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49
49화 결국 울렸나
“플레이아데스 길드? 거긴 왜?”
“그냥… 거기로 가 주세요.”
“오케이.”
클레어는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송민아는 시시콜콜하게 캐묻는 것 대신 바이크의 액셀을 당겼다. 할리 데이비슨이 거친 배기음을 뿜는 것으로 그에 화답했다.
그 이유는 클레어도 알지 못했다. 다만 핸드폰에 센터장으로부터 연락이 한 통 와 있을 뿐이었다, 플레이아데스 길드로 가 보라는.
문자 내용은 그게 전부였다. 센터장이 갑자기 왜 이런 문자를 보낸 건지, 거기는 왜 가 보라고 하는 건지. 어떤 이유도 적혀 있지 않았지만, 클레어는 직감할 수 있었다.
도율이 거기 있으리라는 것을.
클레어가 송민아의 허리를 꽉 붙들었다. 바이크를 모는 속도가 예사롭지 않았다. 송민아는 몸에 딱 붙는 옷을 입고 있었지만, 클레어의 옷은 미친 듯이 나부꼈다.
“선배님, 이거 혹시 마석 개조하신 건가요?”
“아~ 우리 막내가 내 운전 실력에 감탄했나 보구나?”
“이거 불법…….”
“좀 더 밟아 보실까!”
마석의 사용처는 협회의 주관하에 철저하게 규제, 제한되고 있다. 명목은 헌터 업계의 지속적인 발전이다. 더 많은 헌터들이 좋은 장비와 높은 수준을 갖출 수 있게 하는 것.
당연히 이런 바이크를 개조하기 위해 마석을 사용하는 건 허가받기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송민아는 그 질문을 와하하 웃어넘기며 속도를 높였다.
부아아앙!
클레어의 지적하는 목소리 역시 바람 소리에 파묻혀 사라지고 말았다.
덕분인지 두 사람은 순식간에 긴 거리를 주파하여 플레이아데스의 길드 건물 앞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바이크에서 내린 클레어는 왠지 땅 위를 굉장히 오랜만에 밟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헬멧을 벗은 두 사람이 그제야 주변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눈치챘다.
“얘네 오늘 쉬는 날인가? 왜 이렇게 조용하지?”
뒤돌아보면 입구에서 주차장에 이르는 정원에 지나다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정문의 건물 로비 역시 전역이 어두운 채였다. 창문은 모두 셔터가 내려가 그 안을 엿볼 수도 없는 상태.
클레어는 그 부자연스러운 상황을 통해, 우려하고 있던 일이 현실로 다가오려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순간.
한 줄기의 빛이 하늘 위로 뻗어 나갔다. 어쩌면 그 반대였을지도 모른다. 끝 모를 상공과 이어진 빛이 구름을 꿰뚫어 구멍을 만들었다. 그 반짝임이 건물의 최상층에 도달했다.
“튀엇!”
그 어떤 전조도 없었지만, 송민아와 클레어는 무언가를 직감하고 서로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번개 같은 일격이 두 사람이 겹쳐 서 있던 지점을 가르고 지나갔다. 마치 건물 위로 내리꽂힌 듯한 거대한 검격의 흔적. 주위에 있던 그녀들 역시 말려들 뻔했다.
콰아아앙─!
소리와 충격은 한 박자 늦게 뒤따라왔다. 건물과 땅이 갈라진 사이로 바람이 휘몰아쳤다. 단정한 절단면에서 과도한 힘을 버티지 못한 것처럼 파편들이 떨어져 나왔다.
다만 부지가 넓은 편이라 다른 건물에는 피해가 없는 것이 다행이었다.
“뭐, 뭐야. 이거…….”
그 현상에 클레어는 물론 베테랑 S급 헌터인 송민아조차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결과 자체도 놀라웠지만, 이 정도 파괴력은 사실 불가능하다고 여겨질 정도는 아니었다. S급 헌터가 전력을 다한 일격을 선보이거나, S급 던전의 보스들이 강력한 기술을 구사하면 이 정도 위력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준비가 필요하다. S급 헌터라면 마력을 한계까지 끌어 올리기 위해 정신을 집중하느라 상당히 오랜 시간 무방비해져야 했다. 보스 몬스터 역시 나름대로 시간을 들여야만 그런 공격이 가능했다.
그러나 그녀들은 이 공격에 앞서 어떤 전조도 느끼지 못했다. 마력을 모으고 있다는 낌새조차 없이 순식간에 날아온 공격. 말 그대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현상이었다.
“대체 누가 이런…….”
송민아가 마른침을 삼켰다. 이런 일이 가능한 이들을 부르는 말이 따로 있었다.
표면상으로 S급이 끝인 헌터의 등급. 그러나 실제로 등급 상 최하위인 F급부터 최상위인 S급까지의 차이보다. S급 턱걸이와 순위권 사이의 차이가 더욱 컸다.
