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243
243화 마찬가지
“청진명 씨?”
도율이 의아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청진명은 홀로 바위 위에 걸터앉아 있을 뿐, 그 주위로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대규모 인원을 숨길 만한 장소는 어디에도 없었는데도.
“혼자인 겁니까? 다른 사람들은…….”
몰래 빠져나간 클레어를 찾기 위해 일행에서 떨어지기라도 한 걸까.
클레어는 청진명의 팀이었으니,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였다.
그렇다고 해도 마계의 땅에서 홀로 있는 건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이었다. 이렇게 우연히 마주쳤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수색에 애를 먹을 뻔했다.
청진명이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혼자다.”
평소와 달리 밝은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야 마계에 온 후로 연달아 치른 전투로 인해 피로하긴 하겠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청진명답지 않았다.
멋대로 빠져나가서 화를 내고 있는 걸까. 잘못은 잘못이었지만, 이런 때에 주로 화를 내는 건 송민아였다.
청진명이라면 무사히 돌아왔다면 그걸로 됐다고 할 사람이었다.
“멋대로 이탈해서 죄송합니다. 사정은…….”
클레어가 걸음을 내디뎌 청진명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카가가각!
청진명의 창날이 클레어의 발치 바로 앞을 그었다. 창날이 지나간 자리를 따라 날카롭게 땅이 파였다.
“가까이 다가오지 마라.”
“팀장님……?”
청진명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아무리 화가 났다고 한들, 팀원을 향해 무기를 휘두를 사람은 아니었다.
분명히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한 사람 빼곤 다 가 줘라. 누가 남으란 건진……. 말하지 않아도 알지?”
청진명의 말에 도율이 다른 이들을 뒤로 물렸다.
다가갈 수 있는 거리는 청진명이 친절하게 표시해 두었다.
청진명의 창이 그어 놓은 선의 바로 앞에 선 도율이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다른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하면서 도율만 따로 불러낸 이유. 그걸 말하기 전에, 클레어와 도율이 없는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청진명이 짧게 서두를 던졌다.
“누란주의 습격이었다.”
불과 잠시 전의 일이었다.
* * *
“한숨 돌려도 된다네.”
성각주와의 전투를 세케르에게 떠넘기고 도망쳐 나온 각성자 무리는, 주위에 다른 몬스터의 흔적이 없는 걸 확인하고 그 자리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주대현은 쉴틈도 없이 다른 작전을 검토하고 도율을 찾았다. 직접 찾아 나선 건 백우진이었지만.
‘아직까지 연락이 없군.’
도율도 세케르도 없는 상황에서, 당장 어떤 선택을 할지. 그 방침을 정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다른 각성자들은 지친 몸을 회복시키고 있었다.
“뭐야? 갑자기 왜 그래? 어디 아파?”
누군가가 근처에 있던 동료의 안색을 살폈다. 동료는 오한에 느끼는 것처럼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걱정에 얼굴을 들여다보려던 남자의 머리가, 갑작스레 늘어난 무언가에 의해 한입에 집어삼켜졌다.
후두둑.
핏덩이가 땅을 적시는 소리와 함께, 그곳은 다시금 전장이 되었다.
“이게 무슨……!”
주위에 다른 몬스터가 없다는 건 몇 번이나 확인했다.
사도 또한 마찬가지였다.
사도 정도의 거대한 마력을 가진 존재가 출현하는 건, 마력의 해일을 몰고 다니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이 자리에 있는 누구 하나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인간이……!’
주위에 있는 동료의 머리를 집어삼킨 건, 같은 인간이었다.
이미 인간의 형상이라고 할 수 없이 변질된 신체였다. 머리가 갈라져 꽃잎처럼 펼쳐져 있었고, 팔과 다리는 관절이 아니라 실에 연결된 마네킹처럼 부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인간이 아니다……!’
무리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이형의 존재. 그것은 몰래 잠입해 있던 것이 아니라, 모종의 이유로 변한 것이었다.
심지어 그 대상은 하나가 아니었다.
“크에엑…….”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 성대에서 기이한 소리를 내며 이형의 존재로 변하는 이들이 더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새끼가 카를을!”
