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270
270화 운명이 아니라면 (완결)
“뭐? 프러포즈?”
짧게 자른 금발을 가지고 있던 남자가 맥주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너, 그딴 거 물어보려고 사람을 오라 가라 한 거냐?”
“내가 너 있는 데로 가긴 싫으니까.”
“이 자식이…….”
도율의 말에 토마스는 인상을 찌푸릴 뿐 반박하지 못했다.
그야 평범하게 살아가기로 마음 먹은 인간에게 불야성은 불필요하게 발을 들여도 좋은 장소가 아니었다.
덕분에 이렇게 평범한 시내의 평범한 호프에서 모이게 된 것이었다.
“이런 말, 평소엔 잘 하지 않습니다만.”
옆에서 맥주잔을 기울이던 백우진이 물었다.
이 중에서는 유일하게 번듯한 기업에 출퇴근을 하는 몸이어서, 유달리 단정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이도율 씨, 혹시 친구 없습니까?”
“풉!”
백우진의 물음에 토마스가 웃음을 터뜨렸다.
“맞긴 해. 뭐, 그거 물어보려고 부른 인간들이 이 모양 이 꼬라지냐? 네 인간관계도 알 만하다.”
“당사자들이 할 말인가…….”
이번엔 도율이 맥주를 한 모금 삼켰다.
친구라면 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아직도 연락이 닿고 있는 놈이.
무림에서 돌아왔을 때에도 연락하고 술을 마셨었다. 친구 황진호는 그때에도 벌써 기혼자였다.
‘그때도 딸이 걸음마를 뗐다던데. 지금은 더 컸겠지.’
하지만 그 친구의 조언은 그다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학창 시절부터 저돌적인 성격으로 유명해서, 좋아하는 여자한테 맹렬하게 대시하기곤 했으니까. 프러포즈나 결혼도 그런 식으로 했을 게 분명했다.
도율에게 좋은 조언은 아니었다.
“전 이야기할 것도 없습니다. 지금은 일과 육아에 집중을 하고 있으니.”
“그런가…….”
백우진은 확실히 그쪽에 관심이 없어 보였지만.
‘딱히 걱정은 안 되는군.’
샤프하게 생긴 외모 덕분인지 알게 모르게 인기가 많았다.
백우진이 일찌감치 백기를 들자 토마스가 의자 등받이에 기대며 거드름을 피웠다.
“하. 역시 나뿐인가?”
“…….”
그런 토마스를 도율과 백우진이 떨떠름하게 바라보았다.
걱정이 된다고 한다면 이 녀석이었다. 남의 연애 사정까지 걱정할 정도의 사이는 아니었지만, 오래 알고 지내다 보니 오지랖이 넓어졌다.
시선에 녹아든 생각을 읽어 내지 못하고, 토마스가 몸을 테이블로 기울였다.
“뭐……. 어른들 사이의 연애라는 게 그렇게 시시콜콜하게 말로 할 필요가 있나.”
칙칙.
토마스가 어느샌가 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흘러가듯이 자연스럽게 하면 되는 거야. 서로 속박하지 않고. 그게 어른이지.”
“…….”
도율과 백우진이 슬쩍 귀를 맞댔다.
“아직도 어장 당하고 있습니까?”
“……냅둬라. 그게 어른의 연애라잖냐.”
샤디아의 성격이 워낙 자유분방한 탓에, 아직도 확답을 듣지 못한 상태였다. 토마스는 공황에 시달린 끝에 머릿속에서 제멋대로 결론을 내 버렸다.
그 모습이 안타까워도 해 줄 수 있는 건 염불을 외는 정도였다.
콱!
누군가 토마스의 머리채를 붙잡았다.
“어이, 양키.”
싸늘한 눈빛을 하고 내려보고 있는 건 가게 주인인 서지유였다.
“가게 안에선 금연이야. 몇 번을 말해?”
“미, 미안하다.”
불야성 내에선 거리낌 없이 피워도 되다 보니, 바깥에서의 상식을 잠깐 잊었다.
“혓바닥에 지져서 꺼 버릴라…….”
“당장 끄마.”
토마스가 불이 붙은 담배를 손바닥 안에 구겨 버렸다. 각성자여도 제법 뜨거웠지만, 내색할 수 없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서지유가 지나가듯 말을 흘렸다.