측정 장비의 내구도 탓에 명확하게 수치화해서 증거로 삼을 순 없지만, S급 헌터들 사이에선 조용히 알려져 있었다. S급을 초월한 헌터들이라는 뜻으로 부르는 용어가 있었다.
‘오버 랭커.’
오버 랭커라고 불리는 자들은 단신으로 던전 공략을 다니거나 혼자 설산에 파묻혀 수련을 하는 등, 하나같이 정신 나간 작자들뿐이어서 세간에도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때.
반으로 갈라져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아 보이는 건물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 * *
“…끝났군.”
기감을 펼쳐 건물 내에 남은 생존자가 있는지 찾아봤지만, 살아남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 내가 걸어온 복도에, 비상구 계단에, 그리고 집무실에 쓰러져 있었다.
내가 보고 있는 지금 이 장면이, 기억 속의 풍경과 겹쳐 있었다. 원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손에 넣은 힘. 다짐을 짓밟고 솟아오른 복수의 충동.
썩 즐거운 광경은 아니었다.
엘리베이터는 작동을 멈췄지만, 일일이 계단으로 내려갈 필요가 없었다. 나는 건물의 갈라진 틈새로 뛰어내려 곧바로 1층에 도착했다.
로비 바깥에는 기감을 통해 확인한 대로 클레어와 송민아가 기다리고 있었다.
클레어를 태워다 줄 내가 없었으니, 송민아는 클레어를 데려다 주기 위해 함께 온 거라고 쳐도. 클레어는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마중을 나온 건지. 예상외의 일이었다.
복장을 점검했다. 피에 전 냄새가 나긴 해도, 딱히 더러워진 부분은 크게 없었다.
로비 바깥으로 향하며 웃는 얼굴을 만들어 냈다.
“여기까진 어쩐 일이에요?”
“…….”
내 천연덕스러운 물음에 클레어가 기가 차다는 듯 숨을 내뱉었다.
“내가 묻고 싶은 말이에요. 왜 당신이 여기 있는 거예요?”
“잠깐 볼일이 있어서.”
“내가 기다리라고 했잖아요.”
“미안해요. 어쩔 수 없었어요, 센터장님이 위험하다고 해서.”
클레어가 던전에 들어간 직후에 센터장 비서 최지연에게 전화가 왔었다. 영감의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른다는데, 갚아야 할 은혜가 있어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저건…….”
클레어가 시선을 옮겨 반파된 플레이아데스 길드의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천장부터 바닥까지 찢어발긴 듯한 모습. 건물은 간신히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녀가 대답을 구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플레이아데스 길드를 박살 내게 된 건 센터장 영감을 돕는 과정에서 이놈들이 한 짓거리를 알게 됐기 때문이다.
‘…어디서부터 설명하지.’
이 길드가 사실 클레어의 매니저가 되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노려 왔고. 도은이가 병에 걸린 원인을 제공하기까지 했다는 것. 하루아침에 알아낸 정보는 아니었다.
하지만 클레어도 알아야 하는 일이었다. 그녀 역시 S급 마석을 구하기 위해 달려온 피해자였으니까. 도은이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누구보다 애써 온 당사자인 만큼.
‘…아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건 오히려 좋은 기회였다.
클레어는 좋은 여자였다. 지금도 나를 이해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뜨고 4대 길드 중 하나를 무너뜨렸다. 약속을 저버린 건 물론 지금 당장 빌런으로 수배당해도 할 말이 없는 짓을 저지른 셈이다.
그런데도 나를 믿으려고, 내 입에서 나올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지금 그녀를 위해 해야 하는 일은 진실을 밝히는 것 따위가 아니라, 언젠가 헤어질 인간을 위해 마음 써 봤자 소용없다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끝내야 해.’
불행을 빌미로 다른 사람의 인생을 끌어들이고 싶진 않았다.
무림에서 스승님을 잃으며 깨달았다. 진정으로 소중한 사람이라면, 나 같은 인간 곁에 두지 않는 것이 옳은 선택이라는 것을.
“신경 꺼.”
“네……?”
“내가 어디서 뭘 하고 다니든 네가 무슨 상관이야.”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딱 잘라 말하자, 클레어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클레어와 같이 지낸 기간이 벌써 몇 주였다. 그동안 내가 그녀를 알아 가는 만큼, 그녀도 나에 대해 알게 되었을 것이다. 솔직한 성격도 내비쳤었고, 조금이지만 옛날 얘기도 했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이런 얘기를 꺼낼 수 있는 날이 다시 올 수 있을까.
“이유 같은 건 없어. 그냥 거슬려서 다 죽여 버렸어. 남김없이 모조리 다.”
나는 원래 이런 놈이다.
그리고 너는 나를 바꾸는 데 실패했다.
