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29
29화 그러게 내가 쓸데없다 했잖아
“뒤에서 얌전히 있어요.”
도율이 고개를 살짝 돌리고 말했다.
그에 클레어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S급 헌터가 되고 나서 나서지 말고 가만히 있으란 말은 처음 들어 봤다. 하지만 그녀는 그 말대로 뒤에서 잠자코 지켜볼 뿐이었다. 도율이 무엇을 보여 줄 수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던전에 대한 정보도 전달해 주지 않았다. 공략에 앞서 공략 기획 팀은 정보 분석 관련 각성자를 섭외해 던전의 환경과 구조, 그리고 출몰하는 몬스터의 종류와 속성에 대해 검토한다. 그를 바탕으로 적절한 인원을 선발하는 것.
그 내용은 클레어의 머리 속에도 들어 있지만, 그 역시 도율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아무리 미리 정보를 받고 들어가도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현실과는 다를 때가 있는 법. 그에 맞춰 수정하고 대응하는 순발력 역시 중요했다.
철저한 방관자의 입장.
도율이 앞서 나가고, 클레어가 그 뒤를 지켜보듯 따라붙었다. 그리고 거리를 두고 백우섭이 주춤거리며 따라붙었다.
“씨… 괜히 따라갔다가 떼죽음 당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그럼 혼자 있어요.”
“…….”
클레어가 싸늘한 눈빛을 보내자 백우섭은 시선을 피했다.
그때 도율이 한 무리의 몬스터와 마주쳤다.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돌아다니는 해골 병사들. 그 수는 셋이었다. 낡고 망가진 갑옷을 걸치고, 손에는 이가 나간 무기를 쥔 이들.
겉보기엔 전혀 강해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 각각의 전투력은 형편없는 수준이 맞았다.
하지만 해골 병사의 무서움은 피와 근육으로 이루어져 살아 움직이는 몬스터가 아니라는 점이다. 사기邪氣를 통해 신체를 구성하고 움직이기 때문에 부순다 해도 금방 다시 복구되는 성가신 상대였다.
특히 이런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의 장소에는 사기가 가득했다.
이런 상대에게 유효한 타격을 입히려면 성직자 계열의 특성을 가진 이들의 정화를 사용하거나, 혹은 신성력神聖力이 담긴 아이템의 힘을 빌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단순한 소모전으로 끌고 가면 손해가 막심했다.
절그럭, 절그럭.
해골 병사들이 가까이 다가왔다. 도율은 이러한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하게 다가갔다.
“그오오…….”
성대가 달려 있지 않은 두개골의 턱 사이로 한기와 함께 스산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가까이 다가오는 도율을 향해 칼날이 가까워졌다.
콰앙!
도율은 그런 해골 병사 중 하나를 향해 일격을 날렸다. 그다지 힘을 실은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 가벼운 주먹.
그러나 그 공격에 당한 해골 병사는 온몸의 뼈와 갑옷이 산산조각 나 바닥을 나뒹굴었다. 다른 두 해골들의 운명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부러진 뼈가 바닥 위로 널려 있었다.
‘위력은 대단하네.’
상대적으로 손쉬운 상대라고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행동 패턴이 단순하기 때문이다. 튼튼함과 끈질김. 그 두 가지로 공략에 참가한 헌터들을 괴롭히는 존재를 일격에 정리한 건 인상적인 축에 들었다.
그러나 진짜는 지금부터다. 곧 흩어진 뼈들이 모이며 다시 병사로 부활할 차례였다.
도율은 눈길도 주지 않고 걸음을 이어 나갔다. 저렇게 해골 병사를 한 번 쓰러뜨린 걸로 안심하고 나아갔다간 앞에서 새로운 적을 마주치는 것과 동시에 뒤에서 부활한 해골 병사들에게 포위당할 위험이 있었다.
클레어는 자리에 가만히 서서 해골 병사가 부활하는 것을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흩어진 뼈들은 움직일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왜……?’
도율은 어떠한 무기도 사용하지 않았고, 신성력을 발휘하는 자 특유의 광채가 나타나지도 않았다. 겉보기엔 단순한 물리적 타격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난 건지, 그녀로선 알 방법이 없었다.
“안 오고 뭐 해요?”
“…지금 가요.”
멀리서 앞서 걷던 도율이 클레어를 재촉했다. 그녀는 종종걸음으로 거리를 좁혔다. 마지막으로 힐끔 돌아 봐도 변하는 건 없었다.
* * *
도율은 그렇게 거침없이 던전을 휩쓸었다.
서두르는 기색이 없었는데도 던전 공략 속도는 정식 파티의 예정 속도보다 훨씬 빨랐다. 몬스터와의 전투 시간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피로가 쌓이지 않았으니 휴식도 필요 없었다. 자연스럽게 시간이 단축되었다.
그리고 도율은 그 모든 전투를 혼자서 해냈다. 이렇다 할 위기도 없이 상체를 틀고 주먹을 뻗는 것만으로 던전의 모든 호위병들을 돌파해 냈다.
