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244
244화 실격입니다
“내 마지막 싸움이다.”
분위기를 바꿔, 청진명이 바스러질 듯 힘껏 미소 지었다.
“즐기게 해 주겠지?”
침울한 얼굴로 마지못해 싸우는 건 마지막에 어울리지 않았다.
피치 못한 일이 되었을지언정, 가능한 즐기려는 마음이었다.
도율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이쪽은 한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으니까.”
청진명이 창을 들었다.
이미 손으로 쥐고 있다고 할 수도 없이, 팔과 일체화가 되어 있었다.
“그건 양해해라.”
한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싸움.
청진명의 몸은 스스로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한 지경까지 도달해 있었다. 주위에 있는 생명체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기만 할 뿐인 상태.
“그러죠.”
그 영역 안으로 도율이 발을 내디뎠다.
그러자 물리적으로 닿을 리가 없는 거리에서의 창격이 날아들었다.
‘고속 이동?’
발치에 물보라를 일으켜 땅 위를 미끄러지듯 이동하는 것 역시 청진명의 특기였다.
‘아니.’
그러나 청진명은 그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도율의 반사 신경으로 움직임을 놓치는 일은 없으니 분명했다.
청진명은 제자리에서 창을 뻗었다. 그렇게 날아든 건 창날이 아니라 그와 같은 날카로움을 지닌 무언가였다.
먼 거리를 뻗어 오는 날카로운 수압(水壓)이었다.
파도의 창날. 평소 청진명이 쓰는 투명하고 푸른 색이 아니라, 붉고 거무죽죽한 색이었다.
‘물이 아니라… 피인가?’
청진명의 몸을 뒤덮고 있는 것도 피가 굳은 것이었다.
도율이 몸을 틀어 피하며 가볍게 검격을 날렸다.
“여뢰.”
손끝을 따라 그어진 선이 칼날이 되어 청진명의 몸을 덮쳤다.
키긱!
그러나 멀리서 쏘아 낸 참격은 청진명의 몸 위를 덮고 있는 결정들에 긁히는 소리만 냈을 뿐, 아무런 충격도 주지 못했다.
“아무래도 멀리서 하는 공격은 피차 의미가 없나 보네.”
“그렇군요.”
“뭐, 이건 원래 내 능력은 아니긴 하지만……. 치사하단 말은 하기 없기다.”
멀리서 하는 공격이 먹히지 않는 경험은 이전에도 겪어 보았다. 조룡주 라크자르와의 싸움에서.
사도 중에서도 특히나 대인전이 뛰어났던 라크자르의 내구력과 비교 대상이 될 정도라면.
‘상당히 튼튼하군.’
도율이 거리를 좁혔다.
청진명 역시 다른 생각은 아니었는지, 미끄러지듯 도율에게 다가왔다. 피 특유의 비린내가 풍겼다.
도율과 청진명이 창과 주먹을 나눴다.
창날은 주먹보다 날카로웠다. 그러나 도율에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공으로 단련된 도율의 팔과 다리 역시 강철 못지않게 단단했다.
도율이 가까이 붙어서 펼치는 박투술은 긴 창을 쥐고는 상대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청진명에겐 순간적으로 거리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의 발치에 흐르는 핏물이 부드럽게 유영하며 거리를 벌렸다.
팔과 다리는 닿지 않지만 창은 닿는 거리. 그러나 도율이 보법으로 따라붙었다.
“끈덕지구만!”
귀찮다는 말투와 달리 청진명의 얼굴은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곧 의식이 끊어질 것이라는 사실도 망각한 것처럼 가슴이 뛰었다. 전신에 피가 도는 감각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심장에서부터 손끝까지. 혈관 하나하나까지도.
‘…그렇군.’
피부 위를 덮고 있는 붉은 갑주와 같이, 이 감각은 청진명 본인의 능력이 아니었다.
원래도 물소리나 파도의 흐름 따윈 다룰 수 있었지만, 몸속에 있는 혈류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민감하진 않았다. 이건 피를 머금으며 생긴 또 다른 능력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청진명의 의식을 좀먹고 있는 능력이기도 했다.
‘이걸 쓰면 끝이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하지만 어차피 끝이기도 하지.’
미련을 가진다고 해서 간직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청진명이 크게 거리를 벌렸다.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모두 해 볼 생각이었다.
청진명의 주위로 피의 물보라가 몰아쳤다. 붉은 포말들이 공기를 쪼개듯이 소리를 내고 있었다.
“간다.”
