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33
33화 이런 짓을 하고 있었군
“어떻게 됐어?”
청진명이 개인실로 돌아오자마자 스카웃 결과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던 송민아가 물었다.
대한민국 4대 길드 중 하나라 불리는 ‘로얄 로드’의 사옥. 그 중에서도 S급 헌터 ‘파랑’ 청진명을 위해 마련된 개인 사무실이었다. 그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는 듯 넓은 면적을 자랑하는 방이었다.
정작 당사자인 청진명은 날뛸 수도 없는 곳을 넓게 사용해 봤자 아무런 쓸모도 없다며 그곳을 일종의 아지트로 사용하고 있었다. 친하거나 같이 활동하는 헌터들이 모여서 작전을 회의하거나 시간을 때울 때 사용하는 곳이 되었다.
송민아가 쇼파 위로 고개를 빼들고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청진명은 선글라스를 벗어 가슴께에 걸어 두고 대답했다.
“잘 풀렸지.”
“진짜?!”
긍정적인 대답에 송민아가 뛸 듯이 기뻐했다. 장애물을 뛰어넘듯 소파를 넘어와 그녀가 재차 물었다.
“뭐래? 뭐래?!”
“다음 주에 나랑 한판 뜨기로 했어.”
“오호~”
청진명의 대답에 송민아가 그의 허벅지에 다리를 감았다.
“밖에서 이러면 곤란…….”
“야, 이 미친 인간아!”
“크아아악!”
송민아가 시전한 코브라 트위스트에 청진명이 비명을 내질렀다.
“그게 잘 풀린 거냐, 이 새끼야! 뭐 잘났다고 실실 쪼개면서 들어오고 지랄이야아!”
“항복! 항복!”
청진명이 빠져나가기 위해 마력을 끌어 올렸다. 그와 동시에 송민아도 마력을 끌어 올렸다. 이미 기술이 들어간 상태에서 뒤늦게 대처하려 해도 송민아의 우위를 빼앗긴 어려웠다.
청진명이 관절기의 고통에 충분히 괴로움을 맛보자 송민아는 그를 풀어 주었다. 팀의 리더를 진짜 불구로 만들어 버릴 순 없는 노릇이었기에.
자유의 몸이 된 청진명이 환부를 문지르며 소파 위로 엎어졌다.
“드디어 사람 하나 늘어나나 했더니, 왜 야지 놓고 온 것이야? 응?”
“이러면서 알아 가는 거지.”
“알아 가긴 뭘 알아 가! 일주일 후에 먼지도 안 남기고 튀어 버리면 어쩌려고!”
“헌터가 뭐 이런 걸로 튀냐. 내가 뭐, 누구 하나 죽어 보쟀나.”
“선례가 이미 있잖아.”
송민아의 말은 사실이었다.
작년 정도였나. 인상 멀끔하고 성격 싹싹하기로 유명한 샌님이 착실하게 공훈을 쌓아 드디어 S급 헌터로 승격했기에 실력 좀 보자고 결투장을 보냈다.
기본기를 성실하게 다졌는지, 아니면 그저 그런 실력으로 조건만 채운 간판 헌터일지. 청진명은 결투를 통해 실력을 알아본 후 마음에 들면 팀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외국으로 날랐지, 걔? 아마.”
“…….”
그리고 약속 시간이 되어도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기에 청진명이 바람을 맞고 있을 무렵, 핸드폰 속보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그가 외국에서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스카우트되어 활동 국가를 옮겼다는 사실을.
당시 언론과 여론은 돈을 쫓아 나라를 버린 매국노라 욕하는 사람들 반, 실력이 되니 더 큰 무대를 찾아 떠난 것을 응원해야 한다는 사람들 반이었다.
그러나 관계자들은 알고 있었다. 그가 다른 나라로 간 이유가 돈 때문이 아닌, 청진명에게서 도망치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청진명은 고작 결투장 한 번 받은 거 가지고 너무 호들갑을 떤다고 투덜거렸지만, 송민아는 어느 정도 이해했다. 이 전투광은 한 번 싸우고 싶은 상대를 발견하면 진짜 싸워 줄 때까지 놓아 주는 법이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아무나 받을 순 없잖아.”
“그건 그렇지만.”
청진명의 팀이 주로 활동하는 S급 던전에선 탱커가 대부분의 공격을 대신 부담해 주는 식의 공략은 불가능했다. 스스로 알아서 살아남을 능력이 되지 않으면 참가 자체가 불가능했다. 자격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데려가는 건 살인이나 다름없으니까.
그 사실은 리더인 청진명뿐만 아니라 송민아 역시 잘 알고 있었다. 동료를 잃는 건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순간은 상상처럼 드라마틱하지 않았다. 현실은 이런 법이라고 말하는 듯이, 항상 가슴이 시릴 만큼 허무했다.
