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220
220화 해 보니까 좋던데
“크흠.”
결국은 삼자대면이 되고 말았다.
청진명과 도율이 앉아 있는 자리에 억지로 끼어들게 된 클레어가 뻘쭘하게 헛기침을 했다.
이제 와서 돌아가는 건 모양도 빠지고 실리도 없으니, 뻔뻔하더라도 합류하기로 했다.
“그래서. 최윤호 길드장님이 도은이에게 관심이 있다, 이 말인가요?”
“그래. 네 매니저 말이야.”
청진명이 거듭 확실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클레어는 현기증이 난 것 같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세상에 마상에…….”
충격에 빠져 있는 클레어를 두고 청진명이 도율에게 물었다.
“막내가 가끔 보면 웃기는 말들을 꺼내곤 하는데, 이거 댁이 가르친 건가?”
“…아닙니다.”
범인은 따로 있었다.
“원래 외국어 배울 땐 그 나라 애인 사귀는 게 직빵이라고, 나는 또 댁한테 배운 건 줄 알았지.”
“음…….”
청진명의 추측과 달리 도율과 클레어의 교제 기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알고 지낸 기간이 혼인 기간과 거의 정확히 일치하는, 순서가 다소 잘못된 사정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런데 왜 도은이입니까?”
“왜냐고?”
“최윤호 씨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좋은 상대가 수도 없이 많을 텐데.”
딱히 동생을 깎아내릴 생각은 아니지만.
외모에 대한 건 남매인 자신이 욕해 봤자 누워서 침 뱉기니까 제외하고.
일 잘하고, 유명한 헌터의 매니저로 일하고는 있다지만. 그렇다고 집안이 엄청나게 좋은 것도 아니고.
‘…그러고 보니.’
저번에 도은에게 최윤호 길드장과 아는 사이냐고 물었을 때, 명백하게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보였다.
당황하는 일이 거의 없는 도은에게 있어 희귀한 반응.
“둘이 무슨 일 있습니까?”
도율의 물음에 청진명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냐니? 없었다고 하기가 더 힘들지 않나?”
“예?”
“뭐야. 댁은 몰라?”
무슨 일을 말하는 거지?
클레어에게 고개를 돌리자, 그녀는 떨떠름하게 근심에 잠겨 있었다. 명백히 알고 있는 눈치였다.
어리둥절한 도율의 반응에 청진명이 키득거리며 설명했다.
“아~ 두 사람 첫 만남이 아주 가관이거든. 저기, 이도은 매니저가 우리 길드장을 만났을 때 싸대기를 거하게 때려 붙였거든.”
“…예?”
청진명의 말에 도율은 처음 듣는 소리라는 듯 눈을 끔뻑였다.
“지금은 오해가 풀렸긴 한데.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거든. 당시에 조금 복잡한 사정이 있어서.”
“제 탓이에요…….”
클레어가 고개를 숙였다.
“그게 왜 또 클레어 씨 때문이라는…?”
“설명하자면 복잡한데. 뭐, 지난 일이니까 넘어가자고.”
“괜찮은 거 맞습니까?”
“괜찮아, 괜찮아. 당사자 주변인 제외하면 아는 사람도 적고.”
해결되었다면 다행이긴 하지만.
어떻게 로얄 로드 길드장의 뺨을 때리고도 이 업계에서 활동할 수 있었던 건지. 지금에 와서도 위험천만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좋은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아침 드라마도 아니고, 내 뺨을 때린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 하고 반한 건가. 그런 전개는 요즘엔 아무도 안 쓰는데.
아니면 설마 맞는 쪽에 취미가 있다거나.
도율이 고개를 저었다. 길드장의 명예를 위해 억측은 삼가했다.
“아무튼. 난 댁 생각이 궁금한 건데.”
“저 말입니까?”
“그래. 동생이잖아.”
청진명이 떠보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때? 동생 남친이 거대 길드의 길드장이 되면. 떡고물 좀 떨어지지 않겠어? 나쁘진 않다고 생각하지?”
청진명의 말대로, 최윤호가 평범한 남자는 아니었다.
자산이나 유명세가 어마어마했다. 그런 최윤호를 사위로 들이면 아무래도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만.
도율은 거기에 욕심이 나지 않았다.
“떡고물엔 관심 없습니다. 어른이니까 연애는 지가 알아서 하겠죠.”
“그런가.”
청진명이 아쉽다는 듯 물러섰다.
‘뭐, 조금 억울하긴 한가.’
떠올려 보면, 도은은 자신과 클레어의 사이에 어마어마하게 참견을 하곤 했다. 그 덕분에 다소 곤혹스러웠던 일이 많았던 걸 생각하면, 이쪽도 실컷 간섭하고 싶지만.
