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252
252화 살아 있었나
“말한다 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을 거다.”
주대현이 고개를 저었다.
“만약 장서주를 먼저 쓰러뜨린다 해도 소용은 없었다. 불가능한 일이니까.”
“왜지?”
“놈은 다른 사도들의 마력을 앗아 가며 부활할 수 있으니까.”
그 말은즉.
다른 사도들을 모두 내버려 둔 채로 장서주를 상대로 먼저 싸웠다간, 네 번이나 부활하는 끈질긴 놈을 상대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부활할 때마다 다른 사도의 마력을 거둬들이기까지 하니, 점점 더 힘든 상대로 거듭나는 채로.
‘…확실히.’
그런 번거로운 상대를 마주하기 전에, 그의 수족이 될 놈들을 모두 제거해 놓는 게 당연한 순서였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도들 또한 인간들과의 전쟁에서 장서주를 가장 마지막에 배치해 두었다.
만에 하나지만, 싸워 보지도 못한 채 장서주의 희생양이 되는 건 사양이었으니까.
도율이 문득 떠오른 의문을 입에 담았다.
“그 녀석은 뭔데 그런 짓이 가능하지?”
“그게 장서주의 사도로서의 능력이다.”
“그렇다면…….”
다른 사도들의 마력과 영혼을 거둬들이는 것이 장서주 고유의 능력이라고 한다면.
“혹시 사도라는 건……?”
“그래.”
도율의 의문이 정답이라는 듯 주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도라는 이름과 그 자격을 부여하는 건 장서주다.”
다른 네 명의 사도를 웃도는 실질적인 지배자가 바로 장서주라는 의미였다.
마계의 땅을 지배하는 다섯 사도. 그러나 실제로는 한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자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실제로 힘을 주는 건 아니다. 다른 사도들이 그 자격을 부여받을 때까지 기른 힘은 모두 스스로의 것이지. 그러나 주변 지역을 모두 쓸어 담을 정도의 패자가 되면, 장서주가 눈독을 들인다.”
그것이 새로운 사도 후보의 등장이었다.
“사도라는 것은 자격인 동시에 족쇄인 셈이다.”
약육강식이라 불리는 마계의 땅에서, 아무리 강해져도 장서주의 새장 속을 벗어날 방법은 없었다.
결국 그 하늘은 장서주라 불리는 천장이 가로막고 있었으니까.
“복잡한 사정이군.”
하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마계나 사도들이 어떤 처지나 상황 속에 놓여 있었든 간에, 도율이 해야 할 일은 변하지 않았다.
그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었다.
“넌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도율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대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빙성이 모자란가?”
“아니, 반대지.”
도율이 고개를 저었다.
“마계에 대한 정보나 사도에 대한 정보. 지금까지 넌 여러 가질 알려 줬지만……. 그건 무엇 하나 틀림없는 정보였다.”
“그럼 이번에도 믿어라.”
그렇게 대답하고 마무리하려던 주대현을 도율의 목소리가 잡아 세웠다.
“내가 못 믿는 건 너다.”
“…….”
도율이 주대현을 가리키고 있었다.
확실히, 도율의 말대로 너무 많은 정보를 알려 준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적은 피해로 이겨 올 수 없었을 것이다.
승리하기 위해서 감수해야 할 위험이었다.
그런 주대현이 풀어놓은 정보들은 단순히 독자적으로 조사한 수준을 넘어섰다. 각 사도들에 대한 정보까지였다면 모를까.
‘쓸데없는 이야기를 해 버렸나.’
장서주의 능력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마계의 지배 계급에 대한 비밀까지 나아간 건 실수였다. 이제 곧 끝난단 생각에 주대현도 마음이 조금 풀어지고 말았다.
자신이 도율의 입장이었다 해도 이런 이야기까지 알고 있는 놈을 의심하지 말라는 건 무리한 요구였다.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도율을 바라보며 주대현이 슬쩍 미소지었다.
‘무른 놈.’
자신이었다면 이 중요한 순간 배신자로 의심되는 놈이 적발되자마자 손이 나갔을 거다. 작전에 한 치의 결함도 있어선 안 되니까.
정말 의심하고 있다면 입 밖에 내지 말고 조용히 확신을 가질 때까지 관찰했어야지.
이런 놈이 어떻게 사방이 적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건지.
‘…아니면, 변한 건가.’
현대에서의 생활을 통해 성격에 변화가 찾아온 걸지도 모른다.
의심하고 있다고 말하는 도율은 반대로 아직까지 주대현을 믿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주대현이 그런 도율에게 대답했다.
“정보 제공자가 있었다.”
“정보 제공자?”