자격 검증이 필요한 일이라는 건 동의했다. 하지만 송민아가 문제 삼는 건 그 방식이었다. 친절하게 설명한 후에 안전하고 쾌적한 테스트 환경을 제공해도 모자랄 판에 대뜸 싸우자니.
청진명이 사람 보는 눈 하나는 정확한 데다가, 직접 싸워 보면 한층 더 정확해지는 건 사실이었지만.
“걱정할 거 없어. 걘 안 도망쳐.”
“어떻게 알아? 애초에 외국인이잖아. 고향으로 돌아가면 어떡해?”
“고향이라…….”
송민아의 질문에 청진명이 표정을 굳혔다.
청진명은 원래 복잡한 정치 싸움이나 사회적 처세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그는 싫어하는 일에 시간을 쏟을 성격이 아니었다. 덕분에 소문이나 분위기에 대해선 조금 둔감한 편이었다.
하지만 그런 청진명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헌터 클레어 컴벨이 받는 취급은 부당했다.
처음엔 외국인이어서, 혹은 길드가 없어서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만이 이유라고 하기엔 부자연스러운 외압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 알게 되었다. 그 압박은 좀 더 윗선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청진명이 속한 길드, 로얄 로드는 방관자의 입장이었다. 소속 헌터도 아닌 자를 적극적으로 감쌀 이유는 없었다.
‘가능한 엮이지 마.’
길드장이 지나가듯 한 말이었다.
당시의 청진명은 딱히 주의 깊게 듣지 않았다. 이유를 캐물을 생각도 없었다. 그 성격을 잘 아는 길드장도 복잡한 설명 대신 간단한 이유를 덧붙였다.
‘귀찮아진다.’
지금이라도 이유를 물어볼까. 이마를 소파에 파묻고 청진명이 곰곰이 생각했다.
결론은 그럴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사적으로 엮이는 게 아니었다. 만약 그녀가 정말 그의 팀에 필요한 인재라는 것이 증명되고 나면, 그때는 그가 나서서 변호하지 않아도 길드장이 직접 담판을 지을 테니까. 길드장이 말하는 ‘가능한’이란 그런 의미였다.
적재적소. 그렇게 됐을 때의 뒷일은 청진명보다 길드장이 적임이었다.
“그건 걱정할 필요 없을걸.”
그런 대우를 받으면서도 이 작은 나라에 붙어 있는 게 클레어 컴벨이었다.
나라를 주무르는 길드 수뇌부들이 차별과 방관을 작당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떠나지 않았다면, 고작 시비 좀 붙은 걸로 도망칠 리가 없다는 게 청진명의 생각이었다.
사실 그렇게 복잡한 이유를 댈 것도 없었다.
눈빛. 그날 본 클레어 컴벨의 눈빛만 봐도 도망칠지 맞서 싸울지 알 수 있었다.
‘무조건 온다.’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런데 걔, A급 던전을 혼자 격파했다매. 보스가 리치였다나. 그럼 분명 데스 나이트도 있었을 거고. 물리, 마법 할 거 없이 온갖 공격이 쏟아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저주도 쌓이지. 싸우는 와중에 성물함도 찾아야 하지. 그걸 해낸 앤데 굳이 테스트가 필요해?”
그것은 송민아에게 있어서도 인상적인 활약이었다. 같이 들어간 인원이 둘 정도 더 있다고 들었지만, 그중 한 명은 A급 헌터. 큰 도움은 되지 않았을 게 뻔했다.
심지어 또 다른 한 명은 일반인. 도움은커녕 지켜야 할 짐짝이나 다름없었지만, 놀랍게도 그는 상처 하나 없이 돌아왔다고 했다.
그 난해한 전투를 헤쳐 나가며 사람 하나를 지키는 것까지 성공했다니. 솔직히 말해 송민아는 자신이 없었다. 단독 클리어는 몰라도 다른 사람을 지키면서까지 그렇게 하는 건.
“넌 할 수 있어?”
송민아의 질문에 청진명이 소파에 엎드린 채 고개를 들었다. 대답은 단호했다.
“아니.”
“뭐야, 그럼?”
“그래서 이상하다는 거지.”
청진명이 몸을 쭉 늘리더니 순간적으로 뛰어올라 바닥 위에 착지했다.
“애초에 가능할 리가 없어. 일반인을 지키는 동시에 리치의 성물함을 찾는 게.”
“무슨 소리야? 사실이 그렇잖아. 아니면 뭔데?”
“뭔가 다른 게 숨어 있겠지.”
“다른 거라니……. 증거 있어?”
“감.”
송민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명확한 증거는 없는 셈이었다.
그렇다고 반박할 수도 없는 게, 이런 부분에서 청진명의 감은 무시할 수 있는 영역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복권이나 룰렛이나 추첨이나 토토는 다 빗나가기 일쑤면서 이런 일에만 꼭.
그리고 청진명은 언제나 몸으로 증명하는 편이었다.
“기대되네.”
* * *
“흠…….”