“그리고 저번에 샤디아 언니가 왔을 때 말해 주던데. 양키 너 수염 기르고 다니는 거 생리적으로 역겹다고.”
“뭣……?”
토마스가 턱을 쓰다듬었다.
그 말대로, 토마스는 요즘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도율이 보기엔 짧게 자른 머리와 어우러져 제법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서구의 영화 배우라고 해도 믿을 정도.
하지만 샤디아의 눈엔 영 아니었던 모양이다.
“……편의점 좀 다녀오마.”
토마스가 그렇게 말하며 뛰쳐나갔다.
“맨살에 면도 하면 상처 난다!”
도율이 그런 토마스의 등 뒤에 대고 조언을 날렸다.
* * *
“그런데 이제 와서 프러포즈라니. 두 사람은 이미 결혼한 거 아니었습니까?”
“그건 예전 얘기.”
도율이 귀환한 직후에, 클레어와 도율은 혼인 신고를 올린 상태의 가짜 부부였지만. 지금은 반대였다.
“클레어가 신분이나 행적을 싹 다 날려 버렸으니까. 지금은 행정상으론 완전히 깨끗하지.”
“그랬죠, 참.”
그 클레어의 새 신분을 만드느라 도움을 준 것도 각성자 지원 센터에서 일하고 있던 백우진이었다.
최강현이 사정을 봐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동거하고 있고. 사실상 부부나 다름없던데, 그게 중요합니까?”
“중요해.”
“왜죠?”
도율이 깍지를 끼고 엄숙하게 말했다.
“웨딩 드레스 입은 거 보고 싶어.”
“…….”
백우진이 고민에 진지하게 어울려 준 걸 후회하기 시작했다.
“성욕입니까?”
“…순정이야.”
“그럼 그렇다고 말을 해 보시지요.”
그렇게 자리가 마무리되었다.
편의점에 간다던 토마스는 어디까지 간 건지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고. 백우진 역시 집에서 홀로 기다리고 있을 백수아를 위해 오랫동안 붙잡혀 있을 순 없었다.
도율도 집으로 돌아갔다.
원래는 클레어의 집이었지만, 지금은 도율의 명의로 되어 있었다. 어쨌거나 두 사람이 함께 사는 집이란 건 변함이 없었다.
‘흰돌이 놈은……. 오늘도 없군.’
도율과 클레어가 함께 지내는 모습을 보더니 도저히 못 찾겠다며 자기도 반려를 구할 거니까 찾지 말라는 말을 남긴 채 밖으로 싸돌고 있었다.
그런 주제에 배고플 땐 가끔 집에 돌아와서 사료만 퍼먹고 다시 나갔다.
오래 지나지 않아 클레어 역시 돌아왔다.
“다녀왔어요.”
표정이 밝았다.
‘도은이랑 만나기로 했다던가.’
도율의 말대로. 이전의 일들은 모두 없었던 것이 되었지만, 지금부터 어떻게 할지에 대한 건 클레어의 선택에 달린 것이었다.
추억이 사라진 건 아쉽지만, 클레어는 다시 도은과 곧잘 어울리게 되었다.
“왜 거기서 그러고 있어요? 뭔가 할 말이라도 있는 거예요?”
“아니, 아무것도…….”
도율이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
아무리 그래도 프러포즈를 아무런 이벤트나 전조 없이 하는 건 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영상이라도 찾아볼까.’
요즘은 너튜브니 뭐니 하는 것들이 잘되어 있어서, 조금만 검색하면 얼마든지 예시를 찾아볼 수 있었다.
클레어가 씼으러 들어간 사이, 도율은 여러 프러포즈 영상들을 찾아보고 있었다.
‘레스토랑에서 식사, 호텔, 풍선, 촛불. 많구만……. 이거 진짜 이렇게 하는 거야?’
어쩐지 볼수록 자신이 없어졌다.
‘아. 멘트는 뭘로 하지…….’
영상 속에서는 프러포즈를 받은 여성이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 봐요?”
화면 바깥에서 들려온 클레어의 목소리가 도율이 화들짝 놀라며 핸드폰을 두드렸다.
“아, 아무것도.”
심장이 입 밖으로 뛰쳐나올 것처럼 뛰고 있었다.
