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63
63화 뭔 소리야, 이건 또
“참가자명 ‘여우’ 님, 등록 완료되었습니다.”
아크투러스.
이곳 불야성에서 투기장을 운영하는 조직의 이름이었다. 평소에도 정기적으로 경기를 개최해 손님들의 입장료와 배팅 수수료를 타 가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이곳의 참가자, ‘투사’들 역시 끊이지 않을 정도로 많았다. 본인의 실력에 자신만 있다면 불야성의 화폐인 ‘토큰’을 구하는 데 이만큼 좋은 기회도 없다는 것이었다.
투사들은 승리를 거듭하면 아크투러스 투사 랭킹에 등재되어 랭커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들은 나름대로 알아보는 이들이 있는 불야성의 유명 인사들이었다.
이번 토너먼트는 그런 랭커들부터 나 같은 유입 신인들까지 모두 참여하는 대형 이벤트였다.
접수원이 내게 검은 뱃지를 내밀었다.
“이건 예선 참가자들에게 지급되는 뱃지입니다. 예선전이 치러지는 날 꼭 소지하고 오셔야 합니다. 만약 지참하지 않을 시 실격이니 유의해 주시길 바랍니다.”
“예.”
등록 과정은 이걸로 끝이었다. 예선전이 시작하기까지 며칠 남아 있었으므로, 그때까지는 시간이 비었다. 우선 숙소를 좀 구할까 하는데.
문제는…….
‘빈털터리군.’
이곳 불야성에서는 자금 거래 기록을 숨기기 위해서인지 ‘토큰’이라는 특수한 화폐를 사용한다. 저번에 와 봤을 때 이미 겪어 봐서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클레어나 영감에게 빌릴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토큰의 거래는 이곳 불야성에서만 가능했다. 클레어나 영감이나 각자 바쁜 사람들이니 돈 좀 빌리자고 여기까지 불러내기도 뭐했다.
어쨌거나 돈을 좀 벌어야 한다는 건데.
그거라면 이미 생각해 둔 방법이 있었다. 처음 해 보는 것도 아니었다.
불야성은 현재 아크투러스의 토너먼트 이벤트를 위해 방문한 투사들과 관객들로 한창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이런 인파라면 길거리 가게 같은 곳은 당연히 일손이 모자란 상황에 처했을 거다.
나는 익숙한 가게에 방문했다.
이전, 클레어를 따라 불야성에 방문했다가 술값을 지불하지 못해 아르바이트를 했던 곳이었다. 그때 내가 꼬치도 잘 굽고 맥주도 잘 팔아서 손님 엄청 많았는데.
“사장님 있어요?”
“누구… 헉!”
사장은 여전한 얼굴로 맞이하다가 내 가면의 생김새를 파악하고 숨을 삼켰다.
“다, 다, 당신은……! 마, 마법사님!”
“마법사?”
내가 하는 건 마법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내 의아함을 언짢음으로 해석한 건지 사장님이 재빨리 말을 주워 담았다.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바짝 긴장한 모습. 누가 보면 내가 때린 줄 알기라도 하겠다.
“저기, 이번에는 무슨 일로……?”
사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닌 척하지만 내가 일분일초라도 빨리 용건을 마치고 이곳에서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느껴졌다.
물론 내 용건은 여기서 나가는 것과 거리가 멀었다.
“혹시 알바 자리 남아요?”
“예……?”
내가 그렇게 묻자, 사장이 울상을 지었다.
* * *
“저 있으면 매출 늘어서 좋지 않습니까?”
“하하…….”
사장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자고로 장사꾼이라면 매출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사장은 그렇지 않았다. 어쩌면 가게 주인에는 크게 소질이 없는 걸지도 모른다.
설마 내가 반갑지 않은 건 아닐 테고.
그래도 내가 잡아먹으려 하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는지, 나름대로 한결 편하게 나를 대했다.
“마……. 아니, 여우 님은 왜 이곳에 다시 오신 겁니까? 자주 방문하시는 건 아닌 것 같던데요.”
“용건이 좀 있어서요.”
“용건이라 하면……?”
“아크투러스.”
내 대답에 사장은 짐작했다는 듯 역시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여우 님은 이번이 첫 참가이십니까?”
“그렇죠.”
“그렇군요. 원하는 상품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사장의 질문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세이렌의 눈물.”
“세……. 네?”
그러자 사장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 혹시 우승 상품 아닙니까?”
“맞을걸요.”
“…그럼 우승이 목표란 말씀이십니까?”
“예.”
사실 상품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영감도 내게 말했다. 세이렌의 눈물을 갖고 싶어서 부탁하는 건 아니라고.