청진명의 몸이 쏘아졌다. 창날을 필두로 한 찌르기였다.
창의 끝에서부터 피의 나선이 송곳처럼 휘감겨 있었다. 청진명의 몸 역시 그 나선의 일부가 되어 더욱 빠르게 가속했다.
속도와 파괴력. 모두 손색이 없었다.
촤아악!
청진명이 도율의 몸을 넘어 그 뒤로 미끄러졌다. 창을 꿰뚫던 자세 그대로 굳어 있었다.
찌르기를 받아 낸 도율의 팔과 어깨 위로 붉은 상처가 새겨졌다.
흘려보내긴 했지만 상처 없이 무마할 수 있는 위력이 아니었다. 도율이 아니었다면 단순한 자상이 아니라 힘줄과 근육이 모두 뒤틀렸을 게 분명했다.
도율이 뒤를 돌아보며 확인했다.
“청진명 씨.”
“…….”
청진명은 대답이 없었다.
그러나 오래 기다리지 않아, 찌른 자세 그대로 굳어 있던 청진명이 몸을 다시 바로 세웠다.
고개를 몇 번 꺾고는 창을 쥐지 않은 왼손으로 이마를 쓸어 올렸다.
“그놈은.”
청진명의 목소리였다.
그러나 뒤돌아본 얼굴은 전혀 다른 사람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제 없다.”
붉은 안광이 날카롭게 빛났다.
* * *
“얘! 민아야! 얼른 일어나!”
누군가 어깨를 흔들어 깨우자, 송민아가 침을 닦으며 책상에 엎어져 있던 몸을 일으켰다.
다행히 교과서가 침 범벅이 되는 일은 없었다. 애초에 책상 위로 꺼내 놓은 적이 없었으니까.
송민아가 눈을 비비며 물었다.
“왜? 벌써 점심?”
“그게 아니라아.”
정세인이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드렸다.
“오늘 걔가 학교에 왔대!”
“걔가 누군데?”
“걔, 있잖아. 옆 반에 엄청 유명한… 헌터!”
송민아는 여전히 졸린 눈으로 되물었다.
“헌터?”
그러고 보니 있었다, 연예인 같은 놈.
어린 시절에 각성해 훈련을 받으며 실제로 던전에서도 활약하는, 그런 이유로 학교도 곧잘 빼먹는 주제에 유명하고 인기도 많았다. 정작 학교엔 코빼기도 보이지 않으면서.
‘자기가 무슨 아역 배운가.’
괜스레 아니꼬웠다.
반면에 정세인은 눈을 반짝였다. 유행하는 거라면 사족을 못 쓰는 성격다웠다.
“구경하러 가자!”
“사람이 뭐 구경거리냐?”
“평소에 보기 힘든 건 맞잖아. 이 기회에 봐 둬야 해!”
송민아로서는 가만히 잠이나 마저 자는 게 더 이롭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팔을 잡아끄는 친구의 몸부림을 무시할 순 없었다.
송민아가 팔짱에 이끌려 옆반으로 향했다.
‘뭐, 그 잘나신 얼굴이나 한번 구경해 볼까.’
옆 반은 이미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인파가 워낙 몰려서 헌터고 나발이고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송민아는 조금만 발돋움을 하면 교실 안을 볼 수 있었지만.
“…하나도 안 보여.”
정세인은 아니었다.
평범한 키를 가진 탓에 아무리 점프를 해도 남학생들의 벽을 뚫고 교실 안을 엿보긴 힘들었다.
“들어 줘!”
“…하는 수 없지.”
송민아가 몸을 굽히자 정세인이 익숙하다는 듯 어깨에 올라탔다. 송민아가 몸을 일으키자 정세인의 몸이 위로 떠올랐다.
“오오, 높다!”
남들보다 한 뼘 위의 시선에서 교실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만족하셨나이까?”
“웅!”
다시 땅에 착지한 정세인이 재잘거렸다.
“눈도 마주친 것 같아!”
진짜 연예인인가.
송민아가 피식 웃으며 좋았겠네, 하고 대충 대꾸했다. 현직 고등학생 헌터고 나발이고 별로 관심 없었다. 딱히 자세히 구경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렇게 교실로 돌아가려는 순간.
“잠깐, 잠깐.”
누군가 인파를 헤치고 걸어 나왔다.
단순히 지나가는 학생이 아니었다. 목소리의 주인이 움직이는 것과 동시에 인파가 움직였다.
이 인파를 만든 원흉. 청진명이었다.
‘이놈이?’
