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68
68화 학부모 상담
남자의 이름은 오지훈.
그는 스스로가 별 볼 일 없는 인생을 살아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학창 시절, 공부엔 흥미를 붙이지 못했고 달리 잘하는 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성격이 좋아 친구를 두루 사귈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리더십을 발휘해 반장이나 회장 따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가 하면, 소위 말하는 ‘각성자’조차 아니었다.
“공부? 내가 그런 걸 왜 해, 인마. 졸업하고 나면 라이센스 따서 헌터 되실 몸인데.”
“오~ 역시 조강민.”
“성공하고 나서 모른 척하기 없기다?”
“당연하지, 새끼들아.”
조강민. 키도 크고 얼굴도 반반한 반의 중심인물이었다.
심지어 녀석은 각성자였다. 그의 말대로 졸업 후에 라이센스를 따서 헌터가 되면 사회적, 경제적으로 큰 성공을 거둘 수도 있었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저런 녀석에게 창창한 앞날까지 보장되어 있다니.
불만을 주체하지 못하고, 책상에 엎드려 자는 척을 하던 오지훈이 중얼거렸다.
“헌터는 개뿔. 아카데미 출신들 사이에서 짐꾼이나 하겠지…….”
짐꾼은 성장이 멈춘 각성자들의 말로였다. 던전에 출입할 수 있지만, 사냥할 능력은 안 되는 자들을 위한 최후의 보루.
실제로 이름난 헌터들은 모두 아카데미 출신이었다. 어린 나이에 이미 각성을 하고 전문 육성 과정을 밟아 성인이 되기 전에도 임시 라이센스를 발급받고 예비 헌터로서 경험을 쌓을 수 있었으니.
조강민이 그런 아카데미 출신 헌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강자가 될지, 아니면 그저 그런 헌터나 짐꾼이 되어 살아갈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문제는 그의 귀에 그 목소리가 들렸다는 점이었다.
“야, 너 뭐라고 했냐?”
조강민이 오지훈의 멱살을 들어 올렸다.
“나, 나 아무 말도……. 자고 있었…….”
“뒤질래? 다 들었어, 이 새끼야!”
“악!”
조강민이 오지훈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그리고 쓰러진 그를 향해 발길질을 날렸다.
“아악!”
몸을 웅크려 막아 봤지만 큰 소용은 없었다. 원래 신체가 건장한 데다가 미력하게나마 마력을 사용할 수 있는 상대였다.
“야, 강민아. 살살 해라.”
“애 죽겠다! 큭큭.”
누구 하나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조강민의 패거리들은 누군가를 때리는 것에 서슴없는 족속들이었다. 놈들은 걱정하긴커녕 재밌는 구경거릴 다 본다는 듯 낄낄거리며 웃고 있었다.
반에 있는 다른 이들도 지켜보기만 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마침 심심했는데 흥미로운 볼거리가 생겨 기뻐하는 놈들. 괜히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봐 걱정하는 놈들.
“어이! 거기 뭐 하는 거야!”
지나가던 선생이 찾아와 물었다.
하지만 조강민은 능숙하게 웃으며 무마했다.
“아, 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장난 좀 쳤죠.”
“어휴, 얌전히 좀 놀아라.”
“옙!”
선생은 조강민의 말을 듣고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볼 생각도 없이 그대로 지나갔다.
평소 조강민이 쌓아 온 행실의 덕택이었다. 공부를 잘하는 건 아니어도 반 아이들을 휘어잡는 카리스마가 있던 탓에, 학교와 선생 측에게도 도움이 되는 존재였다. 무리를 통솔하는 작은 우두머리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었다.
분위기가 한 차례 경직되자 조강민이 깔끔하게 손을 털었다.
“앞으로 입조심해라.”
맞은 건 오지훈이었지만 그의 편을 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게 저 병신은 왜 개소리를 해서 매를 번대?”
“주제도 모르는 새끼.”
“꼴에 질투라도 한 건가? 존나 추하네.”
오지훈이 자리로 돌아가 다시 책상 위로 엎어졌다.
‘씨발…….’
나도 각성자였다면.
이렇게 남들에게 무시당하며 두들겨 맞을 일도, 불투명한 앞날을 걱정할 일도 없었을 터였다.
그 특권을 누리는 소수의 인물들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오지훈은 각성자로 거듭나지 못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세상엔 특별한 사람보다 평범한 사람이 훨씬 많으니까.
그렇게 졸업 후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생활하다가, 마침내 ‘박사’와 만나게 되었다.
* * *
오지훈, 그의 몸에는 현재 엄청난 양의 마력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눈앞의 상대가 지닌 마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인 차이였다.
아무리 이곳을 지키는 놈들을 쓰러뜨리고 왔다 해도, 결국은 딱 그 정도였던 것이다. 사실 동네 양아치들을 데려다 쓴 것에 불과했으니까.
제법 대단한 각성자를 실험체로 쓸 수 있으리란 기대는 저버리고 말았다.
