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222
222화 후회하지 마라
“잠깐.”
주대현이 가로막으려 했지만, 도율의 말을 들은 세케르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핫!”
세케르는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화를 냈던 때와는 다르게, 아주 흥미롭다는 듯이 미소를 띠고 있었다.
“바로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할 생각이었다.
세케르가 주대현에게 물었다.
“이렇게 넓은 건물이다. 장소 정도는 준비되어 있겠지?”
“…있다.”
주대현이 순순히 대답했다. 저 인간에게는 거짓말이 통하지 않으니까.
‘알고서 물어보는 걸 테지.’
황금안(黃金眼).
세케르의 눈동자는 어두운 곳에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밝은 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진실을 꿰뚫어 보는 눈…인가.’
마력이나 컨디션에 따라서 무얼 얼마나 볼 수 있는지는 달라진다고 들었지만, 적어도 이 건물 정도는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적절한 장소가 없다고 하면, 아예 이 자리에서 시작해 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랬다간 뒷수습이 더 귀찮아질 테니, 차라리 판을 깔아 주는 게 나았다.
“그럼 재미없는 회의는 집어치우고, 한 번 직접 확인해 보자고.”
세케르가 먼저 자리를 떴다.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다른 이들도 모두 그의 의견에 동의하는 듯, 그의 뒤를 따라 함께 이동했다.
그의 말에 따라야만 하는 것이 정답은 아니었지만, 도율의 실력을 확인하고 싶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건 주대현뿐이었다.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던 거 아닌가?”
도율의 말에 주대현이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 애매한 답을 꺼냈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다.”
이 작전의 핵심이 되는 인물이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상태.
그 실력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이 나올 거라는 것은, 누구나 예상 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럼 뭐가 의외지?”
“상대.”
누구든 자신 있는 놈이 덤벼 올 거라곤 짐작했지만.
“저자가 먼저 움직일 줄이야.”
골머리가 아프다는 듯 대답하는 주대현의 태도에 도율이 물었다.
“유명하신 분인가?”
안 그래도 이 자리엔 나름 어깨에 힘 좀 주고 다닌다는 놈들이 모인 걸로 알고 있는데.
거만한 태도나, 그런 태도에도 불구하고 찍 소리도 못 하고 쭈그러드는 다른 이들의 반응도 그렇고.
본인이 상당히 강하거나, 가지고 있는 세력이나 자본이 대단한 것이라 예상할 수 있었다.
‘일단 본인 실력엔 자신 있어 보이고.’
그런 도율에게 주대현이 말했다.
“태양의 아들, 세케르.”
“태양의 아들……?”
생소한 것을 대하는 듯한 도율의 반응에, 주대현이 떠올렸다.
이 남자는 지난 10년 동안 이쪽 세상에 있지 않았다. 원래 각성자였던 것도 아니었으니, 이쪽에 대한 지식은 조금 잘 아는 일반인 수준에 불과했다.
헌터 매니저 활동을 하며 나름대로 익혔다고 하는 것들은 모두 국내에서 활동하기 위한 정보들이었으니.
“자세한 건 가면서 설명하지.”
주대현이 먼저 걸음을 옮겼다.
* * *
“왔나?”
세케르는 옥상에서 도율을 맞이했다.
주대현이 마련한 회의장 건물 옥상은 커다란 평지로 되어 있었다. 따로 관중석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다른 이들은 모두 구석에 모여 있는 상황이었다.
도율이 발끝으로 땅바닥을 두드렸다.
“진짜 여기서 해도 되는 거 맞아?”
저기서 구경하는 놈들은 그렇다 치고.
천장이 무너졌다간 그대로 건물이 폭삭 가라앉을 텐데.
이 주위에는 갑작스러운 인력 지원으로 파견 나온 센터 직원들도 있었다. 그들 모두가 각성자는 아닐 테니, 미리 대피를 해 둬야 하는 건 아닐지.
다행히 그런 걱정은 주대현이 덜어 주었다.
“결계를 펴지.”
건물에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은 건 건물주인 주대현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의 공간을 외부와 격리하는 술법. 두 사람의 싸움의 여파가 다른 곳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하는 결계였다.
“그럼 뭐, 사양 않고.”
준비랄 것도 없이 마주한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봤다.
세케르는 무어라 말을 하려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어차피 말은 안 통한댔나.”
