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237
237화 난 안 죽어
콰광!
거대한 용의 형상으로 변한 라크자르가 팔을 휘두르자 절벽의 바위가 무너져 내렸다.
‘맞으면 골로 가겠군.’
그러나 강한 위력에 비해 속도는 그다지 빠르지 않았다.
‘오히려…….’
작았던 소년의 모습에 비하면 피하기에 여유로운 정도였다.
덩치가 커진 만큼 위력이 강해지고 속도가 느려진 건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확신할 순 없었다.
어쩌면 여차할 때 확실한 한 방을 먹이기 위해 속임수를 쓰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우선은 가까이 접근하지 않고.’
도율이 내공을 퍼 올렸다. 손가락 끝을 따라 검격이 그어졌다.
“여뢰.”
스걱!
검은 검격이 라크자르의 신체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새하얀 비늘 위로는 생채기 하나 생기지 않았다.
주위의 암벽과 바닥을 긁고 지나간 갈라짐의 크기를 보면, 절대적인 위력이 부족한 건 결코 아니었다.
이는 한 길드의 본사를 무너뜨릴 정도의 위력을 가진 기술이었다.
“…더럽게 튼튼하네.”
도율이 가진 최고의 위력은 아니었지만, 상처 하나 없는 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기술들을 시험해 보는 건…….’
그다지 효율적인 방법은 아닐 것 같았다. 약점을 찾으려는 시도는 무의미해 보였다. 저 새하얀 비늘은 아마, 어느 하나에 약하지 않고 종합적인 방어력을 자랑할 테니까.
당연한 일이라 여기듯 라크자르가 말했다.
“너도 알고 있겠지.”
“뭘?”
“흉내는 결국 흉내에 불과하다고.”
도율의 손에는 검 한 자루 없었다.
그동안 검격을 만들어 낸 건 진짜로 검을 들고 베어 낸 것이 아니었다. 그럴싸한 동작에 내공으로 힘을 입혀 현실에서도 위력을 갖추게 했을 뿐.
그러나 실제 날붙이가 없는 만큼 부족한 위력을 보강하기 위한 내공이 소모되었다.
“기공술이 소모가 심하긴 하지.”
달리 말하자면, 그런 기술에 의존하지 않는다면 내공을 보다 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네가 잘하는 걸 해라.”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치고받고 싸워 보자고.”
체급 차이를 보면 치사하기 짝이 없는 말이었지만, 도율에게도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어차피 거리를 두고 하는 공격은 유의미한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그걸 계속 시도하면 일방적인 소모만 있을 뿐이었다.
파고들어 직접 공격하는 수밖에.
“좋아.”
도율이 벌려 뒀던 거리를 좁히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라크자르는 도율이 코앞까지 다가오는 순간까지 공격하지 않았다.
지근거리에서 서로를 바라보던 두 사람이 몸을 움직였다.
라크자르의 날카로운 발톱이 도율을 향해 내리꽂혔다.
퍼억!
도율이 머리 위로 주먹을 뻗었다. 바람조차 가르며 내리꽂히던 라크자르의 팔이 도율의 주먹을 맞고 위로 솟구쳤다.
“……!”
힘과 힘의 대결. 단순 질량에서는 질 수가 없었지만, 맞대결에서 밀렸다.
잔기술에서 벗어나 정공법으로 승부하기 시작한 도율의 진정한 힘.
인간의 몸으로 담아 낼 수 없는 위력이 내공의 힘을 빌려 폭발하고 있었다.
쿠웅!
“큭……!”
도율의 발차기가 라크자르의 몸을 밀어냈다. 거대한 육신이 거리낌 없이 뒤로 휘청거렸다.
라크자르가 뒷발에 힘을 주고 버텼다. 상상 이상의 위력에 잠시 당황하긴 했지만, 일방적으로 밀릴 정도는 아니었다.
–쿠오오!
라크자르가 포효하자 이어서 공격하려던 도율이 멈칫했다. 머리를 뒤흔드는 굉음이었다.
주춤한 건 순간이었지만, 물 흐르듯 이어지는 연격을 제지하기엔 충분했다.
다시 자세를 정비한 라크자르와 도율의 맞대결이 이어졌다.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 암벽이 무너지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었다.
라크자르의 육중한 공격은 피할 곳도 여의치 않게 도율의 몸을 덮쳤다. 도율은 그 공격을 모두 맞받아치는 것으로 대응했다.
도율은 그 커다란 동작의 빈틈을 노려 공격을 가했다.
