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265
265화 팬서비스
– 댁 정도 되는 작자가 왜 몰래 이런 더러운 동네까지 몸소 행차하신 거지?
며칠 전.
백우진과 도율이 방문하기 이전, 손님이라는 명목으로 토마스를 찾아온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사막에서나 볼 법한 케이프로 눈을 제외한 얼굴을 가린 남자였다.
외형은 가렸어도 실력을 드러내면 보통 사람이 아니란 건 누구나 알아챌 수 있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이름을 숨기지조차 않았다. 적어도 토마스에게는 사실대로 말했다.
태양의 아들, 세케르.
– 이곳에 내 가족이 있다. 너라면 어디 있는지 알고 있겠지?
그의 왼쪽 눈동자가 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마계 원정에서 되돌아오고, 희생이 뒤따른 승전의 뒤처리를 끝마치고 나서. 세케르의 왼쪽 눈에 비친 진실이 말하고 있었다.
샤디아가 이곳에 있다고.
– ‘흐리군…….’
애속하게도 그 이상으로 자세한 걸 볼 수는 없었다.
원래는 두 눈동자에 깃들어 있던 힘이었다. 그걸 나눠 가진 데다가, 세계 전체에 덧씌워진 마력이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불야성에 있다는 건 알아챌 수 있었어도, 그 이상으로 자세히 특정할 순 없었다.
덕분에 여기서부턴 토마스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 ‘이 자는 원래부터 샤디아와 알고 지냈으니.’
하나의 세계 위에 두 개의 기억이 공존하기 이전부터, 토마스는 샤디아와 어울려 지내는 사이였다.
그렇다기보단 샤디아가 부리기 좋은 호구를 데리고 다니는 듯한 느낌이었지만.
세케르는 지금도 그 관계가 크게 변하진 않았으리라 짐작했다.
토마스가 한숨을 내쉬고 답했다.
– 확실히. 그 녀석이 이 도시에 머무는 건 사실이지만, 구체적으로 어디에 있는지는 나도 몰라.
도둑 고양이 같은 성질을 가진 샤디아는 불야성 내에서 거점을 정해 두지 않고 흥미거리를 찾아 마구 돌아다니며 지냈다.
– ……그런가?
– 그래. 뭐, 허가증은 써 줄 테니 알아서 찾아보든가.
그러자 세케르가 고개를 숙였다.
– 고맙다.
– …….
아무도 보는 이는 없었지만, 토마스는 간담이 서늘했다.
이 유명한 작자가, 가족의 일이라고는 하지만 자신에게 고개를 숙였다는 사실이 밖으로 새어 나가면 얼마나 귀찮은 일들이 벌어질지.
안 그래도 이상하게 추종자들이 불어나고 있어서 성가셔 죽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 훠이, 훠이.
토마스가 손을 내저었다.
* * *
‘여기에서도…….’
도율의 머릿속에 새로운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과는 상당히 다른 분위기였지만, 도율은 이전에도 이곳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투기장.
불야성에 단 한 명의 주인이 있던 시절, 음지에서 규칙과 제약 없이 싸우는 각성자들의 모습을 보여 주던 불법 격투 시설과 대회가 있었다.
도율도 그곳에 참가했던 경험이 있었다. 그와 관련된 기억이 떠올랐다.
‘토마스. 그래, 기억난다.’
앞장서서 걷고 있는 금발의 남자가 그 투기장의 랭커 중 하나였던 묠니르 토마스였다.
음지 생활에서 손을 털고 라이센스를 취득해 헌터로 활동한다 하더라도 부를 곳은 많을 텐데.
어째서 투기장이 사라진 지금도 이곳에 머무르는 건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요컨대, 당신도 세케르가 어딨는진 모른단 말이군요?”
“그래. 직접 찾는 수밖에.”
“알겠습니다.”
딱히 자취를 감추기 위해 불야성에 숨어든 게 아닐 테니, 마주친다면 금방 알아볼 수는 있을 터였다.
백우진이 앞장섰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며 정보를 구해 범위를 좁히다 보면, 세케르 정도의 각성자는 감지할 수 있었다.
뒤따라 걷는 도율의 곁에서 토마스가 슬쩍 물었다.
“이봐.”
“뭐지?”
백우진에게 들리지 않기 위해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고 있었다.
“우리 진짜 친구 맞나?”
“…….”
“저 무슨 생각 하는지 모를 놈은 뻔뻔스럽게 그렇다 했지만, 못미더워서 말이지.”
백우진은 이미 토마스에게 간단한 설명을 마친 상태였다.
클레어가 기억을 덧씌운 탓에 토마스가 지금 기억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과거가 공존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그리고 도율과 백우진은 그 또다른 과거를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그건 그렇다 치고.’