이 남자의 각오와 의지에 대해서 알고 싶었다.
전 인류의 미래를 어깨에 짊어진 놈이 어떤 자일지. 간신히 찾은 소질이라 하더라도, 시원찮은 놈이라면 당장에 치워 버리고 다른 방법을 찾는 게 나았다.
‘적어도 이 나를 상대로 겁먹지 않는 건 칭찬해 줄 만하지만…….’
그런 건 본디 말로는 전해지지 않는 법이었다.
도율은 먼저 움직이지 않았다. 상대의 수를 가늠하기 위해 긴장한 태세로 대기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 실력을 보고 싶다고 했지.’
상대에게 선수를 양보하는 것이었다.
‘먼저 들어와라.’
세케르도 그 의도를 파악했다.
‘…라는 거냐.’
세케르가 씨익 하고 짙게 웃음을 지었다. 배짱이 마음에 들었다.
그 미소에 불안감을 느끼지 않은 건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단 한 사람, 도율뿐이었다.
“서광(曙光), 케프리.”
그 말과 함께 세케르의 등에 이글거리는 날개가 솟아올랐다.
휘익 하고 공중으로 떠오르는 세케르의 모습을 보며 주대현이 소리쳤다.
“미친 자식!”
싸움이 격해질 건 예상했지만, 설마 처음부터 저렇게 나올 줄은 몰랐다.
주대현이 황급히 결계에 마력을 퍼부었다. 적당히 상황을 보고 조절할 생각이었지만, 이젠 따질 때가 아니었다.
“너랑 너, 너도 보조해라!”
주대현의 외침에 지목당한 이들이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만 같아선 당장 여기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후폭풍이 두려웠다. 결국 죽기살기로 이 자리에서 틀어막는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이게 웬 날벼락이람…….”
“이보쇼. 이거 나중에 청구합니다?”
“정산은 저놈에게 요구해라. 달라고 하면 황금도 비처럼 뿌릴 테니까.”
그런 소란을 뒤로하고 도율이 하늘에 떠오른 세케르를 올려다봤다.
‘그 정돈가……?’
불꽃의 날개를 달고 날아오른 세케르에게선 확실히 대단한 마력이 느껴지고 있었지만. 놀라 자빠질 정도는 아니었다.
높은 시야로 아래를 내다보던 세케르가 중얼거렸다.
“준비는 다 된 듯하군.”
조금 정도는 기다려주고 있었다. 이 정도 결계로는 태양의 힘을 온전히 가두지 못할 테니까.
마침내 결계가 만족스러울 만큼 단단해졌을 때, 세케르가 손가락을 위로 뻗었다.
“흑점.”
파앗!
그러자 이 주위의 모든 것이 어둠에 잠겼다.
“……!”
도율이 눈을 가늘게 떴다.
빛 한 점 없더라도 기감을 펼치면 이 주위를 생생히 파악할 수 있다. 시야를 가리기 위해 쓴 거라면, 도율에게는 무용지물이지만.
‘환각이나 눈속임은… 아니다.’
단순히 시야를 가리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주변이 어두컴컴해진 것은 단지 부수적인 효과에 불과하다는 것을.
빛을 모조리 빨아들이듯 하나의 점을 향해 마력이 응집되고 있었다.
‘…온다.’
세케르가 마력을 쏘아 냈다.
“폭발.”
신호 직후 빛과 열의 포격이 도율을 향해 쏘아졌다.
쿠구궁!
충격만으로도 지축이 뒤흔들리는 듯한 힘의 파동을 동반한 빛의 세례.
멀리 떨어져 지켜보고 있는 이들에게도 뜨거움이 전달될 정도의 포격이었다. 결계가 아니었다면 이 주위가 불바다가 될 것이 뻔했다.
“미친놈… 저질렀군!”
이런 짓을 했다간 누구도 멀쩡히 살아 있을 수 없었다.
주대현이 귀한 인물이랍시고 데려온 인간이었는데, 저 미친 이집트인의 눈에 띄어서 통구이가 되어 버리다니.
조용히 묵념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으나, 가만히 지켜보는 자도 있었다.
‘…분명.’
거기엔 팔짱을 끼고 지켜보고 있는 카르멘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정도로 죽지는 않겠지.’
그녀 역시 도율의 강함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기회가 있었다.