“…괴물인가?”
백우섭이 도율의 강함에 질린다는 듯 중얼거렸다.
개인의 힘으로 이렇게 숨 쉬듯이 던전을 정리하는 건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 아직 보스 몬스터와 만나기 전이라지만, 지금까지의 행적만으로도 경외심이 들기에 충분했다.
그 부분에 있어선 클레어도 비슷한 감상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주목한 건 다른 부분이었다.
평소와 달리 도율은 가면을 쓰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어떤 표정으로 던전을 공략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처음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무언가 위화감이 들어 찾아낸 끝에 발견했다.
도율은 지금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그야 던전을 공략하면서 웃고 다니는 얼빠진 인간은 잘 없지만, 이렇게 순조로우면 평소의 성격이 나올 만도 했다.
하지만 언제나 웃는 얼굴로 농담이나 장난 따윌 즐기는 모습과 달리, 도율은 결코 벌어질 것 같지 않은 입술을 굳게 닫았다. 필요한 말 외에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항상 가면 너머로… 이런 표정을 짓고 있었던 건가?’
클레어는 봐서는 안 되는 무언가를 훔쳐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거기서 눈을 뗄 수도 없었다.
이윽고 그들은 커다란 문이 가로막고 있는 복도의 끝에 도달했다. 육중한 문 위로 철제 양각이 기하학적인 무늬를 그리며 새겨져 있었다. 보는 이를 끌어들이는 듯한 기운을 풍기는 철문이었다.
“보스 룸…….”
이곳까지 왔다면 한 차례 휴식을 취하며 상태를 점검한다. 장비에 문제는 없는지. 소모품은 충분한지. 체력이나 집중력은 여유로운지.
그러나 도율은 지체하지 않고 선언했다.
“들어갑니다.”
쿠구구궁.
커다란 문이 바닥에 끌리며 마찰음을 냈다. 지금 들어오는 침입자를 거부하는 듯한 소리였다. 도율은 그것을 강제로 밀어 열었다.
쾅!
힘을 주어 열던 문이 어느새 아무런 저항 없이 밀려나 벽에 부딪쳤다. 그와 동시에 신호라도 한 것처럼 문 너머의 벽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매달린 등불이 차례로 불을 밝혔다. 그러자 커다란 홀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마침내 나타난 건 로브를 뒤집어 쓴 커다란 해골이었다. 한쪽 눈이 푸른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었으며, 한쪽 손으로 기다란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
[의식의 제물들이…….]으스스한 소리가 머릿속에 직접 울렸다.
[제 발로 걸어 들어왔군.]리치Lich.
스스로의 생명을 불사와 맞바꾼 존재였다.
한차례 들어 올려진 지팡이가 땅 위를 찍었다. 그러자 눈에 보일 정도로 짙고 검은 사기가 휘몰아쳤다.
사기의 폭풍이 걷히고 나타난 건 말을 타고 있는 해골 기사였다. 전투마 위에 올라타 커다란 창을 든 중기병. 말과 기사 모두 빈틈없는 갑옷을 두르고 푸른 안광을 뿜었다.
“데스 나이트까지……!”
클레어가 검을 들어 전투를 대비했다.
지금까진 도율의 말대로 방관만 했지만, 보스와의 전투에서까지 그럴 순 없었다.
조합상 저쪽의 조합이 우위였다. 이쪽은 사람 자체는 셋이지만 그중 하나는 도움이 안 되는 짐덩이. 싸울 수 있는 사람 둘은 모두 근접 전투 전문이었다.
반면 저쪽은 마법과 사령술에 통달한 리치와 말을 탄 기병 데스 나이트. 전위와 후위가 잘 맞아떨어지는 조합이다. 데스 나이트가 전방에서 시선을 끌며 리치를 지키고, 리치가 후방에서 화력을 퍼부어 대면 공략하기가 어려웠다.
이렇게 된 이상 개인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클레어가 도율에게 말했다.
“데스 나이트 쪽은 제가 맡을 테니, 당신은 성물함을 찾아서 부숴요. 리치는 육체 대신 영혼을 담아 둘 그릇을 따로 안배하니까, 그것만 찾아서 부수면…….”
그것도 무리한 작전이었다.
성물함을 찾는 도율을 리치가 가만히 내버려 둘 리도 없다. 자신의 목숨을 대신하는 약점인 셈이다. 숨겨 놓은 장소도, 그걸 방해하는 공격도 서슴없을 테니까.
클레어가 말을 타고 기다란 창을 든 데스 나이트를 맨몸으로 상대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사거리와 높이의 차이를 메우려면 그만한 실력의 차이가 필요했다. 그러나 데스 나이트는 대개 생전 뛰어난 실력을 가졌던 자를 되살려 만들곤 했다. 그런 자를 상대로 우위를 점하는 건 쉽지 않은 일.
[어리석구나. 그게 가능할 거라 믿느냐?]리치가 비웃음을 머금으며 지팡이를 겨눴다. 구슬이 달린 끝부분에 마법진이 그려졌고, 데스 나이트의 군마가 땅을 박찰 준비를 했다.
