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266
266화 오랜만이네
“간단한 치료는 마쳤지만, 의사에 보여 주는 편이 좋을 겁니다.”
백우진이 토마스의 부하라던 남자를 치료한 후에 말했다.
이곳에서 토마스의 부하를 습격하고 토마스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놈들은 이미 모두 토마스의 손에 정리된 이후였다.
그들에게 심하게 당한 것 같았던 토마스의 부하는, 일단 급한 대로 백우진이 요기를 통해 간단히 치료해 둔 상태였다.
“고맙다.”
토마스가 고개를 숙였다.
시간이 지나자 소식을 들은 조직원들이 찾아와 부상자를 데려갔다.
따로 더 해야 할 일은 없었다. 적대 세력을 처리하는 건 모두 토마스의 손으로 해치우고 난 이후였으니까.
토마스가 의자에 걸터앉아 이야기했다.
“내가 이놈들을 건드리고 있지 않았던 건, 이 도시가 끝없이 자유롭길 바라는 여자의 바람 때문이었다.”
원래라면 토마스는 힘과 유명세를 사용해 불야성의 모든 지역을 장악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토마스는 그런 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가 해 왔던 것은 단순한 도시 재건이었다. 그의 세력 역시 지배 따위엔 관심이 없는 놈들만 모여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을 바란다고 해서, 이대로만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 사실을 알려 주는 것이 오늘과 같은 사건이었다.
수많은 세력이 밀집해 서로 덩치를 불리기 위해 몸을 비비고 있으면, 필연적으로 갈등이 탄생했다.
“대의와 사랑.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뭐가 옳은 건지…… 너는 아나?”
“……몰라.”
도율이라고 해서 그 질문의 해답을 알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런 걸로 깊게 고민해 볼 만한 처지도 아니었다.
“둘 다 노력하는 수밖에 없지 않나?”
“그렇긴 하지.”
토마스가 쓰게 웃었다.
끼이익.
낡은 경첩이 탄식을 지르고, 나무 판자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발걸음이 다가오는 것을 알렸다.
뒤숭숭한 분위기를 하고 있는 낡고 좁은 가게에 새로이 들어온 건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는 남자였다.
그가 안으로 들어오더니 후드를 벗었다.
“어수선하군.”
거무스름한 피부와 미역처럼 곱슬거리는 머리. 어둠 속에서도 한쪽 눈동자가 금색으로 빛나고 있는 남자.
세케르였다.
“댁인가…….”
이곳에서 세케르와 마주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한차례 소동이 있었던 탓에 예상이 적중했다는 기쁨은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토마스가 한숨과 함께 답했다.
“보다시피 오늘 장사는 글렀다.”
테이블이나 의자를 비롯한 가재가 모두 박살 나 있었다.
가게를 지키고 있던 주인도 강철우란 놈이 두들겨 패서 함께 병원 신세를 지고 있으니, 앞으로 한동안은 열 수 없었다.
토마스의 설명에 세케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와 동시에 주변에 있는 도율과 백우진도 알아차렸다.
“오랜만……이라고 해 둘까.”
개변 이후의 세상에서, 세케르는 본래 도율과 백우진과 만난 적이 없는 사이로 되어 있었다.
그러니 저들이 원래의 기억을 갖고 있는 게 아니라면 그런 세케르의 반응이 의아하겠지만.
“그래.”
도율과 백우진 역시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백우진은 애초에 기억을 잃은 적이 없었고, 도율은 힘을 되찾은 이후로 단서가 되는 것을 접할 때마다 떠올릴 수 있었다. 세케르의 얼굴을 보자 그에 대한 것도 떠올랐다.
세케르는 아직 왼쪽 눈에 남은 황금안의 힘으로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너희들 진짜 아는 사이였구만.”
유일하게 모르는 건 토마스뿐이었다.
* * *
“불완전하다고?”
세케르가 되물었다.
백우진으로부터 도율의 상태에 대한 설명을 들은 직후였다.
도율은 자신이 가진 힘에 대해서는 기억했지만, 다른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한 기억이 아직 흐릿했다. 덕분에 과거 행적을 되돌아가며 기억을 되찾으려 하고 있었다.
물론 기억에 구멍이 숭숭 뚫린 놈에, 별로 친하지도 않았던 백우진이 그걸 모두 알 수 있을 리가 없으니.
“그래서 나한테 저자의 과거에 대해 물어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케르가 잠시 관망했다. 그 말대로, 그가 가진 황금안은 도율의 과거에 대해서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그걸 일일이 나열해 주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지만.
