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245
245화 양아치는 아니었네
“경기장에 설치된 마력 감지 장치에서 송민아 선수의 체내에서 발현된 마력을 감지했습니다.”
심판이 멍하니 숨을 몰아쉬며 서 있는 송민아에게 고했다.
송민아가 각성자가 되었다는 뜻이다.
송민아가 경기를 치르며 필사적으로 힘을 짜내는 순간, 그녀의 몸에서 마력이 함께 분출되는 것이 감지됐다.
그 마력량이 어마어마한 건 아니었다. 티 나지 않을 정도로 미미했다.
하지만 현 시대의 스포츠는 순수한 인간의 체전. 마력의 양이 아무리 적다 해도 각성자는 각성자였다.
“유감이지만, 실격입니다.”
그리고 분명, 앞으로도 다시는 출전할 수 없으리라.
송민아가 노란 사각형이 그려진 바닥 위를 내려왔다. 푸르게 칠해진 바닥을 지나 짧은 계단을 내려오니, 그녀는 더 이상 경기장 위에 있는 것이 아니게 됐다.
송민아가 뒤를 돌아보았다. 천장에 달린 조명이 쨍하게 빛나고 있었다.
‘눈부셔.’
송민아가 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 * *
“그거 들었어? 송민아 저 년, 대회 나갔다가 마력 검출로 실격당했다더라.”
“뭐? 진짜? 어쩐 일이래? 평소에 가오 존나 잡고 다니더니, 결국 각성자였던 거야?”
송민아에 대한 소식은 학교에도 퍼져 있었다.
‘기사까지 났으니, 당연한가…….’
옆반 어떤 뺀질이까진 아니어도, 송민아 역시 학교에서 나름대로 유명한 체육인 지망생이었다.
수업 시간엔 내내 퍼질러 자다가 아침이나 저녁 훈련 때에만 총기가 돌고, 점심 때 먹는 양도 어마어마하고. 체육 대회 때에는 남학생도 죄다 때려잡곤 했으니까.
나름대로 촉망받는 편이어서 인터넷에 간간히 기사나 인터뷰가 올라가기도 했었다.
그 모든 것이 하루 아침에 무너진 대가를 치르는 중이었다.
함께 운동하던 친구들이나 코치님들은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모두 무의미한 대화에 불과했고. 드물게 그녀를 아니꼽게 바라보던 이들에게 씹히는 것도 자주 있는 일이었다.
곁에 있던 정세인이 팔을 걷어부쳤다.
“저년들이……!”
“하지 마.”
정세인이 자기 일처럼 씩씩대며 화를 냈지만,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젓는 송민아를 보고도 그럴 수는 없었다.
“…아, 나 화장실.”
정세인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다녀와.”
송민아는 정세인이 왜 급하게 자리를 뜨는지 눈치채고 있었다.
‘또 울러 가는구만.’
정이 많고 눈물이 많아서, 쏟아지는 울음을 주체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송민아의 앞에서 울었다간 처량한 신세만 부각되는 거니까. 정세인은 자리를 피해 몰래 혼자 숨죽여 울곤 했다.
반면 당사자인 송민아는 보다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이제 어쩐다.’
공부라곤 손도 대 본 적이 없었다. 구구단은 외우지만, 이제 와서 고등학교 수학을 따라가기엔 다소 늦은 감이 있었다. 영어는 헬로 아임 파인 땡큐가 할 줄 아는 말의 전부였고.
그렇다고 헌터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마력량 자체는 평범… 아니, 그 이하였으니.’
각성을 하긴 했는데, 헌터로 활동하기엔 터무니없이 약했다.
차라리 어마어마한 각성자로 거듭나 길드 스카우터들이 줄을 서는 정도였다면 억울하지나 않았다.
그렇다고 신세를 한탄하며 처지를 비관하는 건 성격에 안 맞았고.
펜대를 굴리며 고민을 하고 있는 송민아를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여깄구만.”
올려다보니 청진명이 와 있었다.
찾아오게 할 정도로 친분이 있는 사이는 아니었다. 만났던 것도 저번에 교무실에서 반성문을 쓸 때 혼자 무사히 빠져나갔을 때가 마지막이었다.
송민아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용건 있냐?”
“성격 여전하구만.”
“뭐?”
“딱 좋아.”
청진명이 엄지로 등 뒤를 가리켰다.
“나랑 체육관 좀 가자.”
* * *
‘뭐, 뭐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화장실에서 돌아온 정세인은 송민아가 청진명의 부름에 체육관으로 따라 나갔다는 말에 부랴부랴 체육관으로 달려갔다.
