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58
58화 우리 이제 공범인데요?
“남자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
송민아가 클레어를 돌아보며 물었다. 귀를 의심했지만, 잘못 들은 게 아니라는 듯 클레어가 쑥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갑자기 그건 왜…….”
그녀가 알기로 클레어는 이미 기혼자였다. 이제 와서 그런 걸 물어볼 이유가 없었다.
그러고 보면 그 남편이라는 작자도 실제로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길드 건물 하나를 통째로 박살 낸 데다가 S급 헌터인 클레어를 상대로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제압하는 모습.
하지만 강한 건 강한 거고, 그와 별개로 내용물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초면에 뺨까지 날리고 말았으니 말 다 했다고 볼 수 있었다.
클레어가 이혼을 했다는 소식은 딱히 들은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 성실한 아이가 남편을 내버려 두고 바람을 피울 위인은 또 아니었다.
그럼 그 인간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는 건데.
송민아는 그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안 가르쳐 줄래.”
“네……?”
송민아가 턱을 괴고 고개를 돌렸다. 클레어의 얼굴을 보면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아서 아예 눈 밖에 둘 생각이었다.
“언니이…….”
“어, 언니라고 불러도 안 되는 건 안 돼.”
송민아의 단호한 태도에 클레어가 시무룩하게 쭈그러들었다. 비에 젖은 강아지 같은 처량한 모습에 송민아는 마음이 흔들리려 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크윽…….”
침음을 흘리던 송민아가 절충안을 꺼내 들었다.
“…남자들한테 물어보자고.”
송민아의 투항에 클레어가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송민아는 복잡한 심경이었다. 세상에 좋은 남자 많다는 말도 사귀고 헤어질 때나 하는 말이었다. 결혼까지 해 버린 이상 쉽게 무를 수 없는 일이었다. 노력하는 모습은 대견하다고 해야 할지.
그러다가 문득 의문이 들었다.
‘근데, 둘이 결혼한 사이라기엔 어딘가 좀 어색하지 않나?’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감. 신혼부부라기보다는 정략결혼이라도 한 것 같은 분위기였다.
지금 질문도 타이밍이 부자연스러웠다. 보통 그런 건 사귀기 전이나 직후에 물어보게 되는 것 아닌가?
아니면 두 사람의 관계에는 특별한 무언가가 끼어들어 있는 걸까.
“남자가 좋아하는 거?”
청진명의 목소리에 송민아가 생각을 접어 두었다.
청진명은 아지트 구석에 놓인 벤치에 앉아 악력기를 주무르고 있었다. 사용하는 사람은 청진명 한 사람뿐이었지만, 이 장소 자체가 청진명의 개인 공간이니 강제로 갖다 버릴 순 없었다.
질문을 들은 청진명은 팔짱을 끼고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게임, 축구, 고기?”
무난한 대답이었지만, 클레어가 원하는 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거 말고. 여자가 해 주면 좋다 싶은 거 있잖아.”
“아~ 뭐야. 그런 얘기였냐? 그거야 당연히 물어볼 필요도 없는 거 아닌가? 섹…….”
퍼억!
송민아가 팔뚝으로 청진명의 목을 강타했다. 래리어트에 당한 청진명의 말이 도중에 잘리고 벤치 위로 자빠졌다.
“커억……!”
“막내 앞에서 무슨 말버릇이야, 이 새끼야!”
송민아가 격분해 소리쳤다. 하지만 청진명 역시 억울하다는 듯 목을 감싸 쥐고 항변했다.
“야! 무슨 막내가 열여섯 소녀냐?! 쟤도 알 건 다 아는 나이라고!”
“그건… 그렇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송민아의 기세가 누그러지자 청진명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매너리즘에 빠졌을 땐 코스튬이 직빵이야. 굳이 꼽자면…….”
송민아가 클레어의 안색을 살폈다. 청진명은 그렇게 말했지만, 클레어는 어쩐지 별세계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따라잡지 못하고 있었다.
공식적으로는 부부 사이로 알려져 있지만, 남들이 생각하는 그런 관계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송민아가 클레어의 손을 잡아끌었다.
“가자. 저런 놈 말은 들어 봤자 도움이 안 돼.”
아지트 내를 둘러보니 남은 사람은 한 명, 고철민뿐이었다.
“철민아.”
“뭡니까?”
“남자들이 좋아하는 여자는 어떤 여잘까?”
송민아의 물음에 고철민이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개나 고양이가 사람 목소리로 말을 한다 해도 이보다는 놀라지는 않을 것처럼.
시간을 들인 후 고철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누님도 슬 신경 쓸 나이 됐다 아임까.”
