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42
42화 특채 합격
“끝나면 연락할 수 있어요?”
클레어를 데려다주면서 물었다.
클레어는 오늘 팀과 함께 하루 종일 일정이 있었다. 어디 다른 데로 이동한다 해도 팀 단위로 움직일 테니 도중에 내가 필요할 일은 거의 없었다.
“괜찮긴 한데, 왜요?”
“직업 좀 알아보려고요.”
“…뭐라고요?”
클레어가 두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백수 셔터맨 남편이 일 좀 구한다는 게 그렇게 못 믿을 얘기인 걸까. 내가 그동안 사실상 무직인 상태로 매니저 간판만 달고 클레어 꽁무니만 쫓아다닌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성실한 모습을 보여 왔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평생 먹여살릴 남편인 것도 아니니까, 나도 앞가림할 방법 정도는 찾아 둬야지.
저번에 이야기가 나왔다 만 이후로 고민해 보다가 결론을 내렸다. 헌터는 할 수 없어도 가디언을 할 수 있다는 걸.
“…뭐 할 건데요?”
“각성자 테스트를 보려고요.”
“각성자? 당신이요?”
클레어가 의아하게 물었다.
그 의문은 정당한 것이었다. 아무리 내가 내공을 통해 몬스터고 빌런이고 전부 때려잡을 수 있다 하더라도, 마력 보유량을 검사하는 각성자 테스트에 통과할 순 없을 테니까.
하지만 헌터나 가디언이 되레면 각성자 등록을 먼저 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일단 해 보려고요. 안 되면 어쩔 수 없고.”
“…….”
내 대답에 클레어가 팔짱을 끼고 몸을 뒤틀었다. 내면에서 격렬한 고민거리가 맞부딪치고 있는 듯이.
이윽고 결론을 내렸다는 듯이 나를 야속하게 바라보고는, 핸드폰으로 어딘가 연락을 넣었다. 문자를 몇 번 주고받은 후 그녀가 의기소침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가면 준 거 아직 갖고 있죠?”
“있죠.”
“그거 쓰고 가요…….”
클레어가 한쪽 손 위로 얼굴을 기댔다.
“왜요?”
“가 보면 알아요.”
그래 놓고 내가 이걸 왜 도와주고 있지, 하며 곁눈질로 내 얼굴을 흘겨보고 있었다.
* * *
각성자 테스트는 에서 받을 수 있었다.
간만에 방문한 센터에 감회가 느껴졌다. 내가 이 세상에 오고 처음으로 머물렀던 장소라고 할 수 있었으니까. 산속에서 만난 센터장 영감이 데려온 곳도, 클레어가 날 찾아온 곳도 여기였다.
가면을 쓴 내가 차에서 내렸다. 클레어는 이곳에 와 보면 알 거라고 했는데…….
팍!
누군가 손바닥으로 내 등을 두드렸다. 힘 조절이 되지 않은 매운 손바닥이었다. 내 좁은 인간관계에 이런 짓을 할 사람이라면 한 사람 밖에 없었다.
“야! 여우!”
뒤를 돌아보자 주하린이 한쪽 손을 허리에 얹고 만면에 미소를 띄운 채 서 있었다.
“오랜만이다?”
“…오랜만입니다.”
그녀와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지. 내가 기억을 되짚었다. 아마도 클레어와 함께 백화점을 방문한 날, 옥상 위 상공에 A급 게이트가 터졌던 날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야, 너 대체 어디서 활동하냐? 어떻게 애가 코빼기도 안 보일 수가 있냐. 나, 발 되게 넓은데.”
“음…….”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주하린이 품을 뒤적거렸다.
잠시 후 그녀가 꺼낸 건 한 장의 카드였다. 사진은 없지만 이름과 함께 간단한 문구가 새겨져 있는 카드였다. 그 내용조차도 단촐하기 그지없었다.
[상기의 인물을 X급 각성자로 인정합니다.]X급 각성자 라이센스 카드.
등급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의 카드였다.
주하린은 검지와 중지 손가락 사이에 낀 그것을 내게 내밀었다.
“자. 받아.”
“이건…….”
“보면 몰라? 라이센스 카드.”
“이걸 왜 제게?”
내가 의문을 표하자 그녀가 씨익 한쪽 입가를 끌어올렸다.
“클레어한테 다 들었어. 너 라이센스 카드 잃어버렸다며? 살다 살다 이런 띨띨이는 또 처음 보네. 정신 좀 똑바로 차리고 살아!”
그 대답에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카드를 받았다.
라이센스 카드는 잃어버린 게 아니라 애초에 발급받은 적이 없었다. 각성자 테스트를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으니까.
카드에는 내 이름 대신 ‘여우’라는 글귀가 쓰여 있었다.
“이건 실명이 아니어도 됩니까?”
“뭐야, 너 처음에 등록할 땐 실명으로 했어? 뭐, 빽이 없었나?”
주하린이 설명했다.
