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257
257화 모른 척
눈을 떠라.
‘그게 무슨……?’
클레어가 거리를 좁히며 눈살을 찌푸렸다.
눈이라면 제대로 뜨고 있었다. 오른쪽 눈에 깃든 금색 광채, 황금안의 힘으로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것조차 시계에 담아내고 있었다.
지니고 있는 마력 역시 이전과 비교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소모와 회복을 반복할수록 그 상한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지금의 클레어라면 그 어떤 헌터보다도 강하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평소 느껴본 적 없는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다. 사도라 해도 감히 대적할 수 없을 정도로.
다 죽어 가는 사도 따위가 감히 이래라저래라 할 순 없었다.
‘여기서 끝을.’
검을 쥔 채로 코앞에 들이닥친 클레어를 향해 아즈모디아가 손을 뻗었다. 그런 연약한 팔로는 마력이 담긴 클레어의 검격을 막아 낼 수 없었다.
그런 아즈모디아의 손이 만들어 낸 건 거울이었다.
‘거울……?’
사도가 죽기 직전에 마력을 쥐어짜 낸 물건이 단순한 거울이란 사실에 클레어가 의아함을 품었다.
특별한 무언가가 아닌 평범한 거울이었다. 그저 주위의 모습을 비출 뿐인.
‘이건……?’
클레어는 거울의 비친 상으로부터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겉보기엔 평소의 모습과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그걸 보는 클레어의 눈은 평범하지 않았다. 모든 진실을 꿰뚫어 보는 황금안이 거울 너머의 자신의 모습을 낱낱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우뚝.
검을 휘두르던 클레어의 동작이 멈췄다. 거울을 좀 더 자세히 볼 필요가 있었다.
‘이게…… 나?’
황금안으로 들여다보는 클레어의 모습은 평범한 기사의 모습과는 달랐다.
거울 속의 자신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짙은 마력에 둘러싸여 있었다. 전신에 넘칠 듯이 흐르는 마력과 같은 것이었다.
‘……아니야.’
시간을 들여 관찰하면, 황금안이 더 자세한 진실을 알려 주었다.
클레어는 알 수 없는 마력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마력은 모두 그녀의 체내에서 발현된 것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고 불길하다 느껴지는 마력의 출처는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어느새 자신의 마력이 이런 성질을 띄게 된 것인지, 미처 알아차릴 틈이 없었다.
아즈모디아가 거울에 무언가 수작을 부려 환각을 보여 주는 것이라 치부할 수도 없었다. 황금안은 그것이 진실이라 말하고 있었다.
거울 너머에서 아즈모디아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깨달아라.”
“……!”
클레어가 헛숨을 들이켰다.
“진정한 너 자신을.”
그 마력은 처음 보는 것이 아니었다. 이전에도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다.
게다가 지금도 볼 수 있었다. 얼마 남지 않았지만, 아즈모디아가 가지고 있는 마력이 그와 비슷한 성질을 띄고 있었다.
클레어가 이를 까득 깨물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죠?”
“설명할 필요도 없지 않나.”
아즈모디아가 클레어의 눈을 가리켰다. 긴 설득이 필요하지 않다는 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아즈모디아에게 희소식이었다.
클레어 역시 아즈모디아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사도. 클레어가 그들과 동족이라는 의미였다.
“헛소리를……!”
챙강!
클레어가 검으로 거울과 함께 아즈모디아의 몸을 꿰뚫었다. 심장을 관통하는 일격이었다.
아즈모디아의 몸은 피륙을 가르는 소리도 없이 텅 빈 것처럼 클레어의 칼날을 받아들였다.
텅 빈 몸속으로부터 마지막 남은 마력이 솟구쳤다.
갈곳을 잃은 마력들이었다. 사도가 발하는 마지막 단말마와 같이 뿜어낸 마력이 허공에 흩뿌려졌다.
약육강식의 세계인 마계에서, 강자들이 죽고 남긴 찌꺼기는 다른 이들을 위한 더할 나위 없는 양분이 된다. 특히 사도 정도 되는 이들이 남긴 것이라면 누구나 탐을 낼 정도였다.
그러나 누구나 그 마력을 취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높은 밀도의 마력은 약자에겐 닿는 것만으로도 몸을 녹여 버리는 맹독이 된다.
마력이 품격에 걸맞는 주인을 고른다고도 할 수 있었다.
‘마력이…….’
