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247
247화 상위호환
“최윤호…라고 합니다.”
최윤호가 멋쩍게 이름을 말했다.
최윤호의 시선은 송민아를 향해 있었다. 함께 온 청진명은 대화를 할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최윤호가 청진명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 청진명 씨가…….’
최윤호도 청진명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국내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젊은 각성자 중 한 명이었다.
이 젊은 나이에 벌써 A급에 도달한 강자인 데다가, 아직도 큰 잠재력을 갖고 있어 S급까지도 도달할 수 있으리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으니.
그렇게 잘나가는 헌터인데도 거만하지 않고 쾌활한 성격으로 방송이나 인터뷰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 주곤 했다.
그런 유명인을 눈앞에 두고 놀라지 않는 건 불가능했다.
‘설마 이런…….’
그 청진명이라는 작자는 지금 최대한 불량한 얼굴과 몸짓으로 최윤호를 위협하고 있었다.
‘…이런 유치한 짓을.’
당황스러워서 식은땀이 났다.
청진명은 그런 최윤호를 가까이서 노려보고 있었다. 가능한 시선을 무시하려 했지만, 지울 수 없는 존재감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손을 대지는 않지만, 지극히 부담스러웠다.
송민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 일단 저건 무시하고.”
“예…….”
“그래, 네가 진아 남자 친구니?”
최윤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억지로 나쁜 짓을 할 만한 애로는 안 보였다. 선생님들께 듣기론 말 잘 듣고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라나.
좋을 때다. 나한테도 그런 시절이 있었던가, 하고 송민아가 생각에 잠겼다.
없었다. 각성하기 전에는 운동하느라 바빴고, 각성 후에는 훈련을 받느라 바빴다. 학교를 졸업하고 치열한 훈련을 이수받은 후에 가디언이 된 후로도 매일이 바빠서 연애할 틈 따윈 없었다.
애초에 남자와의 인연 따위가 없었다.
‘…저 모지리는 예외고.’
청진명은 여전히 살벌한 눈빛으로 최윤호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성과의 인연이 영 닿지 않는 송민아와 달리, 청진명은 제법 잘나가고 있었다. 소문에 따르면 아나운서를 만난댔나, 스트리머를 만난댔나.
물어보는 것도 유치해 보여서, 본인에게 직접 확인한 적은 없었지만. 남의 연애에 간섭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 우리 진아랑 친하게 지내 줘서 고맙고. 학생다운 건전한 만남을 이어 나가길 바란다.”
“무, 물론이죠.”
최윤호의 대답에 송민아가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잠깐!”
청진명이 눈에 불을 켜고 말꼬리를 잡았다.
“이 새끼, 방금 눈알 굴리는 소리가 났어!”
“예, 예……?”
“지금도 봐라!”
“그건 네가 너무 꼬나보니까 그런 거겠지.”
“아니야! 내 감은 못 속인다! 너, 이놈의 자식아, 진아한테 무슨 짓을……!”
청진명이 소리쳤다.
“둘이 어디까지 갔어!”
턱.
송민아가 청진명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팔과 다리를 이용해 축을 무너뜨리고 그대로 휘두르듯 땅에 메다꽂아 버렸다.
쿠웅!
“커헉……!”
청진명이 바닥 위에 널브러졌다.
“아차……!”
송민아가 식은땀을 흘렸다.
흉악한 범죄자, 마력을 사용해 범죄를 저지르는 빌런들을 마무리 지을 때 기술을 쓰곤 했지만. 격한 전투 중이어서 크게 책임을 물은 적은 없었다.
게다가 그런 이들을 상대로 단숨에 제압하기 위해서, 송민아의 기술은 경기 룰 속에 제한되어 있던 틀을 넘어 점점 더 살상력을 갖추게 되었다.
무방비한 인간을 상대로 기술을 걸어 본 건 오랜만이었다.
“파괴력이 더 늘었군…….”
“야, 야! 죽는 건 아니지?”
“나 청진명이야. 이런 데선 안 죽어…….”
“진짜 죽을 놈처럼 말하지 말고!”
송민아가 청진명의 뺨을 두드렸다. 그러자 청진명이 곧 죽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송민아…….”
“뭐, 뭐! 왜!”
“마지막으로 부탁이 있다…….”
“뭔데?!”
“너……. 우리 팀에 들어와라.”
마지막으로 한다는 부탁이 그거?
늘상 하던, 똑같은 소리였다. 그리고 애초에 청진명이 죽고 나면 팀도 흩어질 텐데, 들어가서 뭘 하라고.
다시 보니 청진명은 아주 멀쩡했다. 의식도 또렷했고.
“…야, 이 자식아!”
송민아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 * *
‘절대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지만.’