“보증하는 기관이랑 고위 각성자가 있으면 괜찮아. 가디언으로 활동하는 사람들 중에선 그렇게 하는 사람들 많아. 정체 들키면 자다가 빌런들한테 칼침 맞을지도 모르고, 가까운 사람이 보복당할지도 모르니까.”
“아하.”
클레어가 굳이 주하린을 불러 특별한 라이센스 카드 발급을 부탁한 이유가 있었다. 가디언으로 활동한다면 정체를 숨기는 편이 낫다는 이유.
내 정체를 밝히면 S급 헌터인 클레어는 괜찮다 쳐도, 일반인인 도은이나 아버지가 노려질 위험이 있다.
물론 나도 여기서는 온갖 놈들한테 원한을 살 정도로 설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이미 내 곁에서 내 성격을 여러 번 겪어 본 클레어가 고심 끝에 도움을 주기로 결정한 것이다.
“기관은 대현으로 넣어 놨고, 보증인은 클레어. 하여간 얘는 지 급할 때만 찾는다니까.”
주하린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가 문득 고개를 들고 내게 물었다.
“근데 둘이 무슨 사이야? 걔가 이렇게 남 챙겨 주는 거 처음 보는데.”
“그건…….”
“농담이야, 농담. 걔 결혼한 거 소문이 파다한데 말이야. 남편이랑 인터뷰 한 기사도 떴잖아. 매니저라고 들은 것 같은데.”
주하린은 여우 가면을 쓴 내가 이도율인 걸 모르고 있었다.
제아무리 가면으로 가렸다 해도, 원래 주하린 정도 되는 각성자라면 키와 체형, 그리고 목소리가 일치하는 걸 통해 판단할 수 있겠지만. 그럴 수 없는 건 가면에 달린 기능 때문이다.
이 가면은 ‘불야성’이라는 곳에 방문하기 위해 구매한 가면이었다. 단순히 얼굴을 가리는 것 이상으로, 클레어 씨의 목걸이와 비슷하게 정체를 가리는 기능을 했다.
사용자가 직접 마력을 충전해서 사용해야 하는 아티팩트가 아니라면 나도 사용할 수 있었다. 내공을 그만큼 섬세하게 다룰 수만 있다면.
밝혀야 할까, 숨겨야 할까. 주하린은 악인으로 보이지도 않고, 방금도 내게 막 도움을 준 참이다. 클레어와도 아는 사이라면 얘기해도 무방할지도 모른다.
“그게…….”
“아, 미안. 전화.”
주하린이 내 말을 가로막고 전화를 받았다. 짧게 통화를 마친 그녀가 이별의 말을 전했다.
“나 가 봐야겠다. 바쁜 몸이거든.”
“아, 네.”
주하린은 헌터일 뿐만 아니라 길드 대현의 이사급 간부인 동시에 대기업 대현 회장의 핏줄이기도 했다. 당연히 바쁠 텐데, 굳이 시간을 내서 센터까지 직접 온 것만 해도 상당한 배려였다.
자신이 왔던 방향으로 돌아가던 주하린이 완전히 멀어지기 전 몸을 돌려서 알려줬다.
“아, 맞다. 그거 등급은 안 정해져 있으니까 그거 테스트는 따로 받아야 할 거야.”
“알겠습니다.”
“힘내라고.”
나는 다시 한번 라이센스 카드를 들여다보았다.
그곳에 적혀 있는 X급이라는 문구. 이 공란을 채울 차례였다.
* * *
센터에 입장해 각성자 등급 테스트를 등록하고 대기실로 안내 받았다.
그곳에서 우연히 아는 얼굴을 만날 수 있었다.
“엇, 아저씨!”
교복을 입은 여자애가 쪼르르 달려왔다. 백화점에서 구해 줬던 두 남매의 누나 쪽이었다. 이곳에서 볼 줄은 몰랐다.
“그때는 감사했습니다.”
“…그래. 건강하냐?”
“덕분에요. 아, 저 이름은 한나은이라고 합니다.”
그랬군.
얼굴은 알지만 이름은 들은 적이 없었다.
“여긴 어쩐 일로?”
“아…….”
내 질문에 한나은이 쑥스럽다는 듯이 몸을 배배 꼬았다.
“그, 왠지 그날 이후로 각성을 해서……. 일단 테스트나 한번 볼까 해서요. 물론 빠른 애들은 어릴 때 각성하고 아카데미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만, 그래도 일단은…….”
“그래?”
묘한 기분이었다.
내가 구한 인간이 어딘가에서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는 건.
“…너 그때 보니 깡 좋더라. 헌터 하면 잘할 거야.”
“앗, 넵! 감사합니다!”
그때 마침 한나은이 차례가 되어 불려 나갔다.
대기실에서 조금 더 시간을 죽이고 있었더니 이윽고 내 차례가 다가왔다.
“각성자 등급 갱신 신청하신 ‘여우’님 입장해 주세요.”
“예.”
직원의 안내에 따라 측정실에 입장했다.
