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73
73화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인상적인 모습이라.”
탐정이 펜대로 머리를 쿡쿡 찔렀다.
아크투러스 직원은 부스터를 더 받고 싶으면 토너먼트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탐정과 나는 각자의 목적을 위해 협력하고 있었다. 탐정은 부스터라 부르는 수상쩍은 약물에 대한 조사. 그리고 나는 영감의 부탁으로 인한 토너먼트 우승 및 우승 상품 분석.
그 모든 게 아크투러스에 관여되어 있었다.
‘덤으로 사장 손가락까지 걸려 있고.’
조직원도 아니고 세력 아래에 있는 가게 사장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떠나겠다는 작자의 손가락을 잘라 버린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돌곤 했다.
“…이건 제가 손쓸 방법이 없어 보이죠?”
“그건 그래.”
아직은 탐정이 나설 자리가 아니었다. 탐정이 내가 토너먼트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남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니까.
“너는 네 일이나 신경 써.”
“뭔가 뾰족한 방법이라도 있으신가요?”
나는 대답을 피했다.
남들 앞에서 힘을 과시하는 것 정도야 간단했다. 그렇다고 그 주혁이라는 놈처럼 상대를 잔인하게 해치우는 방식을 고르긴 싫었다.
“상대에 따라 다를 거 같은데.”
내 실력을 보여 줄 수 있을 정도로 적당한 상대가 나와 줘야 했다.
토너먼트도 8강에 접어들어 대진표 추첨 역시 끝난 상태였다.
내 번호는 8번. 7번으로 싸울 상대는 모르겠지만, 5번엔 랭커 중 하나인 ‘묠니르’ 토마스가 있다. 녀석이든, 녀석을 꺾고 올라온 놈이든.
적어도 그 경기부터는 운영 측의 관심을 끌 수 있겠지.
“아저씨.”
누군가 옷깃을 잡아당겼다. 최근 들어 곧잘 주방 일을 돕고 있는 서지유였다.
“시키신 거 다 해 놨어요.”
“보자.”
서지유에게는 가게 일을 돕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물론 나라고 해서 정식으로 가게에서 일해 본 적 따윈 없지만, 서지유도 혼자 나름대로 알아보면서 공부하는 중이었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다 배울 수 있다나.
세상 참 좋아졌다.
나는 서지유가 썰어 놓은 야채를 흩어 보았다. 고기 손질해 놓은 것도 확인하고, 칼이나 식기류 상태도 점검했다. 모두 합격점이었다.
“나보다 낫네.”
“…오버는 하지 마시고요.”
서지유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아닌 척해도 칭찬을 들은 게 기뻤는지 슬쩍 고개를 돌리며 입가를 씰룩거렸다.
그 감상은 진심이었다.
내가 아버지 일을 돕겠답시고 설치고 다닐 땐 대단한 셰프라도 될 거라는 허영에 가득 차 있었다. 비단 실력이란 바닥부터 차근차근 쌓아 올려 가는 것이란 사실을 모르고.
시키는 일을 군말 없이 묵묵히 해내는 서지유가 대견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애 성격이 좀 까칠한 건…….
“어이! 일로 와 봐.”
“네?”
영업 도중, 테이블에 앉아 있는 손님 중 하나가 서지유에게 손짓했다.
서지유는 영업시간엔 주방 일 대신 홀에서 보조를 했다. 어차피 주방 쪽은 나 하나 있으면 충분했으니, 가게 일을 두루두루 알아보기 위한 선택이었다.
서지유가 손의 물기를 닦으며 달려갔다. 뭔가 실수라도 저지른 건지 고민하며 쭈뼛거리는 모습이었다. 손님은 씩 웃으며 물었다.
“교복 귀엽네. 고등학생이야? 몇 학년?”
“예? 저기…….”
“와서 술 좀 따라 봐.”
그리 말하며 서지유의 허리로 손을 뻗었다.
손님이 아니라 손놈 새끼였네.
“거기.”
내가 놈의 손목을 붙잡았다.
“어떤 새……. 헉!”
남자는 성질머리를 부리려다가 내 얼굴을 확인하고 숨을 들이켰다. 정확히는 내 얼굴을 가리고 있는 가면을 알아본 거였다.
토너먼트의 인기 덕분인지, 그런지 이 가면도 제법 유명해져 있었다.
나름대로 힘 좀 쓴다는 놈들이 대거 참여했다가 예선전부터 쓸려 나간 대회에서 살아남아 8명 안에 이름을 올렸으니 그럴 법도 했다.
남자가 비굴하게 웃으며 변명했다.
“하하, 오해입니다요. 손이 미끄러져서 그만…….”
“그래?”
“무, 물론입죠.”
나는 남자의 손을 놓아 줬다.
“조용히 마시다 가.”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남자가 연신 허리를 굽신거렸다.
“아저씨…….”
“…주방으로 들어가.”