그런 체육관은 이미 다른 학생들의 무리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정세인이 사람들의 틈바구니에 치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마침내 시야가 뚫리자, 마주 보고 있는 송민아와 청진명을 볼 수 있었다.
‘민아야……!’
송민아는 주위에 몰려든 인파를 보고 불편한 심기를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청진명에게.
“너 관종이냐?”
어느 정도는 이해했다. 청진명은 학교에 나올 때마다 인파를 몰고 다니는 유명인 중의 유명인이었으니.
하지만 지금은 마지 전교에 방송이라도 때린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일부러 모으려고 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반 정도는.”
“반?”
“어쩔 수가 없는 거거든. 즐기지 않으면 손해야.”
청진명은 웃는 얼굴로 주위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고 있었다.
“내가 보기엔 넌 타고난 관종이 맞는 것 같은데.”
“그것도 인정.”
송민아는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본론을 물었다.
“그래서. 날 여기까지 부른 이유가 뭔데? 저번에 엎어 치기 당한 게 억울했나? 복수라도 하시려고?”
“비슷해.”
청진명이 몸을 풀었다.
“지금 난 다른 팀에 속해서 연수를 받고 있지만, 언젠간 내 팀을 꾸릴 생각이야. 그리고 팀원은 모두 내 손으로 뽑을 거고.”
“그래서?”
“일종의 면접인 거지. 결과가 좋으면 너도 스카웃.”
“하…….”
송민아가 허리에 손을 얹고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각성자가 되고 난 후에 등급을 판정받은 송민아 역시 알게 됐다. 저 청진명이란 놈이 얼마나 어린 시절부터 활약을 떨쳤는지, 그리고 갓 각성자가 된 풋내기와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그런 놈이 구태여 면접? 스카웃?
지나가던 초등학생도 속지 않을 구실이었다. 송민아가 나름대로 촉망 받던 유도 지망생이긴 했어도, 각성자로선 형편 없을 게 분명했으니까.
“그만.”
그런 송민아의 생각을 중단하듯 청진명의 말이 가로막았다.
“네 자질은 내가 판단한다.”
청진명은 어느새 창대 비슷한 걸 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걸레 부분을 떼어 낸 대걸레 막대기였다.
“얼씨구.”
저런 건 또 언제 준비해 왔대?
“룰은?”
송민아가 양손을 펼치며 자세를 낮췄다.
송민아의 물음에 청진명이 막대로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답했다.
“네가 아직 잘 모르나 본데, 원래 이쪽 바닥에선 무제한 룰, 무법이 기본이야. 그야 몬스터한테 이러이러한 룰대로 싸워 주십사, 하고 간청할 수도 없는…….”
대답하는 사이 송민아가 달려들었다. 곧바로 청진명의 몸을 뒤집어 체육관 바닥 위로 패대기쳤다.
쿵!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얌마! 사람이 말을 하는데……!”
“네가 룰은 없다며.”
그 말에 청진명이 말문이 막혔다. 송민아의 말엔 틀린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그야 몬스터는 대화 중이라 해서 싸움을 기다려 주지도 않는다.
청진명이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말이 맞다…….”
송민아가 드물게 미소지으며 물었다.
“이걸로 한 판?”
그러자 청진명은 몸을 벌떡 일으켰다. 바닥에 쓰러진 상태에서 곧바로 몸을 일으킬 정도로 탄력있는 움직임이었다.
스포츠에선 점수와 규칙이 있고, 그에 따른 승리와 패배가 있을지는 몰라도.
“무제한 룰이라고 했잖아.”
청진명이 양손으로 창을 쥐었다. 그 얼굴은 여느 때와 달리 진지해져 있었다.
“둘 중 한 사람이 쓰러질 때까지다.”
죽고 죽이는 싸움에 정해진 건 없었다.
* * *
‘역시 이렇게 되네.’
최후의 순간, 결국 땅바닥 위에 드러누운 건 송민아였다.
청진명과는 가지고 있는 마력이 너무나도 차이 났다. 송민아는 그걸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제대로 모르는데, 청진명은 자신이 갖고 있는 걸 정확히 분배해서 사용하는 법을 익히고 있었다.
송민아가 고개를 저었다.
‘꼭 그것뿐만은 아니지…….’
마력 자체도 차이가 났지만. 우스꽝스러운 막대기를 창처럼 다루는 청진명 자체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창을 든 남자를 상대해 볼 기회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도 청진명이 얼마나 능숙한 창잡이인지는 알 수 있었다.
몇 번인가 기회를 잡아 패대기를 친 적도 있었지만, 신체를 강화하고 있는 건지 큰 충격은 받지 않은 듯했다.
결국 이렇게 쓰러져 있는 송민아와 달리, 청진명은 숨도 크게 고르지 않고 여유롭게 서 있었다.
