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3
3화 가장 먼저 가 봐야 하는 곳
서울시 강남구에 위치한 에 오늘 이상한 방문객이 한 명 찾아왔다.
키가 훤칠하고 얼굴도 멀쩡하게 생긴 남자였는데 길게 기른 머리를 산발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걸치고 있는 옷 또한 정상이 아니었는데, 마치 날붙이에 베인 것처럼 넝마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태도나 자세가 반듯하고, 찢어진 옷 사이로 언뜻 비치는 몸 또한 잘 단련된 상태였다.
그 남자는 센터장이 ‘오다 주웠다’면서 데려왔다. 각성자 지원 센터는 유실물 보관소가 아니다. 하물며 유기견이나 미아 보호소는 더더욱 아니다. 따로 담당하는 부서가 있는 것도 아닌데 어쩌자고 사람 하나를 덜컥 주워 온 건지 모를 일이었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센터장 비서 최지연이 그의 상대를 하게 되었다.
“드세요…….”
“잘 마시겠습니다.”
남자는 빙긋 웃고 양손으로 종이컵을 들었다. 커피가 든 컵을 마치 찻잔처럼 들고 마시는 모습이 영 아이러니했지만, 자세가 굉장히 그럴싸해 보여서 비웃을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성함이 이도율 씨라고 하셨죠?”
“예.”
“정신을 차려 보니 산속이었고, 그 전의 일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요?”
“예.”
비서 최지연의 머릿속에 센터장에 대한 악담이 마구 피어올랐다. 그녀는 웃는 얼굴로 욕지거리를 씹어 삼켰다.
“그래도 이름과 인적 사항을 기억하시니까 본인 확인 가능했고, 보호자 분과도 연락이 닿아서 여기로 오실 거예요.”
“정말입니까?”
그 말에 도율이 반색하며 물었다. 어지간히도 가족이 그리웠던 모양이다.
“정말 감사합니다.”
“뭘요. 감사라면 센터장님께 하세요.”
“오늘 절 태워 주신 분이 이곳 센터장입니까?”
“네, 그래요. 각성자 지원 센터 센터장 최강현. 모르시는 거 보니 기억이 없는 건 맞나 보네요.”
각성자 지원 센터, 센터장 최강현.
적어도 이 대한민국에서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아무리 헌터 업계에 관심이 없어도 그의 이름 정도는 상식으로 통용될 정도였다.
“기억하겠습니다.”
도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리 말했다.
기억하겠다는 말 한마디. 아무련 효력도 없는 말에 불과했지만, 지연은 왠지 그게 대단한 보증 수표라도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대로 기억 한편에 길게 기억될 것 같은 그런 기분.
그것이 본능적인 영역에서 판단한 결과라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그녀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요즘 몸이 허한가?’
밀린 일이 산더미 같았다. 이만 마무리하기 위해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기다리시면 되니까, 얌전히…….”
“지연 씨! 큰일 났어요!”
누군가 다급한 기색으로 그녀를 찾았다. 모처럼 사건 하나를 정리하는가 싶었더니 이번엔 또 무슨 돌발 상황이 벌어진 걸까.
“무슨 일인데요?”
“S급 헌터가 방문했어요! 지금 1층에!”
“네? 예정도 없이 갑자기요?”
“갑자기요!”
“가죠.”
이젠 센터장이 데려온 거지꼴의 남자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지연이 그녀에게 소식을 전한 직원과 함께 빠른 걸음으로 걸어 나갔다.
도율은 그 모습을 신기하다는 듯 지켜보았다.
* * *
헌터에는 등급이 있다. 일반인과 다를 바 없는 F급부터 시작해서, A급 헌터 정도 되면 걸어 다니는 기업이라고 불릴 정도의 경제적 가치를 지니게 된다.
그리고 그보다 한 단계 더 위에 있는 것이 바로 S급 헌터.
전 세계를 통틀어도 그 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헌터 업계에서 일하거나 그쪽에 관심이 많은 팬이라면 S급 헌터 전원의 이름을 댈 수 있을 정도였다. 따라서 이들은 국가를 넘어선 세계적 자원이었다.
