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34
34화 내 남편한테 무슨 용건이죠?
“아유, 귀여워. 이 쪼꼬미는 언제 봐도 귀엽네.”
병원, 도은이가 입원해 있는 병실.
흰돌이를 데려가자 도은이는 녀석의 얼굴을 마구 주물렀다. 어쩌면 클레어도 도은이가 하는 행동을 보고 배운 걸지도 모른다.
「대협, 여자들은 왜 저만 보면 이럴까요?」
「치료나 잘해.」
흰돌이에겐 내공을 소모해 상대방을 치유하는 능력이 있었다.
아쉬운 건 그게 도은이가 가진 병을 완전히 치료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는 거다. 혹시 가진 내공이 모자라서 그런 건 아닌지 싶어서 내가 가진 내공을 나눠 줘 봤더니, 흰돌이가 죽는 소리를 냈다.
「오옥! 컥! 그, 그만! 대협! 그만! 저 몸 터져욧!」
「…….」
영물이라는 놈이 고작 이 정도도 못 받아들인다는 게 말이 되나.
그래도 치유가 가능하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병을 완치하는 건 불가능해도 주기적으로 데려오는 건 충분히 도움이 됐다.
“아~ 치유된다.”
멘탈과 신체를 모두 치유하는 시간이었다.
똑똑.
그때 병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건 환자복을 입은 꼬마애였다.
“언니!”
“아은이 왔어?”
도은이가 방긋 웃으며 여자애를 반겼다. 둘이 이미 아는 사이인 듯했다. 제법 친한 사이인지 둘은 손을 마주 잡고 꺄르륵거렸다.
아은이라는 여자애가 흰돌이를 보고 물었다.
“얘는 누구야?”
“흰돌이라고, 울 오빠가 기르는 개야.”
“그렇구나. 귀엽다!”
“안아 볼래?”
“응!”
도은이가 흰돌이를 건넸다. 녀석은 다른 여자의 품으로 갈아타고 헤벌쭉한 미소를 지었다.
「이게 서방 세계에서 말하는 할렘이라는 걸까요?」
「…그거 아니다.」
도은이에게 물었다.
“누구야?”
“앙, 이쪽은 아은이, 현아은. 같이 병원 신세 지고 있는 앤데, 이름이 비슷해서 친해졌지.”
도은, 아은.
비슷하긴 하다.
그리고 뒤이어 또 다른 여자가 한 명 병실로 들어왔다.
“실례합니다~”
눈꼬리가 조금 처져 있는 느긋해 보이는 인상을 가진 여자였다.
“항상 아은이랑 놀아 줘서 고마워요, 도은 씨.”
“별말씀을요! 저도 좋아서 하는 건데요, 뭘.”
“그런데 이분은……?”
여자가 내게 눈길을 보내며 도은이에게 물었다.
“울 오빠예요.”
“아~ 항상 얘기하던 그 오빠분이시구나!”
그녀가 짝 손뼉을 치며 나에 대해 브리핑했다.
“가족에게 10년이나 연락도 없이 잠수 타다가 다시 나타나선 돈 많은 사모님 하나 물어서 기둥서방 생활 하고 있다는 그 오빠 말이신가요?”
“…….”
남들이 보기에 틀린 말은 아니었다.
대외적으로 밝힐 수 없는 사실을 제외하고 나면, 나는 생활비 하나 벌지 않고 있는 백수나 다름없다. 실제로 돈이 필요할 땐 클레어가 준 카드를 쓰니까.
일단 명분은 클레어의 매니저로 활동하고 있는 보조 매니저이긴 하지만, 도은이를 알고 있는 상태에선 그것도 도은이가 빽으로 넣어 준 자리인 걸 눈치챌 수 있다.
인간쓰레기로 보여도 할 말은 없는 상황.
하지만 굳이 해명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거라면 진작에 힘을 드러냈을 테니까. 남을 위해 쓸 수도 없는 힘을 자랑해 봤자 허무하기만 하다.
“이도율이라고 합니다.”
“현아영이에요.”
현아영은 사람을 혀로 푹푹 찔러 놓고 죄책감 하나 느끼지 않고 싱글생글 웃었다.
도은이가 손등을 입 옆에 대고 속삭였다.
“오빠가 이해해. 사람에 대한 건 유독 안 좋은 것만 잘 기억하는 사람이거든. 직업이 직업이라 그런가.”
“직업?”
“가디언이래, 가디언.”
가디언.
각성자가 선택할 수 있는 진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그게 바로 헌터와 가디언이었다.
헌터는 클레어 씨와 같이 던전과 게이트를 공략해 몬스터를 사냥하고 부산물과 전리품을 통해 돈을 벌거나 장비를 강화한다.
반면 가디언은 각성자들로 이루어진 치안 집단. 쉽게 말해 각성자 경찰이었다. 범죄를 저지르는 각성자, ‘빌런’을 잡아들이는 역할.
“헌터인데 겸직으로 가디언까지 한대. 대단하지 않아? 훌륭한 일 하시는 분이니, 오빠가 좀 이해해.”
그 말대로였다.