“사정이 있어 지금은 이 정도밖에 말할 수 없다. 때가 되면 모두 알려 주마.”
“이봐.”
도율은 아직 만족하지 못했지만, 주대현이 말을 돌렸다.
“중요한 건 장서주를 쓰러뜨리느냐 마느냐다. 실패하면 지금 여기서 얼마나 떠들든 모두 무의미해진다. 아닌가?”
“…그래.”
도율이 깊게 숨을 내쉬고 잡념을 털어 냈다.
“우선 할 일부터 하자고.”
* * *
“이제 곧인가.”
장서주, 아즈모디아가 복도를 거닐었다.
다른 사도들이 모두 당했다는 것은 아즈모디아 역시 알고 있었다. 그들의 영혼과 마력이 모두 모여 있었기에.
모두 상정한 범위 내의 일들이었다. 그러니 크게 문제될 건 없었다.
그들의 힘은 모두 아즈모디아의 손에 놓여 있었으니, 전력은 감소했다고 할 수도 없었다. 오히려 한 곳에 모인 만큼 적수가 없으리라 여겨졌다.
‘그렇다곤 해도…….’
한낱 인간들이 다른 사도들을 모두 멸할 수준이라니.
예상한 것 이상의 힘이었다.
그러나 아즈모디아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모자란 것보단 넘치는 게 나았다.
만약 인간들이 다른 사도들을 모두 쓰러뜨리지 못하고 사그러든다고 해도. 아즈모디아의 계획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을 테니까.
‘그랬다면 내 손으로 직접 마무리했겠지.’
아즈모디아에겐 마계의 모든 힘을 한데 모을 필요가 있었다.
그가 거닐던 복도에 커다란 액자가 걸려 있었다. 고급스러운 나무 재질에 화려한 무늬를 살려 조각한 모서리의 안쪽에 누군가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여인의 초상화였다.
이곳은 신전(神殿). 누군가를 모시기 위해 마련된 장소였다.
아즈모디아가 그림 위에 이마를 기댔다.
“정말 얼마 안 남았어, 에텔.”
에텔. 그림 속 인물의 이름이었다.
그림 속의 인물은 얼어붙은 것처럼 굳어 있었다. 그러나 아즈모디아는 그녀가 살아 숨쉬던 시절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눈을 감지 않아도 선명하게 떠올랐다.
아즈모디아가 지금까지 계획해 온 모든 일들이 모두 그 하나를 위한 초석이었다.
-우웅.
신전에 침입자를 알리는 경보가 울렸다. 그렇다고 해서 시끄러운 알람 소리가 귓전을 때리거나 방비 장치가 작동하는 건 아니었다.
신성한 존재를 모시는 제단에 소란은 용서되지 않으니까.
“다녀오지.”
긴 계획에 종지부를 찍을 시간이었다.
* * *
“여긴가.”
도율이 주대현의 안내에 따라 아즈모디아가 기거하는 곳에 도착했다.
그곳은 넓고 웅장한 신전이었다. 대리석을 깎아 만든 기둥이 뾰족한 지붕을 떠받치고 있었다. 눈에 띄는 화려함은 없어도 묵직한 존재감을 자랑했다.
도율이 의외라는 듯 중얼거렸다.
“마계에도 이런 곳이…….”
황무지나 자연재해에 가까운 지형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마계의 땅에서도 문명의 손길이 닿아 있는 듯한 흔적은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사도들이 기거하는 곳은 조룡주의 용의 둥지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화려하고 복잡한 건축물이었다.
사도라는 지배자들의 위세를 드높이기 위한 건물.
그러나 이곳은 마치 경건하게 굽어살피기 위해 존재한다는 듯이 그저 그 자리에 존재할 뿐이었다.
“온다.”
주대현의 말대로 누군가 신전의 출입구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안개를 두른 것처럼 주위를 어둡게 물들이며 나타난 건 이곳의 주인이자 마지막 사도였다.
장서주(長逝主) 아즈모디아.
‘저자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어른인지 아이인지 선뜻 구분이 가지 않는 신비로운 외형을 지니고 있었다. 길게 기른 검은 머리칼이 땅에 닿을 듯이 넘실거렸다.
“왔나.”
아즈모디아가 손님을 맞이하듯 손을 들었다.
“미안하지만 장소를 옮길 수 있겠나.”
그가 뒤쪽에 자리한 신전을 향해 슬쩍 눈길을 주고는 덧붙였다.
“여기서 소란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아서.”
도율이 선뜻 받아들였다.
“좋을 대로.”
“감사를 표하지.”
아즈모디아가 가볍게 눈을 감고는 턱짓했다.
“그럼, 따라와라.”
