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69
69화 나 유부남이다
“예? 제 딸이 말입니까?”
도율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업을 시작하지 않은 가게 안에 네 사람이 테이블을 잡고 둘러앉았다. 여우 가면을 쓴 도율, 동글뱅이 안경을 쓴 탐정, 가게 주인인 사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의 딸인 서지유였다.
서지유는 각성자가 될 방법을 구하고 있었다.
그런 소문은 예전부터 있었다. 어떻게 하면 각성자가 될 수 있다는 소문. 그러나 대개는 장난거리에 불과했다.
이번은 특이 케이스였다. 실제로 일반인을 각성자로 만들 수도 있는 약이 암암리에 개발되었고, 그 실험 대상으로 삼고자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사건은 처음이었다. 어찌 보면 운이 나빴다고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허황된 목적을 바라고 위험한 곳에 몸을 들이민 건 사실이었다. 어쩌면 인신매매 같은 일을 당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 사실을 전해 들은 사장이 금시초문이라는 듯 눈을 끔뻑거렸다.
“그런 얘기는 한 번도…….”
말을 하다 말고 사장이 입을 다물었다. 결국 변명이었다. 자식의 생각에 관심을 가지지 않아 온 아비의 추레한 결말이었다.
도율이 서지유에게 화살을 돌렸다.
“넌 왜 각성자가 되려고 한 거냐?”
“…….”
도율의 물음에 서지유가 고개를 숙였다.
탐정이 그런 서지유의 시선을 맞추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타일렀다.
“우린 널 탓하려는 게 아니야. 도와주고 싶은 거지. 이유를 알아야 앞으로의 대책도 세울 수 있는 거잖아? 그러니까… 우릴 믿고 말해 주지 않을래?”
능숙한 처세였다.
의외라는 듯 도율이 탐정에게 물었다.
“본업은 탐정이라더니, 부업은 상담사냐?”
“청소년은 세심하다고요. 방해하지 마세요.”
그 부분은 탐정에게 맡기기로 했다. 어쨌거나 도율은 남을 말로 설득하는 데에는 재주가 없었으니까.
그렇게 기다리기를 잠시 후. 탐정의 설득이 효과가 있었는지, 굳게 마음을 닫은 것 같았던 서지유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아빠가…….”
“응?”
모두가 조용한 서지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빠가 맞고 들어왔어요.”
“뭐?”
의외의 대답이었다.
각성자가 되어서 큰돈을 벌고 싶다거나, 유명해지고 싶다거나. 그런 자기중심적인 이야기가 나올 거란 예상이 깨졌다.
마침 당사자가 이 자리에 있었다. 도율이 사장을 돌아보니 그는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알고 있었구나.”
그러자 서지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소립니까, 사장님? 맞았다뇨? 누구한테요?”
도율이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여기서 며칠이나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단언컨대, 그 누구도 그의 눈을 피해 몰래 사장에게 손을 댈 수는 없었다.
사장이 멋쩍게 웃으며 설명했다.
“아아, 그게, 이 불야성에선 자릿세를 걷는 조직이 있어서요.”
불야성, 공권력의 눈이 닿지 않는 어둠의 도시에선 뒷세계에 머무르는 조직들의 힘이 건재했다. 이곳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상대로 자릿세를 걷는 것도 그 일환이었다.
시대착오적인 건지, 아니면 자연스러운 인간 무리의 생리인 것인지.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힘없는 장사꾼인 사장이 대항할 방법은 없었다. 장사가 잘 풀리지 않아 상납금을 구하기 어려운 날엔 수금원들에게 두들겨 맞기 일쑤였다. 심지어 금액을 제대로 준비했다 하더라도 비위를 거슬렀다는 이유로.
하지만 딸아이에게만은 잘 숨기고 있다고 여겼는데, 그조차도 아니었다. 그나마 요 며칠은 토너먼트 때문인지 잠잠했는데…….
“아저씨가 와서 그래요.”
“…아저씨? 나 말하는 거냐?”
도율이 묻자 서지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 다 봤어요. 그 새끼들 또 찾아왔었는데 여우 아저씨가 다른 놈들 두들겨 패는 거 보더니 얌전히 돌아가던 걸.”
짚이는 게 상당히 많았다. 도율은 토너먼트 예선이랍시고 들뜬 바보들을 수도 없이 손봐 줬으니까.
“나한테 말하지 그랬어.”
“아저씨, 언제까지 있을 건데요?”
“…….”
도율이 옆머리를 긁었다. 그라고 해서 이곳에 오래 머무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토너먼트가 끝나고 영감이 부탁한 걸 알아내고 나면 돌아갈 곳이 있었다.
대답하지 못하는 도율을 보며 서지유가 지친 듯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아저씨가 없어지면 결국 똑같아요. 어차피 아저씨는 남인걸요. 그러니까 내가…….”
그 눈빛엔 분노와 각오가 서려 있었다.