그런 청진명이 어깨에 창을 걸친 채 쭈그러 앉으며 말했다.
“너, 형편없네.”
청진명의 평가였다.
“마력 총량도 그렇고, 분배도 그렇고. 끌어다 쓰는 방식이나 연비, 속도, 전달 방식. 모두 다 초보자……. 아니, 아예 의도하고 하는 게 아니었지. 이래서야 평범한 일반인이랑 다를 것도 없어.”
“실망시켜서 미안하게 됐네.”
그런 송민아의 말에 청진명인 고개를 기울이며 웃었다.
“실망은 안 했는데.”
청진명이 슬쩍 옷을 들춰 등허리를 비췄다. 바닥에 하도 부딪치고 송민아의 손아귀에 붙잡혀 빨갛게 자국이 남아 있었다.
“여기 좀 봐. 아직도 빨갛잖아. 이야, 마력도 없이 이 정도로 달려드는 놈은 네가 처음이다. 나름대로 던전 좀 쏘다녔다고 설치는 놈들보다 네가 더 낫더라.”
참고 있었던 건지, 청진명이 등과 허리를 주물렀다.
“마력 하나 믿고 설치는 건 머저리들이나 하는 짓이지. 몬스터들이 갖고 있는 마력은 선천적으로 인간보다 월등할 수밖에 없어. 그런 괴물들을 상대로 이길 수 있는 건 인간이 무기를 들고 기술을 갈고닦기 때문이다.”
마력에 의지해, 자신이 가진 마력보다 약한 적만을 상대한다면 언제까지나 삼류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마력은 최소한의 자격증. 거기서부턴 인간의 기술을 날카롭게 갈고 닦아야만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각성자로선 허접할지 몰라도, 헌터로선 합격이다.”
송민아에게는 평생 갈고닦은 유도 기술이 있었다.
“마력 따윈 어떻게든 돼. 훈련을 하든, 약을 사다 먹이든 내가 책임질게. 내 팀에 들어와라.”
청진명이 쓰러진 송민아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송민아는 그 손을 쳐내고 스스로 일어났다.
“헛소리 하지 마.”
어떻게든 된다는 말은 청진명이 재능 있는 각성자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처음 각성했을 때부터 남다른 마력을 발현할 수 있었던 재능충.
그의 말대로 훈련이나 영약으로 개선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해도 안 되는 놈은 있었다.
“잘 아네. 조사 좀 했나 봐?”
“…닥쳐.”
나름대로 새로운 진로를 알아보고 있었으니, 그 정도 자료 조사는 당연했다.
결정적으로, 자신이 각성자로 살아갈 수 있는지 어떤지는 스스로 결정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남이 책임져 준다고 해서 홀랑 믿고 따라가는 게 아니라.
일단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부터 시도해 볼 생각이었다.
“…나 차인 거냐?”
“나중에도 생각이 변하지 않으면 찾아오든가.”
“약속한 거다?”
그럴 일은 없겠지.
송민아가 바닥부터 착실하게 실력과 실적을 쌓아 가는 동안, 청진명은 이미 저 높은 곳에서 더 잘난 놈들과 어울리며 차이를 크게 벌려 갈 테니까.
이야기는 그걸로 끝이었다.
점심 시간도 곧 끝이었다. 수업이 시작하기 전에 지저분해진 옷을 갈아입고 싶었다. 체육복 여분이라면 있었다.
그렇게 교실로 돌아가려던 차에, 문득 송민아가 물었다.
“너, 그 흉터는…….”
아까 청진명이 자신에게만 보이도록 옷을 슬쩍 들춰 보였을 때. 그곳에는 붉게 달아오른 피부 뿐만이 아니라, 이곳 저곳에서 이어진 흉터들이 엿보였다.
청진명이 난처하다는 듯이 답했다.
“이런. 들켰나?”
“팔에 그것도?”
청진명은 한여름에도 팔을 가리고 등교하곤 했다.
어쩔 수 없지.
그렇게 중얼거린 청진명이 송민아에게만 보이도록 소매를 슬쩍 걷었다. 잠깐 보인 팔뚝에도 수많은 흉터들이 엿보였다.
청진명이 변명하듯 덧붙였다.
“보기 흉하잖아.”
헌터에게는 당연한 상처들이었지만.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학생들의 눈에 보기에 좋은 건 아니었다.
그걸 가리기 위해 청진명은 꽁꽁 싸매고 학교에 나온 것이었다.
‘…문신이라도 있는 줄 알았더니.’
제 잘난 맛에 사는 놈인 줄 알았더니. 이런 걸 가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
“양아치는 아니었네.”
송민아가 피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