아즈모디아는 느긋한 걸음으로 신전으로부터 멀어졌다.
신전은 언덕 위에 세워진 상징처럼 우뚝 서 있었다. 근처엔 역시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였다. 싸울 만한 장소를 찾기 위해 멀리 나갈 필요가 없었다.
아즈모디아가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피차 대화가 필요한 사이는 아니겠지.”
“그래.”
“알겠다.”
아즈모디아가 손을 뻗었다.
“너희의 피륙에 경전을 새겨 주마.”
쿠구구궁.
아즈모디아의 발밑이 솟아올랐다. 방금까지 같은 높낮이로 있었던 아즈모디아가 순식간에 닿지도 않을 위치로 솟아올랐다.
그와 동시에 도율과 주대현이 있는 땅이 갈라지며 돌아가고 있었다.
도율이 발을 붙이고 있던 땅은 벽이 되었고 천장이 되었다. 그대로 땅에 몸을 붙이고 있지 않으면 하늘 위로 추락할 것 같았다.
‘이건…….’
어지럽게 회전하며 보았던 풍경이 겹치듯 덧씌워지는 광경. 깨진 거울에 반사된 것과 같은 세상.
이와 비슷한 것을 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
‘수월주의 거울 공간인가.’
수월주는 성채에 몬스터를 가두고 공간을 무한히 늘리는 식으로 사용했지만. 아즈모디아는 공간을 마구 헤집어 놓았다.
아즈모디아의 모습은 벌써 눈에 보이지 않게 됐다.
도율이 당장 그의 모습을 찾아보려 했지만, 검은 탄환들이 빗발치는 바람에 회피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콰광!
검은 운석들이 마구잡이로 흩어진 공간 속에서 난반사를 일으키며 날아다녔다. 직선으로 뻗어 나가던 운석이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전혀 다른 공간에서 나타났다.
‘난리도 아니군……!’
수월주와 성각주. 두 사람의 능력이 조화를 이루니 사방에서 빗발치는 공격을 피하는 것만으로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공격의 궤도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과 동시에, 찢어진 공간의 연결 지점을 모두 계산해야만 온전히 피할 수 있었다.
그와중에 발 붙이고 있는 땅이 계속 변하며 기동성을 빼앗아 갔다.
탁!
도율이 딛고 있던 땅을 벗어나 새로운 땅 위에 착지했다. 이미 위와 아래의 구분이 없었다.
‘이건……?’
그렇게 착지한 땅은 반들반들한 조각이 무한히 펼쳐진 것처럼 생겼다.
“삼켜라.”
그러자 도율의 등 뒤로 거대한 구멍이 들이닥쳤다. 하늘을 가릴 듯한 천장 아래로 두 개의 송곳니가 보였다.
뱀의 아가리였다.
도율이 딛고 있던 땅을 피하자 거대한 뱀이 도율이 있던 땅을 집어삼켰다. 멀리 떨어져서 보니 도율이 딛고 있던 건 뱀의 꼬리였다.
‘저건 누란주가 사육하던 놈인가……!’
누란주는 본체를 상대할 땐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조룡주의 유산을 훔치려다가 발각되어 도망치지도 못한 채 죽임을 맞기했기에.
그러나 그가 남긴 실험체들은 모두 그의 은신처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장서주 아즈모디아는 그 존재를 모두 파악하고 다룰 줄 알았다.
그런 아즈모디아의 위치는 아직도 요원했다. 성각주의 능력으로 몸을 숨기고 있어 쉽사리 찾을 수 없었다.
“푸우.”
주대현이 길게 숨을 내뱉었다.
주대현은 그런 난리통과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인 것처럼 구름 속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가 입에 문 곰방대로부터 하얀 숨이 뿜어져 나왔다.
도율이 신나게 뛰어다니는 동안 주대현은 짙은 구름을 충분히 모아 두고 있었다.
“장난질은 그쯤 해 둬라!”
주대현이 힘차게 숨을 내뱉자, 구름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형상을 이뤘다.
호랑이의 형상을 이룬 구름이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며 허공을 물어뜯었다. 거대한 세상에 비하면 한없이 작아 보이는 크기.
그러나 마치 풍선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장서주가 만들어 낸 환상은 모두 산산조각 나며 깨졌다.
거대한 몸을 가진 뱀 역시 육중한 몸을 땅 위로 떨어뜨렸다.
쿠웅-!
그러자 아즈모디아 역시 어둠의 베일 속에서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모습을 드러낸 아즈모디아가 주대현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입을 열었다.
“아, 그렇군.”
아즈모디아의 말에 주대현이 눈에 띄지 않게 몸을 떨었다.
“너, 살아 있었나.”
구면인 듯한 반응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