“번거로운 일을 하는군.”
효율적으로 여겨지진 않았다.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본인이 저 상태라는데.”
백우진이 생각하기에는 방법이 없었지만, 세케르는 다른 해답을 내놓았다.
“한 번에 모든 기억을 되찾을 방법이 있다.”
“뭡니까?”
“그런 게 있다고?”
확신을 담해 말하는 세케르를, 도율과 백우진이 미심쩍은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을 향해 왼쪽 눈동자를 가리켰다. 황금안이 있는 자리였다. 안 그래도 그걸 써서 도율의 과거를 알아보자는 이야기 도중이었는데.
그러나 세케르는 그보다 더욱 충격적인 말을 내뱉었다.
“이걸 주지.”
“뭐……?”
황금안. 지금의 세케르를 만든 일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도율에게 넘겨주겠다는 말이었다.
“아니…… 제정신이냐?”
“누굴 제정신 아닌 인간으로 취급하는 거냐.”
세케르에게도 이유가 있었다.
백우진도 놀라긴 했지만, 짐작 가는 바가 있다는 듯이 그 의견을 받아들였다. 도율만 의아하게 생각하는 걸 보니 아직 모르는 듯한 눈치였다.
세케르가 설명했다.
“황금안은 원래 한 쌍이다. 지금 이건 내 왼쪽 안구에만 깃들어 있지만…… 나머지 오른쪽을 가져간 사람이 따로 있지.”
“그런 사람이 있다고?”
역시나. 도율은 아직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세케르가 피식 웃었다.
“그자를 상대하려면 너에게도 똑같은 게 필요할 거다.”
황금안의 유무는 유의미한 전력 차이를 만들어 냈다.
도율이 제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황금안을 가진 사도를 상대로 일방적인 결과를 이끌어 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 여겨졌다.
이 모든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도율에게도 황금안이 필요하다는 것이 세케르의 결론이었다.
“그러는 너도 동생을 찾으러 여기 온 거 아니었나?”
토마스의 이야기에 따르면 세케르 역시 동생인 샤디아를 찾으러 이 먼 곳까지 찾아온 것이었다.
어딨는지 모르는 사람을 찾을 때에도 황금안은 큰 힘을 발휘했다.
하지만 세케르는 눈을 지그시 감으며 부인했다.
“조금 오해가 있군.”
“오해?”
“내가 이곳에 온 건 샤디아와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럼?”
세케르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은 어두컴컴한 주점 안이어서 바깥 풍경이 제대로 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돌아본 것들을 되새기는 행위였다.
“그 녀석이 지내는 곳을 확인해 두고 싶은 것뿐이었다.”
그 말대로.
세케르는 원했다면 얼마든지 샤디아를 만나러 갈 수 있었다. 황금안이 있으면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특정하는 것 정도는 간단한 일이었다.
세케르가 샤디아를 만나지 않고 그녀가 자주 나타나는 곳에 다녔던 건, 그곳이 어떠한 곳인지 확인해 두기 위해서였다.
“이미 볼 만큼 봤지.”
그러니 샤디아와 만나지는 못했어도, 세케르에게는 황금안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렇다면야.”
도율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이식 받은 직후엔 머리가 좀 아플 거다.”
세케르가 경고했다.
“그래?”
“기억이 한꺼번에 몰려들 테니까.”
세케르 역시 한 차례 경험했던 일이었다.
마계 원정을 성공적으로 끝마치고 현대에 돌아왔다. 거기엔 그 어떤 문제점도 남아 있지 않다.
그렇게 머릿속에 새겨져 있던 기억이 한 번에 완전히 뒤바뀔 때의 감각. 숟가락으로 머리 안쪽을 긁어내는 듯한 기분이었다.
“참을 만하다고는 못 해 주겠군.”
“음…….”
왠지 시술을 미루고 싶다는 기분이 들기 시작한 도율과 달리, 세케르는 모든 준비를 끝마치고 말했다.
“그럼 간다.”
세케르의 왼쪽 눈으로부터 황금빛 기운이 몰아쳤다.
그 기운을 추출해 냄과 동시에 세케르의 눈빛이 갈색으로 돌아왔다. 오른쪽 눈과 같은 색이었다.
세케르가 조심스러운 손길로 힘을 인도하자, 도율의 몸에 새겨졌다. 도율의 왼쪽 눈동자가 서서히 금색으로 물들었다.
