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248
248화 결혼할래?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혈귀공 블라드가 이를 빠득 깨물었다.
피를 매개로 다루는 마력을 구사하는 혈마법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것 하나만큼은 마계에서 최고였다.
그렇기에 혈귀공이라는 이명 또한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설마… 이 몸과 같다고?!’
블라드가 뒤늦게 혈액을 끌어당겼다.
설마 같은 종류의 능력을 갖고 있는 인간을 맞닥뜨릴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같은 혈마법사 사이의 대결에서는 가지고 있는 피의 양과 질이 승패를 좌우했다.
그리고 그 피에 대한 주도권을 통제하는 것이 바로 마력이었다.
그러나 도율의 통제력 앞에서 블라드의 마력은 조금도 주도권을 가져오지 못하고 있었다.
‘고작 인간 따위가……?’
도율의 내공이 가까이 다가오는 블라드의 마력을 모조리 불사르고 있었다.
‘…그래.’
고작 인간. 그러나 블라드는 눈앞의 상대가 만만치 않은 존재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누란주, 그 치밀한 자가… 실수나 여흥 따위로 날 자유롭게 풀어놓았을 리가 없지.’
누란주에 의해 갇혀 있던 블라드는, 마찬가지로 누란주의 손에 의해 다시 자유를 되찾았다.
그의 주위엔 나약한 종족인 인간들이 떼거지로 몰려 있었다. 어째서 마계에 인간들이 이렇게 많이 몰려온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기회를 놓치지 않고 최대한 많은 혈액을 갈취했다.
그러나 이 상황 역시 모두 누란주의 설계 아래에 벌어지는 일이었다.
‘날 사냥개 취급하다니.’
직접 처리하기 어려운 인간들이 있어, 누란주는 콜렉션 중 하나를 풀어놓은 것이었다. 어쩌면 이 인간을 콜렉션 중 하나로 삼고 싶은 걸지도 모르고.
하지만 그자의 계획이 어떻든 간에, 블라드는 얌전히 당해 줄 생각이 없었다.
‘모조리 쥐어짜서, 말라 비틀어지게 만들어 주지.’
복수를 다짐했다.
‘그 전에.’
먼저 상대해야 하는 자가 있었다.
‘이 인간부터 처리해야겠군.’
어느새 도율의 머리 위로 생긴 커다란 피의 구가 천천히 자전하고 있었다.
이 주위에 있는 거의 모든 혈액을 빨아들여, 대지를 적시고 있던 붉은 웅덩이는 모두 메마르고 말았다.
블라드에게 있어선 공격의 수단을 잃은 것과 동시에, 상대의 공격 수단은 늘어난 것이었다.
“네놈……!”
긴장한 채로 노려보는 블라드와 달리, 도율은 딱히 모아 둔 피를 사용해 무언가를 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성가셔서 묶어 둔 것뿐이었다.
블라드 역시 알아챘다. 도율이 그걸로 뭔가를 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전황에 있어서는 유리한 요소였지만, 블라드는 안도하는 대신 참을 수 없는 모욕과 분노를 느꼈다.
‘감히…….’
피는 모든 생명의 원천이며, 모든 생물이 피부와 거죽 아래에 숨기고 보호하는 귀중한 자원이었다.
그 생명력과 마력의 조화를 이뤄 발휘하는 혈마법에 매료된 자들이 혈마법사의 길을 걷는다.
혈마법사 블라드에게는 도율이 피를 짐짝 취급하는 것이 참을 수 없는 모욕으로 느껴졌다.
“네겐 자격이 없다!”
블라드의 주위로 핏방울이 솟아났다.
도율이 주위에 있는 모든 혈액을 가져갔지만, 그것은 인간들의 몸에서 뽑아낸 잡혈에 불과했다.
블라드가 수족처럼 부리고 오랜 세월 마력을 쏟아부은 순혈이 남아 있는 이상, 결코 모든 힘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었다.
“혈마법, 술리타(sulita).”
붉게 물든 청진명의 창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피로 감싼 창이 블라드의 손아귀에 휘감겼다.
블라드가 가만히 서서 허공에 창을 찔러 넣었다.
도율과는 거리가 있는 상태였다. 아무리 창과 팔의 길이를 더해도 도율의 몸에는 닿지 않을 거리였다.
“……!”
하지만 도율의 몸은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순식간에 블라드의 앞으로 끌려갔다.
팟!
도율이 재빨리 반응하고 몸을 틀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허리를 관통당했을 터였다.
“그걸 피했나.”
“잔재주를 부리는군.”
“잔재주가 아니다.”
블라드가 다시 한번 창을 찌르기 위해 거둬들였다.
“죄인은 이 몸의 창에 꿰뚫리는 것이 당연한 결말이다!”
충분히 가까운 거리. 그 느릿한 동작이라면, 어디로 창을 찔러 오든 도율은 여유롭게 피할 수 있었지만.
