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66
66화 본업은 탐정이라고
“어떻게 하실래요?”
자칭 탐정이 묻는 말에 내가 대답했다.
“이제 와서 돌아갈 순 없잖아.”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오지랖 부리지 않고 얌전히 돌아갔겠지만, 완전히 모르는 사이가 아니었다. 신세 지고 있는 가게 사장의 딸아이가 상대라면 그냥 넘어갈 수도 없었다.
그러자 자칭 탐정이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그냥 돌아가자는 말은 아니었고요. 어떻게 들어갈 생각이냐, 이거죠.”
“…생각해 둔 방법이라도 있나?”
“물론이죠!”
자칭 탐정이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믿음직스러운 녀석은 아니었지만, 당당하게 대답하는 걸 보니 마음이 기울었다. 뭔가 그럴싸한 방법이라도 있는 건가.
“변장입니다!”
“…변장?”
도대체 뭘로?
“자고로 이 사회에서 가장 의심받지 않는 게 바로 순진한 학생들인 법이죠. 지유 학생이 별다른 검문도 없이 들어간 거 봤죠?”
서지유가 건물에 입장하는 장면을 떠올린 난 동의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낡은 건물 입구엔 문지기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있었지만, 서지유를 슥 훑어보곤 금방 자리를 비켜 줬다. 이미 안면을 튼 사이일 수도 있지만, 피차 아는 사이로 보이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친구라고 우기면 뭐라도 될지도 모른다.
“만만해 보이는 학생은 그냥 들여보내 줄 가능성이 크다?”
“바로 그거예요. 자고로 제 탐정 경험에 따르면 타율은 꽤 좋은 편입니다.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어요.”
“음…….”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이 시간에 교복을 어디서 구해?”
교복이란 건 원래 평소에 파는 물건이 아니지 않나? 입학 시즌에나 잠깐 파는 거지.
그렇다고 교복 입고 지나다니는 놈들 잡아다 빼앗아 입을 수도 없고. 이 근처엔 교복 입고 서성거리는 불성실한 놈도 안 보였다.
“짜잔!”
그러자 자칭 탐정이 잘 다려진 교복을 꺼냈다. 남녀 한 벌씩.
“…이건 또 어디서 난 건데?”
“탐정의 999가지 비밀 도구 중 하나! 변장용 코스튬! 이에요.”
“남자 교복은 왜 있는 건데?”
“조수용이죠.”
이 상황에선 내가 조수 역할인가.
“자, 후딱 갈아입읍시다!”
자칭 탐정은 그리 말하며 훌렁 옷을 벗어 던졌다. 나도 얌전히 교복을 받아 갈아입었다. 옷은 제법 잘 맞는 편이었다.
자칭 탐정의 앞머리엔 헤어롤이 말려 있었다.
“그건 또 뭐야?”
“이게 있어야 K-고등학생이죠.”
소품 디테일이 대단하시군.
“자, 이제 가 봅시다!”
교복으로 갈아입은 우리 둘은 학생 행세를 하며 건물 입구에 다가갔다. 그러자 예의 그 문지기로 보이는 남자가 나와 우리를 가로막았다.
“잠깐. 너흰 뭐냐?”
…안 통하나.
아직 당황하긴 일렀다. 자칭 탐정이 슬쩍 앞으로 나서며 너스레를 떨었다.
“우리, 방금 들어간 애 친구예요! 걔가 불러서 왔어요.”
“그래……?”
껄렁거리는 몸짓. 정말 비행 청소년 같은 모습이었다. 수상한 꿍꿍이 하나 없이 단순한 호기심에 이끌려 찾아온 듯한 태도였다.
그러나 남자가 우리를 향해 물었다.
“그런데 그 가면은 뭐냐?”
“…….”
그제서야 나는 자칭 탐정과 마주 보았다.
불야성에서 너무 오랜 기간 지내느라 몰랐지만, 우리는 얼굴을 가리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자칭 탐정은 커다란 동글뱅이 안경을, 나는 붉은 무늬가 새겨진 여우 가면을.
보이는 부분만 가려주는 평범한 가면이 아니라, 실제로 착용자의 정체를 숨겨 주는 마법적 효과가 있는 아티팩트를.
불야성에선 이게 당연했지만, 바깥 도시에서는 수상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물건이었다.
자칭 탐정이 내게 물었다.
“벗을 거예요?”
“아니.”
이래 봬도 맨 얼굴은 조금 유명하다. 클레어와의 결혼이 기삿거리로 나갔으니까. 어쩌면 알아보는 놈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부터 벌어질 일을 생각하면, 가면은 벗지 않고 있는 편이 나아 보였다.
내 대답에 그녀가 히죽 웃었다.
“그럼 뭐, 역시 답은 정면 돌파밖에 없네요.”
“내 이럴 줄 알았다.”
모처럼 갈아입은 교복은 결국 쓸모가 없었다.
“무슨 소리를… 커거거걱!”