국격과 국력이, 보유한 S급 헌터의 숫자라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런 상황에서 S급 헌터가 말도 없이 찾아왔다는 건 평범한 공무원들에게 달가운 상황이 아니었다. 옆에서 숨만 쉬어도 불편한 인간이,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미리 준비를 해도 모자란 판에, 불쑥 방문할 정도로 급한 용건으로 온 거라면.
이 정도 덩치의 인사를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센터 내에도 몇 없었다.
“센터장님은?”
지연이 물었지만, 영양가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외출하셨습니다.”
“망할 할아범탱!”
그녀가 내뱉은 폭언에, 다른 한 명은 으레 있는 일인 듯 자연스레 넘어갔다.
두 사람이 엘리베이터에 누르고 문이 닫혔다.
“그래서 누가 온 거죠?”
“클레어 씨가 왔습니다.”
“클레어?”
이름을 들은 지연의 표정이 조금은 풀렸다.
S급 헌터라는 성격 파탄자만 모아 놓은 집단에서 당당하게 예외라고 부를 수 있는 인물이 있다면, 지금 이름이 거론된 클레어 컴벨을 꼽을 수 있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몇 안 되는 외국인 헌터로, 상식적이고 말이 통하는 사람이었다.
엘리베이터는 순식간에 1층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고 걸어 나온 두 직원은 로비에 앉아 있는 한 여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옅은 아마색 머리카락은 흔히 말하는 금발이라고 표현하기엔 어폐가 있었고, 푸른 눈동자는 바다의 색을 띄고 있었다. 먼 거리에서도 잘못 알아보기 힘든 모습.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갈 때마다 확신이 강해졌다.
“클레어 컴벨 씨.”
이름을 불린 클레어는 짧은 침묵 후에 입을 열었다.
“최지연 씨.”
“기억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센터장 비서 최지연입니다.”
지나치게 딱딱한 지연의 응대에 클레어가 겸연쩍게 웃었다. 하지만 다른 S급 헌터를 대할 땐 이 정도가 보통이었다.
“오늘은 어떤 일로 찾아오셨는지요?”
“사람을 찾고 있어서요.”
“사람을요?”
이곳 각성자 지원 센터는 이름 그대로 각성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상담 서비스를 실시하며 장비, 훈련, 성장, 공략 등에 대한 여러 분야를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을 찾는 심부름 센터로 기능하기엔 적절하지 않았다.
물론 업무에 속하지 않는 일도 어떻게든 처리하라고 찾아와서 깽판을 치고는 하는 게 S급 헌터라는 놈들이었지만. 지연은 제발 이 착실한 아가씨가 그 몰상식한 놈들을 닮지 않았길 바랐다.
“따로 찾는 사람이 있는 거라면 사설 탐정이라도……. 아, 그러고 보니 클레어 씨가 매니저를 새로 구한다는 소문이 돌았죠. 구직 관련입니까?”
“그건 아니고요.”
클레어가 불편한 미소와 함께 한 차례 부인했다.
“이도율 씨가 이곳에 있다고 들어서요. 데려가려고 왔습니다.”
“이도율 씨라면…….”
금방 생각이 닿았다. 이도율이라면 오늘 센터장이 데려온 그 거지꼴 남자를 말하는 거였다. 하지만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그는 방금 전까지 기억을 잃은 채 실종된 상태였을 텐데. 그리고 그 사실은 가족에게 전달되었을 거고.
그렇다는 건 두 사람이 가족이라는 뜻인가?
지연은 내심 고개를 저었다. 국적이 다른 두 사람이 가족이라고 보긴 어려웠으니까. 드라마에서 보던 혈연의 비밀도, 그 혈연이란 게 엇비슷해야 말이 되는 법이었다. 인종 자체가 달라서야 아무리 끼워 맞춰 보려 해도 불가능했다. 여긴 미국 같은 곳이 아니니까.
“이도율 씨의 보호자 자격으로 오셨다는 뜻입니까? 두 분께선 무슨 관곕니까?”