‘궤적을 미리 보고 피하는 건 올바른 선택이 아니다.’
저 창은 찌르는 순간 상대의 위치를 바꿔 미리 대응하는 걸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렸다.
블라드가 찌른 건 상공이었다. 머리 위를 향해 찔러 올리는 창에, 도율의 몸이 순식간에 허공으로 끌려갔다.
어디에도 발을 붙이고 있을 수 없으니, 피할 수도 없었다.
필중의 일격. 블라드가 찌른 창날은 이번에야말로 확실하게 도율에게 닿았다.
“뭣……!”
도율은 그 창날을 손으로 붙잡고 있었다.
깃털처럼 가벼운 몸짓으로 블라드가 찔러 올린 창날을 붙잡고 몸을 휘릭 회전시켰다.
허공에 뜬 상태. 뒷덜미를 찌른 건데도 목 뒤로 창날을 붙잡아 가볍게 착지한 것이었다.
“너야말로 자격이 없어.”
도율이 창을 놓지 않고 있었다.
“이건 네 게 아니야.”
“큭…!”
도율이 창날을 잡고 당기자 블라드의 손에서 창이 빠져나갔다.
도율이 빼앗은 청진명의 창을 근처의 땅에 꽂아 두었다.
“그딴 건 없어도 된다!”
블라드가 달려들었다. 그의 손아귀에는 피로 빚어 낸 날카로운 칼날들이 달려 있었다.
공격들을 여유롭게 피하며 도율이 웃음을 흘렸다.
“짐승 같군.”
“이……!”
분노와는 다르게 도율과 공방을 주고받을 때마다 블라드가 지닌 혈액 속에 녹아든 마력이 점점 더 희미해졌다.
도율의 내공과 맞부딪치며 마력이 조금씩 깎이고 부서지고 있었다.
“허억, 허억…….”
결국 블라드의 기량은 부활 직후보다 뒤처지고 말았다.
일방적인 압도.
이미 그렇게 된 결과를 보고도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너무 오랜 세월 잠들어 있었다. 그 시간 동안 힘을 쌓았어도 모자랐을 텐데, 헛되이 보내고 말았으니 이렇게 되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여전히 의아한 점은 남아 있었다.
‘어째서 끝장내지 않는 거지.’
경계할 단계는 지났다. 지금의 도율이라면 블라드를 단숨에 처리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블라드는 단지 지쳐 있을 뿐. 커다란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몸으로 남아 있었다. 마치 용건이라도 있는 것처럼.
‘그러고 보니.’
도율은 블라드가 차지한 몸의 주인과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큭큭. 설마 이 몸의 주인을 돌려받고 싶은 거냐?”
“…….”
“소용없다. 그놈은 이미 내 일부가 됐다. 이대로 내가 소멸한다 하더라도, 함께 명을 달리할 뿐이지.”
도율이 인상을 찌푸렸다.
블라드의 마력을 모두 걷어 내고 나면 청진명이 제정신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지만.
녀석의 말은 사실인지, 뒤섞인 두 마력을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이대로 청진명의 몸에 기생하고 있는 블라드를 완전히 지워 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방법이 없나.’
도율이 블라드의 몸을 향해 손을 뻗었다.
* * *
“기다려요!”
익숙한 목소리에 도율이 손을 거뒀다.
그 장소에 나타난 건 하얀 호랑이를 타고 있는 클레어였다.
돌아올지도 모른단 건 알고 있었지만, 흰돌이를 타고 온 건 의외였다. 일단은 백우진이 데리고 있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그 호랑이는…….”
“빌렸어요.”
원래는 클레어가 키우는 놈이니 엄밀히 말하자면 돌려받은 거였지만.
그런 클레어가 데리고 온 건 송민아였다.
“이건…….”
송민아의 눈엔 쓰러진 청진명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의식을 잃은 듯한 상태였다. 아직 죽지 않았다는 건 미약하게 흐르는 마력으로 알 수 있었지만, 그로부터 느껴지는 건 이질감이었다.
오래 알고 지낸 만큼, 지금의 청진명이 본인이 아니란 걸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본인이 아닌 무언가로 변해 버렸다는 걸 알아 버렸다.
“도율 씨. 팀장님은…….”
클레어의 물음에 도율이 고개를 저었다.
“이미 늦었습니다.”
도율이 설명했다.
청진명의 몸을 차지한 건 혈귀공 블라드라는 놈이었다.
놈은 사람의 혈액을 갈취해 몸을 지배하는 마물이었다. 그렇게 감염시킨 몸으로부터 더 많은 혈액을 긁어모으며 힘을 모으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부담을 한 몸에 짊어진 청진명은 블라드의 정신이 자리 잡기 위한 그릇이 되어 버렸다.
블라드를 쓰러뜨리면 청진명이 정신을 되찾길 기대했지만, 그렇진 않았다.
