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242
242화 드디어 만났군
“아아악!”
클레어의 검격에 아스텔라가 찢어질 듯한 비명을 내질렀다.
고통에 찬 비명은 연기가 아니었다. 자존심이 강한 사도들이 그런 꼴사나운 모습을 보일 리는 없었다.
‘먹혔다……!’
세케르가 어떠한 공격을 퍼부어도 여유롭게 받아넘기던 아스텔라가 처음으로 위기를 느꼈다.
아스텔라가 뒤늦게 거리를 벌리며 몸을 추스르려 했지만.
‘이깟… 공격에……!’
찢어진 몸이 되돌아오지 않았다.
불에 태워져도, 검에 베여도 연기로 흩어진 후에 다시금 빚어낼 수 있었지만. 클레어에게 당한 상처는 마치 고정되어 있는 것처럼 바꿀 수 없었다.
아스텔라가 고통스러운 눈빛으로 상처를 살폈다.
‘상처에 이건……!’
클레어의 검격에 휘감겨 있던 금색 마력이 아스텔라의 육신을 붙들고 있었다.
일시적으로 존재의 껍데기, 육신에 입은 상처가 근원적인 부분인 마나 코어까지 파고들었다.
“인간 따위가……!”
확실히 인간치고는 대단한 마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단순히 마력량만으로 사도에게 상처를 입히는 건 불가능했다.
황금안. 진실을 꿰뚫어 보는 눈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인간…….’
그렇게 곱씹던 아스텔라가 문득 무언가를 깨달은 것처럼 클레어를 노려보았다.
금발의 검사. 가지고 있는 검 또한 상등품이긴 하지만, 결코 사도에게 상처를 입힐 만한 격을 지닌 물건은 아니었다.
클레어는 아스텔라의 눈빛을 마주 받아치고 있었다.
‘언제부터……?’
아스텔라에게 공격을 가하기 위해 땅에서 발을 구르거나, 그녀가 쏟아 내는 공격을 딛고 공중에서 다시 한번 도약하는 기예를 벌이곤 했다.
그러나 지금 아스텔라는 아무런 공격도 하지 않고 있었다. 무작위로 포화하는 광역 공격엔 유의미한 효과가 없다는 걸 파악한 지 오래였다.
그런데도 공중에 뜬 클레어는 허공을 딛고 서 있는 것처럼 안정적인 자세로 서 있었다.
‘그 짧은 시간 사이에 배웠다……?’
마력을 통한 비행은 고난도의 기술이었다. 짧은 순간 흉내 내는 것 이상으로 구사하는 건 가능해도, 이처럼 안정적으로 펼치는 건 어려웠다.
아스텔라의 머릿속에서 퍼즐 조각들이 맞물렸다.
“하하… 하하핫!”
상처를 입은 아스텔라가 손바닥으로 눈가를 가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아스텔라가 손 틈 사이로 클레어를 노려보았다.
‘배운 게 아니야.’
아스텔라가 확신에 찬 미소를 지었다.
‘이 여자는…….’
클레어가 냉랭한 목소리로 물었다.
“뭐가 웃기죠?”
클레어의 한쪽 눈은 여전히 황금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전보다 더 강한 광채를 머금은 눈동자는, 아스텔라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특히나 세케르가 펼치고 있는 백야 때문에 아스텔라의 모습이 더욱 선명하게 잘 보였다. 그러니 이야기로 주의를 돌리려 해도 소용은 없었다.
그럼에도 아스텔라는 기꺼이 대화에 응했다.
“넌 왜 이 싸움에 참가했지?”
“무슨 뜻이죠?”
“네 의지인 거, 확실해?”
아스텔라의 말에 클레어가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말을 하는가 했더니, 쓸데없는 소리만 하는군요.”
“대답 좀 해 주지 그래? 이쪽은 곧 숨넘어가게 생겼다고.”
클레어가 마지못해 답했다.
“당연하죠.”
클레어가 이 마계 원정에 참가하게 된 건 그녀가 속한 팀이 발탁되었기 때문이지만, 그게 그녀의 의지를 거스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팀에서 가장 망설임 없이 참가 의지를 표명했던 것이 클레어였다.
이전, 수월주 엘리아나와의 만남 이후로 클레어는 계속해서 언젠가 남은 사도들을 모두 무찔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당신들을 모두 쓰러뜨리고, 평화를 가져올 겁니다.”
그런 클레어의 말에 아스텔라는 다시 한번 웃음을 터뜨리는 듯 배를 잡고 몸을 웅크렸다.
“큭큭, 큭큭큭……. 평화, 평화라.”
클레어의 말을 곱씹던 아스텔라가 손바닥에 키스를 날렸다.
“응원할게.”
그 말을 남기고 아스텔라는 재가 되어 흩어졌다.
* * *
“…….”
석연치 않은 구석이 남아 있었지만, 클레어는 다시 땅 위로 내려왔다.
지상엔 샤디아와 세케르가 기다리고 있었다. 세케르는 샤디아의 부축을 받고 있었다.