측정실은 넓고 새하얀 실내 공간으로, 격자무늬가 그려져 있는 작은 돔이었다. 이곳에 들어와 있는 사람은 나 하나고, 천장에 달린 스피커로부터 안내 메시지를 들을 수 있었다.
[준비되셨나요?]“예.”
[재측정 단계 진행하겠습니다.]공간 내의 벽들이 갈라지며 틈 사이로 총구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1단계. 마력 파동 측정 시작합니다.]그리고 각 총구들이 푸른빛을 방사했다. 레이저 같은 걸로 중앙에 선 내 몸을 훑고 지나갔다. 그것은 마력의 파동이었다. 내 몸에 닿은 마력은 모두 산산이 흩어졌다.
아마 체내에 존재하는 마력 양을 탐지하는 과정인 것 같지만, 내 몸엔 마력이 존재하긴 커녕 그와 상극인 내공으로 가득 차 있다.
[측정 완료했습니다.]안내 멘트 이후 직원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결과가 곧바로 나오는 모양이다.
[어… 이상하다. 고장 났나?]“왜 그러시죠?”
[측정 결과 보유 마력량이 0으로 표기됐어요. 아예 일반인이 아닌 이상 이런 수치가 뜰 리가 없는데…….]고민하는 목소리.
경력직 각성자로 둔갑해서 등급 재측정 과정을 거치는 게 도움이 됐다. 라이센스를 처음부터 따는 거였으면 지금 단계에서 각성자가 아니라고 쫓겨났을 테니까.
하지만 뒤에 기다리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너무 오랜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었다.
[일단 다음 단계로 진행할게요.]“예.”
이번엔 바닥이 열리더니 커다란 샌드백이 하나 솟아올랐다. 가죽과 쿠션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합금 소재로 되어 있었다. 보통 사람이 쳐서는 흠집도 안 나게 생긴 장치.
[2단계는 출력 측정입니다. 한 번에 낼 수 있는 최대 출력으로 목표물을 공격해 주세요.]합금 샌드백을 물끄러미 살펴보던 내가 천장의 스피커를 향해 눈을 돌리고 물었다.
“괜찮은 겁니까, 이거?”
숱하게 들어온 질문인지, 직원은 능숙하게 대답했다.
[특수 합금 소재로 되어 있는 대對마력 구조물이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망가져도 물어내라고 안 하죠?”
[국내에선 청진명 씨가 유일하게 망가뜨린 전적이 있는데, 그것도 주무기인 창을 든 상태에서나 가능했으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그래서 돈 물어줬나요?”
[물론 수리비는 센터에서 지불했습니다.]만족스러운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돈 벌러 왔는데 시설 망가뜨렸다고 빚이 생겨서야 본말 전도다.
[그럼 시작해 주세요.]나는 오른팔을 뒤로 당겼다.
안 그래도 1단계인 마력 파동 측정에선 죽을 쑨 참이었다. 다음 단계로 나아갈 기회를 받은 건 이게 재측정 과정이기 때문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등급을 받는 것조차 실패했을 거라 생각하니, 이번엔 점수를 메꿔야 타산이 계산이 맞았다.
‘S급까진 필요 없어.’
힘을 조절했다. 그 기준은 일전 클레어와 청진명의 대결에서 보았던 청진명의 일격. 그 정도가 최고 기록으로 여겨지는 듯했으니.
여기서 보여 줄 건 기술이 아니라 단순한 위력.
단 한 번의 권拳이었다.
내공이 들끓었다. 단전의 기운이 온몸을 한 바퀴 돌고 어깻죽지를 타고 팔과 손가락으로 내려갔다. 내공은 그 주위를 맹렬하게 회전하며 가속했다. 바람 하나 들어올 곳 없는 실내 공간에 돌풍이 휘몰아쳤다.
─구웅.
한 걸음 내딛자 무거운 소리가 땅을 울렸다. 그와 달리 내뻗는 주먹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 흔한 바람을 가르는 소리조차 없이.
그 순간 스피커에서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그만! 그만! 그마아아안!]“…영감?”
센터장 최강현의 목소리였다.
순간적으로 모든 내공을 풀어낸 내 순수한 주먹이 샌드백 모양의 구조물을 강타하기 직전 멈췄다.
콰아앙─!
그 여파만으로 측정실 내에 한차례 굉음이 울려 퍼졌지만, 구조물의 상태에는 큰 이상이 없어 보였다.
[휴우우…….]스피커로 안도의 한숨 소리가 흘러나왔다.
영감의 말대로 멈추긴 했지만, 나는 아직 등급 측정 중이었다. 이제 어쩔 거냐는 눈빛을 담아 스피커 쪽을 노려보니, 영감의 침음이 들려왔다.
[아…….] […센터장님?]두 사람이 자신의 대답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
센터장 최강현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하, 합격! 특채 합격!] […….]“…….”
영감이 헛기침을 하고 지시했다.
[그럼 잠시 내 방으로 좀 와 보게.]센터장과의 대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