“…….”
도율은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어른스럽게 훈계라도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당장 자신부터가 그러한 감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가짜 어른이었다.
다른 두 사람이 그 역할을 대신해 주길 바랐지만, 이런 부분에서는 가장 믿음직스러운 탐정이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봐, 뭐라고 말 좀…….”
“왜요? 틀린 말 한 것도 아닌데요. 요즘 시대엔 자기 몸은 자기가 건사해야 하는 법이라고요.”
탐정은 서지유를 두둔했다. 이상적인 교훈 대신 현실적인 조언을 택한 것이었다.
이 자리에서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다.
“그만두마.”
“아빠……?”
사장의 말이었다.
“그만둔다뇨, 가게를 말입니까?”
도율의 물음에 사장이 한숨 같은 웃음을 내뱉었다.
“물론 완전히 그만둘 순 없고. 터를 옮길까 합니다. 전부터 생각했던 거지만, 아무래도 여기가 위험하긴 해도 벌이가 좋은지라 미뤄 뒀었거든요. 하지만 딸애가 걱정한다면 어쩔 수 없지요.”
“옮긴다니…….”
쉽게 결정할 일은 아니었다. 가까운 곳도 아니고, 불야성이 아닌 어딘가로 옮긴다면 완전히 새로 시작하는 것이나 다름없을 테니까.
“이거라면 안심이지?”
“아빠…….”
“괜찮다, 괜찮아.”
사장이 딸의 어깨를 토닥였다.
사장은 차라리 속이 후련하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이 결정에 가장 큰 불안을 느끼고 있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자신일 텐데도.
“…잠시 바람 좀 쐬고 오겠습니다.”
사장이 자리를 비웠다.
서지유의 표정도 썩 편해 보이지는 않았다. 자신이 아빠를 몰아세운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눈에 밟혔다. 그에 도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라와.”
“…네?”
도율은 서지유가 따라오는 것도 확인하지 않은 채 걸음을 옮겼다.
그가 향한 곳은 주방이었다. 서지유가 뒤따라 들어가 보니 도율은 이미 버너에 불을 올리고 있었다. 불꽃에서 눈을 떼지 않고 도율이 말했다.
“너희 아버지, 이대로 자리 옮기면 백 퍼센트 장사 말아먹는다.”
“그게 무슨…….”
“솔직히 손재주가 좋진 않으시거든.”
딱히 장사를 해 본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도율이 판단하기엔 그랬다. 임시 아르바이트로 들어오는 그에게 주방을 맡길 정도다. 노하우나 비법 따위가 쌓인 맛집은 전혀 아니었다.
불야성에서는 그래도 괜찮았다. 이곳 가게 수준은 놀라울 정도로 거기서 거기였으니까. 환경 자체에 한계가 있는 걸지도 몰랐다.
하지만 바깥에 나가 평범한 가게들과 정식으로 경쟁하게 된다면, 불안한 점투성이였다.
“팬 잡아.”
도율이 그제야 서지유의 눈을 마주했다. 그의 손가락이 버너 위의 불판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뜻을 이해한 서지유가 숨을 한번 들이쉬고 대답했다.
“…네.”
도율이 지켜보는 가운데 서지유가 팬 손잡이를 잡았다.
그녀 역시 알고 있었다. 요즘 한창 장사가 잘되는 건 토너먼트라는 대형 이벤트를 통한 유동 인구 증가도 거들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주방에서 활약하는 남자의 몫이 크다는 것을.
어깨 너머로나마 훔쳐보던 걸 정식으로 배울 수 있다니, 좋은 기회로 여겼다. 서지유가 사뭇 진지한 태도로 예를 표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스승님.”
스승님.
그 말에 도율이 어깨를 움찔 떨었다.
“차라리 아저씨라고 불러라.”
“……?”
서지유가 도율을 돌아보니 농담하는 것 같지 않았다. 가면 때문에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몸짓이 눈에 띄게 경직되어 있었다.
“그럼 그럴게요.”
취향 참 특이한 아저씨네.
서지유가 얼핏 웃고 말았다.
* * *
주방에서 서지유에게 요리를 가르치는 사이 날이 밝고 말았다.
서지유는 가르치는 내가 시간 가는 걸 잊을 정도로 잘 따라왔다. 이 정도라면 사장이 가게를 옮겨도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슬슬 학교에 갈 시간이었다. 불야성 안에는 학교 같은 곳이 없으니, 당연히 주변 도시에 있는 곳을 다니고 있겠지.
문제는 밤을 새웠으니 제대로 수업을 들을 수 있을까 하는 점인데.
“학교는?”
“가서 자면 돼요.”
이 녀석, 역시 불량 학생이었군.
숙소로 돌아가는 길.
아침이었지만 다른 행인은 아무도 없었다. 이곳 불야성에선 해가 떠 있는 시간이 곧 밤이었으니까.