입구를 지키던 사내가 비명 소리를 내더니 탄내를 풍기며 쓰러졌다.
나는 아무짓도 하지 않았다. 자칭 탐정의 짓이었다.
내가 돌아보자 자칭 탐정이 하얀 전깃줄을 파직거리는 전기 충격기를 내보였다.
“탐정의 999가지 비밀 도구 중 하나. 증인 인멸기! 라고 부르는 녀석이죠.”
“…….”
자칭 탐정이 앞장서 걸었다.
“자, 자. 선수 입장!”
뒤를 따라 계단을 올랐다.
건물 털 시간이었다.
* * *
“…거짓말 아니죠?”
서지유가 물었다.
그녀는 지금 어떤 남자의 뒤를 따라 어두운 복도를 걷고 있었다. 전등이 나간 건지, 일부러 켜두지 않은 건지. 복도는 간신히 주위 사물의 윤곽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어두웠다.
그녀의 물음에 남자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어딘가 제정신이 아닌 듯한 얼굴이었다.
“뭐가?”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에 서지유는 온몸에 닭살이 돋았지만, 참아내고 물었다.
“이곳에 오면……. 각성자가 될 수 있는 약을 준다는 거.”
“아, 난 또.”
남자가 입가로 길게 호선을 그리며 웃었다. 소름 끼치는 미소였다.
“당연히 진짜지. 나만 따라오면 된다고.”
“…….”
서지유는 지금 당장 뒤돌아 나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는 걸 직감했다. 이제 와서 도망치려 해도 남자가 뒤쫓아올 거라는 건 쉽게 예상이 가능했다.
게다가 남자는 각성자일 터였다. 각성자로 만들어 주는 집단이라면, 그 소속 인원이 각성자가 아닐 리가 없으니까. 도망쳐 봤자 손쉽게 따라잡힐 게 뻔했다. 어쩌면 건물 입구조차 봉쇄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온 이상 전진할 수밖에 없다. 서지유는 떨리는 팔을 붙잡고 남자의 뒤를 따라 걸었다.
“그런데 아가씨는 왜 각성자가 되려고 하지?”
“…….”
“아, 대답하지 않아도 돼. 꼭 눈물 나는 사연이 있어야만 나눠 주는 건 아니거든.”
서지유는 침묵했다. 남들 앞에서 떠들고 싶은 이야기는 아니었다.
대답하지 않더라도 이상할 건 없었다. 각성자라는 건 꼭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만 되고 싶은 존재가 아니었으니까.
인간 사회는 현재 헌터 사업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사업의 중심에 있는 것들이 바로 각성자, 특히 헌터들이었다. 돈과 명예라는 원초적인 욕망을 채우는 데에 있어서 헌터는 남부럽지 않은 직업이니까.
아이들의 장래 희망 1순위가 헌터였다. 그러나 헌터가 될 수 있는 자는 정해져 있다. 각성자. 먼저 그 문턱을 넘어야만 했다.
“다 왔다.”
남자가 방문을 열었다. 썩는 듯한 악취가 풍겨와 서지유가 움찔했다.
“아, 미안. 아직 청소하기 전이어서.”
무미건조한 사과와 함께 남자가 서랍을 뒤적거렸다. 아무리 봐도 제대로 된 곳이 아니었다. 적어도 사람을 각성자로 만드는 놀라운 일이 벌어질 장소로 보이지는 않았다.
“정말 여기서…….”
“아, 찾았다.”
남자가 꺼낸 건 주사기였다.
남자는 그 끝에 무언가 찰랑이는 액체가 든 통을 끼웠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자, 이게 네가 원하는 그 물건이야.”
서지유가 마른침을 삼켰다.
“아, 잘 안 보이네.”
남자가 불을 켰다.
확 하고 밝아진 시야에 서지유가 눈을 찡그렸다. 이윽고 시간이 지나 눈이 빛에 적응하자 방 안의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보인 건 방 안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인간들의 모습이었다.
“뭐야, 이거…….”
자는 건가? 그렇게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저런 불편한 자세로 미동도 없이 자는 인간들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것도 아무런 반응 없이.
무엇보다도.
이 불쾌한 썩는 냄새를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서지유의 시선이 고정된 방향을 따라 바라본 남자가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거? 이건 실패작들이야.”
“뭐라고요……?”
실패라니? 무엇에 대한?
남자가 뭘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이 스스럼없이 대답했다.
“각성.”
서지유가 다시 한번 주변의 광경을 둘러보았다. 직접 봐도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비정상적인 풍경이었다. 사람이 마치 용도가 다한 마네킹처럼 마구잡이로 놓여 있었다. 그래, 마치 물건처럼.
각성에 실패하면 자신도 저들 중 하나가 된다는 건가.
그 장면을 상상하고 말았다. 사람 하나 더 있든 말든 아무런 차이도 없어 보이는 저 무리 속에, 자신의 몸뚱이가 박혀 있는 장면을.
구역질이 올라왔다.
“겁나?”