“설마 도율 씨…….”
클레어가 미심쩍은 눈길로 도율을 바라봤다.
“야, 야동 봐요?”
“예?!”
도율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럼 뭐 보고 있었는데요?”
“그건…….”
그것도 대답할 수 없었다.
프러포즈할 방법을 모르겠어서 찾아보고 있었단 얘기를 당사자 앞에서 할 수는.
“…맞잖아요.”
클레어가 날카로운 눈초리로 도율을 노려봤다.
“아니, 진짜 아니에요. 애초에 그, 클레어 씨가 있는데 내가 그런 걸 왜 봐요?”
“서양보단 동양 쪽이 취향이라거나.”
“아니……!”
예상외의 말에 도율이 공구로 뒷통수라도 얻어맞은 듯한 기분을 느꼈다.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이상했다니까요. 얇은 차림으로 돌아다녀도 도율 씨, 그다지 신경도 안 썼고.”
“아니, 그건……. 말했다시피, 나도 내 나름대로 열심히 참은 거라니까요.”
“거짓말.”
세간 물정을 잘 모르던 때와 달리. 클레어도 이제는 어엿한 상식인이었다.
“다 알아요. 표정은 연기로 속일 수 있어도, 몸이 반응하는 건 생리적이라 절대 감출 수 없다고!”
“…그런 건 어디서 들었는데요?”
“너튜브에서.”
도율이 두눈을 질끈 감았다.
‘너튜브야, 제발.’
너튜브가 만악의 근원이었다.
“그러니까, 그건…….”
“억지로 변명 쥐어짜 낼 필요 없어요. 사람마다 취향은 천차만별인걸요. 난 어차피 책임감 때문에 억지로 거둬들인…….”
“점혈입니다, 점혈.”
도율이 차분히 설명했다.
“혈자리를 누르면 양기가 의도하지 않게 솟구치는 걸 막아 둘 수도 있어서, 예. 처음부터… 해 뒀었죠.”
굳이 말한 적이 없었을 뿐이었다. 그야 쪽팔리니까.
클레어가 한쪽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그럼 지금도?”
“…예.”
“흐음.”
도율이 수치스러움을 무릅쓰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 클레어가 도율의 몸을 쿡쿡 찔렀다.
“아, 진짜다.”
“……?”
갑자기 뭘 한 거지.
도율이 의아해하는 순간. 클레어의 한쪽 눈동자에 얼핏 황금빛이 스쳐 지나가는 걸 볼 수 있었다.
‘설마…….’
짐작은 사실이었다.
도율이 막아 뒀던 혈자리를 클레어의 손가락이 역으로 되짚어 풀어내 버렸다. 어떻게 할 수 있었는지는 물을 것도 없었다.
사고력이 조각난 것처럼 이후에 해야 할 행동을 떠올릴 수 없었다.
멍하니 있는 사이에 향기로운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그러고 보니 클레어는 금방 샤워를 하고 나오는 길이었던가. 샴푸 냄새가 진동을 했다.
평소 하얗던 클레어의 피부가 불그스름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꺅……!”
도율이 클레어의 어깨를 붙잡고 벽으로 밀어붙였다. 클레어가 가냘프게 눈을 뜨고 그런 도율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율은 호흡을 참으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다시 되돌려 놓으시죠?”
“음…….”
대답에 뜸을 들이는 클레어의 눈가가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클레어가 혀를 빠꼼 내밀며 대답했다.
“싫은데.”
그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 * *
“좋아요.”
“…네?”
다음 날 아침.
눈을 뜬 도율의 곁에서 히죽 웃고 있던 클레어가 한 말이었다.
한 침대에서 일어나는 일이 처음도 아니었 건만, 오늘따라 도율은 견디기 어렵도록 부끄러웠다. 간밤의 기억이 드문드문했다.
클레어가 다시 한번 대답했다.
“좋다고요.”
“그러니까, 뭐가……?”
도율이 의아하게 클레어를 바라봤다.
클레어는 기억하지 못할 줄 알았다며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쿡쿡 웃고는 설명했다.
“결혼하자면서요, 좋다고요.”
“결혼…하자니. 내가?”
“네.”
“설마……. 어젯밤에?”
“네. 어젯밤에.”
