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48
48화 네 가장 소중한 걸 부수겠다
치지직!
던전 공략을 완료하고 열린 출구 균열. 그곳을 통해 청진명의 팀이 던전에서 빠져나왔다.
던전에서 나온 클레어의 손엔 마석이 들려 있었다. 크고 작은 격자 모양의 결정이 뭉쳐, 그 중심에 푸른빛을 머금고 있는 마석. 마침내 손에 넣은 S급 마석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보관함에 담았다. 혹시 모를 오염이나 마력 유실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마석 전용 보관함이었다.
그나저나, 도율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기껏 구한 마석을 한시 바삐 병원으로 옮겨도 모자랐는데.
물론 클레어도 알고 있었다. 마석을 구하는 데 성공했다는 건, 두 사람이 더 이상 부부로 있을 이유가 없어졌다는 것. 그것이 두 사람 사이의 약속이었지만.
클레어는 이미 그렇게 할 생각이 없었다.
진정으로 도율을 위해서라거나, 도율의 뜻에 따른다거나 하는 이유 따윈 모두 접었다. 이 결정이 독선이고 자기만족이라 하더라도 밀고 나갈 생각이었기에.
그로 인해 결국 미움받는다 할지라도.
그런데 정작 도율이 보이지 않으니 모처럼 다짐을 했어도 그걸 전할 상대가 없었다.
‘이 인간은 또 어딜 간 거지?’
어쩌면 자신과 헤어지는 게 싫어서 조금이라도 멀리 떨어져 있는 걸지도 모른다.
…고 생각하는 건 아무리 그래도 억측일까.
클레어가 반지에 새긴 마법을 발동했다. 보석 속에 깃든 마력이 마법 ‘붉은 실’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반지엔 어떠한 변화도 생기지 않았다. 근처에 있다면 붉은색의 실이, 쌍을 이루는 다른 반지와 이어지기 위해 꾸물거리며 나아가야 했는데.
반지 안에 있는 마석이라고 해 봤자 결국 싸구려다. 그 정도로는 고작 바로 근처에 있을 때밖에 작동하지 않았다. 남들에게 과시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 외엔 큰 쓸모가 없는 정도.
의아함을 느낀 클레어가 반지에 마력을 더욱 주입했다. 그녀의 마력을 받아들인 마법이 더욱 탐색 범위를 넓혔다. 반지에 새겨진 마법 술식이 한계 이상의 마력을 감당하지 못해 비명을 내질렀다.
기껏해야 주변에서 모습을 숨기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녀는, 그 범위가 수백 미터를 넘어간 시점에 이르러서야 마법의 발동을 멈췄다.
“…….”
그리고 그 순간, 누군가 클레어의 머리에 푹신하고 꽉 조이는 무언가를 꾹 눌러 씌웠다.
“미안하다. 내 애마는 임자 있는 여자를 태우지 않거든.”
“……?”
클레어의 머리를 덮은 건 헬멧이었다. 그것도 오토바이를 탈 때에나 쓰는 풀페이스 헬멧.
클레어가 고개를 들자 그녀에게 헬멧을 씌운 청진명이 엄지손가락으로 송민아를 가리켰다.
“운전은 저쪽에 부탁하라고.”
송민아는 거대한 오토바이 위에 올라탄 상태였다. 비교적 작은 체구의 그녀와 비견되어 훨씬 커 보이는 할리 데이비슨. 팔을 거의 벌 서는 것처럼 들어 올려야 핸들에 손이 닿았다.
“부릉부릉!”
그녀가 입으로 커다란 배기음을 내뿜었다.
* * *
짝. 짝. 짝.
도율이 도착한 최상층의 집무실에서 메마른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도율이라고 했나? 대~단하구먼. 젊은 나이에 그 정도 실력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아주 기고만장할 만해. 아주.”
낯선 남자의 말에 도율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층엔 그 남자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이곳에 도달하기까지, 위에서 내려오고 아래에서 올라오는 수많은 적들을 정리해 왔다. 어쩌면 더 이상 남은 수족이 없는 걸지도 모른다.
“넌가? 여기 길드장.”
“길드장님이라고 불러, 나이도 어린 새끼가…….”
백건영.
플레이아데스의 길드장이 도율의 눈앞에 있었다.
“일단 묻지.”
“뭐?”
“내 동생… 이도은을 그렇게 만든 게 너희냐?”
도율은 묻고 있었다.
도은이 석화병에 걸린 건 클레어의 매니저 활동을 하다가 생긴 재해가 아니라, 어떤 자들이 뒤에서 손을 쓴 결과였냐는 것을.
플레이아데스 길드는 클레어의 매니저가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도율을 납치하려 했었다. 원한이라 부를 만한 관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이유는 그가 클레어의 매니저로 활동하기 때문.
그리고 도율의 이전에 클레어의 매니저로 활동하고 있던 건 도은이었다.