걸음을 멈춘 내가 물었다.
“숨지 말고 나오시지?”
그러자 골목길에서 익숙한 외양의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들켰나요? 미행에는 일가견이 있었는데 말이죠. 탐정 체면이 말이 아니네요, 이거 참.”
동그라미 안경을 쓴 탐정이 머쓱하게 뒤통수를 문질렀다.
기척을 숨기는 건 확실히 대단한 수준이었지만, 내게는 기감이라는 또 하나의 감각이 존재했다. 이쪽을 신경 쓰는 게 아니라면 나 몰래 뒤를 밟는다는 건 불가능했다.
“용건은?”
“사장님이 여기서 장사 접겠다고 했잖아요. 그게 걱정이라서 말이죠.”
“…토큰 빌려 달라 이거냐?”
“사람을 뭘로 보는 거예요!”
영락없이 그런 부탁인 줄 알았다. 탐정이 가게에서 일하는 건 토큰을 벌기 위해서니까. 일터를 잃으면 금전적으로 쪼들리게 되겠지.
“그런데 걱정이라니, 뭐가?”
“사장님, 가게 옮기는 걸 쉽게 말했지만 그렇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그렇겠지.”
새로운 가게 장소를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거다.
그래도 그건 우리가 걱정해 봐도 소용없다. 적어도 난 부동산 같은 건 까막눈이니까. 내가 아는 부동산 정보는 대부분 10년 정도 뒤처져 있다.
하지만 탐정이 말하고자 하는 건 그런 상식적인 얘기가 아니었다.
“불야성에서 나가려면 손가락 하나는 내놓고 나가야 하니까 말이죠.”
“…손가락?”
“네.”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상납금은 상납금대로 뜯어 가는 주제에 탈출하려 하면 손가락을 내놓으라 한다고?”
“바로 그거예요!”
“양아치 새끼들이…….”
깨달았다. 왜 불야성의 가게 수준이 전반적으로 이 모양인 건지. 그리고 사장은 왜 상납금을 뜯겨 가면서도 이곳에 남아 있었던 건지.
“사장님은…….”
“당연히 알고 있겠죠.”
하긴. 당사자인 만큼 잘 알고 있었겠지. 말하지 않은 건 우리에게… 특히 딸에겐 비밀로 하려 했다는 의도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토너먼트가 끝날 때까진 시간이 있다는 거죠.”
“토너먼트? 왜?”
“그 조직이 아크투러스를 운영하는 조직이니까 그렇죠. 토너먼트 같은 큰 행사를 진행하는 동안엔 여력이 없을 거예요.”
“……!”
그 이야기를 듣자 미소가 지어졌다.
“진짜냐?”
사장의 가게에 상납금을 뜯고 도망치지 못하게 막는 조직. 그리고 영감이 조사를 부탁한, 아크투러스 토너먼트의 우승 상품의 입수 경로. 그 두 가지 일이 결국 하나의 종착지로 수렴했다.
게다가 하나 더.
“너, 원래는 부스터인지 뭔지 하는 약물을 조사하러 온 거라고 했지.”
“아, 그렇긴 한데…….”
탐정이 마구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의뢰를 받은 것도 아닌 일에 시간을 쓰는 건 프로답지 못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내버려 두기엔 뒷맛이 찝찝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 탐정의 고민을 해결해 줄 방법을 내가 알고 있었다.
“어이, 내가 재밌는 거 보여 줄까?”
“……?”
“가 보면 알아.”
예선전을 압도적으로 통과하고 아크투러스 직원에게 받은 포션. 그 안에 담겨 있는 액체의 정체. 두말할 것 없이, 부스터였으니까.
문제는 지금 그게 내 손에 없다는 거였다. 굳이 갖고 다닐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서 숙소 서랍에 보관해 둔 채였다.
숙소에 도착하자 탐정이 물었다.
“여긴……?”
“내가 묵는 곳.”
“네?!”
평범한 숙소였다. 여기서 대단한 호텔을 바랄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
“아, 아니. 그게…….”
탐정이 우물쭈물하는 사이 누군가 내 어깨에 팔을 걸었다. 숙소 주인장이었다. 그가 내 귓가에 대고 키득거렸다.
“어이, 형씨. 오늘은 어쩐 일로 늦나 했더니 여자 꼬시느라 늦은 거였어?”
“…….”
“걱정하지 말라고. 나도 눈치는 있으니까. 오늘은 절대! 털끝만큼도 방해하지 않을 테니까.”
그럼 좋은 시간 보내라고.
그렇게 말하며 주인장이 멀어졌다.
“…….”
“…….”
이 분위기 어쩔 거야.
침묵 속에서 내가 입을 열었다. 개인 정보는 가능한 숨기려고 했지만, 이 정도는 괜찮겠지.
“말해 두겠는데, 나 유부남이다.”
“그, 그러시군요.”
별로 효과적이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