아쉬울 뿐이었다. 오지훈은 상대가 제아무리 강력한 각성자라 하더라도 상대할 자신이 있었다. 부스터를 통해 강화한 자신은, 상식에 얽매이지 않는 격이 다른 강함을 자랑했다.
그 성과를 누구에게라도 좋으니 보여 주고 싶었다.
그 상대가 곧 죽어 버릴 자라면 더없이 좋았다.
“그럼 보여 줄게.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콰앙!
마력을 방출한 여파만으로 건물이 흔들리는 충격을 만들어 냈다. 바닥에 거대한 갈라짐이 만들어졌다.
오지훈이 순식간의 여우 가면의 등 뒤로 이동했다. 상대는 고작 고개를 돌리는 정도로밖에 반응하지 못했다. 차원이 다른 속도를 자랑하며 그가 주먹을 내질렀다.
퍼어엉-!
귀를 찢는 듯한 폭발음이 함께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위력. 고작 주먹 한 번 내질렀을 뿐인데, 엄청난 폭발이 수반되었다.
오지훈은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부스터를 사용할 때마다 그는 점점 더 강해졌다. 몸이 약물에 적응하고 진화하고 있는 것이라 여겼다. 그것이 곧 그가 가진 재능이었다.
‘더…….’
오지훈이 끊임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여우 가면은 수비에 급급한 건지 가만히 서서 공세를 받아 낼 뿐이었다. 예상보다 잘 버티고 있지만, 고작 그 정도였다.
장난감이 망가지기 전, 오지훈은 자신이 가능한 최고의 일격을 시험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퉁. 가볍게 위로 뛰어오른 오지훈이 다룰 수 있는 최대한의 마력을 긁어모았다. 요령이나 묘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기술이 아닌 폭력. 그저 단순하게 순수한 위력만을 끌어올렸다.
마치 육식 동물이 무술을 연마하지 않고 이빨과 발톱만으로 사냥을 하는 것처럼.
“끝이다!”
어마어마한 마력이 폭풍이 되어 주위를 휩쓸었다.
쿠구구궁!
바닥이 무너졌다. 두 사람은 아래층으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위력이 죽지 않아 계속해서 나아갔다. 바닥을 몇 개나 더 부수고, 거듭해서 깨부순 후에 내려갔다.
결국 건물의 최하층, 지하까지 도달한 후에 그 바닥에도 커다란 구덩이를 만들어 냈다. 머리 위 구멍이 뚫린 천장에서 돌 부스러기가 떨어졌다.
“허억, 허억…….”
오지훈이 흙먼지로부터 물러나 숨을 몰아쉬었다. 온몸의 혈관이 날뛰는 듯한 감각이었다. 그 속을 기어 다니는 마력들이 통제를 잃고 뛰쳐나가려고 하는 듯한 반발이 느껴졌다.
마력을 가라앉히는 데에 집중하는 사이, 먼지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정도면 도망칠 시간은 충분히 벌었겠지.”
“……!”
너무나도 평온한 목소리. 여우 가면을 쓴 남자가 먼지를 헤치고 걸어 나왔다.
“어떻게……!”
믿기지 않았다. 자신에게 가능한, 아니 그 이상의 공격이었다. 분명히 제대로 적중시킨 손맛이 있었다. 상대가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상처 하나 없는 건 이상했다.
그렇다는 건 설마, 그 공격을 맞고도 멀쩡할 정도의 각성자라는 말인가.
그거야말로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그 공격은 S급 헌터라 하더라도 상처 없이 버티기 어려운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럼 눈앞의 사내는, S급 이상의 역량을 지니기라도 했다는 뜻일까.
도대체 각성자란 존재들은 왜 이런 부조리함을 누리는 걸까.
“웃기지 마……. 웃기지 마!”
오지훈이 새로운 약물을 꺼내 들었다.
‘박사’는 경고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중첩 투여는 하지 말라고. 그렇지만 지금은 더 많은 힘이 필요했다. 그리고 힘을 얻을 수단은 하나뿐이었다.
“이 힘은 희망이다.”
“…희망?”
“너희 같은 각성자들만 특별 취급하는 세상에 평등을 가져오기 위한… 희망!”
푹.
오지훈이 두 번째 부스터를 주입했다.
그러자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마력이 들끓었다. 몸속을 뛰쳐나갈 것처럼 날뛰던 마력들이 마침내 통제를 벗어던지고 솟구쳤다. 퍼억, 하고 혈관을 뚫고 혈액과 함께 마력을 분출했다. 그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전신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떨어져 바닥을 적시지 않고 공중에 머물렀다. 그에 따라 주변에 마력으로 이루어진 역장을 만들었다.
여우 가면이 못마땅한 목소리로 감상을 남겼다.
“잔인한 희망이군.”
오지훈에겐 목소리가 전해지지 않았다. 소리는 귀에 닿았으나 그 뜻을 해석할 여력이 없었다.