도율이 머리를 마구 쥐어뜯었다.
이런 등신 자식. 무슨 고백을 해도 그런 타이밍에 하지.
하지만 어제는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다. 묶어 뒀던 양기가 어디로 빠져나가는 건 아니었는지, 한 번 풀어헤치니 모든 걸 쏟아 내고야 말았다. 인간적인 사고라고는 조금도 할 수 없었다.
자괴감에 빠져 있던 도율이 중얼거렸다.
“취… 취소.”
“네에?”
“다시 할게요.”
“그래요? 호텔도 아니고, 반지도 없는데 다시?”
“그런 것까지 다 말했나…….”
서프라이즈는 이미 다 말아먹었다.
좌절하는 도율을 향해 클레어가 마지막으로 부추겼다.
“자, 마감 임박이에요. 지금 한 번만 받아 줍니다. 할 거면 해 보세요.”
준비된 건 아무것도 없었다.
“클레어 씨.”
잠에서 깬 지 얼마 되지 않은 머리로 쥐어짜 낼 수 있는 건, 결국 평소 하던 생각뿐이었다.
“당신과 만나게 된 건 내 선택이 아니었지만…….”
처음엔 영문도 모른 채 그녀와 함께하게 되었지만. 지금은 분명히 말할 수 있었다.
이것은 스스로의 선택이라고.
“당신과 함께하기로 결정한 건 확실하게 말해서, 내 의지입니다.”
이럴 때 반지라도 건네면 좋으련만. 허전함을 느끼면서도 도율이 말을 이었다.
“가족도, 친구도 없는 세상으로 돌아와야 했던 당신이 행복할 수 있도록, 내가 평생 도울게요.”
도율이 손을 내밀었다.
“나와 결혼해 주겠소?”
그 물음에 클레어가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말투 뭐예요?”
“아, 실수…….”
너무 긴장한 나머지 말이 헛 나오고 말았다. 그래도 더듬거나 하진 않았으니 그나마 양반이었다.
클레어가 짐짓 고민하는 척하며 뺨에 손을 올렸다.
“도와준다고 했으니, 한 가지만 도와주면 받아들일게요.”
“뭐죠?”
도율이 냉큼 대답하자, 클레어가 양팔을 벌렸다.
“욕실까지… 좀 안아 주겠어요? 못 움직이겠거든요, 사실은.”
“아…….”
“누구누구 씨 때문에.”
클레어가 장난스럽게 미소짓자, 도율이 클레어를 번쩍 안아 들었다.
“분부대로.”
옮겨지는 동안 클레어가 시선을 물끄러미 아래로 내렸다.
“이거 뭐예요? 또 하고 싶어요? 어제 그렇게나 해 놓구선. 어제도 아니고, 날짜로 따지면 오늘인데.”
“아니, 이건 아침이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막상 시간이 지나니 생각이 바뀌었다.
“…그냥 할까요?”
그러자 클레어가 즐거운 듯이 재잘거렸다.
“이상하다? 어젠 물어보고 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자꾸 놀릴래!”
“꺅!”
욕실에서 옅은 물이 찰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정해진 결과를 운명이라 부른다.
실종되기 전에 미혼이었던 도율이, 10년 만에 돌아와 보니 얼굴도 모르는 여자와 결혼한 채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이렇게 되리란 것은 애초에 정해져 있는 결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도율은 그것을 운명이나 불가피한 상황이라 여기지 않았다.
도율이 클레어와 함께 하기로 결정한 것은 온전히 스스로 선택한 결과였으니까. 수많은 일을 겪은 끝에 내린 결정이었으니까.
‘운명이 아니라면.’
도율이 클레어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지금부터의 시간을 모두 그녀와 함께하리라.
‘의지…라고 부르는 거겠지.’
앞으로도.
변치 않고 영원히.
– FIN –
후기
안녕하세요. 백하임입니다.
2023년 10월 9일, 저는 을 완결 내고 이렇게 후기를 작성합니다.
우선 독자 여러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270화. 쓰는 저도 길다고 느꼈지만, 읽으시는 독자 여러분들께도 결코 적은 분량은 아니었을 텐데 긴 여정을 함께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첫 연재분을 업로드한 날짜가 2022년 10월 2일이었기 때문에, 기간상으로 본다면 약 1년가량 연재를 한 셈이 되겠네요.