각성자는 대부분 헌터를 진로로 고른다. 그 이유로 대개 금전적인 이유를 들 수 있다. 헌터는 길드라는 사익 추구 집단에 소속되어 헌터 사업의 규모 성장을 등에 업고 본인의 능력에 따라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일 수 있다.
반면 가디언은 협회에 속한 공무원에 가깝다. 월급을 제외하면 추가 수입은 거의 없고, 그마저도 박봉에 가깝다. 이름 있는 빌런을 제압하고 나면 현상금이나 상여금이 나오긴 하지만, 헌터에 비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진짜 이유는 달리 있었다.
헌터는 몬스터를 사냥한다. 몬스터는 미지의 종족이다. 상상 속에나 존재하던, 혹은 처음 보던 생명체들. 적어도 같은 인간이 아니다.
가디언이 상대해야 하는 건 인간이다. 빌런과의 전투는 대개 사살로 끝나곤 한다. 각성자끼리 맞부딪혀서 어느 한쪽이 제압하는 걸로 마무리되는 일은 잘 없기 때문이다.
‘인간 백정.’
그렇게도 불리는 직업이었다.
필요한 일이라고 하지만, 아무래도 꺼려질 수밖에.
“현아은, 너도 처음 보는 어른께는 인사해야지.”
그 와중에 동생 교육은 철저했다.
흰돌이랑 놀던 현아은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팔짱을 꼈다. 나를 향해 마치 가소롭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꼬마.
“난 알 수 있다.”
“……?”
“너에게선 피 냄새가 나.”
…갑자기 무슨.
빠악!
현아영이 자기 동생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얘가 못 하는 말이 없어!”
“씨… 진짠데!”
현아은이 뒤통수를 감싸 쥐고 울상을 지었다.
“하하…….”
나는 웃는 척하며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냥 중2병 걸린 꼬마의 지나가다 얻어걸린 말이라면 참 좋겠지만, 나에게 있어선 찔리는 게 많은 발언이었으니까.
이곳에 돌아와서 센터장 영감의 충고를 들은 이후로, 난 항상 웃는 얼굴로 내 본심을 가려 왔다. 내가 스스로 드러내지 않는 한 그 너머를 꿰뚫어 보는 인간은 아무도 없었다.
손가락 사이로 현아은을 바라보았다.
싸늘해진 눈매를 가리기 위해서.
* * *
“죄송해요, 많이 놀라셨죠?”
“아닙니다.”
잠시 후 현아영이 따로 불러 둘이 이야기를 나누러 나왔다. 그녀는 자판기에서 뽑아 온 음료수를 건네며 내게 사과했다.
“한창 상상력이 풍부할 시기니까요.”
대응은 결정했다. 한낱 어린아이의 근거 없는 망상, 그렇게 취급하는 것으로.
내 말을 들은 현아영이 머쓱하게 웃더니 가볍게 깍지를 끼고 양쪽 검지를 마주쳐 두드렸다. 고민이라도 있는 듯한 태도였다.
이윽고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에 나는 귀를 의심했다.
“그거… 상상 아니에요.”
“…예?”
현아영은 머뭇거리면서도 확실하게 말했다.
동생의 망상을 믿어 주는 척하는 마음씨 좋은 언니의 태도가 아니었다. 동생이 없는 이곳에서 생판 남인 내게 그렇게 말할 이유가 없다.
그녀는 지금, 담담하게 사실을 고하고 있었다.
“직감. 예지. 통찰.”
그녀가 늘어놓은 단어들은 한 가지를 의미했다.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그 애는 그런 능력을 타고났어요. 정확히 말하면 각성이겠죠. 다른 각성자만큼 강하지는 않지만…….”
그 말이 사실이라면 현아은의 가치는 대단히 높았다. 설사 제약이 있거나 항상 발동하는 게 아닌 반쪽짜리 능력이라 해도 원하는 이들이 수두룩할 거다. 아니, 원하지 않는 이가 있을까?
“저는 최대한 숨기고자 했지만, 조금씩 새어 나가서 결국……. 아은이가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것도, 어떤 세력에게 노려졌기 때문이에요. 악용하려고 하는 자들과 악용되기 전에 제거해야 한다는 자들이…….”
어린 애가 무슨 일이 있어서 입원하고 있나 했더니, 빌런에게 당했기 때문이었나.
오히려 그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일지도 모른다. 아니, 지금도 끝났다고 볼 수는 없다. 저쪽 세계에서도 용한 점쟁이들의 말로는 항상 좋지 않았다.
“이해가 되는군요.”
“뭘 이해한다는 거죠?”
내가 고개를 끄덕여 동의하자 현아영이 퀭한 눈으로 고개를 기울여 물었다.
“…그렇게 과보호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이 말입니다.”
“아, 그런 뜻이셨구나.”
그녀가 다시 웃는 낯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저는요, 아은이가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안전한 세상을 만드는 게 목표예요.”
안전한 세상이라.
과연 그 목표가 이루어질까?
지금의 지구가 위험하다면, 그건 몬스터가 나타났기 때문에 위험한 걸까? 몬스터가 나타나기 이전의 세상도 마냥 안전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인간이 있는 한.