확실히 여러모로 알고 있는 게 있으니 그건 대충 믿는다 쳐도.
‘진짜 친구였을지 어떨지는 모르는 거지.’
어쩌면 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걸 떠보기 위해 토마스는 도율에게 슬쩍 질문을 던졌다.
‘이놈, 왠지 거짓말은 못 할 상이다.’
게다가 토마스라면 인간의 반응을 번개보다 빠르게 포착할 수 있었다. 거짓말을 한다면 필연적으로 내보일 수밖에 없는 반응을, 토마스에겐 절대로 숨길 수 없었다.
도율이 떨떠름한 얼굴로 대답했다.
“글쎄…….”
도율의 기억 속에서도 토마스와는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었다. 이런 곳에 있는 것 치고, 나름대로 상식적인 남자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친구라고 선뜻 말할 정도로 친하게 지냈냐고 묻는다면.
“친구라고 해야 하나…….”
토마스가 도율의 반응을 상세히 살폈다. 도율의 말에는 거짓이나 꾸밈이 없었다.
대답은 애매하기 짝이 없었지만, 반응은 순수했다.
‘아아, 그런 건가.’
그런 도율의 반응에 토마스가 피식 웃으며 도율의 어깨를 주먹으로 툭 쳤다.
“바보 자식.”
“……?”
토마스가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사나이들은 말로 하지 않아도 이미 친구인 법.”
“……?”
“좋아. 진짜 도와주지.”
토마스가 폰을 들어 어디론가 연락을 넣었다.
“부하들한테 시켜서 세케르의 흔적을 찾아보지. 목격담을 취합해 보면 어느 근처에 있는지 정도는 알 수 있을 거다.”
세케르의 흔적을 쫓는 건 그의 마력 파장을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불가능하지만, 사람들에게 말을 물어보는 거라면 토마스의 부하들도 가능했다.
이쪽 거주민들과의 면식을 생각해 보면 토마스의 세력이 나서는 게 가장 효율적인 일이기도 했다.
“……어, 그래. 고맙다.”
토마스가 손가락을 총 모양으로 펼치고 가볍게 들어올렸다.
감사 인사는 됐다는 뜻이었다.
* * *
“정보를 취합해 보면 이쪽에 있을 확률이 높아 보이는군.”
토마스가 길을 안내하자, 뒤를 따르며 백우진이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금방 알아낸 겁니까?”
“뭐, 그게 정보의 힘이지.”
제아무리 목격담을 모은다 한들 그것만으론 한계가 있었다.
세케르가 얼굴을 드러내놓고 다니는 건 아니었으니, 정확하게 그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인간 따윈 이곳에서 넘쳐났다.
세케르로 여겨지는 남자라면 이 도시 내에 수백 명도 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쪽은 그 작자가 샤디아를 찾으러 왔다는 걸 알고 있으니, 샤디아가 갈 만한 곳을 동시에 추리면 되는 거거든.”
“그녀가 어디 있는지는 당신도 잘 모르는 것 아니었습니까?”
“정확히는 모르지만, 대강은 알지.”
토마스와 샤디아는 투기장 시절부터 연이 있었다. 어울린 기간이 짧지 않아 그녀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 잘 알았다.
토마스가 손가락을 접으며 설명했다.
“개싸움이 자주 벌어지는 곳. 싸고 좋은 술이 많은 곳. 여차할 땐 지붕을 타고 도망갈 수 있는 곳을 좋아하지.”
“아, 예…….”
정상적인 감성을 가진 사람이 좋아할 만한 장소들은 아니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자랑스레 말하는 토마스의 면전에 대고 하기엔 어려운 말이었다.
그런 설명을 듣고 나니, 토마스가 안내하는 곳이 더러운 뒷골목을 깊게 헤집어 들어가야만 하는 것도 이해가 됐다.
마침내 복잡하게 뒤틀린 골목 사이로 모습을 감춘, 아는 사람들만이 올 것 같은 조용한 술집을 마주했다.
“여기도 샤디아가 좋아하는 가게 중 하난데. 세케르가 찾는 건 이런 장소다.”
도율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케르를 만나기 위해 샤디아를 찾는 세케르가 갈 법한 샤디아가 자주 가는 장소를 찾아간다는 전략이군.”
“복잡한 헛소리는 집어치워라.”
“…….”
토마스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삐걱거리는 소음이 귀에 거슬리도록 크게 들렸다.
“이봐, 주인장. 있나?”
아직 문을 열기엔 이른 시간이었지만, 가게 안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흠……?”
손님은 없더라도 주인장은 준비를 할 시간이었는데. 이 시간에도 보이지 않는다는 건 이상했다.
털썩.
누군가 나자빠지는 소리와 함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합니다, 형님…….”
쓰러진 남자는 토마스가 익히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영택아!”