대부분의 공격을 맞받아치고 자신의 공격을 몇 번이고 성공시키고는 있었다. 라크자르의 피부를 보호하던 비늘이 깨져 공중에 흩날렸지만.
‘큰 타격은 없나.’
승부를 결정지을 만한 단계는 아니었다.
이대로 계속해서 확실하게 승기를 점점 기울여 갈 것인지. 아니면 확실하게 한 방을 노리고 크게 도약할 것인지.
고민은 길지 않았다.
“바쁜 몸이라서.”
도율은 이곳에 혼자 온 게 아니었다. 지금 다른 이들이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 검은 절벽 아래를 찾아 내려올 가능성은 높지 않았고. 아무래도 도율이 이곳을 빠져나가야만 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눈앞의 라크자르를 빠르게 쓰러뜨려야만 했다.
그렇게 판단한 도율이 주먹을 뻗은 순간.
콰광!
도율의 주먹이 라크자르의 몸통에 박히는 것과 동시에, 엄청난 충격과 함께 도율의 몸이 암벽에 처박혔다.
맞는 것과 동시에 라크자르가 공격을 가한 것이었다.
“하아…….”
도율의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순간적으로 방어 자세를 취하긴 했지만, 공격 직후인 탓에 완전하진 않았다. 게다가 막는다고 해서 막힐 공격도 아니었다.
고작 한 대만 허용해도 이 정도였다.
“크윽…….”
그러는 라크자르 역시 멀쩡한 상태는 아니었다.
다소 일방적인 공방에도 큰 피해 없이 잘 넘어가고 있었지만, 마지막에 먹었던 도율의 일격은 몸으로 버틸 만한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피부와 근육을 타격한 것 이상이었다.
‘내장을… 아니, 마력인가……!’
라크자르의 온몸을 힘차게 순환하던 마력이 뒤엉킨 것처럼 꼬이기 시작했다. 길이 막혀 상처를 입은 부분에 제대로 마력을 공급할 수가 없게 됐다.
그러자 고통과 함께 괴사가 진행되었다. 단순히 공격 한 번을 허용한 것 이상의 손해였다.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뚱이. 그러나 도율은 정신을 추스린 듯 피를 퉤 뱉으며 가까워지고 있었다.
–쿠오오!
라크자르가 다시 한번 굉음을 내뱉었다. 그러나 도율은 주춤하는 일 없이 라크자르의 몸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이 자식……!’
도율의 귓가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건 개의치 않는다는 듯 도율이 팔을 뻗었다.
발과 다리, 그리고 허리를 타고 오르는 힘이 어깨로 전달되었다. 이어서 주먹까지 전달되어, 위력이 극대화되었다.
“붕권(崩拳).”
타격음은 요란하지 않고 조용하게 울려 퍼졌다.
움직임이 멎은 것 같은 라크자르의 몸 위로 균열이 번지기 시작했다.
쩌적!
균열은 점점 더 많아지며 라크자르의 몸을 작은 조각으로 갈라 놓았다. 단지 비늘과 피부 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콰직!
라크자르의 몸이 굉음을 내며 무너져 내렸다. 하얀 조각들이 되어 쏟아졌다.
“후우…….”
도율이 손을 털며 이마를 주물렀다.
라크자르가 내지른 포효를 무시한 건 적지 않은 타격이 있었다. 귀가 먹먹하고 중심이 잘 잡히지 않았다.
어떻게든 집중력을 잃지 않고 마지막 타격을 가한 덕에 쓰러뜨릴 수 있었다.
“앞으로… 셋.”
당장의 몸 상태로는 조금 아슬아슬하다고 해야 하나.
앞으로도 이와 비슷한 수준의 싸움이 세 번 연달아 이어진다면, 그다지 낙관적인 결과를 전망하기는 어려웠다.
그때.
스르륵하고 모래가 파헤쳐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도율이 산산조각 내 놓은 라크자르의 몸뚱이가 내는 소리였다.
“설마…….”
조각 더미 사이에서 누군가 몸을 일으켰다.
새하얀 머리카락과 몸. 아무것도 입지 않은 청년의 손 틈 사이로 하얀 가루가 흘러내렸다.
청년은 말이 없다가, 가루가 완전히 흘러내린 손을 꽉 쥐었다. 주먹과 팔뚝, 그리고 어깨로 이어지는 힘. 거기에 붙은 가슴과 등의 근육.
온몸에서 힘이 넘쳐흘렀다.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는, 완벽에 가까운 신체.
라크자르가 입을 열었다.
“역시 너라면 최고의 조각을 만들어 줄 거라고 생각했다.”
“거짓말이지?”