언젠가 클레어가 진실을 알게 되더라도, 그건 나의 이유가 아닌 거다. 나는 단순히 눈에 띄는 길드를 변덕 삼아 몰살했고, 그게 우연히 악행을 저지른 놈들이었을 뿐이다.
내가 행한 건 보복이나 응징이 아닌, 단순한 패악.
클레어는 그렇게 받아들여야 했다.
…아니, 이게 오해일까?
그동안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핑계나 대면서 손 놓고 있었던 주제에, 적합한 복수의 대상을 발견하자마자 신나서 달려든 인간인 주제에?
내가 정말 제대로 된 인간이었다면, 처음부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동원해서 마석을 구하려고 애썼을 거다. 아무리 사용하고 싶지 않은 힘이라 하더라도 가족을 위해서라면 응당 그래야 했던 게 아닐까.
“…알겠어요.”
클레어가 떨리는 목소리로 당부했다.
“하지만… 다음부턴 연락이라도 남겨 줘요.”
“…….”
클레어는 그런 내 얘기를 듣고도 물러서지 않았다. 사정이 있어 말하지 않을 뿐,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 믿는 눈빛이었다.
미칠 것 같았다.
여기서 내가 뭘 더 해야 한다는 거지.
“마석, 마석은 구했나?”
“그거라면…….”
클레어가 보관함에 담긴 마석을 꺼냈다. 한눈에 봐도 상당한 마력이 담긴 물건이란 걸 알아볼 수 있었다.
결과는 아무래도 좋았다. 구하지 못했다면 쓸모없는 여자라고 매도할 생각이었다. 아니라면 다른 말을 지껄이면 된다. 나는 칭찬이나 격려 한마디 없이 그녀를 대했다.
“그럼 어차피 다음은 없어. 더 이상 너한테 볼일은 없으니까.”
“…….”
“너도 그렇잖아.”
그녀에게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우리는 S급 마석을 구할 때까지의 임시 관계라는 것을. 그 외의 이유는 없다.
설령 그 사이 잠깐 정이 들었다 해도, 계약 결혼이라는 억지를 이어 나갈 정도의 크기는 아니다.
“거기에 대해서 할 말이 있어요. 내가 이번 공략이 끝나면 할 말이 있다고 했잖아요. 그 말, 지금 할게요.”
클레어가 결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녀의 입술이 움직이는 게 느리게 보였다.
“당신, 10년 전에 어떤 아이를 구했다고 했잖아요.”
클레어에게 말했던 내 과거의 일부.
그 얘기를 지금 왜…….
“그거……. 나예요.”
생각이 멈춘 상태에서 나는 간신히 말을 쥐어짜 냈다.
“…거짓말.”
“제가 왜 이런 걸로 거짓말을 하겠어요?”
클레어가 부드럽게 웃으며 증거를 입에 담았다.
“아저씨가 아니라 형이라고 부르랬잖아요.”
“…….”
기억났다. 그런 말을 했다는 건.
10년 전 내가 구했던 애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지금 클레어처럼 금발이었는지. 그녀의 10년 전 모습을 상상하면 어울릴지. 그런 건 조금도 기억나지 않았다.
“알아요. 당신이 당신 말대로 날 저주하고 있다고 해도…….”
클레어에게 말했다, 그 아이를 저주했다고.
그건 절반은 거짓말이었다. 사실은 미워하는 만큼 기도했다. 내가 목숨을 구한 아이가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기를. 그러기만 한다면 이 알량한 희생도 의미가 있었을 테니까.
그 아이가 클레어였다면.
내가 클레어를 구하기 위해 그런 일을 겪은 거라면, 의미 없는 일은 아니었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나는 그걸 갚을 의무가 있어요.”
단호한 클레어의 목소리에 나도 결심을 끝마쳤다.
내겐 그걸로도 충분하다. 그 이상의 무언가를 바라는 건 과분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더는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다. 지금 나는 그 어느 순간보다도 더 잔인해질 수 있었다. 복수를 행할 때보다도 더.
“너 그거 죄책감이야.”
내 말을 들은 클레어가 멍하니 시선을 보냈다. 나는 그녀가 내 말의 의미를 충분히 곱씹을 수 있도록 기다려 주었다.
“저기…….”
“날 네 속죄의 도구로 이용하지 마.”
클레어가 커다란 눈망울에 나를 담았다. 그곳에 눈물이 차올랐다. 처음 보는 그녀의 눈물이었다.
‘…결국 울렸나.’
목구멍에 진흙이 가득 찬 듯이 답답했다. 어떻게 해도 토해 낼 수 없는 이물이었다.
짜악!
메마른 소리와 함께 뺨에 화끈거리는 통증이 느껴졌다.
“쓰레기 자식.”
송민아가 경멸을 담은 눈동자로 노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