장서주의 마력이 클레어의 몸을 향해 가까이 다가왔다. 새로운 주인을 향해 양도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 클레어가 사도의 자격이 있는 존재라는 의미였다.
“이런 거…….”
클레어가 질색을 하고 떨쳐 냈다.
“필요 없어!”
클레어가 검을 휘둘러 장서주의 마력을 흩어 버렸다.
그러나 사도급의 마력을 지우기 위해 필요한 것 역시 그와 걸맞는 위계를 갖춘 마력이었다.
클레어의 몸에서 주체할 수 없이 마력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싸움은 모두 끝났고, 이제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데도. 마력의 분출은 비탈길을 구르기 시작한 바위처럼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윽……!”
끝없이 솟아오르는 마력이 클레어의 몸을 물들이고 있었다. 거기에 먹히지 않는 방법은 곧바로 떠올랐다.
‘전부 밖으로 빼내면……!’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이었다. 이걸 전부 바깥으로 쏟아 내면 마력 그 자체가 의지를 가지고 새로운 무언가가 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거기에 먹히진 않을 수 있었다.
새로운 적이 생긴다 한들 다시 한번 싸우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장서주의 목소리가 그런 클레어의 발목을 잡았다. 곧 끊어질 것 같은 희미한 목소리였다.
“쏟아 낼 건가. 그 마력을 전부?”
그야 그것 밖엔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클레어는 곧 장서주가 왜 그런 질문을 던졌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도율 씨가……!’
도율이 아직 아즈모디아가 쏟아 낸 거대한 마력을 소화시키고 있었다.
“지금이라면 폭발은 그리 크지 않겠군. 너희 둘이 희생하는 걸로 승리하고 싶은 거라면 말리진 않겠다.”
아즈모디아가 옅은 숨으로 쿡쿡거리며 힘겹게 웃음소리를 뱉어 냈다.
아즈모디아의 말대로였다. 클레어가 지금 여기서 마력을 방출하면 도율이 다루고 있는 마력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지금도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상황인데, 그렇게 균형이 깨지고 나면 겉잡을 수 없는 상황을 초래할 게 뻔했다.
“자. 어떻게 할 거지?”
아즈모디아가 즐거운 듯이 클레어의 선택을 기다렸다.
* * *
콰직!
도율이 줄어든 마력을 깨뜨렸다. 긴 시간 내공을 불어넣어 소멸시킨 덕분이었다.
좀 더 시간을 들이면 완전히 소멸시킬 수도 있었지만, 도율은 그걸 기다리지 않고 강제로 마력을 깨부쉈다.
그 여파로 폭발이 일어나 주위가 열기와 섬광에 휩싸였다.
그러나 도율은 개의치 않고 충격을 견뎌 내며 주위 시야를 살폈다.
‘클레어는?’
모든 집중을 발휘해 아즈모디아가 쏟아 낸 일격을 소멸시키고 있었지만, 주위 상황을 전혀 못 볼 정도는 아니었다.
아즈모디아가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도율을 공격하는 순간 클레어가 막아선 것. 그리고 클레어가 도율로부터 떨어뜨려 놓듯 멀어진 것까진 확인했지만.
‘그 다음, 어떻게 됐지?’
클레어가 그 상태의 아즈모디아에게 졌을 거란 생각을 하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무언가 심상치 않은 마력의 기류가 솟구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당장 가 봐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조성할 정도였다.
도율이 클레어를 찾아 땅을 박찼다.
그렇게 도율이 주위를 탐색하던 도중, 익숙한 뒷모습을 발견했다.
“클레어 씨!”
이 황량한 대지에서 금색 머리카락을 가진 뒷모습의 여인은 한 사람밖에 없었다.
그러나 클레어는 도율의 부름에 돌아보지 않았다. 도율은 어째선지 섣불리 클레어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등을 돌린 클레어로부터 평소와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 하나를 위해, 나머진 모두 죽어도 좋다니.”
분명히 같은 목소리일진데, 도율은 머릿속을 긁는 듯이 소름이 끼쳤다.
“너무 제멋대로라고 생각하지 않니?”
툭.
클레어가 발을 들어 무언가를 가볍게 찼다. 그러자 무언가가 기울어지며 바닥 위로 쓰러졌다.
검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리며 죽음에 이른 아즈모디아의 사체였다.
“집착이 지나친 남자는 소름이 끼친다니까.”
웃음기 담긴 목소리였다.
클레어의 검은 구둣발이 아즈모디아의 가슴팍을 밟고 있었다. 하지만 클레어는 적이라 하더라도 그 사체를 밟고 서는 일이 없었다.