조직 고르곤의 대부분의 힘과 세력을 갖추고 있던 숙부의 파벌을, 하루아침 사이에 괴멸시킨 인간이었다. 그게 가능한 인간이 이 정도로 당할 리가 없었다.
결코 세케르를 과소평가해서는 아니었다. 그 작자의 힘은 카르멘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본때를 보여 달라고.’
어느 쪽을 응원하는지는, 뻔한 비밀이었다.
이윽고 빛의 포격이 멈춤과 동시에 주위가 빛을 되찾았다.
대부분의 예상을 깨고 도율은 포격 속에서도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상한 부분이 있다면 옷깃의 그을음뿐이었다.
“후우. 뜨거워라…….”
모두가 그 결과를 놀랍게 받아들였다. 내심 응원하곤 있었던 카르멘 역시도.
‘…말이 돼?’
놀라지 않은 건 단 세 사람.
도율과 주대현.
그리고 흥미롭다는 듯이 바라보는 세케르뿐이었다.
“그렇게 나오셔야지.”
이 정도도 버티지 못하면 사도를 모두 쓰러뜨리는 건 허황된 꿈이었다.
세케르가 가만히 있는 도율을 향해 도발했다.
“왜 그러지? 벌써 혼이 빠지셨나? 다음은 네가 공격할 차례다.”
단순히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쓰러뜨리기 위해서라면 공격력 또한 그에 걸맞게 뛰어나야만 했다.
그걸 확인하기 위해 도율이 공격하길 유도했다.
말이 통하진 않아도, 도율 역시 세케르가 무얼 바라고 있는지는 알 수 있었다. 다만 걱정인 점은.
“죽을 텐데.”
세케르의 포격을 막기 위해 많은 내공을 끌어다 썼다.
지나친 내력 소모로 지친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 기어가 상당히 올라가 있어서 힘을 조절하기가 곤란했다. 전신에 내공이 넘칠 듯이 흐르고 있었다.
도율의 대답이 마음에 드는지 세케르가 웃으며 외쳤다.
“어디 한번 해 봐라! 날 죽이면, 헬리오폴리스는 네 거다!”
자신의 길드를 주겠다는 선언. 그 어떤 길드장도 감히 하지 못할 약속이었지만, 세케르에게는 가능했다.
“뭐라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바라신다면야…….”
도율이 조용히 가라앉던 내공을 다시금 퍼올렸다.
“후회하지 마라.”
도율의 모습이 일그러졌다.
짙은 기가 새어 나와 주위를 일렁거리며, 도율의 모습이 일그러진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중이었다. 그렇게 빠져나온 것조차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원거리 공격엔 소질이 없어서.”
모자란 소질은 위력이 아니라 조절에 관한 것이었다.
도율이 두 개의 손가락을 펼쳤다. 두 발을 넓게 딛고 자세를 낮췄다. 눈으로 표적을 고정하고 몸을 웅크렸다.
“여뢰(如雷), 주천(周天).”
이윽고 쏘아 보낸 두 개의 손가락이 검격이 되어 뻗어 나갔다.
세케르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반응하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놈이 움직이지 않고 흑점 폭발을 견뎌 냈으니, 자신 또한 몸으로 받아 내기 위해서였다.
“…아.”
팟!
검격이 세케르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스쳐 지나간 검격은 그의 등 뒤로 머리 위까지 솟아올라 있는 불꽃의 날개를 거대하게 갈랐다.
“빗나갔다.”
“…….”
도율이 멋쩍게 뺨을 긁었다.
세케르는 조용히 뺨에 난 상처로부터 흐르는 피를 닦았다.
한쪽 날개로도 비행에 문제는 없었지만, 찢어진 날개가 금방 복구되지 않았다.
불꽃의 형상을 한 날개는 고정된 형태가 없어 검으로 벤다 해도 무용지물이었지만. 마치 마력의 구조가 파괴된 것처럼 제대로 붙지 않았다.
콰콰쾅-!
날개를 갈라 놓은 이후 검격이 하늘 끝까지 닿을 듯 뻗어 나가다가, 어딘가에 부딪친 듯 굉음을 냈다.
“겨, 결계가 무너진다!”
“복구가 안 돼!”
관중 쪽에서도 난리가 났다. 결계 보수에 손을 거들던 이들이 소리치고 있었다.
도율이 세케르와 주대현을 번갈아 쳐다보며 물었다.
“…슬슬 그만할까?”
주대현이 짙은 한숨을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