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32
32화 헷갈리지 마
“하아, 하…….”
클레어가 바닥에 주저앉은 채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크게 오르락내리락하는 등과 가슴.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이 굳게 감긴 눈을 가로질러 턱 끝으로 맺혔다.
맞은편에 서 있던 내가 물었다.
“그만할까요?”
내 물음에 클레어가 치켜뜨고 나를 올려다봤다. 여전히 거친 호흡을 주체하지 못한 채로, 그녀가 간신히 대답했다.
“…한, 번만… 더.”
향상심 넘치는 대답에 미소가 지어졌다.
의욕을 보이는 건 좋지만, 그것과 별개로 클레어의 몸은 거의 한계에 달해 있었다. 근육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몸에 열이 식으면 더는 제대로 활동하지 못할 만큼.
이번이 마지막이라 생각하는 게 좋았다.
“숨만 고르고 다시 가죠.”
나는 그녀가 호흡을 되찾을 때까지 기다렸다.
이곳은 훈련장이었다. 클레어가 검술을 수련하거나 체력을 단련할 때 한 층을 임대해서 사용하던 그곳.
오늘은 내가 직접 지도하는 중이었다. 여기는 프라이버시를 보장하는 데다가, 그녀에겐 더 숨기는 것도 없으니까 마음껏 실력을 발휘하며.
클레어는 지지 않겠다는 듯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사정없이 떨리는 무릎을 짚고 일어나 검을 들었다. 아드레날린과 마력을 통한 활성화가 아니었다면 진작에 쓰러졌을 거다.
클레어가 들고 있는 건 진짜 자신의 검이었다. 갑옷은 체력 문제로 벗어 두고 운동복을 입은 상태였지만, 무기만큼은 쓰던 걸 쓰게 했다.
이는 내 지시였다. 내가 다칠까 봐 목검을 쓴다는 건 100년은 이른 걱정이었다.
게다가 사용하는 무기가 손에 익는 건 그 이상으로 중요한 문제였다. 손에 감기는 느낌부터 무게중심과 날의 길이와 두께, 그 모든 것을 익혀도 모자란데, 목검 따위를 쓰며 시간을 보낼 순 없었다.
그런 클레어를 상대하는 내 손에 들린 건 단순한 목봉. 끝에 창날 모양의 조각이 달려 있긴 하지만, 당연히 날은 없는 물건이었다.
창은 크게 손에 익은 물건이 아니었지만, 어떤 식으로 다뤄야 할지는 참고하는 자료가 있었다.
처음 대련을 시작할 때만 해도 클레어는 ‘정말 그걸로 괜찮겠어요?’ 하는 눈빛을 보내왔다. 불과 몇 시간 전의 얘기였다. 그랬는데 지금은 내게 살의라도 가진 것 같은 강렬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몇 시간 내내 두들겨 맞으면 그렇게 되긴 하지.’
내가 의도한 것이기도 했다.
이 지도 대련에서 내가 클레어에게 주문한 것은 단 한 가지. 실전처럼, 나를 죽일 생각으로 덤벼 보라는 거였으니까.
“갈게요.”
상당히 안정된 호흡으로 숨을 고르며 클레어가 자세를 취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바닥을 박차고 거리를 좁혔다. 마력을 통한 신체 강화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각력에 주변으로 충격파가 퍼져 나갔다. 그와 동시에 파고드는 몸체.
검은 필연적으로 창보다 짧을 수밖에 없다. 거리를 두고 싸우면 유리한 건 창을 쥔 나다. 그러니 근접전으로 이끌어 나가기 위해 거칠게 몸을 집어넣으려는 것이었다.
오늘 하루 내가 몸에 직접 새겨 준 교훈 중 하나였다.
‘안 되지.’
나는 거리를 주지 않으려 창대를 세워 견제했다. 날이 없는 훈련용 도구였지만 클레어는 무식하게 몸으로 맞고 때운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 짓을 하려 할 때마다 거칠게 대가를 치렀기 때문이다.
클레어가 당면한 과제는 간단했다.