게다가 놈들이 몰래 실험실로 개조한 장소에서 메두사의 마력을 정제해 석화의 저주를 담은 안개를 뿌려 대는 걸 보고 온 참이었다. 도은에게 걸린 것과 비교해 훨씬 더 개량된 듯한 강력한 마력이 담긴 살포 장치였다.
도율의 질문에 백건영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물었다.
“아니라고 하면 어쩔 건데?”
“달라질 건 없지.”
“근데 뭘 묻고 있어, 씹거…….”
백건영이 어처구니없이 실실 웃다가 별안간 웃음기를 지워 냈다.
“아주 세상이 네 것 같지?”
“…….”
“잘난 재능 타고나서 마력 익히니까 다른 사람은 개미로 보이겠지. 돈도 왕창 벌고, 사람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면 죽일 수 있고. 내가 뭐 혹시 틀린 말 했나?”
도율은 헌터나 가디언으로 활동한 적 없기 때문에 돈을 벌었다는 건 틀린 말이었지만,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널 손가락 하나로 죽일 수 있다는 건 맞군.”
“하…….”
백건영이 주머니에 넣어 둔 버튼을 눌렀다.
“할 수 있으면 해 보라고.”
그러자 집무실 내의 공간이 기묘하게 울렸다. 특수한 파장이 실내를 가득 채웠다. 공기의 떨림이 아니었다.
‘이건…….’
도율의 눈이 당혹으로 물들었다.
이 파장은 그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것. 지금도 그의 몸속을 맴돌고 있는 힘의 근원. 이곳과는 동떨어진 세계에서 익힌 기술.
‘기氣’였다.
“이제야 좀 봐줄 만한 표정이네.”
당황한 도율의 표정을 다른 의미로 해석한 백건영이 빈정거렸다.
“내가 아무런 대비도 없이 이곳에 죽치고 있을 줄 알았냐? 다 너 같은 새끼들을 상대하려고 준비해 놓은 게 있었지.”
도율이 지닌 것과 비슷한 형태의 힘, 기를 인위적으로 생성해 발생시키는 장치라면 이곳까지 온 각성자를 무력화할 수 있을 것이다.
각성자라고 해도 마력을 활성화하지 못하면 그 몸은 일반인과 같다. 몬스터와의 전투로 다져진 실력이 있다 하더라도, 결국은 같은 인간의 수준까지 끌어내릴 수 있다면.
그에 더해, 이 장치는 그 이상의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아마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 거다.”
마력과 내공은 서로 상충되는 힘. 각성자가 이런 파동에 노출되면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하기 어려웠다. 도율이 마력 앞에서도 태연한 건, 그가 가진 내력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었다.
백건영이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집무실에 숨어 있던 그의 부하들이 몸을 드러냈다. 모두 각성자가 아닌 일반인들이었다. 그들은 총기로 무장하고 있었다.
백건영이 손을 휘두르자 총구가 불을 뿜었다. 가지고 있는 탄약을 모두 쏟아부을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도율은 미동도 않았다.
“뭐……?”
겉보기에도 아무런 상처가 없었다. 빗나갈 리는 없었다. 사방에서 포위하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분명히 모든 마력을 봉인하고 일반인이나 다름없는 신체가 되었을 텐데, 기관총을 맞고도 멀쩡하다고?
그것을 증명하듯 도율의 발치엔 탄환들이 떨어져 있었다.
도율이 발을 굴렀다. 그러자 탄환들이 공중으로 솟구쳤다. 그가 손을 휘젓자 공중에 뜬 탄환들이 총에서 쏜 것과 같은 속도로 퍼졌다.
“컥!”
“아악!”
백건영이 잠복시켜 둔 부하들이 모두 쓰러졌다. 마력 하나 다룰 수 없는 일반인들이었다. 각성자였다 하더라도, 백건영이 작동한 재밍 장치 때문에 무사할 순 없었겠지만.
도율이 이들의 반응을 보고 깨달았다.
‘기… 라는 존재에 대해 아는 건 아니야.’
알고 있었다면 도율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 마력이 아닌 내공이라는 것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어야 했다.
그들은 이 파장을 단순한 마력 재밍 용도로 알고 있었다. 이 정체가 기라는 건 무림의 세계에 다녀온 도율만이 깨달을 수 있었다.
‘우연의 산물? 아니면… 어딘가에서 발견한 건가?’
만약 후자라면, 이 세상 어딘가에도 자신과 같이 내공을 사용하는 존재가 있다는 뜻이다. 그게 사람이든, 사람이 아닌 존재이든.
도율의 뇌리에 하나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클레어와 함께 A급 게이트에 입장했을 때 만난 요물이 했던 말들을 떠올렸다. 너는 이쪽 인간이라는 말을.
그리고 그 요물이 죽어가는 도중, 주변을 가득 메운 몬스터들은 타 죽어 가는 그것의 주위를 둘러 손뼉을 치며 비웃었다.
“어… 어떻게!”
백건영이 소리치자 도율은 상념을 떨쳐 냈다.
눈앞에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있었다.