남자가 이죽거리며 물었다.
그는 출입구를 막고 서 있었다. 도주로를 막아 놓은 것이었다. 도망치는 건 불가능했다.
무엇보다도 서지유는, 겁나냐는 남자의 물음에 이를 꽉 물었다.
어중간한 생각으로 여기까지 온 게 아니었다.
“내놔.”
서지유가 주사기를 낚아챘다.
남자가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이 참상을 보고도 마음이 꺾이지 않을 줄은 몰랐다. 귀찮은 짓을 하지 않아도 되어 안심하는 것과 동시에, 작은 호기심이 피어올랐다.
“보기보다 강단이 있네.”
남자의 미소가 깊어졌다.
* * *
“교대!”
계단을 앞서 올라가던 자칭 탐정이 나를 내려다보며 외쳤다.
“갑자기 무슨…….”
자칭 탐정은 대답도 듣지 않고 내 뒤로 숨었다. 그러자 계단 위에서 내려오는 두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커다란 덩치에 사나운 인상.
두 남자가 계단을 올라오는 우리 둘을 발견했다.
“이것들은 또 뭐야? 교복에 가면?”
“얘들 우리 손님 맞아? 얘기 들은 거 없는데.”
“…….”
내가 자칭 탐정을 노려봤지만, 그녀는 딴청을 피우며 휘파람을 부는 중이었다. 그러다 못내 변명을 한마디 내놓았다.
“…제가 입구에서 하나 처리했잖아요?”
“알았다, 알았어.”
실력 행사에는 자신이 없는지 내 등 뒤에 꼭꼭 숨어 있었다.
“입구에서 하나 처리했다고?”
“어쩐지 시간 돼도 안 올라오더라니, 씨…….”
눈앞의 녀석들은 대단한 실력자는 아니었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실내에서 여뢰 같은 큰 기술을 썼다간 건물이 무너져 내릴 가능성이 있었으니.
여기선 짧게 짧게 가자.
남자들이 쿵쿵 발소리를 내며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두 덩치가 나란히 길을 막고 내려오니 흡사 전차와도 같은 모양새였다.
두 남자들이 나를 향해 동시에 주먹을 내려쳤지만, 내 출수가 더 빨랐다.
파밧!
거구의 남자들이 그대로 눈을 까뒤집고 자세를 무너뜨렸다. 둘은 각자 양쪽으로 갈라져 가운데 선 나와 자칭 탐정을 지나치며 쓰러졌다.
“가자.”
“예… 옛! 설!”
자칭 탐정은 두 남자가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더니, 한껏 긴장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후로도 우릴 발견하는 놈들은 족족 쓰러졌다.
“뭐 하는……. 컥!”
“어떻게 여기까지……. 케엑.”
“정체를……. 윽!”
나 혼자였다면 순식간에 서지유가 있는 곳까지 도달했겠지만, 자칭 탐정을 지키며 이동하느라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길을 헤매진 않았다. 기감을 펼쳐 인원수가 집중되어 있는 곳을 향했다. 지키는 인간이 많다는 건 그만큼 켕기는 게 있다는 뜻이니까.
몇 명이 막아서든 거침없이 전진했다.
그러던 도중.
“이런 빌어먹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누군가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물건을 꺼내는 남자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막상 꺼낸 후에도 무언가가 꺼려지는 듯 망설이는 기색을 보였다.
그게 틈을 만들어 냈다.
후웅!
허공섭물. 기를 통해 남자가 손에 들고 있던 무언가를 가져왔다. 무슨 짓을 하려고 했던 건지 확인하기 위해서.
그것은 병에 담긴 액체였다. 병 모양은 평범했지만, 투명해서 속에 담긴 내용물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건…….”
보라색 액체.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보다 탁한 색을 띄고 있었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어디선가 본 것처럼 익숙한 파장을 내뿜고 있었다.
분명했다. 이건 내가 아크투러스 직원에게 받은 것과 같은 액체였다. 그 품질은 다를지언정.
내가 남자에게 다가가 물었다.
“이거, 어디서 난 거지?”
“그건…….”
남자는 두려움에 떨며 뒷걸음질 치면서도 대답하지 못했다. 당장 눈앞의 존재보다 더 신경 써야 할 존재가 있다는 듯이.
그렇다면 대답하게 만드는 수밖에.
손가락을 세워 점혈을 할 준비를 했다. 분근착골. 고통을 주면 모든 걸 실토하리라 예상했지만.
“그런 조무래기한테 물어봐야 아무것도 캐낼 수 없을걸요.”
대답은 뒤에서 들려왔다. 내 등 뒤에 있는 유일한 사람, 자칭 탐정의 목소리였다.
남자를 놓아 준 후 내가 그녀에게 물었다.
“…너도 이걸 알고 있나?”
“말하지 않았나요?”
그러자 자칭 탐정이 안경을 고쳐 쓰며 대답했다.
“나, 본업은 탐정이라고.”
그녀의 입가가 호선을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