내가 하는 견제로부터 몸을 지키고, 어떻게든 파고들어 내게 공격을 성공시킬 것.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적당히 조절하긴 했지만, 난 얼마든지 클레어의 검보다 빠르게 창을 찌를 수 있다.
게다가 지금 막 치열하게 최선의 수를 찾아 가며 싸우는 그녀와 달리, 나는 이미 한결 여유롭게 모든 계산을 끝마친 상태였다. 경험의 차이에서 나오는 여유였다.
어설픈 거리에서 공격하려 하면 받아친다. 가까이 다가오려 하면 거리를 주지 않기 위해 공격한다. 소모전으로 끌고 가도 체력의 우위는 내게 있다.
손쉽게 승리를 거둘 수 없는 상대에게 활로를 여는 방법을 가르치는 중이었다.
─캉!
한 차례 크게 무기를 맞부딪친 후 클레어가 뒷걸음질쳤다. 그녀는 땅 위에 검을 꽂고 거기에 기대 숨을 고르고 있었다. 폐가 아픈지 한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고 있었다.
“하아, 하아, 하아…….”
“끝입니까?”
클레어는 대답 없이 숨을 몰아쉬었다. 의지가 남아 있어도 신체가 한계에 이른다면 어쩔 수 없다. 훈련만큼 중요한 게 또 휴식이기도 하니까, 오늘은 이만 마무리해도 된다.
창을 내리고 클레어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그녀가 가슴을 움켜쥔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펄럭하고 그녀가 입고 있던 운동복 상의가 내 눈을 가렸다.
셔츠 모양의 상의는 등 뒤가 그을린 듯한 자국과 함께 찢어져 있었다. 한 손으로 벗겨 내기 위해 해 놓은 짓이었다. 지친 척하며 가슴에 손을 올린 행동까지 모두 설계였다는 셈이다.
‘시야를……?’
내 시야가 가려진 사이 클레어가 측면에서 검을 휘둘렀다. 완전히 사각에서 이루어지는 공격. 거리가 짧아 창으로 대응하기 애매했다.
“제법이네.”
그러나 클레어의 바람대로 이루어지는 일은 없었다.
퍼억!
검을 쥐고 휘두르기 직전의 자세. 덕분에 완전히 열려 있는 클레어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완벽한 카운터 어택. 전혀 방어할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녀는 검조차 놓치고 그대로 바닥을 굴렀다.
“읏, 아윽…….”
바닥에 몸을 파묻은 클레어가 괴로움에 신음을 흘렸다. 이젠 정말 일어날 힘도 없어 보였다.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나는 클레어가 허물처럼 벗어던진 상의를 주워 들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입을 수 있는 상태는 아니지만 몸을 덮어 가릴 수만 있어도 충분했다.
“시도는 좋았어요.”
옷을 돌려주며 칭찬하자 클레어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창을…….”
“창잡이 상대하는 법 가르쳐 준대 놓고 왜 찼냐고요? 걔는 뭐 다리가 없습니까?”
“…….”
반박할 말이 없는 건지, 말을 할 기력이 없는 건지 클레어는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했다.
클레어는 재능이 있는 헌터였다.
헌터 아카데미 ‘극광’을 수석 졸업. 어린 나이에 S급 헌터 자격 획득. 여기에 대고 재능이 없다고 하면 그건 각성자 대부분을 바보로 만드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그건 마력에 대한 소질에 국한되었다. 물론 헌터에게 가장 중요한 건 마력이었고, 클레어는 그 부분이 남다르게 뛰어났기 때문에 가파른 속도로 등급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A급 이하에선 전투가 획일화된 경향이 있다. 몬스터의 지능이 낮아 복잡한 양상으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이다. 탱커는 충분히 적의 공격을 모두 받아내 후열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 덕목이었고, 딜러는 안심하고 강력한 공격을 퍼붓는 역할이었다.