공휴일을 비롯해 며칠인가 휴재를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긴 휴재 없이 1년간 연재해 완결을 냈으니 나름대로 성실하지 않았나. 하고 스스로 평가해 봅니다.(앞서 말씀드린 적이 있다시피, 제가 겸업 중이라 이 이상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유료 전환을 할 때에도 공지글로 후기를 남기긴 했지만, 지금은 그때와 달라진 생각을 전해 볼까 합니다.
사실 그때만 해도 전 제가 글을 무척 잘 쓴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소설 비슷한 걸 썼고, 학창 시절엔 작문에 재주가 있다는 소릴 들어왔습니다. 씹덕 팬픽을 써서 제법 인기를 끈 적도 있었고, 지금도 회사에선 기술 블로그(내부용)를 자주 씁니다.
다른 사람 글은 보기만 해도 (그게 얼마나 잘 팔리고 있는 글이든 간에…) 문제점이 척척 보이고, 해결할 방법이나 전개, 설정도 착착 떠올랐습니다.
이렇게 쉬운 걸 작가라 불리는 저 수많은 인간들이 제대로 해내는 꼴을 보기가 힘든 걸까. 그렇게 생각해서 저도 작가에 도전하게 됐죠.
말 그대로 시건방이 하늘을 찌르는 애송이였던 것입니다…….
무료 연재 작품에서 성적이 나오지 않아 작품을 엎을 때에도 단지 유입 독자가 적어서 그랬을 뿐이라고 생각했고, 결국 이 으로 생에 첫 유료 전환에 성공하고 나서는 역시 난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더랬죠.
하지만 (여기까지 보신 분들은 이미 다들 아시겠지만 ㅋㅋ) 전개를 제어하지 못하고 구매수를 와장창 깎아먹으며 제 역량의 부실함을 만천하에 떠벌리고 만 것입니다.
딱히 그 부분만 문제였나, 하고 되짚어 보면. 그 외에도 이런저런 문제들이 많았다는 점을 상기할 수 있습니다. 역시 남의 작품을 보면서 욕하는 것과 스스로 해내는 건 차원이 다른 일이더군요.
재밌는 글을 써내는 건 능력의 문제라고 해도, 연재분을 성실히 올리는 건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할 수 있는 건 일일 연재를 지키는 것 정도라 생각해, 그것만큼은 어떻게든 지키려 했던 게 떠오르네요.
그래서 매운맛을 한번 봤으니 다시는 이 구역에 발을 들여놓지 않겠다 (본업도 있겠다), 그런 말씀을 드리려는 건 아니구요.
사실 이 괴로움에서 그냥 도망치고 싶었던 거라면 그냥 철판 깔고 연중 때리고, 나중에 돌아오고 싶을 때 필명이라도 갈면 됐을 겁니다. 뻔뻔한 짓이지만 본업도 있으니, 먹고살 길이 막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도 그건 제가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에 적합한 선택은 아니라 생각했습니다.
결국 전 많은 독자분들의 입에 오르내릴 만한 재밌는 글을 쓰는 것이 목표인데, 전개를 떠올리고 연재분 문장을 짜내는 게 힘들다고 도망치면 거기에 필요한 실력을 갖추는 데에선 더 멀어지는 길일 테니까요.
네 글 정말 쓰레기 같았다. 시간도 아깝고 돈도 아깝다. 다시는 돌아오지 마라. 절대 봐주지 않겠다. 그렇게 생각하신 분이 있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사과드리고 싶지만 이미 후기에는 안 계시겠지요.
아무튼 전 글쓰는 걸 그만두진 않을 것 같습니다. 다음엔 더 재밌는 글을 쓰고자 합니다. 어쩌면 제자리걸음일지도 모르고, 지금보다 떨어지는 작품일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써 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겠지요.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봐주신 분들께 그것만으로도 감사하지만, 염치 없이도 다음 작품도 잘 부탁드린다는 말씀까지 드리고 싶습니다. 실례가 아니라면 부디 받아들여 주시기 바랍니다.
언젠가 제가 잘나가게 된다면 (웃음), 내가 저 작가 처녀작 때부터 봤던 사람인데. 그때 완전 개판이었어. 라고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릴 수 있도록 정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