송민아는 몇 년이나 이어진 청진명의 구애를 끈질기게 뿌리쳐 왔다.
그렇지만 지금은 이렇게 청진명의 팀원이 되어 있었다.
가디언에서 헌터로. 사람을 상대로 싸워 오다가 몬스터로 그 상대를 바꾸는 건 쉽게 적응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자격도 없는 풋내기가 지연으로 낙하산을 탔다고 비웃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크게 틀린 말도 아니었다.
원래의 송민아였다면 그런 소릴 들을 만한 일에는 손도 대지 않았겠지만.
‘그때부터…….’
몇 년 전, 청진명의 동생인 청진아가 게이트로 인해 꽃다운 나이로 목숨을 잃은 이후.
송민아의 눈에 청진명은 마치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보였다.
청진명이 그 어린 나이부터 각성자로 활동하며 목숨이 위태로운 던전에 몸을 던지고, 실전이란 이름의 실적을 쌓아 간 데에는 모두 동생을 위해서라는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그 동생의 목숨을 앗아 간 것이 청진명이 매일같이 사냥하는 몬스터였다. 그것도 청진명이 거기에 있었다면 1분도 걸리지 않아 도륙이 났을 놈들.
그날 이후 청진명은 스스로의 몸을 제어할 줄 모르는 것처럼 액셀과 브레이크를 제때 밟지 못했다.
수많은 던전을 연속해서 공략하다가, 어느 순간 방에서도 나오지 않은 채 시간을 보내곤 했다.
송민아가 가디언을 그만둔 것도 그맘때쯤이었다.
‘혼자 둘 순 없으니까.’
청진명도 남들 앞에선 멀쩡한 척을 했다. 겉으로나마 그런 연기를 했다. 적어도 송민아가 곁에 있는 동안은 엇나가지 않게 지켜볼 수 있었다.
하지만 혼자 남게 되는 순간이 되면, 청진명은 항상 가장 늦게까지 헤어 나오지 못했다.
“혼자 두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청진명의 마지막 모습. 그것은 다른 이들을 뒤로하고 홀로 남아 창을 들어 올린 자세였다.
“혼자 남겨 두고 오고 말았어…….”
그렇게 만들지 않기 위해 계속 곁에 붙어 있었던 건데.
“아직.”
누군가 송민아에게 속삭였다.
“아직 방법이 있어요.”
“너……?”
송민아가 고개를 들어 보니, 말을 걸고 있는 건 클레어였다.
“막내, 너 대체 어딨다가 이제……!”
“쉿.”
몰래 빠져나갔던 클레어가 어느샌가 돌아와 송민아에게 조용히 말하고 있었다.
‘막내가 돌아왔는데…….’
송민아가 의아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른 헌터들이 관심 갖지 않는 건 모르는 사람이어서 그렇다 쳐도, 고철민이나 정하준도 눈치채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게 조용한 것도 아닌데?’
마치 이쪽에 관심을 아예 주지 않는 듯한 태도였다.
그러나 클레어는 그게 아주 자연스러운 것처럼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팀장님, 아직 방법이 있어요.”
“방법이라니?”
“돌아올 방법이요.”
청진명은 다른 이들을 남겨 두고 감염자들을 모두 해치우기 위해 혼자 남았다.
혼자 남기 전, 이미 청진명은 송민아를 대신해 다른 감염자를 처치한 적이 있었다. 그러니 청진명 역시 감염되는 건 시간 문제였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다른 감염자들을 모두 해치운 후일 테고, 아니라면 그들 중 일부가 되어 있으리라.
“어떻게…….”
이 많은 각성자들도 방법을 알지 못해서 다같이 도망친 게 현실이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던 클레어가 모든 사정을 알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해결할 방법도 아는 듯이 말하는 것도 의아한 일이었다.
그러나 클레어는 길게 대답하지 않았다.
“설명할 시간은 없어요. 갈 건가요, 말 건가요?”
그렇게 물을 뿐이었다.
누가 봐도 몰래 빠져나가자는 것 같았다. 그야 안 그래도 전력을 잃은 상황에서 누군가 이탈하는 걸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을 리는 없었다.
그래도 지금, 클레어와 함께라면 몰래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았다.
“…….”
잠시 고민하던 송민아가 몸을 일으켰다.
클레어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아니었다. 그녀가 유능한 막내이긴 했어도,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신은 아니었다.
청진명을 원래대로 되돌릴 방법이 있다는 말이 사실이 아니라 하더라도, 송민아는 갈 생각이었다.
혼자 두지 않겠다고.
그곳에서 이성을 잃은 채 괴물이 되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곁에 있겠다고 다짐했을 뿐이었다.
“가자.”
* * *
“혈귀공 블라드.”