그러나 S급부터는 얘기가 달랐다. 이 이후는 사실상 상한선이 없는 미지의 세계. 어떤 상대를 맞닥뜨리게 될지 모른다. 상식 외의 존재를 만나 몰살당하는 사례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S급 헌터가 되면 다른 부분들이 중요해진다. 마력이라는 최소한의 커트라인을 넘어선 자들을 위한 새로운 무대가 펼쳐지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개개인의 전투 능력. 각자 알아서 임기응변으로 대처하는 능력이 필요했다.
비유하자면 A급 이하는 정규전, S급 이상은 특수전과 같았다.
클레어에게 부족한 점도 이 영역이었다. 가파른 등급 상승으로 인해 실질적인 경험이 부족한 그녀가 자격을 획득한 후에도 사실상의 S급으로 취급받지 못한 이유. 마력이 아닌 무武의 영역에 대한 평가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꾸준히 마사지를 해 준 덕에 그녀의 몸은 한층 진화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남은 건 직접 학습하는 일뿐이었다.
“슬슬 가죠. 감기 걸립니다.”
시설에 딸린 샤워실을 가리켰다. 한 층을 통째로 쓰는 만큼 부수적인 편의 시설도 대부분 딸려 있었다.
내 말에 클레어가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털썩 쓰러지고 말았다. 힘이 안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오늘 같은 훈련은 처음이었을 테니 그럴 만도 했다. 단순히 몸을 움직인 것 이상으로 내가 두들겨 팬 부분도 만만치 않았다. 힘 조절을 하긴 했지만, 따끔한 교훈이 새겨질 정도로는 때릴 필요가 있었으니까.
“못 일어나겠어요?”
“잠깐…….”
클레어가 바닥을 짚었다. 팔이 떨리고 있었다. 누군가 지켜보면 실패하는 것처럼 그녀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내가 말했다.
“시간 아깝게.”
“그, 금방. 금방 일어날 테니까…….”
클레어가 몸을 떠는 사이 내가 그녀를 들어 올렸다.
“말을 하지.”
“…….”
“샤워실 앞에서 내려 줍니다?”
내 물음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지쳤다고 해도 샤워까지 대신 시켜 줄 생각은 없었다. 무슨 육아하는 것도 아니고.
샤워실 앞에 도착하자 클레어는 벽을 짚고 섰다. 그 정도는 가능해 보였다. 벽을 바라보고 서 있었기 때문에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클레어가 벽에 이마를 대고 어물거렸다. 자신에게 대고 하는 말인 듯했다.
“헷갈리지 마…….”
“오늘 배운 것 중에요? 너무 생각하려 하진 마요. 몸으로 익히는 게 중요한 거니까.”
“…됐어요.”
내 조언을 뒤로하고 그녀가 샤워실 문을 닫았다.
* * *
갑작스럽게 굳은 훈련을 시작한 이유. 그리고 내가 잘 다루지도 못하는 창을 들고 상대하는 이유.
모두 어제 있었던 일 때문이었다.
클레어는 한 명의 헌터에게 호출을 받았다. 그 자리에 나도 함께했다.
약속 장소는 널찍한 테라스를 곁들인 카페였다. 언덕 위에 위치하고 마당이 딸려 있어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얕은 담벼락 아래로 동네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한 남자가 사진을 찍어 주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너무 팬이에요!”
“하핫! 별 말씀을.”
선글라스를 쓰고 머리를 시원하게 뒤로 넘긴 남자였다. 사람 좋게 웃어 보이며 여성 팬에게 손을 흔들어 주다가 우릴 보고 손짓했다.
“어이! 여기! 여기야.”
남자는 테라스 쪽 테이블을 잡고 있었다. 그는 우리가 다가오자 의자에 한쪽 팔을 걸치고 삐딱하게 앉았다.
“미안들 합니다. 지금부터 비즈니스 얘기 좀 할 거라서.”
그가 주변에 모인 팬들을 물리는 모습을 보고 클레어가 질렸다는 듯이 내뱉었다.
“여전히 관심받길 좋아하는군요.”
“당연하지, 질리지 않는다고. 오히려 나는 그 목걸이를 쓰는 네가 이해가 안 되는데.”