모두가 숙련된 각성자답게, 이전에 동료였던 자들에 대한 미련 없이 냉정하게 적을 상대했다.
청진명도 순식간에 창을 쥐고 팀원들을 불러모았다.
“송민아! 고철민! 정하준! 클레어! 다 있냐?!”
“…막내가 안 보여!”
“뭐?!”
팀원 네 명이 뭉쳤지만, 막내인 클레어가 보이지 않았다.
“설마 이미…….”
“그게 아니라, 애초에 이 안에 없었어!”
“뭐?!”
그건 또 무슨 소린가 했지만, 듣기로는 무리에서 빠져나가 어딘가로 향했다는 듯했다.
“하아. 일단 괴물이 되진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돌아오기만 해 봐라……!”
송민아가 그렇게 이를 가는 사이, 근처에 있던 누군가가 갑자기 팔을 뻗었다. 쭉 뻗은 오른팔이 갈라지며 그 안에서 가시와 같은 것이 뻗어 나갔다.
그런 것에 당할 송민아가 아니었다. 가시를 피한 송민아가 손아귀로 팔을 잡고 비틀어 버리려 했지만.
“만지지 마!”
청진명이 외침과 함께 송민아를 밀어내고 대신해서 창날로 적을 꿰뚫었다.
“뭐?! 왜?”
“…감.”
청진명이 표정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예감이 안 좋다. 누군가는 헌터로서 축복받은 재능이라 일컬었지만, 기분이 좋진 않았다.
부디 맞지 않았으면 하는 일들만 들어맞곤 했으니까.
그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는 건,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몬스터로 변한 인간을 해치우던 누군가가,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두르다가 무기를 손에서 떨어뜨렸다.
“케에엑…….”
그 역시 이성을 잃고 이형의 괴물으로 변했다.
‘감염…인가!’
이렇게 되면 닥치는 대로 말살하는 것도 방법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무시하거나 제압할 정도로 만만하지도 않았다.
일단은 도주하는 수밖에 없다. 모두가 그렇게 판단을 내렸다.
“서둘러라!”
그렇게 감염된 인간들을 남겨 둔 채 거리를 벌리고 싶었지만, 불행히도 발이 빨라 쉽사리 떨쳐 낼 수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 감염자들에게 당한 각성자 역시 단순히 목숨을 잃는 게 아니라, 또 다른 감염자가 되었다.
‘끝이 없어……!’
피해자들의 수는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감염자들에 의해 단숨에 몰살당할 게 뻔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쪽에서 선뜻 손을 댈 수도 없었다. 그것 또한 감염자를 늘리는 행위였으니까.
감염자들을 피해 도망치던 청진명이 발을 멈췄다.
“야, 뭐 해?!”
송민아가 다급하게 물었지만, 청진명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소리쳤다.
“정하준!”
“예……?”
“들고 뛰어!”
청진명이 가리키는 건 송민아였다. 정하준과 송민아의 눈이 마주쳤다.
“이런 미친 새끼가……!”
송민아는 청진명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단숨에 알아챘다.
이런 곳에 청진명을 두고 갈 수는 없었다. 정하준 역시 같은 생각이었지만, 팀장의 명령에 따라야만 하는 것인지 확실하게 판가름이 서지 않았다.
그러자 청진명이 덧붙였다.
“사나이 대 사나이로, 부탁이다.”
정하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하준이 송민아를 붙잡으려 해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송민아는 이미 손을 펼친 채 자세를 낮췄다.
이 정도 거리에서 송민아를 붙들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지잉!
갑작스레 나타난 마력이 송민아의 양팔을 뒤로 묶었다.
마법의 주인은 고철민이었다.
“너……!”
“사나이의 부탁이라잖슴까.”
그사이 정하준이 송민아를 어깨 위로 들어 올렸다.
“이거 놔, 이 새끼들아!”
송민아의 발버둥에도 불구하고, 정하준과 고철민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그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청진명이 창을 들고 정면을 향했다.
정면에서 붉은 피륙을 가감없이 드러낸 고깃덩이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진부한 대사지만.”
청진명이 마력을 일으켰다. 그의 주위로 물보라가 몰아쳤다.
“이 뒤로는 못 지나간다.”
* * *
“감염자는 대부분 처리했다.”