그에게 남은 건 주변의 모든 것을 파괴해야 한다는 본능뿐이었다. 그것이 금기된 힘에 손을 뻗은 자의 말로였다.
도율이 눈을 감았다.
자업자득이니 동정할 생각은 없었다. 저렇게 된 사람을 원래대로 되돌릴 방법도 알지 못했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주변을 삼킬 게 뻔했다. 가만히 내버려 두면 도시 하나 정도는 손쉽게 괴멸시킬 놈이었다.
하다못해 눈이라도 편히 감게 해 주는 것만이 유일하게 가능한 도리였다.
우웅-.
오지훈이 손바닥 위로 마력을 응축했다. 구 형태의 마력 덩어리를 향해 몇 겹이나 주변의 풍경이 빨려 들어가듯 뭉쳤다.
순수한 마력의 폭발. 단순한 기술이었지만 거기에 투입된 거대한 대가와 맞물려 어마어마한 위력을 자랑했다. 단순히 맞아도 무사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폭발하게 놔두면 이 주변을 휩쓸고도 남을 기술이었다.
구슬이 도율을 향해 던져졌다.
도율이 내공을 끌어 올렸다. 모든 걸 집어삼키고 가두는 기공.
“흑응공.”
콰가가각!
엄청난 양의 마력이 응축된 구슬이 도율의 손아귀 위에 있는 검은 점을 향해 빨려 들어갔다. 마력은 그 안에서 폭발해 커다란 진동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콰직! 손안에서 검은 점을 터뜨린 후 도율이 오지훈을 향해 다가갔다. 이 정도로 밀도 높은 마력을 두르고 있다면 직접 손을 쓰는 게 좋아 보였다.
“오오오!”
도율이 다가오자 오지훈이 주먹을 휘둘렀다. 어린아이가 휘두르는 것처럼 마구잡이였으나, 주위엔 밀도 높은 마력이 가득했다. 마치 물속에서 걷는 것처럼 움직임이 제한되었다.
그러나 도율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제약이었다. 오지훈의 공격을 피해 낸 도율이 그의 몸통에 손가락을 찔러 넣었다.
“피안우.”
그리고 내공이 상대의 몸을 헤집었다.
본래는 상대의 기혈을 뒤틀고 망가뜨리는 기술이었다. 그러나 마력 덩어리와 같은 존재가 된 오지훈에겐 남다른 의미를 가졌다. 도율의 내력에 닿은 모든 부분이 갈려 나가듯 흩어졌다.
결국 그 몸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지하에 붉은 비가 내렸다.
* * *
“우와아…….”
건물이 한차례 진동하자 탐정이 침음을 흘렸다.
설마하니 이 정도 싸움이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여우 가면이 아무리 예선전에서 대단한 실력을 보여 주긴 했지만, 과연 무사히 나올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아니, 사실 걱정보다는 고민에 가까웠다.
‘…튈까?’
그쪽이 목숨을 보전할 확률이 높아 보였다.
그러나 탐정은 손끝에서 떨림이 전해져 오는 걸 느꼈다. 함께 탈출한 고등학생, 서지유였다. 아르바이트하는 사장 가게의 딸. 따지고 보면 이 일의 원흉이나 다름없었다.
“저…….”
서지유는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궁금증과 자책이 뒤섞인 듯한 얼굴이었다.
탐정은 그런 서지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괜찮아.”
“…….”
불안해 보이는 아이를 버리고 도망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같이 도망치자고 해도 이곳에 못 박힌 듯 우두커니 있을 것 같았다.
‘…에라, 모르겠다.’
결국 기다리기로 했다. 여우 가면을.
시간이 지나자 한 남자가 건물 바깥으로 걸어 나왔다. 탐정은 숨 쉬는 것조차 잊은 채 남자의 정체를 파악하려 애썼다.
오래 걸리진 않았다. 남자는 익숙한 모습의 교복과 가면을 걸치고 있었으니까.
여우 가면이 다가와 물었다.
“왜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네? 아니, 도망칠 순 없잖아요! 우린 운명 공동체인걸!”
탐정이 뻔뻔하게 가슴을 펴자, 여우 가면이 무슨 소리 하냐는 듯 정정했다.
“아니, 왜 안전한 데로 피신하지 않고 이렇게 가까이서 기다리고 있었냐는 뜻인데.”
“아…….”
가면 너머로 그가 눈매를 좁히는 게 느껴졌다. 여차하면 튈 생각이었다는 걸 눈치챈 것 같았다. 결국 그러지 않았으니 된 거 아닌지. 탐정이 멋쩍게 웃었다.
“그보다.”
여우 가면이 서지유를 돌아보았다. 그의 시선을 받은 서지유가 어쩔 줄 모르며 말을 더듬었다.
“아, 저기…….”
염치가 없어 할 말을 고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여우 가면은 그런 서지유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따라와.”
“어딜……?”
서지유는 물어보다 말고 입을 닫았다. 그럴 자격이 없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하지만 여우 가면은 가벼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학부모 상담.”
“…네?”
서지유의 표정이 의문으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