한마디씩 주고받은 후 남자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매니저분은 처음 뵙죠? 청진명이라고 합니다. 이미 아시겠지만!”
파랑波浪 청진명.
길드 ‘로얄 로드’ 소속의 S급 헌터였다.
“이도율입니다.”
인사를 마치고 자리에 앉자 우리 자리에 이미 음료가 준비되어 있었다. 주문한 적도 없었는데.
“마실 건 미리 주문했어. 유자 아아라고, 이 카페 시그니처 메뉴야. 내가 추천하는 거니까 마셔 보라고. 자자, 마셔요. 내가 사는 거니깐.”
“…잘 마시겠습니다.”
조금 제멋대로긴 했지만 나쁜 뜻이 있는 건 아니었다. 얘기한 대로 추천할 만한 메뉴인지 맛도 좋았고.
청진명이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대길이 형한테 얘기 들었다.”
김대길. 얼마 전 있었던 A급 던전 공략 사건에서 공략대 리더를 맡았던 남자의 이름이었다. A급 헌터여도 탱커라는 희귀한 포지션과 특유의 리더십 덕분에 S급 헌터와도 연이 있는 모양이다.
“그때 그 A급 던전, 사실상 네가 혼자 클리어했다고 들었는데. 맞냐?”
“…맞아요.”
클레어가 긍정했다.
이야기가 그렇게 퍼져 있었다. 그런 걸로 치기로 우리끼리도 얘기가 끝났고.
“그래서 대길이 형이 다음 S급 던전엔 너를 데리고 가는 게 어떻겠냐고 추천하던데. 이쪽이야 언제나 인력난이니 신입은 항상 환영이고.”
청진명이 앞니로 빨대를 잘근잘근 씹었다. 인력난 얘기에 넌덜머리가 난다는 듯한 태도였다.
“A급 던전이라 해도 솔플로 밀어 버렸으면 기본은 합격이라 봐도 되는데…….”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S급 마석은 저에게 우선적으로 양보해 준다고 약속해 주세요.”
클레어가 조건을 제시하자 청진명이 피식 웃었다.
“야, 착각하지 마. 난 그거 안 믿어.”
“예……?”
“내가 보기엔 넌 그럴 수 있는 실력이 안 돼. 세간에선 널 보고 역대급 초신성이니 뭐니 띄워 주긴 하는데, 그거 그냥 기삿거리다. 알지? 너도 S급까지 올라온 후에 뭔가 막혔잖아.”
헌터 라이선스의 정식 등급은 S급이 끝이다. 그러니 원래라면 그곳에서 더 올라갈 곳이 없으니, 막힐 것도 말 것도 없다.
하지만 클레어는 느끼고 있을 거다. 그러니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거겠지.
나는 내심 감탄하는 중이었다. 과연 S급 던전을 공략하고 다니는 진짜 S급 헌터는 보는 눈이 있는 건가. 측정기로나 알 수 있는 마력, 그 외의 무언가를 볼 줄 안다.
대신 클레어는 사실 관계를 따져 물었다.
“…제가 아니면 누가 했다는 거죠?”
“그건……. 음……. 모르겠지만.”
직감 하나는 정확한 청진명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명확한 이유를 대답할 순 없었다.
“아무튼. 그래서 바로 넣어 주긴 뭐 하고. 자격 증명이 좀 필요해 보인다.”
“자격 증명?”
“면접 좀 보자 이거지.”
“그 내용은요?”
“뻔하지. 나랑 대련.”
청진명이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자 클레어는 눈에 띄게 굳었다.
확실히 지금의 클레어라면 청진명에게 상대가 안 된다. 클레어는 얼마 전 S급이 된 각성자. 다른 헌터라면 몰라도, 같은 S급 내에서 고개 들 수준은 아니었다.
청진명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봐주는 일은 없다는 듯이 선언했다.
“일주일 준다.”
탁.
커피를 모두 마신 청진명이 테이블 위로 컵을 내려놓았다. 그 소리는 마치 뒤집어 놓은 모래시계를 내려놓는 소리처럼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