“성각주는? 쓰러뜨렸나?”
“네. 재가 되어 사라지더군요.”
“그랬군.”
세케르와 클레어. 두 사람 모두 황금안을 가지고 있었다.
아스텔라가 재가 되어 흩어진 건 단지 눈속임이 아니었다. 확실하게 존재가 소멸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교차 검증까지 마친 후에야 세케르는 펼쳐 두었던 마력을 회수했다.
그로 인해 하얗게 물들었던 하늘이 다시 원래대로 어두컴컴한 색으로 돌아왔다.
“정말 사도를 쓰러뜨리다니.”
“세케르 씨가 활약했기 때문이겠죠.”
클레어의 말에 세케르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가 한 건 시간을 끈 정도였다. 결과적으로 사도를 쓰러뜨리는 데에 공헌한 건… 온전히 네 힘이라고 봐도 무방하겠지.”
이런저런 도움이 있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클레어는 혼자 힘으로 아스텔라를 쓰러뜨렸다.
그것이 시사하는 바는 컸다.
“큰 전력이군.”
앞으로 남은 사도는 셋 이하.
도율에 힘에 의지하지 않으면 쓰러뜨릴 수 없으리라 여겨졌던 존재를 쓰러뜨릴 수 있는 새로운 아군이 나타났다. 앞으로의 작전이 한층 여유롭게 진행될 수 있었다.
클레어는 잘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내가…….’
그래도 이 전쟁을 보다 빨리 끝낼 수 있다면. 도율을 덜 위험하게 해 줄 수 있다면.
일단은 그걸로 좋았다.
“…….”
세케르를 부축하고 있는 샤디아가 클레어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런 눈으로 보느냐고 물으려던 클레어가 뒤늦게 아까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허둥댔다.
“아, 아. 그렇지. 이거, 돌려드릴까요?”
클레어의 오른쪽 눈에 담긴 황금색 광채를 말하는 것이었다.
황금안. 싸움이 시작된 직후, 샤디아와의 의사 소통으로는 답답한 나머지 반쯤 빼앗듯이 가져오고 말았지만.
‘…어떻게 했더라?’
그때는 상황이 워낙 급해서 따지고 들 겨를이 없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 방법이 요원했다.
샤디아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어떻게 돌려줄 건데?”
“어, 그건…….”
클레어가 세케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도움을 바라는 눈길이었다.
세케르에게도 왼쪽에 황금빛 광채가 서려 있었다. 분명히 아스텔라의 성채(星彩)에 당해 눈이 멀었을 텐데도.
그런 걸 보면 세케르도 샤디아에게 황금안을 이식받은 걸 테니, 방법을 물어보려 했지만.
세케르는 클레어의 바람과 달리 고개를 저었다.
“우린 피로 이어진 남매이니까 가능했던 거다만. 네 경우엔 어떻게 된 건지 나도 설명하기 어렵군.”
“…그런가요.”
“어쩌면 피가 이어진 먼 친척일지도 모르지.”
세케르의 말에 샤디아와 클레어가 정색했다.
“나랑 얘가?”
“그럴 리가요.”
한치의 지체도 없는 칼 같은 부정이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클레어가 자그마한 단검을 꺼냈다. 싸울 때 사용하는 건 아니지만, 이런 서바이벌 나이프는 던전을 공략하는 각성자들에게 간간이 도움이 될 때가 많아 가지고 다녔다.
클레어가 나이프를 쥐고 얼굴로 향하는 걸 본 샤디아가 경악하며 손목을 붙잡았다.
“뭐 하는 거야?!”
“뭐냐니……. 꺼내 드릴 생각이었는데요.”
“미친 거니?”
“하지만 이건 원래 당신 거니까.”
농담을 하는 어조는 아니었다.
그런 클레어의 태도에 샤디아가 질색하며 고개를 저었다.
“됐어. 너 줄게.”
“하지만…….”
황금안은 인류 최강의 각성자 중 한 명인 태양의 아들, 세케르를 그 자리까지 만드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능력 중 하나였다.
그런 능력을 동생인 샤디아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놀라긴 했지만. 한 사람이 갖고 있든, 두 사람이 갖고 있든 귀중하고 강력한 능력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러니 거저로 받을 순 없었다. 특히나 샤디아에게는.
클레어가 무슨 생각을 품고 있는지, 샤디아도 어렴풋이 눈치챌 수 있었다.
“나한테는 빚 하나도 못 지겠다 이거구나?”
“네.”
“칼 같긴.”
샤디아가 질렸다는 듯 한숨을 내뱉었다.
애초에 빚을 진 건 자신이었다. 세케르를 돕기 위해 대열을 빠져나가는 걸, 클레어는 따라온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 고지식한 여자는 그런 건 빚이 아니라 할 터였다.
“알았어. 그럼 트레이드인 걸로 하자.”
“트레이드?”
“그래. 조만간 거하게 뜯어 줄 테니까 긴장하고 있으라고.”
샤디아가 히죽거리며 웃었다.