이 불야성에서 토마스를 따르고 있는 세력의 조직원 중 하나였다.
“누구냐! 어떤 새끼가 이런 짓을……!”
“그러게 그렇게 급하게 사람을 풀면 쓰나.”
어둠 속에서 누군가 이죽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이렇게 적은 인원이서 돌아다니고 말이야.”
“강철우……!”
강철우.
불야성에서 토마스와 마찬가지로 커다란 세력을 이루고 있는 조직의 보스 중 하나로, 토마스와는 성향이 맞지 않아 평소…….
“잠깐, 잠깐.”
도율이 토마스에게 물었다.
“이거 짜고 치는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 있냐!”
토마스가 버럭 소리 질렀다.
도율과 말싸움 할 시간이 없었다. 떡이 되도록 두들겨 맞은 놈을 데리고 급히 의사라도 찾아가야 할 판이었다.
물론 저놈들이 순순히 보내 준다면의 이야기였다.
“이 개자식들아. 여긴 중립 구역이잖아.”
“중립 구역? 그건 네가 정한 것 아닌가? 내가 정하기로 오늘부터 여기는…….”
강철우가 나무 테이블 위로 단검을 찍었다.
“내 구역이다.”
도율이 백우진에게 물었다.
“이거 아무래도 우리가 거들어야 할 분위기죠?”
“그래 보입니다만.”
강철우가 도율과 백우진을 가리켰다.
“못 보던 얼굴들이군.”
강철우가 비릿한 웃음을 머금으며 제안했다.
“도망치겠다면 말리진 않으마.”
이곳에 토마스의 편은 단 셋. 그것도 외부인으로 보이는 도율과 백우진을 포함한 결과였다.
그 둘이 도망치고 나면 혼자 남은 토마스가 아무리 강하다 한들, 지금 모인 강철우의 패거리를 당해 낼 수는 없으리란 계산이었다.
그 말에 도율과 백우진이 마주보았다.
“가위 바위 보?”
“……지는 사람이 하는 겁니까?”
“당연히 이기는 사람 거죠.”
의견을 맞춰 보니 합의할 지점이 보였다.
“오케이. 그럼 제가…….”
“둘 다. 손 대지 마라.”
파지직!
토마스가 앞으로 나섰다. 그의 발걸음으로부터 새가 지저귀는 듯한 번개 소리가 찢어질 듯 울리고 있었다.
“이 쓰레기들은 내가 처리한다.”
토마스의 말에 도율과 백우진이 양손을 들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강철우의 세력들은 비웃음을 머금었다.
“이야. 역시 쇼맨십 하나는 죽여주네.”
“어이, 여긴 링 안이 아닌데? 괜찮겠어?”
“킥킥. 그러게 스타 양반이 이런 곳까지 오면 안 되지.”
“…….”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토마스가 활약했던 검투 경기가 짜고 치는 연극이었다고 생각하기라도 하는 모양이었다. 그곳에서 제아무리 유명한 검투사였다고 한들, 실제 실력은 별거 아닐 거라고.
이들은 투기장이 무너진 이후에 흘러들어 온 유입 세력이었다.
토마스 역시 그 이후로는 싸움엔 손을 대지 않았으니, 결국 이들은 토마스가 직접 싸우는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렇다 한들 이곳 불야성에서 토마스의 무위는 아직까지도 함부로 평가 절하할 수 없는 위치에 자리매김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그것이 과장된 소문이나 언론 플레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었다.
‘실수했군.’
좀 더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젊은 혈기 때문에 당장의 기회에 눈이 돌아가버린 것. 누구나 할 수도 있는 실수였다.
하지만.
‘그 실수 때문에 죽게 될 거다.’
토마스의 이빨은 아직 빠지지 않았다.
“하핫. 그 투기장에 잘 빠진 년도 하나 있었다던데. 역시 장사하는 양반들이 뭘 좀 안다니까. 그런 볼 맛이 있어야 티켓이 팔리지. 아니면, 다른 쪽 티켓도 좀 팔았으려나?”
그 말을 내뱉은 남자가 길게 혀를 빼밀었다.
토마스가 손가락을 뻗었다.
“그 더러운 혓바닥으로 흑희를 입에 담지 마라.”
콰지직!
번개가 내리꽂혔다.
“……?!”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내리치자, 그 말을 했던 남자의 몸이 숯처럼 새까맣게 그을렸다.
고기가 타들어 가는 코를 찌르는 냄새와 함께 그의 몸이 무너져내렸다.
그의 일행들이 믿기지 않는 듯한 눈으로 그 결과를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는 와중에, 토마스가 입을 열었다.
“영 어색하군.”
그의 몸 주위로 번개가 몰아쳤다.
“오랜만의 팬서비스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