중요한 건 이 세이렌의 눈물이란 아이템의 출처가 어디인지 밝혀내는 것. 그걸 위해 일단 우승을 하고 아이템을 받아 내는 것까지가 내 역할이었다.
그 뒤는 알아서들 하겠지.
사장이 신중한 목소리로 내 귓가에 대고 말을 전했다.
“그, 이런 말씀 드리기 조심스럽습니다만. 아무리 여우 님이 강하다곤 해도 우승은 조금 힘들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런가요?”
“예…….”
사장은 강하게 확신하고 있었다. 나한테 잔뜩 쫄아 있는 주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승은 힘들지 않겠냐고.
“왜요?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그야……. 이미 강력한 우승 후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우승 후보라…….”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는 말은 아니었다.
이번 토너먼트는 아크투러스의 특별 이벤트. 반면 정기적으로 열리는 경기를 통해 이미 실력을 입증한 랭커들 역시 존재했다. 그리고 우승 후보는 당연히 그들 중 한 명으로 점쳐지겠지.
“누구누구 있는지 아십니까?”
내 물음에 사장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설명했다.
“번개 망치를 사용하는 ‘묠니르’ 토마스가 있고. 차크람을 사용하는 ‘흑희’도 빼놓을 순 없겠죠. 아니면 어마어마한 덩치와 괴력을 자랑하는 ‘데드 페이스’도…….”
심드렁한 태도로 듣고 있었다. 모처럼 가르쳐 주는 건 고맙지만, 누구 하나 내 적수가 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랭커는 아니지만, 우승 후보로 점쳐지는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누구죠?”
랭커가 아닌 데도 우승 후보에 이름을 올린 사람. 그렇게 말하자 흥미가 일었다.
“주혁이라는 남자입니다.”
“주혁?”
사장이 긴장된 눈빛으로 목소리를 낮췄다. 마치 그 남자의 이야기를 하는 것조차 꺼려진다는 듯이.
“원래는 아크투러스의 랭커였지만, 손속이 너무 잔인해서 제명당한 남자입니다. 그 후 자취를 감췄는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뒷세계의 조직에 몸을 담고 있었다던가.”
“그렇군요.”
사장은 음산한 이야기라도 하는 듯이 어깨를 떨었다. 나는 그 모습을 어처구니없이 바라보았다. 따지고 보면 불야성도 일종의 뒷세계인데, 이렇게 간이 작은 인간이 어떻게 여기 가게 차릴 생각을 다 했지.
주혁이라는 놈이 그 정도로 위험한 놈인 모양이지.
그때 홀 쪽에서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집기가 깨지고 부서지는 소리였다. 사장의 안색도 삽시간에 새파래졌다. 다년간의 경험으로 깨달은 거다. 이건 단순한 사고의 소리가 아니었다.
이를테면, 싸움이 벌어지는 소리였다.
* * *
이곳 불야성엔 경찰이고 뭐고 없다. 힘 좀 쓴다는 조직들이 세력을 형성하고 있을 뿐, 치안을 위해 노력하는 집단은 없었다.
“이 새끼가!”
“뒈져!”
“너나 뒤져!”
그러니까 웬 깡패 두 명이 가게를 부수며 싸우고 있다 하더라도 말릴 사람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사장이 말릴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사장은 입에 손가락을 넣고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아무렴 돈보다는 목숨이 소중하니까.
긴 숨을 내뱉고 내가 나섰다. 여기는 내가 지낼 며칠 동안 아르바이트 장소로 찜한 가게다. 사장님이랑 면식도 있고. 망가지는 건 곤란했다.
남자 중 하나는 너클을 끼고 있었고, 다른 한쪽은 양손에 단검을 쥐고 있었다.
둘 다 사거리 짧은 무기를 들고 있으면 가까이 붙어서 치고받고 싸우기나 할 것이지. 두 사람은 덩칫값도 못 하고 서로 거리를 두고 추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빙 돌다가 발로 걷어차서 우당탕 망가뜨렸다.
“나가서들 싸우지?”
그러자 두 남자가 돌아봤다.
“이건 또 뭐야?”
가까이 있던 너클 남자가 마력을 끌어 올리며 내게 달려들었다. 달리는 힘까지 더해 너클로 내 배를 가격하려 했지만.
‘내공을 쓸 것도 없군.’
그대로 남자의 이마를 바닥에 처박았다.
쾅!
다행히 바닥은 부서지지 않았다.
단검을 든 남자는 멀뚱히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행동이 잽싼 놈은 아니었다. 곧바로 도망쳤어야지.
물론 그랬어도 잡아 왔겠지만.
나는 손가락을 까딱였다.
“집합.”