클레어로선 아주 살짝, 후회가 들었다.
* * *
“자, 그럼 슬슬 돌아가자고.”
“그렇네요.”
세케르도 어느 정도 회복했으니 서둘러 다시 무리에 합류할 필요가 있었다.
멋대로 빠져나간 건 분명히 엄청나게 혼나겠지만. 그래도 좋은 결과와 좋은 소식을 들고 왔으니, 일단은 용서해 주지 않을까.
샤디아와 클레어는 가능한 낙관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저건……?”
그때 저 멀리, 누군가 하얀 호랑이를 타고 순식간에 다가왔다.
“도율 씨.”
도율이었다.
도율이 흰돌이 위에서 뛰어내렸다. 그 뒤를 따라 백우진 역시 착지했다.
“클레어 씨? 왜 여기에?”
“아, 그건…….”
홀로 남아 아스텔라와 전투를 하고 있던 세케르가 위험에 처했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돕기 위해 무리를 몰래 이탈해 전투에 가세했었다.
…는 것이 상황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었지만.
‘차마 입이…….’
평소에 도율에게 무모한 짓 좀 하지 말라고 입이 닳도록 말하고 다녔는데, 정작 자신이 그런 짓을 벌였다는 사실을 도저히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
도율이 입을 꾹 닫고 시선을 회피하는 클레어를 들여다보았다.
샤디아가 큰맘 먹고 클레어를 구했다.
“어머, 자기♥ 여긴 어떻게 알고 찾아왔어? 역시 나에 대한 사랑?”
“헛소리를…….”
샤디아에게 주의가 끌린 도율이 고개를 젓고 대답했다.
“사도의 기운을 쫓아서 급하게 왔는데. 상황은 이미 종료된 건가?”
“그래.”
샤디아에게 부축을 받고 있던 세케르가 대답했다.
“성각주 아스텔라. 그녀의 완전 소멸을 확인했다.”
“그렇군.”
반대로 세케르가 도율에게 물었다.
“그쪽은 어떻지? 시간이 걸린 걸 보면 무슨 일이 있었을 테지.”
“아, 그래.”
도율도 상황을 요약했다.
“수월주는 자폭했고, 조룡주는 내가 쓰러뜨렸다.”
“희소식이군. 그렇다면 남은 건 둘인가.”
“그렇게 되겠군.”
남은 사도는 둘.
주대현에게 들었던 바에 따르면, 장서주와 누란주였다.
앞으로 그 둘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이런 작전에 대한 건 역시 주대현에게 묻는 게 빨랐다.
그러나 주위에 주대현은 보이지 않았다. 단지 세 사람, 클레어와 샤디아와 세케르만이 있을 뿐이었다.
자신을 찾기 위해 온 백우진과 흰돌이는 그렇다 치고. 이 셋은 왜 따로 있는 거지?
도율이 다시금 물었다.
“그래서 왜 여기 따로…….”
“저!”
클레어가 말을 끊었다.
“저 호랑이는 뭐죠? 몬스터…는 아닌 건가요?”
클레어가 흰돌이를 가리키며 물었다. 평범한 호랑이보다 훨씬 큰 크기를 가진 몸체와 빛이 나는 듯한 흰색 털. 누가 봐도 단순한 짐승은 아니었다.
몬스터가 아니냐는 물음도 타당한 것이었기에 대답을 해 줘야 했지만.
“…백우진 씨네 집에서 키우는 호랑입니다.”
도율은 저도 모르게 그렇게 대답하고 말았다.
백우진이 의아하게 도율을 쳐다봤다. 물론 백우진이 지금 다른 요괴들을 거둔 건 사실이지만, 이 호랑이는 도율이 키우는 애완동물이었을 텐데.
“그런가요?”
클레어가 백우진에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백우진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자 클레어가 괜스레 못마땅하게 중얼거렸다.
“되게 큰 거 키우네.”
이거 댁네 집에 있는 앱니다.
백우진이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이마를 짚었다.
“아무튼, 서둘러 합류하도록 하죠.”
클레어가 황급히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그렇게 클레어 일행은 주대현을 비롯한 각성자 무리에 합류하기 위해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부상자인 세케르를 흰돌이의 등 위에 태우고 느리지 않은 속도로 이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다…….’
대규모 무리의 이동은 아무래도 속도가 처질 수밖에 없는데. 슬슬 따라잡을 때가 되었는데도 무리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황량한 대지. 몬스터조차 나타나지 않는 땅 위를 걷다 보니 이 세계에 남겨진 건 그들뿐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걷던 와중.
“…저건!”
클레어가 익숙한 뒷모습을 발견했다.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자주 보았던 모습이었다.
누군가 등을 돌린 채 바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의 등에는 낯익은 생김새의 창이 걸려 있었다.
“팀장님!”
청진명. 그의 뒷모습이 분명했다.
목소리에 반응한 듯 청진명이 움찔했다. 청진명은 조심스레 고개를 돌려 가까이 다가오는 이들의 모습을 확인했다.
“드디어 만났군.”
청진명이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