‘크윽…….’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안 그래도 마력과는 상성이 좋지 않았다. 이식을 받을 수 있었던 것만 해도 기적이었다. 반발로 인한 격통은 감수할 만한 결과였다.
황금안이 도율에게 옮겨진 이후.
왼쪽 눈동자로부터 지금과 전혀 다른 시야가 보였다. 마치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투과해서 바라보는 듯했다.
뒤바뀐 시계(視界)에 적응하며, 도율은 세상의 모든 것을 굽어살필 수 있었다.
‘기억이.’
덧씌워진 기억에 의해 가려졌던 진짜 과거가 드러났다.
“전부 떠올렸나?”
세케르가 물었다. 그의 눈동자에서는 더이상 금빛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
도율의 왼쪽 눈에서 투명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통증으로 인한 반사적인 반응에 가까웠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힘을 쓴 탓에, 지금은 너무 과열되어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전부 떠올랐다.
무엇을 잊고 있었는지. 그리고 지금 무얼 해야 하는 건지.
“필요할 거라고 했지?”
세케르의 말대로였다.
클레어의 오른쪽 눈에도 황금안이 깃들어 있었다. 그녀와 대등한 위치에서 대화하기 위해, 도율도 같은 조건을 갖춰야만 했다.
이제 찾아가기만 하면 되지만.
“어떻게 가지?”
마계에 있을 클레어를 만나기 위해, 거기로 향하는 문을 열어야만 했다. 도율은 그 방법을 알지 못했다.
세케르는 걱정할 필요 없다는 듯 백우진을 가리켰다.
“그거라면 이 남자가 알고 있을 거다.”
황금안을 넘겨주기 전에 미리 확인했던 내용이었다.
백우진이 갖고 있는 요기는 본래 망량의 것이었고. 다른 차원인 마계로 향하는 문을 여는 데에도 사용할 수 있었다.
“가능은 합니다만.”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백우진이 그렇게 조건을 붙이는 일은 드물었기에 도율이 물었다.
“한 가지만 약속 받겠습니다.”
“뭐죠?”
“결과가 어떻게 되든 간에, 이겨서 돌아오겠다고.”
도율이 의아하게 백우진을 바라봤다. 그런 감상적인 말을 할 만한 남자가 아니었다.
“어째섭니까?”
“보복당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보복?”
백우진이 가볍게 웃으며 설명했다.
“이도율 씨를 보내 주면, 약속 하나를 어기게 됩니다. 그러니까 제가 보복당하지 않도록 확실히…… 이기고 돌아와야 한다는 뜻입니다.”
백우진은 클레어와 약속했었다. 도율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게 하기로.
그러나 이렇게 도율이 힘을 되찾는 데에 일조하고, 마계로 향하는 문까지 열어 주게 된다면. 그건 완전한 배신이었다.
‘그래도.’
도율이 이기기만 한다면 아무런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도율이 그렇게 약속하자,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열겠습니다.”
요기가 몰아쳤다.
* * *
‘이건…….’
적막한 고성의 내부. 아무것도 없는 휑한 장소에 홀로 무릎을 끌어안고 있던 여자가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황량한 마계에 홀로 남은 고위격의 존재.
시간이 지나 그와 같은 힘을 가진 존재가 새로이 탄생할지도 모르지만, 지금으로선 그녀가 유일무이했다.
이곳 마계에서 외부로 통하는 연결고리를 모두 단절한 채로 지내오고 있었다.
그 외의 시간은 모두 조용히, 썩어 가듯 보낼 뿐이었다.
‘통로가……!’
그런 그녀가 유일하게 좌시하지 않는 것은, 이따금 열리는 균열이었다.
‘평소와는…… 달라.’
균열은 마력으로 가득찬 환경 탓에 벌어지는 우발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번 것은 그 방향성이 달랐다. 마계의 마력이 분출되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선가 강력한 힘으로 이곳을 향해 찢고 들어오고 있었다.
믿기지 않는 일이었지만.
‘누군가…… 여기로 오고 있다!’
그녀가 균열이 느껴지는 장소로 몸을 날렸다. 다소 거리가 있어도 순식간에 도달할 수 있었다.
쿠오오!
검은 하늘 위로 새하얀 기운이 기둥처럼 솟구치고 있었다. 신성한 존재가 승천하는 길을 밝히기라도 하는 듯했다.
새하얀 기둥 속에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걸어나온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남자는 공중을 부유하는 여자의 얼굴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들어야 했다.
“이거 참.”
피차 구면이었다.
“오랜만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