태블릿 화면 너머에서 한 남자가 푸른 창을 쥐고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너무 빨라 카메라가 제대로 모습을 잡지도 못할 정도였다.
내가 보고 있는 건 청진명의 영상이었다.
보통 헌터들의 전투는 개인 정보 보호 및 약점 노출을 방지하기 위해 녹화 및 송출이 금지되어 있다. 예외가 있다면, 전용 사이트에서 본인이 허가한 영상만 따로 판매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청진명이 싸우는 모습은 그냥 브이튜브에 검색만 해도 나왔다. 유명 브이튜버의 방송에 게스트로 나오는 것도. 팬과 관심을 좋아하는 것 같더니 서비스 하나는 정말 끝내주는 남자였다.
물론 진짜 던전 공략을 촬영한 것도 아니고, 단순히 일반적인 시청자 앞에서 선보이기 위한 시연에 불과했다. 당연히 힘 조절을 했을 거다. 그러니 이게 그의 진짜 실력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그래도 이 영상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충분히 많았다. 창을 쥐는 손아귀의 형태. 걸음을 내딛는 순서. 호흡을 내쉬는 타이밍. 그 외에 그 스스로도 알고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여러가지 습관들.
「대협.」
「…….」
「대협!」
영상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뭐.」
「사장님이 미쳤어요.」
시선을 돌리자 클레어가 흰돌이의 얼굴을 마구 주무르며 놀고 있었다. 안 그래도 멍청해 보이는 놈이 찐빵 같은 얼굴까지 장착하니 영락없는 동네 강아지가 따로 없었다.
얘가 진짜 백호가 맞긴 한걸까.
「내버려 둬.」
「왜 이러는지 이유라도…….」
「내가 괴롭혔어.」
오늘 하루 격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클레어는 반쯤 얼이 빠져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클레어에겐 항상 지금 가진 것 이상을 끌어낼 수 있도록 유도했고, 잘 따라 준 덕에 현재 그녀가 가진 전력 그 이상을 몇 번이나 넘봤으니까.
하지만 그건 꽤 피곤한 일이다. 몸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지치는 일.
그러니 집에 돌아온 후 멍하니 강아지 얼굴이나 주무르면서 노는 것이다. 본인은 지금 아무 생각도 없는 상태겠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이었다.
「이 집에서의 서열 말인데, 혹시 제가 제일 낮은 겁니까?」
「아니라고 생각했냐?」
「사람 나고 개 났나…….」
이젠 지도 지를 개라고 부른다.
[진명 씨는 ‘국내 헌터 중 최강!’이라는 칭호를 갖고 계신데요.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혹시 본인도 인정하시나요?]브이튜버의 물음에 청진명은 대단히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직 안 싸워 본 사람이 있어서 모릅니다.]겸손 떨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순수하게 진심으로 안 싸워 본 각성자와도 싸워 보고 싶어서 하는 말이었다.
「천상 무인이군요.」
흰돌이의 첨언이었다.
「무인이라…….」
무인. 싸움 그 자체를 즐기는 그의 모습을 보며 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누군가는 솔직하고 호쾌한 그의 성격에 호감을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런 사람이 많으니까 인기가 있는 거겠지.
하지만 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무림에서 쫓기던 시절, 내 업보를 둘러싼 수많은 은원들이 있었다. 지긋지긋했지만 나 역시 복수의 충동을 참지 못하고 굴레에 뛰어든 인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내게 아무런 은원도 없으면서, 그저 내가 강한 인간이라는 소문 하나를 이유로 싸움을 걸어오는 놈들이 있었다.
「제대로 된 놈들이 아니야.」
자꾸만 옛 기억에 빠지려 하는 의식을 건져 올렸다.
그 시절의 일은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잠깐.”
그 시절 하니…….
나는 청진명이 나온 영상을 다시 돌려봤다. 의식하고 다시 보면 새롭게 보이는 부분이 있었다. 이곳의 각성자들이 마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넘어간 부분.
“호오.”
이 녀석, 이런 짓을 하고 있었군.
확실히 이걸 할 줄 알게 되면 이전과는 수준이 다른 강함을 손에 넣게 된다.
하지만 이건 청진명에게만 가능한 기술이 아니다. 분명 훈련을 거치면 클레어에게도 충분히 가능한 일. 지금의 그녀와 비교하면 분명 폭발적으로 강해질 수 있었다.
‘일주일은 그런 의미였나.’
왜 시간을 준 건지도 눈치챘다. 실력을 볼 거라면 당장 만나는 날에도 가능했다. 시간이 없다면 다음 날, 다다음 날도.
굳이 일주일이란 시간을 기다리는 건 청진명도 클레어가 그동안 무언가를 깨닫고 성장하길 바랐던 것이다. S급 헌터가 되어 다른 S급 헌터를 상대할 때 비로소 배우게 되는 것을.
천상 무인. 정말 그 말이 딱 맞았다.
‘바라는 대로… 재밌게 만들어 주지.’
다음 훈련 일정이 기다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