불리한 전투의 시작.
눈을 감고 있던 도율이 손에 감춰 둔 물건을 꺼냈다.
“네가 숨겨 둔 이게 그 성물함이란 물건이냐?”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손바닥 만한 작은 금궤. 뚜껑 위로 이곳을 열고 들어올 때와 유사한 형태의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뭐… 라고?]이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성물함은 그 어떤 탐지 마법으로도 찾을 수 없도록 마력을 교묘히 비껴 나가게 만드는 결계를 몇 중으로 쳐 뒀다. 찾는 건 둘째 치고, 도대체 어느 틈에 빼 온 건지도 알 수 없었다. 분명히 저 남자는, 제자리에 서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럴싸하게 만든 모조품일까. 그것 또한 이상했다. 성물함의 생김새를 어떻게 알고 모조품을 만든다는 것일까. 게다가 그 안쪽에서 느껴지는 영혼은 영락없이 자신의 것이었다.
직감도, 이성도 모두 말하고 있었다.
저 성물함은 진짜다.
[도, 돌려줘…….]그 강대한 리치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나약한 말에, 도율이 차갑게 대꾸했다.
“미안하다. 질렸거든.”
콰창!
도율의 손아귀에서 리치의 성물함이 산산조각 났다.
[안… 돼…….]리치가 허무한 단말마를 남기며 불에 타 재가 되는 종이처럼 사그라들었다. 함께 소환된 데스 나이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창 한 번 휘둘러 보지 못하고 그 몸이 흩어졌다. 미련이 남은 것인지 귀기 서린 창 한 자루가 자리에 남았다.
“어떻게…….”
“정안. 그리고 허공섭물.”
도율의 짧은 대답을 클레어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클레어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시간이 걸렸다.
그 얼마나 믿기지 않는 일이든 실제로 벌어진 일이었다. 도율은 실제로 A급 던전을 단신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아무 도움 없이 공략했다. 그것도 권태롭기 짝이 없다는 듯이 시시하게.
그것은 S급 헌터인 자신도, 아니, 강자로 이름을 날리는 누가 오더라도 가능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강하면서 왜…….”
클레어가 의문을 표했다.
던전 하나 공략하는 게 이렇게 쉬운 일이라면, 자신 같은 게 구해 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직접 구하러 다니면 됐을 텐데.
도율은 대답을 미뤘다.
“아직 듣는 귀가 남아서.”
“듣는 귀……?”
클레어가 의문을 표했지만 도율은 아랑곳 않고 한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백우섭.”
백우섭은 어느새 리치가 있던 곳까지 이동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창을 비롯한 전리품을 품에 안은 채였다. 숨이 차는지 어깨를 크게 들썩이고 있었다.
공포 때문이었다. 도율이 보내는 눈빛. 앞으로 뭘 할 건지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당신 설마…….”
뒷말을 삼키는 클레어에게 도율이 대답했다.
“내가 왜 가면을 안 썼게요.”
“처음부터……!”
계획된 행동이었다. 이곳엔 정체를 숨겨야 할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 클레어에게는 더 이상 숨기지 않기로 했다. 그럼 나머지 하나, 함께 들어온 백우섭은.
도율이 걸음을 내딛자 백우섭이 외쳤다.
“가, 가까이 오지 마!”
“나한테 명령할 자격이 있나?”
“가까이 오면…….”
“쓸데없는 저항은 관둬.”
백우섭이 전리품 사이에서 녹색으로 빛나는 격자 형태의 결정을 꺼냈다.
“이, 이게 뭔지 알지?”
“마석.”
“그래! 리치의 시체에서 나온 무려 A급 마석이라고…….”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
도율이 무시하고 나아가려는 찰나, 클레어가 외쳤다.
“그만둬요! 당신도 무사하지 못할 텐데!”
“씨… 어차피 저 괴물 새끼한테 죽게 생겼는데 무슨 소용이야.”
자포자기인가?
도율이 걸음을 멈췄다.
“마음대로 해 봐.”
“뭐……?”
“하고 싶은 거 해 보라고. 기다려 줄 테니까.”
“이……!”
백우섭의 얼굴이 수치와 분노로 일그러졌다. 그가 손에 든 마석을 가슴에 박아 넣으며 외쳤다.
“하라면 못할 줄 알았냐!”
마인화.
각성자가 마석을 직접 몸에 박아 넣고 마력을 받아들이면 폭발적인 강함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마석에 깃든 마력에 정신이 직접적으로 오염당하기 때문에 사실상 자폭과도 같았다.
리치의 시체에서 나온 A급 마석이라면 순식간에 그 잔존 사념에게 정신을 지배당해, 마법과 사령술을 다루는 능력까지 갖춘 마인이 탄생할 터였다.
그러나 백우섭이 마석을 통해 마력을 끌어 올리려 해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어……?”
몇 번을 반복해 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게… 왜…….”
그사이 다가온 도율이 조용한 목소리로 되새겼다.
“그러게 내가 쓸데없다 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