그거야 치졸한 복수에 불과하고, 가장 좋은 건 본인에게 맡기는 것이라 생각했다.
“나로서는 두 사람이 잘됐으면 하거든.”
“그렇습니까?”
도율이 의외라는 듯 물었다.
청진명 역시 남의 연애 사업에 관심을 가질 만한 성격은 아니라 봤는데.
게다가 가족 관계인 것도 아니었다. 최윤호가 청진명이 속한 길드의 길드장이기는 하지만, 윗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사생활까지 도와줄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청진명은 그런 이유로 움직이는 사내가 아니었다.
“둘이 무슨 사이입니까?”
“글쎄. 아직은 아무것도 아니겠지?”
“그게 아니라, 청진명 씨와 최윤호 씨 말입니다.”
“음…….”
그 질문을 들은 청진명이 질문을 곱씹듯 눈을 굴렸다.
“그냥 아는 동생.”
청진명은 웃으며 답했지만, 그 미소가 어쩐지 씁쓸해 보였다.
“길드장님은 어떤 분인가요? 직접 대화한 적은 드물어서…….”
“아, 그런가?”
클레어에겐 길드장 최윤호와 직접 마주할 만한 기회가 많지 않았다.
길드장을 만나야 할 필요가 있는 일이라면 대부분 청진명이 팀을 대표해서 처리하곤 했으니까. 그 외에는 매니저인 도은을 통해서 전달되곤 했다.
아무래도 정보가 적을 수밖에 없었다.
“나쁜 놈은 아니지만…….”
청진명이 턱을 쓰다듬으며 표현을 엄선했다.
“이상한 놈이긴 하지.”
그건 아무리 친한 형이어도 감싸 주는 게 불가능했다.
* * *
“관찰하게 해 줬으면 좋겠군.”
“관차알?”
도은이 의아하게 되물었지만, 최윤호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쉬는 날엔 뭘 하는지. 누구와 만나고 무슨 얘기를 하는지. 무얼 보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게 궁금한 것뿐이라.”
원한다면 계약서를 작성해도 좋다. 보상이라면 지급하지.
최윤호가 그렇게 덧붙였다.
도은이 눈을 감고 이마를 긁었다. 잘못 들은 건 아니었다. 젊은 나이에 벌써 귀가 먹지는 않았다.
나름대로 머리 회전이 빠르다고 자부했는데, 저 말은 왜 이해가 안 되는 걸까.
“그, 뭐냐. 혹시 영화 보러 가자는 말 돌려 말하는 건 아니죠?”
“영화를 볼 생각인가?”
최윤호가 반색하며 물었다.
“무슨 영화를 볼 거지? 부디 다 보고 나서 감상을 들려줬으면 좋겠군.”
“저 혼자 보고 오라고요?”
“나와 함께해서 감상이 달라지는 거라면, 그렇게 하지.”
“…….”
같이 보자는 것도 아니고, 보고 와서 떠드는 걸 들려 달라는 건가.
이게 뭐 관찰 예능, 그런 건가. 하지만 이건 예능도 아니고 카메라도 없다. 최윤호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사정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몰래 감시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고 싶었다면 얼마든지 사람을 붙일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거대 길드의 길드장이니, 남들 눈에 띄지 않고 몰래 움직일 수 있는 각성자에게 의뢰할 연줄 정도는 있겠지.
당당한 건 좋지만.
‘당당한 신종 변태인가……!’
부끄러움 한 점 없는 뻔뻔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게 어처구니가 없었다.
사업성이 뛰어난 비즈니스를 제안했으니, 수락하지 않는 네가 바보다. 거절한다면 바보가 아닌 파트너를 찾으러 가겠다. 그런 당당한 태도로 앉아 있었다.
그리고 도은은 그런 확신에 찬 상대의 콧대를 짓눌러 주는 걸 좋아했다.
“안 해요.”
거절했더니 최윤호는 여전히 여유 넘치는 태도로 어깨를 으쓱했다.
“차인 건가?”
“이런 건 차였다고 안 하거든요.”
“거절당했지 않나.”
기가 차서 화도 나지 않았다.
“마음을 전달하고 거절당해야 차인 거죠. 길드장님은 절 어떻게 생각하는데요? 좋아한다고 말할 건 아니죠?”
전혀 그래 보이는 태도가 아니었다.
애초에 첫만남부터 좋지 않은 일이 있기도 했고. 그 후로 어쩌다가 연이 이어져 같이 일을 하게 되었지만, 마주칠 때마다 느꼈다.
근본적으로 다른 인간이라는 것을.
비슷한 일을 하는 업종의 인간으로선 존경하지만, 사적으로 친해지고 싶은 타입은 아니었다.
도은의 물음에 최윤호는 당연하다는 듯 지체 없이 대답했다.