“그러니까 이건 혹시나 하고 물어보는 건데요.”
현아영이 손을 꼼지락거렸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는 동작. 마치 지금은 손에 없는 무언가를 찾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이도율 씨, 빌런은 아니죠?”
현아영이 공허한 눈동자를 뜨고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내가 무어라 대답하려는 사이.
금발 머리카락을 가진 뒤통수가 내 앞을 가로막고 섰다. 팔을 뻗어 내 앞을 가로막은 그녀가 맞은편의 상대를 향해 물었다.
“내 남편한테 무슨 용건이죠?”
클레어의 물음에 현아영이 두 눈을 깜빡거렸다.
“엇… 이도율 씨가, 클레어 씨의 남편?”
둘이 이미 아는 사이여서 그런지, 클레어의 목걸이 아티팩트에도 불구하고 현아영이 클레어를 한눈에 알아봤다.
클레어가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그러자 현아영은 단숨에 표정이 풀어졌다. 그녀가 밝은 목소리로 손뼉을 마주쳤다.
“뭐야~ 그럼 물어볼 것도 없었네요! 클레어 씨의 보증이라면 당연히 믿죠~”
단숨에 뒤바뀐 태도를 보이는 현아영.
그런 현아영을 내버려 둔 채, 내가 클레어에게 조용히 물었다.
“여긴 어떻게 알고?”
“이거.”
클레어가 반지를 낀 손가락을 내보였다. 그러고 보니 그런 기능이 있다고 했었지. 그래도 적절한 타이밍에 등장해 줘서 살았다.
“의외인데. 아직도 날 위해 달려올 줄은 몰랐어.”
그녀에게 난 더 이상 지켜야 할 약자가 아니었다.
호감을 사기 위해 하던 연기도 집어던진 지 오래였다.
도은이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한 계약 관계. 가짜 결혼으로 마석을 양도받을 수 있게 만들고. 마석을 구할 수 없는 내가 그녀를 이용하고, 그녀는 S급 던전에서 활약할 정도로 강해지기 위해 내 가르침을 받아들일 뿐인, 그런 관계였다.
그조차도 내가 힘으로 틀어쥐어서 유지되고 있는 관계였으니. 나 따윈 꼴도 보기 싫은 인간이라고 여기리라 생각했는데.
“…당신이 병원에서 소란이라도 피우면 도은이 귀에도 들어갈 테니까. 그뿐이에요.”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대답에 어깨를 으쓱했다.
“둘이 친합니까?”
내 물음에 두 사람이 동시에 대답했다.
“그럼요~”
“아니요.”
그러자 클레어가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을 내비쳤다. 그녀가 사람을 상대로 이런 태도를 보인 적은 처음이었다. 불편한 사람을 만나도 뻣뻣한 태도를 보이는 게 다였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현아영이 웃는 얼굴로 추억담을 꺼냈다.
“에이, 우리 같이 작전도 하나 했잖아요. 촌철 박멸 작전!”
“…박멸이 아니라 구제였습니다.”
“그게 그거 아닌가요?”
“사람을 구해 준다는 뜻의 구제.”
구제救濟인가.
촌철이라면 몇몇 길드에서 몰래 양성하던 암살 집단의 이름이었다. 정상적인 수단으로 사람을 충원했을 리가 없으니, 거기 속한 살수들을 피해자이자 구제 대상으로 보는 작전이었나.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공식적인 입장이고, 현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당사자들만이 아는 얘기였다.
현아영이 말하는 걸 보니 내가 생각하는 거랑 크게 다를 것 같지도 않았다.
“당신이 이 정도로 싫어하는 건 처음 보는데.”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에요. 특히 빌런 진압에 있어선.”
클레어가 피곤하다는 듯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때 현아영이 마침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엇! 그럼 혹시…….”
“……?”
“클레어 씨가 그 10년이나 가족에게 연락도 없이 잠수 타다가 이제야 나타나서 동생 빽으로 낙하산 매니저 타이틀 달고 기둥서방 생활이나 하는 한량의 아내분이란 말씀인가요?”
“…….”
클레어가 입을 뻐끔거렸다.
나야 이미 한 번 들은 말이었지만 클레어는 처음이었다.
게다가 그녀에게도 듣기 좋은 말은 아니었다. 얼마든지 좋은 남자와 결혼할 수도 있을 텐데 무슨 짓을 하다가 그런 놈팡이한테 잡힌 거냐는 소릴 들을 만했으니.
“…그 매니저가 지금 제 매니전데요.”
“우와. 완전 골수까지…….”
누가 봐도 가족 같은 기업이 돌아가는 꼬라지와 다를 바가 없었다.
결국 클레어가 입을 닫았다. 여기에 대고 그래도 운전은 열심히 한다느니 하는 소릴 해 봤자 오히려 기름만 붓는 꼴이었다.
“클레어 씨, 제가 아는 변호사 소개해 드릴까요?”
“…당신 변호사는 사람 머리 깬 거 변호 전문이잖아요.”
“언젠가 남편 머리를 깨고 싶을 때가 올지도 모르잖아요!”
하하.
클레어가 어색하게 마른 웃음을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