서지유가 고개를 끄덕이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이 동네, 애들 정서 교육엔 이보다 나쁠 수가 없었다. 주방 안의 서지유는 누가 봐도 문제아 같은 모습이었다. 줄여 놓은 교복에 밝게 물들인 머리.
그래도 이 이상 삐뚤어지지 않은 게 어디냐.
그마저도 요행이었다.
* * *
[드디어 오늘이 찾아왔습니다!]시간이 흘러, 아크투러스 투기장에서 열리는 토너먼트의 8강 대진일.
도율은 자신의 경기에 참가하기 위해 대기실에 도착해 있었다.
8강과 4강은 하루에 두 경기씩 치러진다. 즉, 8강에 필요한 4번의 경기는 이틀에 걸쳐 치러지고 4강에 필요한 2번의 경기는 하루 안에 치러진다.
도율은 자신이 참가하지 않는 경기라면 굳이 볼 생각이 없었지만, 오늘은 경기를 치르기 위해 대기하는 동안 다른 사람의 경기를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하필 이거군.’
도율이 경기 일정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오늘 치러지는 경기 중 하나는 도율의 경기인 7번과 8번의 대결.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5번과 6번이 아닌 1번과 2번의 경기였다. 같은 번호끼리 묶어서 할 거라고 예상했지만, 변주를 주기 위해서인지 섞여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상대적으로 가장 인지도가 없는 경기와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경기를 같은 날에 묶어서 팔아먹으려는 상술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1번과 2번의 대결.
달리 말하자면, 주혁과 데드 페이스의 대결이었다.
“오오오!”
도율이 있는 대기실까지 관중의 함성 소리가 들려올 지경이었다.
아크투러스 투기장의 랭커 중 한 명인 데드 페이스. 은색의 철 가면을 쓴 남자였다. 그러한 사전 정보가 없더라도 겉모습에서 풍기는 위압감만으로도 누구나 그가 더할 나위 없는 강자라는 사실을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쪽은, 넝마 같은 옷차림에 산발을 한 남자. 주혁. 누가 보면 거지꼴이나 다름없는 그 모습이 그의 광적인 면모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주혁 역시 이곳 아크투러스에서 나름대로 활약을 했던 과거가 있었다. 해설자 역시 ‘돌아왔다’는 표현을 사용했고, 다른 이들과 안면이 있어 보였다. 물론 호의적인 관계를 맺은 이는 아무도 없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게, 그의 경기 내용은 지금까지 온통 피로 점철되어 있었다. 상대가 누구든 가리지 않고 포악한 가학 욕구를 표출해 왔다.
“쯧.”
도율이 주혁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도 그런 점이었다.
두 실력자가 목숨을 건 대결을 벌인 끝에 어쩔 수 없이 목숨을 빼앗는 게 아니라, 충분히 손속에 여유를 둘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는 악랄함.
물론 이곳 불야성에선 그러한 잔인함이 하나의 상품성이었다. 눈을 찌푸리는 이들도 많았지만, 평소엔 볼 수 없는 과격함에 환호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 관객들이 기대하는 이유는 지금까지와는 조금 달랐다.
“데드 페이스! 너한테 전 재산 다 걸었다!”
“가라, 주혁! 다 찢어 버려!”
이 둘의 대결은 ‘빅 매치’였다.
누가 이길지 결과를 알 수 없는 박빙의 승부. 커다란 덩치에서 나오는 압도적인 힘과 강철 같은 맷집을 자랑하는 데드 페이스. 화려한 과거와 압도적인 행보를 보여 온 폭력의 화신, 주혁.
[오늘의 대결, 그 누구도 쉽게 결과를 예측할 수 없습니다! 과연 승리의 여신은 누구에게 미소를 지어 줄 것인가!]두 사람이 경기장 위에 올랐다.
어마어마한 덩치를 자랑하는 데드 페이스. 그의 앞에 선 주혁은 조금도 주눅 들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신난 것 같은 분위기였다.
“오늘은…….”
주혁이 손가락을 갈퀴처럼 굽혔다.
“원 없이 놀 수 있겠어.”
* * *
그 누구도 쉽게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싸움.
하지만 도율은 예상할 수 있었다, 이 대결의 결과를.
그리고 미래는 그의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방향으로 흘렀다.
쿵!
커다란 포탄이 땅 위로 떨어지는 소리. 거구의 남자가 무릎을 꿇는 소리였다.
“커억…….”
구멍이 몇 없는 철 가면 사이로 핏물이 배어 나왔다.
데드 페이스의 몸은 온몸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무릎을 꿇은 것이 조금도 과장된 행동이 아니었다. 오히려 초인적인 의지를 발휘해 지금까지 버텨 왔다는 평가를 들을 만했다.
경기 내용은 어디까지나 일방적. 주혁이 데드 페이스를 가지고 놀다시피 하며 흐름을 주도했다. 그 결과가 이 광경이었다.
“쩝…….”