청진명의 모습을 빌린 마물이 제 이름을 읊었다.
“그렇게 부르면 된다.”
블라드가 천천히 몸을 둘러보았다.
청진명의 의식이 남아 있는 동안 사용해 보긴 했지만, 느긋하게 감상하는 건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했다.
블라드가 만족스럽게 미소 지으며 평가를 내렸다.
“정말, 간만에 마음에 드는 그릇을 손에 넣었어.”
누란주에게 패배해 육신을 잃은 이후, 좋을 대로 도구로만 사용되어 오다가. 간신히 기회를 붙잡아 현신할 기회를 얻었다.
‘이 몸이라면…….’
청진명의 몸은 신체 능력과 마력 모두 상등품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블라드의 능력과 상성이 좋았다. 창과 파도를 다루는 청진명의 능력은 블라드가 가진 능력과 엇비슷했다.
수많은 각성자들 중에서도 블라드의 잔혈을 모두 빨아들인 몸이 이자라는 건, 낮은 확률의 당첨이었다.
감상에 빠져 있는 블라드에게 도율이 물었다.
“네가 기생충이냐?”
“뭐……?”
도율의 말에 블라드가 반응했다.
“피의 지배자. 혈귀의 제왕인 이 몸을, 기생충이라고?”
“남의 몸을 뺏어서 시시덕거리는 놈이 기생충이 아니면 뭔데?”
“핫!”
블라드가 짧게 웃음을 터뜨리고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도율을 노려봤다.
“천한 놈, 예의를 가르칠 필요가 있겠군.”
블라드가 손가락을 뻗었다.
“가시여.”
그 말에 반응하듯 피로 이루어진 가시들이 도율의 주위로 솟아났다.
콰가각!
주위에 흩뿌려진 피웅덩이에서 날카롭게 다듬어진 혈액들이 도율을 향해 달려들었다. 사방에서 덮치는 공격이었다.
도율이 몸을 피하자 가시들이 따라붙듯 계속해서 솟아났다.
그렇다 해도 도율을 따라잡을 순 없었다.
“날파리가.”
블라드가 손을 펴고 가볍게 저었다.
그러자 허공을 향해 솟아 있던 피의 가시들이 물방울 형태로 돌아갔다.
핏방울들은 작게 흩어져 도율의 주위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마치 빗방울 속에 갇힌 듯했다.
“꿰뚫어라.”
블라드가 다시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자 도율의 주위로부터 수많은 크고 작은 가시들이 솟아났다.
피할 수도, 빠져나갈 수도 없는 촘촘한 가시의 망. 도율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가시들이 성게처럼 자라났다.
“음?”
블라드가 한쪽 눈을 찌푸렸다.
혈액을 조종하는 능력으로, 그 감각 역시 완전하게 전달받고 있었다. 그러나 가시로 무언가를 뚫어 낸 느낌이 들지 않았다.
쿠콰광!
도율이 피의 가시들을 모조리 부러뜨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끝이냐?”
도율은 아무런 상처도 없이 나타났다. 고작해야 블라드가 뿌린 핏방울에 적셔져 있는 게 전부였다.
피에 젖은 도율이 블라드를 노려봤다. 청진명의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마음이 약해지거나 하진 않았다.
오히려 그래서 더욱 부아가 치밀었다.
“핫… 핫핫하!”
그러나 블라드는 당황하기는커녕 웃음을 터뜨렸다.
“고작 그런 걸로, 이 몸을 상대로 이겼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블라드가 보고 있는 건 피에 젖은 도율의 모습이었다.
혈귀(血歸). 피가 피를 끌어당기는 힘. 블라드가 가진 혈귀공이란 이름에 담긴 의미로, 모든 혈액을 갈취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꼭 닿아야만 발휘할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무기를 통해 공격해 피를 흘리게 만든 경우에도 감염시킬 수 있었다. 지금의 도율처럼 온 몸이 흠뻑 젖어 있다면 식은 죽 먹기였다.
블라드가 미소 지었다.
“이걸로 너도 내 노예다.”
블라드의 피가 도율의 혈액을 감염시켰다. 마력이 피부를 뚫고 들어가 엉겨붙었다.
그러나 무언가 이상했다.
“아니……?”
도율의 피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가 없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주위의 있는 피에 대한 연결이 끊어지고 있었다.
피가 말라 가고 있나? 아니, 그게 아니었다. 오히려…….
‘빼앗기고… 있다고?’
믿기지 않는 광경에 블라드가 두 눈을 부릅떴다.
“넌 적수로 보이지도 않아.”
도율이 차가운 목소리로 고했다.
“이런 잔재주라면 내 쪽이 더 위다.”
완전한 상위호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