“완전히 섞여 있습니다.”
블라드와 청진명의 마력. 두 사람의 상성이 워낙 좋았던 탓에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
송민아가 입술을 깨물었다.
도율마저 그렇게 말하기에, 정말로 방법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클레어는 여전히 침착하게 물었다.
“반대로, 구분할 수만 있으면 방법이 있다는 뜻인가요?”
“예?”
예상외의 질문이 도율은 잠깐 머뭇거렸지만, 곧 대답했다.
“그럼 청진명 씨의 마력은 남겨 둔 채로 블라드를 소멸시키면 되지만…….”
“그렇군요.”
클레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부탁할게요.”
“부탁이라니……?”
그 말은 마치, 이미 하나로 섞여 버린 청진명과 블라드를 따로 떼어 내는 일은 클레어가 맡겠다는 것처럼 들렸다.
“어떻게 할 생각이죠?”
“녹이려구요.”
지금은 둘이 한데 뭉쳐서 굳어 있으니, 다시 떼어 놓기 위해 녹여야 한다는 뜻이었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지만.
“설마…….”
“네. 제가 마력 쏟아부을게요.”
클레어가 마력을 쏟아부으면, 블라드는 새로운 마력을 흡수하기 위해 닫혀 있는 문을 열 것이 분명했다.
하나의 그릇 안에 두 개의 마력이 섞여 있는 상황. 그 뚜껑을 열기 위해 새로운 마력을 들이붓겠다는 말이었다.
“그건 너무 무모한 게…….”
될지 안 될지 확실하지도 않은 일에 목숨을 거는 도박이었다.
하지만 클레어는 계획대로 되기만 하면 성공할 거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오른쪽 눈이 그런 미래를 비추고 있었다.
“그런 거라면 내가 할게.”
송민아가 자처했지만 클레어는 고개를 저었다.
“언니는 따로 할 일이 있어요.”
“내가?”
“팀장님의 의식이 너무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어요. 도율 씨가 그 둘을 더 잘 구분할 수 있도록 정신을 일깨워야 해요.”
지금은 블라드의 의식만이 너무 뚜렷했다. 그렇기에 잠들어 있는 청진명과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만약 청진명과 블라드가 그 안에서 비슷한 수준의 지분을 가진다면.
“뒤는 도율 씨가 알아서 할 테니까, 언니는 팀장님이 정신 차리도록 해 주세요.”
“정신 차리다니……. 어떻게?”
“어떻게든이요.”
“어떻게든이라니……!”
기다릴 시간은 없었다. 처치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았다.
클레어가 팔을 걷어붙이고 청진명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갑니다.”
클레어가 마력을 쏟아붓자 청진명의 몸이 한 차례 덜컹거렸다.
이미 하나의 몸에 두 개의 마력이 섞여 들어가 있는데, 억지로 세 번째를 집어넣어 문을 비틀어 열고 있으니 신체에 부담이 가해지고 있었다.
청진명이 조금만 덜 튼튼했어도 쇼크로 세상을 떴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지금이에요!”
송민아가 그런 클레어의 곁에 꿇어앉은 채로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그러니까…….”
청진명의 정신을 수면 위로 끌어당기기 위해 감정이 날뛸 만한 말을 하라고 듣기는 했지만.
어떤 말을 전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청진명은 겉으로 보기엔 밝고 쾌활한 척하는 놈이었지만, 가장 가까이서 가장 오래 지켜봐 온 송민아는 그게 모두 가장이라는 알고 있었으니까.
‘진아 이야기는…….’
그게 청진명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걸로 격한 감정을 끌어 올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세상엔 청진명이 동생을 잃은 분노를 원동력으로 삼아 강해진 비운의 헌터로 알려져 있지만, 송민아에게 고백한 적이 있었다.
-이미 죽은 사람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복수심, 가족애.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간편한 말로 때운다면 편했겠지만.
청진명이 목숨을 걸고 헌터로 활동하는 이유는 그것과 달랐다.
-너무 매정한가?
청진명은 그렇게 말했지만, 송민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진아를 잃고 청진명보다 크게 좌절한 건 다름 아닌 최윤호였다. 차라리 각성자가 될 수 있었다면 모를까,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길드를 만들었다.
몸을 돌보지 않고 질주하는 최윤호가 눈에 밟혀, 청진명은 아직까지도 창을 내려놓지 않고 있었다.
청진명은 지쳐 있었다.
언제든 기회를 봐서 그만두고 싶었을 거다. 싸우다가, 남들을 지키다가 죽는 거라면 더할 나위 없는 기회였다.
잠든 청진명의 얼굴은, 넌덜머리가 나니까 이제 그만하라고 말하는 듯했다.
“야, 청진명.”
송민아는 그렇게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이 인간이 정신 번쩍 들게 만드는 건 자신의 특기였다.
“결혼할래?”
적막 속에서 마력이 소란스럽게 요동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