라크자르는 새로운 몸으로 다시 태어나 있었다.
아무런 상처가 없는 온전한 상태가 된 것과 더불어, 도율의 전력을 담은 공격으로 다듬어 만들어 낸 신체.
“최고의 걸작이다.”
라크자르는 손등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걸작이라는 말은 거짓이 아닌지, 새로이 갖게 된 신체를 감탄하며 관찰하고 있었다.
틈을 노린다면 지금이었다.
탁!
그러나 빈틈을 노린 도율의 기습을, 라크자르는 당연한 것처럼 막아 냈다.
“조금 기다려 줘.”
여유롭게 막아 낸 주먹을 붙잡고, 라크자르가 부탁했다.
“아직은 이 몸을 감상하고 싶은 기분이니까.”
그렇게 말하며 라크자르가 도율을 벽에 처박았다.
“보면 볼수록 최고야. 힘, 속도, 밸런스, 유연성, 탄력. 그 어느 것도 뒤지지 않는 상등품. 이 몸과 함께라면 그 누구에게도 질 수가 없겠어.”
라크자르가 도율을 향해 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너에겐 아무리 감사를 해도 모자라겠네.”
모처럼 온 힘을 다해 쓰러뜨렸더니, 갑자기 더 강해진 채로 부활하다니.
‘돌아 버리겠군.’
도율이 눈을 감았다.
온몸이 쑤셨다. 관절에서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기혈이 심장의 맥동에 따라 요동치는 것처럼 울컥거렸다.
이렇게 아픈 건 오랜만이었다.
신기하게도 그게 불편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정말 오랜만에 되찾은 익숙한 감각이었다. 이전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통 속에서 지내 왔으니까.
애초에 도율이 이 힘을 얻게 된 것도, 모두 그런 상황에서였다.
그쪽에 있을 때는 항상 아프고 배고프고 잠도 제대로 못 잤다. 현대에 돌아온 덕에 지나치게 안락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니 몸 상태가 이렇다고 해서, 제대로 싸울 수 없는 건 아니었다.
‘미안하다.’
도율이 마음속으로 사과를 전했다. 주대현의 작전을 깰 생각이었다.
‘여력은… 없다.’
한 명의 사도를 상대할 때, 다음 사도를 상대할 걸 대비해 힘을 남겨 두라던 주대현의 말이 있었지만.
그 작전은 모두 다른 각성자들과 함께 움직이는 걸 전제로 세워진 것이었다.
지금처럼 도율이 홀로 남아 사도를 상대하는 것부터가 상정 외의 상황인 데다가, 그렇게 힘을 남겨 두고 이길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조룡주(彫龍主) 라크자르.
완전한 육체를 손에 넣었다는 이놈을, 지금 여기서 쓰러뜨려 두지 않으면 두 번 다시 기회는 없다.
도율은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지금 이 순간, 이 장소보다 자유롭게 싸울 수 있는 환경은 두 번 다시 마련되지 않는다는 것을.
쿠구궁!
“하?”
갑작스러운 소음에 라크자르가 돌아봤다. 도율의 몸으로부터 엄청난 힘의 파동이 퍼지고 있었다.
라크자르가 당황하며 웃었다.
“아직도 그런 힘이…….”
자신은 새로운 몸을 조각함으로써 지금까지 입었던 상처를 모두 회복했지만, 도율은 달랐다.
받아쳤다곤 해도 라크자르가 가한 공격의 위력들은 몸에 누적되었을 것이며, 정통으로 맞은 공격도 몇 개 있었다.
“튼튼하다고 해도 정도가 있지.”
오히려 싸우기 전보다 더 농밀한 내공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런가.’
간혹 있었다. 싸움이 길어지고 상처를 입을수록 더 강해지는 놈들이.
그러나 그게 항상 좋은 건 아니었다. 대부분은 몸을 돌보는 법을 경외시하다가 싸움에서 이기고 쓰러뜨린 상대와 함께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도 많았다.
약육강식의 세계. 마계에서 라크자르는 그런 놈들을 숱하게 봐 왔다.
“죽을 텐데?”
아무리 도율이 죽지 않는 몸을 가지고 있다 해도, 여기서는 이야기가 달랐다.
이곳, 마계의 땅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면 장서주가 영혼을 거두어 갈 수 있다. 도율과 주대현이 노리는 것 또한 그 장서주의 능력이지만.
역으로 이곳에서는 불사의 몸이 아니게 된다. 침공은 리스크를 떠안고 감행하는 양날의 검이었다.
싸우다 죽는다?
라크자르의 말에 도율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난 안 죽어.”
그런 일은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