“흥미로운 관찰 대상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럼 뻔하네요.”
도은이 짐을 챙겨 일어났다. 표현하는 게 서툴러서 헛소리를 하는 줄 알았더니, 그런 것도 아니었다.
이 인간은 자기 마음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그것 자체가 이상한 것일 뿐.
누군가에게는 길드장 최윤호가 그렇게 말해 주는 것만으로도 무한한 영광일 수도 있겠지만. 도은은 그렇게 받아들일 수 없는 몸이었다.
“저는 펫이 될 생각은 없는 고로, 그럼 이만.”
역시, 사적으로 친해지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 * *
“뭐여? 연락도 없이.”
도은이 집에 도착하니 클레어가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냥. 보고 싶어서.”
클레어가 멋쩍게 웃었다. 최근에 처리할 일이 많아 바쁜 건 알고 있었다. 시간을 낼 틈도 없는 건 아닐까.
도은이라면 아무리 틈이 없어도 클레어를 보기 위해서라면 어떻게든 쥐어짜 냈겠지만.
“아우, 역시 우리 언니는 말도 이쁘게 한다니까.”
“과장하기는.”
“과장 아닌데? 나는 우리 언니 말이 세상에서 제일 이쁘더라. 얼굴이 예뻐서 그런가, 목소리가 고와서 그런가?”
도은이 배시시 웃으며 들러붙자 클레어가 익숙하게 받아들였다.
“어디 다녀왔어?”
“응? 걍, 요 앞에 잠깐…….”
그렇게 얼버무리려던 도은이 클레어의 표정을 보고는 알아차렸다.
“아하. 이거 다 알고 온 표정이구만. 부끄럽게시리.”
도은이 멋쩍게 머리를 긁고 실토했다.
“나도 아직 안 죽었다, 이거지. 잘나가는 여자의 숙명이라고나 할까. 핫핫!”
“그래.”
“아, 그런데 제대로 거절하고 왔어. 아직 연애할 때가 아니기도 하고……. 내 애인은 일이라고나 할까.”
그런 말을 하는 도은을 보는 클레어의 표정이 썩 밝지 않았다.
예민하게 알아챈 도은이 웃으며 농담을 건넸다.
“아니면, 언니로 할까?”
그때 클레어가 도은에게 속삭였다.
“나는 도은이 네가 연애했으면 좋겠는데.”
“…헐.”
설마하니 클레어에게서 그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는 듯, 도은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놀랐다.
지금껏 클레어가 가까이 다가오는 남자들을 어떻게 내쳤는지 기억하는 도은이 입장에서는, 다른 사람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의 발언이었다.
도은이 클레어의 뺨을 두껍게 꼬집었다.
“뭐야, 이거! 우리 언니 입에서 나온 말이 맞아? 너, 도플갱어지!”
“나 마자아…….”
도은이 뺨을 놓자, 클레어가 가볍게 뺨을 문지르며 말했다.
“난… 해 보니까 좋던데?”
“…….”
클레어의 말에 도은은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충격을 받았다.
클레어를 앞에 두고도 뭐라 반응하지 못하고 굳어 있다가, 몇 초 후 분노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제길–! 죽여버리겠어, 이도율!”
“죽이면 안 돼.”
“언니! 선택해! 나야 오빠야!”
도은의 다급한 외침에 클레어가 느긋하게 답했다.
“네 오빠.”
“아악!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단 말이야!”
도은이 마음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난 행복한데?”
“정신 차려, 언니…….”
“정신 차렸어.”
클레어가 배시시 웃고는 말했다.
“혼자 하기 미안하네. 그러니까 도은이 너도 좋은 사람 만났으면 좋겠다.”
그 말을 듣는 도은 역시 마음이 벅차오르는 건 마찬가지였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게 당연하다는 듯, 홀로 고고하게 서 있던 절벽 위의 꽃. 사람의 손길을 거부하듯 냉랭한 한기를 두르고 있던 클레어가,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도 그 온기를 권하고 있었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은 분노는 여전했다.
“그래, 알았어. 좋은 사람 만난다면 말이지.”
“오늘 별로였어?”
“아오. 그 인간은 좀 아니지. 내가 언니의 상사의 상사만 아니었어도……. 뭐, 여기까지만 할게.”
그 후로 두 사람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재잘거렸다.
차 안에서 운전대에 몸을 기울이고 있는 도율이 조용히 안도했다.
‘안 나가길 다행이군.’
클레어가 조용히 손짓했다. 얘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 먼저 들어가라는 듯했다.
마침 좋은 신호이기도 했다.
[와라.]짧고 무뚝뚝한 전언이었지만, 도율은 누가 보낸 연락인지 알 수 있었다.
‘싹퉁바가지 노친네.’
마침내 주대현이 도율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