그래도 눈치는 빠른지 남자는 단검을 떨어뜨리고 양손을 든 채로 내게 다가왔다.
“너네 뭔데 남의 가게에서 깽판이야?”
“저, 그게…….”
“기물 파손에 장사 방해. 싹 다 물어내.”
가게 안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게다가 다른 손님들도 이미 다 떠나고 없었다. 물론 돈을 지불하고 가는 성실한 인간은 아무도 없었다.
기절한 놈의 품을 뒤져서 토큰을 징수하려는 찰나, 품에서 익숙한 물건이 하나 보였다.
“이건……?”
검은 뱃지였다.
아크투러스 토너먼트에 참가한 참가자가 그 증표로 받는 물건.
거기에 반응한 건 싸움을 벌였던 남자였다.
“아, 그건! 부… 부수는 게 좋습니다.”
“이걸?”
이건 예선에 참가하기 위한 자격증이었다. 그런데 왜 남의 걸 부수려고……. 아.
내가 이마를 짚었다.
“설마 이거 부수려고 싸운 거냐?”
“그, 그건…….”
남자가 고개를 떨구고 대답하지 못했다.
설마 예선이 시작되기도 전에 경쟁자를 한 명이라도 더 줄이기 위해 남의 뱃지를 부수고 다니는 놈들이 있을 줄이야.
딱히 그래선 안 된다는 룰도 없었다. 개최 측은 예선전 날 때 이걸 꼭 갖고 오라고 했으니, 어느 정도 유도하기도 했겠지. 예선전은 이미 시작했다, 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었다.
고작 이런 이유로 그 소란이 벌어졌다니.
손아귀에 힘을 주고 쥐자 뱃지가 우득 하고 일그러졌다. 그러자 단검 남자의 표정이 밝아졌다. 어쨌거나 경쟁자를 하나 제거하긴 했으니까.
나는 녀석의 품에도 손을 넣었다. 녀석 역시 검은 뱃지를 갖고 있었다.
우드득.
“아…….”
두 개째 뱃지를 부수고, 나는 손을 내저었다.
“가 봐.”
아쉬운 눈길로 바라보는 것도 잠시. 녀석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 가게를 떠났다.
* * *
사람이 많으면 진상도 많은 건지.
그날 이후로도 가게에서 싸움판을 벌이는 놈들은 끊이지 않았다. 놈들은 예선전이 시작하기 전에 경쟁자를 한 놈이라도 더 줄여 놓는 게 현명한 전략이라 믿는 듯한 눈치였다.
그럴 때마다 나서서 정리했더니 벌써 부러뜨린 뱃지의 개수가 10개가 넘었다.
“드디어 내일이면…….”
사장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진상을 상대해야 했으니 진이 빠질 만도 했다.
사장이 표정을 고쳐 웃으며 내게 토큰을 전송했다.
“자, 이건 마지막 알바비입니다. 특별히 신경 써서 좀 많이 넣었습니다. 퇴직금 삼아서.”
“아니,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어허, 제 마음이라 생각하시고 받아 주십시오.”
마음은 좋은데.
“저 안 그만둘 건데요?”
“…예?”
내 대답에 사장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듯 멍청하게 입을 벌렸다.
예선전을 치른다 해도 그다음엔 본선이 있다. 본선부터 결승전까지의 일정이 얼마나 걸릴지 확실하지 않은 지금, 예선에 나간다고 아르바이트를 그만둘 리가 있나.
토너먼트가 끝날 때까지 머무를 생각이라는 뜻을 전하자 사장은 혼이 나간 듯이 비척거렸다.
내가 사장의 어깨에 손을 얹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벌 수 있을 때 벌어 놔야죠.”
요 며칠 진상을 제외해도 손님 자체가 많아 워낙 정신없이 지내긴 했다. 그래도 파리 날리는 것보단 낫지 않나.
그러자 사장이 너절한 몰골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 * *
그리고 다음 날.
“확인했습니다. 참가자명 ‘여우’ 님. 안쪽 대기실로 입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멀쩡한 뱃지를 보여 주는 것을 통해 예선 참가 자격을 확인받을 수 있었다.
접수원의 안내에 따라 안쪽 통로를 따라 이동하자 커다란 대기실이 나왔다. 여러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실내 공간이었다.
적당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때 같은 예선 참가자 중 한 명이 내게 다가왔다. 남자의 모습에 반응하듯 고개를 들어 올리자, 그가 내게 물었다.
주변을 둘러보자, 아닌 척하지만 참가자 모두가 이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 여우 가면……. 너인가?”
“뭐?”
“소문의 뱃지 사냥꾼이.”
…뭔 소리야, 이건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