“그건…….”
클레어는 대답하려다 말고 입을 닫았다.
“밝혀야 하나요?”
“일단은 저희가 보호하고 있는 사람을 외부에 넘기는 거니까 원칙상으로는 그렇죠. 클레어 씨라면 신원은 보장된 거나 마찬가지지만, 기록 차원에서…….”
지연은 그녀가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지극히 합리적이고 당연한 설명을 곁들이면 흔쾌히 받아들일 줄 알고 설명한 건데, 그녀는 파리한 안색으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클레어 씨? 괜찮으신가요?”
“네? 아, 네.”
그녀는 도저히 먹을 수 없는 무언가를 간신히 삼키듯 입을 열었다.
“저기, 저는… 저랑 이도율 씨는…….”
시원스레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모습에 지연이 입을 열었다.
“됐습니다. 이번엔 불문에 부치죠.”
“그래도 괜찮나요?”
“빚 하나 진 겁니다.”
클레어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지연이 피식 웃었다. 서류에 공란이 생기긴 하겠지만 S급 헌터에게 빚 하나 지워 두는 것 치고는 나쁘지 않은 교환이었다. 뻔뻔하게 나 몰라라 할 사람도 아니니까.
“그럼 가 볼까요.”
* * *
센터에서 마련해 준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대기실에서 얌전히 시간을 때웠더니, 센터장 비서 최지연 씨가 나를 불렀다. 내 보호자가 도착했다고.
10년 만에 다시 보는 가족. 아버지일까? 아니면 여동생일까?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쪽도 아니었다. 내가 마주한 여자는 생전 처음 보는 외국인이었다.
“…누구세요?”
아무리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지만 가족 얼굴도 못 알아보진 않는다. 성장한 동생이 염색을 하고 렌즈를 낀다고 해도 이 모습이 되진 않을 거고, 설마 아버지가 성전환 수술을 받는다 해도 회춘까지 할 리는 없으니까.
나는 최지연 씨를 노려봤다. 모처럼 가족을 만날 줄 알고 부푼 마음으로 따라왔더니 만난 건 모르는 여자였다. 조금쯤 배신감을 느껴도 어쩔 수 없다.
“보시다시피 기억이 혼란스러워서 클레어 씨를 못 알아보시는 모양입니다.”
“예?”
…그러고 보니 아까 이런 저런 대답을 하기 귀찮아서 최근 기억이 애매하다는 대답을 했다. 그것도 10년이나. 내가 사라진 기간에 맞추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
“괜찮아요. 그럼 데려갈게요.”
클레어 씨라고 불린 여자가 통보했다. 내 동의도 구하지 않고. 최지연 씨도 그걸로 됐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골칫덩이를 하나 치웠다는 듯 후련한 표정이었다.
이곳에 계속 죽치고 있어 봤자 민폐긴 했다. 은혜라면 충분히 입었다. 멀쩡한 옷도 받았고, 오랜만에 커피도 마셔 봤으니.
“…감사했습니다.”
인사를 마치고 건물을 빠져나오자 클레어라는 여자는 스마트폰으로 택시를 호출했다. 10년이나 지났지만 기종 말고는 바뀐 게 없어 보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클레어 컴벨이라고 해요. 클레어라고 불러 주세요.”
“이도율입니다.”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 내가 지적했다.
“처음 뵙는 거 맞죠? 저희.”
“아……. 네, 그렇죠.”
하지만 그녀는 나를 알고 있는 눈치였다. 10년 동안 사라져 있던 나를 어떻게 일방적으로 알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를 어디로 데려가는 겁니까?”
내 물음에 클레어 씨가 멋쩍은 미소를 지우고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답했다.
“도율 씨가 가장 먼저 가 봐야 하는 곳으로요.”
“가장 먼저 가 봐야 하는 곳?”
“가 보시면 알 거예요.”
때마침 택시가 도착했다.
택시 옆에 서서 잠깐 기다렸지만, 그녀는 대답 없이 조용히 서 있을 뿐이었다.
“좋아요. 일단 가 봅시다.”
택시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