도율이 물었다.
“넌 누구지.”
“…….”
클레어는 잠시 침묵하며 뜸을 들이고는 답했다.
“자기 할 말만 하는 남자도 별론데.”
직후 클레어가 몸을 돌렸다.
옷차림이 평소와 달랐다. 은색 갑주와 빛나는 검을 지니고 있던 모습과 달리, 가시를 엮어 만든 듯한 검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검은 필요 없는 것처럼 주위에 덩그러니 버려져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클레어의 모습을 한 여자가 싱긋 웃으며 치마 끝자락을 잡았다.
“내가 요정주(料精主), 세레나.”
요정주.
수십 년 전 불현듯 자취를 감추었던 사도 중 한 명의 이름이었다.
“네가…….”
도율이 잇새로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
“클레어의 몸을 뺏은 건가?”
그 물음에 세레나는 눈을 깜빡이더니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아니, 그런 거 아니야.”
“그럼…….”
그 똑 닮은 모습은 뭐지. 아니라면 지금 클레어는 어디에 있지.
나오지 않는 질문에 답하듯 세레나가 설명했다.
“나야.”
“뭐…….”
“내가 클레어야.”
몸을 빼앗는다거나 정신을 지배했다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세레나는 매끄럽게 말을 이었다.
“기억을 지우고, 마력을 버리고. 피와 살로 이루어진 나약한 몸에 정신을 가둬서, 인간처럼 살았지.”
“…….”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은 거야.”
세레나는 도율이 알고 있는 클레어는 원래부터 요정주와 동일인물이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잠자코 이야기를 듣던 도율이 고개를 저었다.
“네가 클레어를 숨겨 두고 날 속이고 있다는 보장이 어디 있지?”
“내가 왜 그런 번거로운 짓을 하냐구.”
세레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도통 믿을 기색이 없는 도율이 답답하다는 듯이.
그런 도율의 정곡을 찌르듯이 세레나가 옅은 미소를 띄고 물었다.
“사실 너도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잖아.”
“내가 뭘.”
“성장이라면 이렇게 빠를 수 없지.”
세레나가 말하는 건 도율도 의아하게 여기던 부분이었다.
현대에서도 클레어의 마력은 다른 각성자들에 비해 성장이 빨랐다. 어린 나이에도 촉망 받는 헌터로 주목 받고 있었던 것은 신체 능력이 아니라 마력 덕분이었다.
그러나 그게 재능이라고 부르는 영역의 경계선이었다.
마계에 온 이후 클레어는 전투를 거듭해도 지치지 않았다. 오히려 먹어치우듯 더 많은 마력을 손에 쥐었다. 실전 경험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그건 성장이 아니라, 잃어버렸던 것을 회복하는 과정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회복은 한계를 모르는 것처럼 끝없이 뻗어 나가, 사도의 마력에 필적하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너, 날 찾았잖아.”
“…….”
많은 것들이 생략된 말에도, 도율은 그게 언제를 말하는 건지 단숨에 알아챘다.
도율이 조룡주를 쓰러뜨리고, 잠시 회복한 후에 백우진에게 상황 설명을 들었을 때. 다른 이들이 도율 없이 성각주와 전투를 벌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 전투를 돕기 위해 가능한 빨리 합류하려던 순간이었다.
“네가 라크자르 꼬맹이를 쓰러뜨리고 이쪽으로 합류했을 때…… 넌 사도의 기운을 쫓아 위치를 찾을 수 있었잖아.”
세레나가 노래하듯 재잘거렸다.
“그때 아스텔라는 이미 쓰러지고 없었는데도 말이야.”
세레나의 말대로였다.
도율이 사도의 기운을 쫓아 그곳에 도착했을 때 이미 성각주는 세케르와 샤디아, 그리고 클레어의 손에 의해 쓰러진 후였다.
단 세 명의 힘으로 한 명의 사도를 쓰러뜨렸단 사실에도 놀랐지만. 도율은 그보다 큰 의문을 모른 척하고 있었다.
사도를 이미 쓰러뜨렸다면, 도율이 감지했던 기운의 정체는 무엇이었을지.
어쩌면 소멸하기 전의 성각주가 남기고 간 마력일지도 모르지만. 그랬다면 계속해서 정확한 위치를 느낄 수 없었을 텐데.
“너. 그때 날 모른 척했잖아.”
세레나가 비밀을 들추며 즐겁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