도율이 천천히 걸음을 옮기자 백건영이 다급하게 서랍을 뒤졌다. 거기서 나온 건 다양한 방어용 아티팩트였다. 일반인도 사용할 수 있도록 마석을 장착한 장치. 마석을 다루는 길드의 기술력으로 더욱 강화와 개조를 거친 상태였다.
하지만 그것들 중 무엇 하나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 없었다. 백건영은 탄환 대신 마나를 소비하는 마나건의 트리거를 몇 번이나 당겼다. 찰칵거리는 소리만 날 뿐, 마나건은 불을 뿜지 못했다.
“이, 이게 왜……. 분명히 재밍은 꺼 뒀는데…….”
도율은 백건영이 망연자실하게 내려다보는 마나 건을 빼앗아 들었다. 총신을 부수자 그 속에 장착된 작은 마석이 보였다.
푸르게 빛나던 마석은 도율의 손에 들리자 간헐적으로 점멸하더니 이윽고 빛을 잃고 말았다.
“그건……. 설마 네가……?”
대답할 의무는 없었다.
그러나 모든 걸 깨달은 백건영이 실소했다.
“하, 하하…….”
백건영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들어 도율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잇새로 탈력감 가득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너다…….”
“…….”
“내 꿈을 이뤄 줄 자가…….”
그 말에 도율이 인상을 찌푸렸다.
“내가 왜?”
백건영은 도율이 이해하지 못해도 개의치 않았다. 그가 히죽 웃으며 물었다.
“날 죽일 건가?”
“…….”
“내 길드를 주지.”
도율이 기가 차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런다고 내가 널 살려 둘 것 같나?”
“아니. 내 목숨은 어찌 되든 좋아.”
백건영은 더없이 진지한 얼굴로 말하고 있었다. 그가 원하는 건 정말 이도율이 플레이아데스 길드를 손에 넣는 것이었다.
“지금 넌 단지 강할 뿐, 세력도 지식도 모자라지. 길드는 널 위한 기반이 되어 줄 거다. 특히 네가 해야 하는 일엔 더더욱…….”
그렇게 말하는 백건영은 희열에 차 있었다. 자신의 길드가 남의 손에 넘어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따윈 전혀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였다. 마치 처음부터 이러기 위해서였다는 듯이.
도율이 싸늘한 목소리로 거절했다.
“무슨 상상을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난 네가 원하는 대로 살 생각 없어.”
“아니! 필요로 하게 될 거다! 언젠가!”
“…….”
백건영은 확신했다. 언젠가 도율이 운명대로 나아가다 보면 자신만의 기반과 세력, 그리고 지식과 기술을 필요로 하리라는 것을.
그리고 플레이아데스는 도율과 같은 자를 돕기 위해 만든 길드였다. 길드장이 바뀐다 해도 가는 길은 변치 않았다. 오히려 더 적합한 자에게 열쇠가 넘어가는 것이었다. 백건영에겐 바라 마지않는 일이었다.
그걸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 하나 정도는 싼값에 넘길 수 있었다.
그 태도에 거짓이 없다는 걸, 도율은 간파할 수 있었다.
“그렇군.”
“드디어 알아준 거냐!”
“너에게 가장 소중한 건 이 길드였나.”
도율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집무실은 어지럽기 짝이 없었다. 그가 난동을 부렸기 때문이 아니었다.
길드장 집무실이 으레 대외적인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고급스럽고 깔끔한 분위기를 가장하는 것과 달리, 이곳은 연구에 몰두하는 과학자 같은 집요함이 배겨 있었다.
백건영은 자신의 보위도 아니고, 길드를 소유하는 것도 아닌. 이 길드 그 자체가 크고 성장하는 것에 목적을 가진 남자였다.
“그럼 이걸 망가뜨려 주지.”
“뭐……?”
도율의 말에 백건영의 표정이 창백하게 얼어붙었다.
“무, 무슨 바보 같은 소릴 하는 거냐! 이 길드는 네게 주겠다고 했잖아!”
“넌 내게 가장 소중한 걸 상처 입혔어.”
백건영이 깨달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이해관계의 일치만으로는 메워질 수 없는 간극이 있다는 것을.
“그러니… 나도 네 가장 소중한 걸 부수겠다.”
설령 이 플레이아데스 길드를 온전히 남겨 두고 자신의 것으로 삼는 것이 가장 도움이 되는 길이라 하더라도.
도율은 자신의 동생을 괴롭게 한 놈들의 흔적이 이 세상에 남아 있는 걸 용납하지 않았다.
철저한 박멸.
도율이 취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선택지였다.
도율이 검지와 중지를 펴 머리 위로 뻗었다. 검결지. 두 손가락의 끝에 내공이 응축되었다. 육안으로 보아도 알 수 있을 정도의 순도와 양이었다.
“그, 그만둬!”
백건영이 달려들었다. 그의 나약한 몸뚱이로는 도율의 거행을 막을 수 없었다.
“신검身劍─.”
도율이 뻗은 손을 내리그었다.
“─여뢰如雷.”
하늘로부터 하사받은 듯한 일검이 지상을 꿰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