“…내 얘기 아니거든?”
송민아가 턱짓으로 클레어를 가리켰다. 그러자 고철민이 혀를 찼다.
“쯧쯧. 누님 그렇게 안 봤는데, 무슨 막내를 방패로 세우고 그러심까? 것도 이미 결혼도 한 아를.”
“…….”
송민아는 달리 반박하지 않았다. 클레어의 사정이 어쩌고저쩌고 떠들고 싶지 않았다. 결국 이마를 문지르다가 본론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됐고, 말해 봐. 남자들은 어떤 여자가 취향이야?”
“음…….”
고철민이 잠시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요리는 어떻심까?”
“요리?”
“아, 왜. 옛말에 남자를 사로잡으려면 위장부터 잡아야 한다는 말도 있잖슴까.”
“요리…….”
그 말에 클레어가 당혹을 표했다.
지금까지 식사는 모두 도율의 몫이었다. 이전엔 그가 그것 역시 업무의 연장선처럼 여기는 것 같기에 부담스럽게 느끼지 않았다. 이후에도 관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도율이 모든 끼니를 책임졌다.
그런데 이제 와서 요리라니.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대부분 사 먹거나 간편식으로 때우기만 했으니까.
게다가 도율의 요리 실력은 제법 괜찮은 수준이었다. 그런 상대에게 초심자 그 자체인 자신이 요리를 대접한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것으로나 보이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고민하는 클레어의 모습을 바라보던 고철민이 송민아의 귀에 대고 물었다.
“진짜 막내가 물어본 거 맞네요?”
“내가 그렇다고 했잖아.”
클레어의 고민을 짐작한 고철민이 위로했다.
“요리란 게 원래 마음이 중요한 법 아이겠나? 서투르면 서툴러도 좋다. 날 위해 서툴러도 힘내서 해 줬구나… 하는 감동이 있으니까.”
여전히 불안해 보이는 클레어를 위해 고철민이 덧붙였다.
“그럼 내 마법 하나 가르쳐 줄게.”
“마법……?”
“제육볶음.”
“제육… 볶음?”
고철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패하면 사람이 아이다.”
* * *
‘…사람이 아닌 건가, 난?’
프라이팬을 내려다보며 클레어가 고뇌에 빠졌다.
도율은 오늘 일정이 있어 나갔다 온다는 소식을 전했다. 클레어는 오늘이 몰래 준비한 요리를 대접할 기회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실패하면 사람이 아니라는 제육볶음을 실패하고 말았다는 점이다.
프라이팬 위에는 검게 탄 무언가가 눌어붙어 있었다. 그냥 구우면 된대서 진짜 불 올리고 구웠는데 왜 타 버린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후우…….”
지금까지 들떴던 게 다 바보처럼 느껴졌다.
조금 서투르지만 나름대로 먹을 수 있는 요리를 만들어 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면 도율은 뭐라고 반응할지 상상했다. 맛있다고 칭찬할지, 아니면 묵묵히 먹어 줄지. 그것도 아니라면 아직 한참 멀었다며 놀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건 전혀 먹을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버리자.”
아직 도율이 돌아오지 않았으니까, 흔적만 치우면 모를 것이다. 자신이 무얼 준비하려 했었는지.
그리고 그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클레어는 부엌에서 벌어진 참상을 들키지 않기 위해 도율을 딴 데로 돌리려 했지만, 결국 도율은 부엌까지 밀고 들어갔다. 그리고 프라이팬 위의 끔찍한 몰골까지 들키고 말았다.
도율이 쓴웃음 짓는 모습을 보이자 클레어가 프라이팬 손잡이를 쥐었다.
“…어차피 버리려 했어요.”
상상했던 결과와 전혀 달랐다. 이 간단하다는 것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러나 손이 움직이질 않았다. 왜인가 하니, 도율이 클레어의 손 위를 포개어 덮고 있었다.
“이거…….”
그 손은 클레어가 힘을 줘도 꿈쩍하지 않았다.
“음식 버리면 천벌 받습니다.”
도율은 그렇게 말하고 불을 피웠다.
삼매진화. 그 불꽃의 뜨거움 역시 도율의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었다. 불 조절을 섬세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는 상황에선 종종 써먹는 방법이었다.
너무 탄 부분은 잘라 낼 필요가 있었다. 가위가 멀어 도율은 허공섭물을 사용해 손에 넣었다.
도율의 손을 타자 적어도 겉보기엔 그럴싸해 보이는 모습으로 돌아왔다. 보기와 달리 살릴 수 있는 부분이 많았던 듯했다.
“자, 어때요. 이러면 먹을 수 있죠?”
“…맛없던데.”