죽인 사람마저 감염시키는 전염력 때문에 까다로웠을 뿐, 감염자를 하나하나 상대하는 건 청진명 정도 되는 각성자에겐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동료였던, 혹은 동족이었던 이들을 모두 도륙 내고 난 후.
청진명의 창은 마치 피에 물들어 붉게 변한 것처럼 보이고 있었다. 늘 푸르게, 청량한 바다의 빛깔을 품었던 것과는 상반된 색채를 띄고 있었다.
“그건 팀장님 잘못이…!”
필요한 일이었다지만, 그렇게 많은 인간들을 베어 냈으니 기분이 가라앉아 있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도율이 청진명에게 물었다.
“대부분, 이라고 한다면?”
도율의 물음에 청진명이 비스듬히 서서 가리고 있던 반신을 드러냈다.
창을 쥐고 있는 오른손. 그와 더불어 오른쪽 반신이 붉은 무언가로 뒤덮여 있었다. 희미한 광택을 내는 철과 같은 물질이었다.
‘저건…….’
도율은 한눈에 그게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그것은 딱딱하게 뭉친 피였다. 쌓이고 쌓이 피가 결정처럼 굳어 창을 뒤덮음과 동시에 피부를 감싸는 갑옷처럼 들러붙어 있었다.
청진명이 고개를 저었다.
“아쉽게도 이쪽이 내 말을 전혀 듣질 않아서 말이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댁이 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더라고.”
“그랬군요.”
평범한 각성자가 마무리를 해 봤자, 또다른 감염자를 만들어 낼 뿐이었다.
사도를 멸하고 마력 그 자체를 파괴하는 도율의 내공이 아니라면 감염자의 연쇄는 영원히 끊기지 않을 테니. 그에게 마무리를 부탁하는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청진명이 가만히 있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쉽지 않을 거야.”
감염자들을 찌를 때마다, 청진명의 창과 우반신을 뒤덮은 피의 갑주는 점점 더 진하고 강해졌다.
이 역시 도율 정도 되는 강자가 아니라면 쉽사리 상대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마음만 같아선 얌전히 당해 주고 싶었지만, 오른쪽이 그렇게 놔두질 않았다.
“이해했습니다.”
결국 누란주의 습격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는, 그의 감염을 모두 한 몸에 흡수한 청진명을 마무리하는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돌아갈 방법은……!”
클레어가 방법을 찾으려 했지만, 청진명에게 주어진 시간도 많지 않았다. 청진명이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청진명이 지금까지 이성을 붙잡고 있는 것도 기적에 가까웠다.
오른쪽 몸에서부터 전혀 다른 인격이 청진명의 의식을 먹어 치우기 위해 솟구치고 있었다.
“가라. 말려들 테니까.”
“하지만…….”
“핸섬한 팀장으로 기억되고 싶다.”
지금은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본격적인 싸움에 들어가게 되면 어떻게 될지 모르고.
“클레어 씨.”
도율이 클레어를 불러내 설득했다. 그 말을 들은 클레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 겁니까?”
백우진의 물음이었다. 도율은 고개를 끄덕이며 클레어와 함께 다른 각성자들과 합류해 달란 말을 전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흰돌이와 함께 다른 이들이 모두 재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멀어지는 일행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도율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전에 약속했었죠.”
“아?”
이미 의식이 희미한지, 청진명의 대답은 뚜렷하지가 않았다.
“한번 싸워 보자고.”
“아아…….”
그 말에 청진명의 탁한 눈빛에 총기가 조금이나마 돌아왔다. 그런 그가 헛웃음을 흘렸다.
“그런 일도 있었지.”
청진명이 도율의 실력을 알아채고 대련을 요청했지만, 도율은 늘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곤 했다.
그러나 지금 두 사람은 이렇게 피할 수 없는 싸움 앞에 놓였다.
청진명이 쓰게 웃으며 토로했다.
“하지만… 이런 형태를 원한 건 아니었어.”
청진명에게 있어 대련은 기분 좋고 재밌고 신나는 것이었다. 분명히 상대방도 즐거우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것.
하지만 이건 전혀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조금 미안했다.
“마찬가지…입니다.”
도율도 쓰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