반쯤 탈진해 숨을 고르는 중이었다.
구석에서 나뭇가지로 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송민아만 빼고.
“…저거 우짭니꺼?”
“…일단 내버려 두자.”
그렇게 조용히 눈치를 보며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다른 일행이 찾아왔다.
“오!”
언제 쓰러져 있었냐는 듯 청진명이 휙 하고 몸을 일으켰다.
“그쪽도 성공했나?”
“물론입니다.”
도율과 백우진이었다.
두 사람 모두 피투성이로, 도율이 백우진을 부축하고 있었다. 하지만 생명에 지장이 있어 보일 정도는 아니었다.
확인을 끝마친 청진명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이걸로 어떻게 한 건 해결했군. 나 참. 한창 바쁠 때 이런 일이 터지다니, 어떻게 되는 줄 알고 돌아 버릴 뻔했는데.”
그렇게 청진명이 안도하는 사이, 클레어가 다가와 물었다.
“…다쳤어요?”
그 말에 도율이 움찔하고 반응했다.
그야 청룡의 공격은 반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빨랐고, 대응하지 않은 맨몸으로도 상처 입지 않을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하지도 않았다.
상처는 금방 나았지만, 피에 젖은 옷은 감출 수도 갈아입을 수도 없었다.
하지만 도율은 이내 뻔뻔한 얼굴로 돌아갔다.
“이 인간 피입니다.”
도율이 가리킨 건 백우진이었다.
클레어가 보니 확실히 백우진의 몸에도 자잘한 생채기와 핏자국이 가득했다. 싸움에 여파에 휘말린 듯했다.
무엇보다도 도율이 백우진을 부축하고 있었다.
“그래요?”
클레어는 백우진이 다친 건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렇게 관심이 사라진 걸 확인한 도율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백우진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배우라도 하지 그러십니까?”
먹고살 걱정은 없겠네.
대단히 뻔뻔한 인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