송민아가 청진명을 위아래로 훑었다. 반팔 하복에 검은 팔 토시를 차고 있었다.
‘꼴값 떠네.’
그다지 좋은 인상을 느끼진 못했다.
그런 청진명이 멈춰 선 건 송민아와 정세인의 앞이었다. 교실에서 어화둥둥 받던 놈이 갑작스레 뛰쳐나온 용건이 다름 아닌 자신들이었다.
송민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용건 있냐?”
청진명은 송민아를 조용히 스캔하더니 옆에 있던 정세인에게 물었다.
“너, 몸무게 몇 킬로?”
“나? 오… 아, 아니. 사십…….”
“대답하지 마!”
송민아가 정세인의 앞을 가로막았다.
“너 뭐야, 이 변태 새끼……!”
“변태는 아니고.”
청진명이 당당하게 요구했다.
“나도 한번 들어 보자.”
“야, 이 변태 새끼야!!”
송민아가 청진명의 종아리를 걷어찼다.
퍼억!
청진명의 다리가 꺾이는 것과 동시에 송민아가 멱살을 잡고 휘둘렀다. 청진명이 하늘을 날아올랐다가 그대로 등부터 복도 위로 떨어졌다.
쾅!
“커억…….”
문제는.
“꺄아아악!”
이곳에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는 것이었다.
* * *
“씨바…….”
교무실을 나서며 송민아가 욕지거리를 중얼거렸다.
거하게 한 소리를 들은 참이었다.
청진명 학생은 고등학생 신분으로 헌터 활동도 겸하는 사회의 귀감이자 우리 학교의 자랑인데, 아주 사소한 오해가 있었다고 해서 그런 청년을 땅에 메다꽂는 게 상식적인 행동이냐 어쩌고저쩌고.
송민아는 익숙한 태도로 연신 고개를 꾸벅이며 잘못했다 대꾸했다.
청진명의 선처가 있었던 덕분에 반성문 깜지로 마무리될 수 있었다.
‘그게 더 빡치네.’
지가 뭔데?
“푸하하핫!”
옆에 있던 누군가 배를 잡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연습 늦은 거야? 깜지 쓰느라고? 아이고, 우리 귀하신 민아 님 손가락이~”
“아가리.”
이곳은 유도 도장.
그곳에서 송민아는 새하얀 도복을 입은 채 몸을 풀고 있었다.
“하긴. 귀하신 각성자 님이라니, 우리랑은 전혀 딴판인 세상에 사는 놈이긴 하다. 그렇지 않냐?”
“뭐…….”
확실히 그 말대로였다.
송민아는 유도부 선수였다. 공부와는 담을 쌓았지만, 운동이라면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체육계와 스포츠의 세계에서 각성자는 배척되는 자들이었다.
‘게임이 되지 않으니까.’
사실 각성자들이 마력을 통해 신체를 강화하면, 배우지 않은 자들도 달인을 능가하는 퍼포먼스를 낼 수가 있었다.
그러나 업계에서 그런 일을 묵인할 리가 없었다. 그 생각에 동조하는 건 모든 일원들이 마찬가지였다.
‘기술과 노력. 그 결정체가 고작 마력 따위에 전부 뒤집혀야 한다니.’
스포츠에서 약물을 철저하게 배척했던 것과 같이, 마력 또한 철저하게 배척되고 있었다.
순수한 인간의 체전. 그것이 현 시대의 스포츠였다.
덕분에 송민아는 각성자와는 담을 쌓은 삶을 살고 있었다.
“뭐, 누구는 새장 경기라고도 하지만.”
몬스터와 목숨을 걸고 싸우는 각성자들에 비하면, 마력을 배제한 순수한 인간들의 겨룸엔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의견이었다.
그 말에 송민아가 찌릿하고 눈빛을 보냈다.
‘웃기고 자빠졌네.’
뭐가 마력이고 각성자냐.
그렇다고 해서 기술을 갈고닦는 체육인들이 모두 광대 취급을 당하는 건 열 받는 일이었다.
모두가 한물간 이 바닥을 사랑해서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었다.
송민아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녀 개인의 생각과 달리, 사회가 움직이는 방향이 어느 쪽인지는 명확했다. 그것만은 거스를 수 없는 사실.
“대회 연습이나 하자.”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온 힘을 다해 준비하는 것. 그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러나 대회 당일.
“송민아 선수.”
“하아, 하아…….”
송민아가 흐트러진 도복을 바로잡지도 못한 채 숨을 몰아쉬며 서 있었다.
“실격입니다.”
그조차도 더는 불가능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