클레어가 볼멘소리로 중얼거렸다.
겉모습이 그럴싸해져도 근본적으로 맛이 없는 건 변하지 않았을 테니까.
도율은 그런 클레어의 반응에 부엌을 둘러봤다.
“아… 이건 비밀로 하려고 했는데.”
“……?”
도율이 찬장을 열었다. 그리고 구석에 숨겨 놓은 무언가를 꺼내 클레어에게 보여 줬다. 겉에 소고기 사진이 나타나 있는 봉투였다.
도율이 그 이름을 입에 담았다.
“다시다.”
“…아?”
“맛의 비결이라고나 할까요.”
인공 조미료였다.
클레어는 그 정체를 깨닫고 뒤늦게 배신감이 들었다. 지금까지 도율이 요리하는 모습을 세심하게 관찰한 적도 없고, 그가 이런 걸 사용하지 않았다고 자부심을 부린 것도 아니었지만…….
“사, 사기꾼!”
왠지 그렇게 외치고 싶은 기분이었다.
도율은 그런 비난에도 일말의 동요 없이 다시다를 들이부었다.
“사기꾼이라뇨. 맛만 좋으면 장땡이지.”
“나는 왜…….”
“그리고.”
도율이 씩 웃으며 클레어와 함께 프라이팬 손잡이를 맞잡은 손을 가리켰다.
“우리 이제 공범인데요?”
“…….”
“이게 사기면 뭐, 부부 사기단인가?”
클레어가 입을 다물었다.
부부라는 말을 농담처럼 꺼내는 걸 보니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였다.
결국 그럴싸하게 수습을 마친 제육볶음과 함께 식사 준비가 일단락되었다. 식탁에 마주 앉은 클레어에게 도율이 물었다.
“어때요? 우리 둘의 첫 합작품.”
“…먹을 만하네요.”
맛을 보고 난 후에 클레어는 깨달았다.
도율이 맛의 비결이라곤 했지만, 제아무리 조미료를 쓴다 해도 그것 하나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도율이 평소에 해 주는 것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도율은 짐짓 능청스럽게 투덜거렸다.
“맛만 좋은데.”
그 모습을 보니 클레어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맛있으면 다음에 또 해 줄게요.”
그러자 도율의 안색이 굳었다.
“…다음에 또?”
“…….”
클레어가 싸늘하게 바라보자 도율이 헛기침을 하며 말을 돌렸다. 그 내용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만 클레어는 조용히 다짐했다.
언젠가 반드시, 저 인간의 콧대를 꺾어 놓고 말겠노라고.
* * *
[오빠! 우리 좆됐어!]“…뭐?”
도은이가 먼저 전화를 걸어온 건 오랜만이었다. 퇴원한 이후, 클레어의 매니저로 복귀하며 거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애가 전화를 했다면 당연히 평범한 안부 인사가 아닐 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전화를 받자마자 저런 소리를 할 줄은 몰랐다.
“무슨 일인데?”
[감사 떴어!]“…감사? 무슨 감사?”
가장 먼저 떠오른 건 플레이아데스 길드 관련 사건이었다.
영감이 잘 처리했다고 호언장담하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국내 4대 길드 중 하나가 하루아침 사이에 공중분해를 당한 일이다. 누군가 자세한 내막을 파헤치고자 했다 해도 충분히 납득이 갔다.
하지만 그런 일이 있다면 도은이가 아니라 영감에게 연락이 왔을 거다. 도은이는 이 일에 대해 모르기도 하고.
그게 아니라면, 역시 클레어와 관련된 일인가.
[마석 사용처 때문에 감사 떴어!]마석 사용처.
클레어가 구한 S급 마석이라면 도은이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했다.
하지만 4촌 이내의 친인척에게 사용했기 때문에 문제없는 거 아닌가? 그걸 위한 위장 결혼이기도 했고.
그런 내 의문을 예상했는지 도은이가 설명을 보충했다.
[그러니까……. 그 결혼이 애초에 작전 아니냐고 감사 떴다고! 내 입원 날짜보다 혼인 신고 날짜가 더 늦다고!]그럴싸한 추론이었다. 거기에 도은이의 매니저 활동 경력까지 살펴보면 더욱 의심스러웠겠지. 그보다 훨씬 전부터 도은이는 클레어의 매니저로 활동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났다.
“야.”
[응?]“근데 이거 작전 맞잖아.”
문제는 그게 틀린 말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오해가 있다면 해명하면 될 일인데, 이건 오해가 아니라 명백한 사실이었다.
“…진짜 좆된 거 맞네?”
[맞다 했잖아.]그 후 우린 둘 다 할 말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