주혁은 쓰러진 데드 페이스를 내려다보며 아쉬운 듯이 입맛을 다셨다. 그가 피에 젖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하지만 이미 경기는 종료가 선언되었다. 이 이상 손을 대면 참가 자격이 박탈된다. 그렇다는 건, 이보다 더 강한 상대와 싸울 기회를 잃는다는 뜻이다.
그마저도 회의감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과연 그가 만족할 정도로 강한 상대가 이곳에 존재하기나 할지 의심스러웠다.
“슬슬 질리네.”
도율이 화면 너머로 그런 주혁을 지켜보고 있었다.
주혁, 그의 싸움 방식은 데드 페이스와의 대결을 통해 보다 확실하게 굳어졌다.
지금까지 상대해 온 자들과의 실력 차이가 너무 컸던 탓에, 그가 사용하는 기술들은 단순한 여흥거리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 그가 선보인 기술들은 모두 날카롭게 벼려진 숙련도를 자랑하는 것들이었다. 주력으로 사용하는 방식이라는 뜻.
그가 가진 강점은 악력이었다.
그 손가락을 때로는 칼날로, 때로는 조이개로 사용했다. 손가락으로 피부를 찢거나 꿰뚫기도 하고, 팔과 다리를 붙잡아 비틀어 버리기도 했다.
상대의 덩치가 큰 만큼 품이 드는 일이었으나, 주혁은 그걸 음미하듯 즐기는 성격이었다.
그때 대기실 문 너머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문을 열고 틈새로 직원이 물었다.
“출전 준비는 마치셨습니까?”
“예.”
직원의 안내로 경기장으로 이동했다. 이미 상대도 도착해 있었다.
관중석을 둘러보니 사람은 제법 빠져 있었다. 대부분이 이전 경기를 보기 위해서 온 사람들일 테니, 그 이후에 이어지는 경기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도율은 개의치 않았다. 그가 신경 써야 하는 건 관중들 따위가 아니었으니까.
목표는 우승. 그리고 이 아크투러스 투기장을 운영하는 단체의 비밀을 파헤치는 것이었다.
눈앞의 상대는 등이 조금 굽은 사내였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별 볼 일 없는 상대일 가능성은 적었다. 우연이나 운 따위로 치부하기엔 너무 멀리 왔다.
“클클. 잘 부탁하지.”
남자가 가래 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도율은 고개를 까딱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경기, 시작합니다!]경기가 시작되자 남자는 등에 두른 새까만 망토를 펄럭였다. 커다란 장막이 드리우듯 망토가 그의 몸을 모두 가렸다.
보이는 건 남자가 쓰고 있던 새하얀 해골을 닮은 가면과 검은 천 자락뿐이었다.
검은 망토가 나부끼길 잠시, 이내 지나지 않아 천 자락이 가라앉았다. 그러나 검은 천은 가라앉으며 다시 남자의 몸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대로 바닥까지 떨어졌다.
달각.
바닥 위로 검은 망토와 함께 하얀 가면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이럴 수가! 암귀 선수! 눈앞에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보여 주지 않았던 기술입니다! 숨겼던 걸까요?!]모습을 감춘 암귀가 조용히 미소 지었다.
해설자의 말대로 지금까지 아끼고 아껴 온 기술이었다. 완전한 은신. 무조건적인 선공권을 가질 수 있는 비장의 기술이었다.
그만큼 들켰을 때의 약점도 크다. 그래서 가능한 숨길 수 있을 때까지 숨길 생각이었다.
원래라면 고작 8강 정도에서 사용할 생각 따윈 없었지만…….
‘이놈은 위험하다…!’
도율을 앞에 둔 암귀의 직감이 경종을 울렸다. 이 남자에게 이기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야 한다는 본능의 외침이 들려왔다.
도율은 갑자기 모습을 감춘 상대를 두고도 당황하지 않았다. 아니면 단순한 허세일지도 모른다.
공격을 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을 노릴 생각이라면 틀렸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암귀가 독을 바른 단검을 꺼냈다.
‘즉효성 맹독이다. 그 튼튼하다는 트롤들도 한 방울에 보내 버리는.’
암귀가 도율의 주변을 서성였다. 어차피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에 어디에서 공격하든 다를 건 없었다.
이왕이면 등 뒤를 공격할까. 하지만 모습을 숨긴 자를 상대로 등 뒤를 경계하는 건 곧잘 있는 대응이었다. 여기선 역으로 허를 찔러 정면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 순간.
분명히, 암귀는 도율과 눈이 마주쳤다.
‘말도 안……!’
있을 수 없는 일에 암귀에 등골에 쭈뼛하게 차가운 소름이 타고 올랐다. 저도 모르게 살짝 거리를 벌리고 말았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다시 보니, 그의 눈동자는 자신이 아닌 관중석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칫. 단순한 우연이었나.’
암귀가 독이 발린 단검을 휘둘렀다.
슈욱!
그동안 도율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에 정신이 팔린 것처럼.
도율의 시선은 암귀의 예상대로 관중석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선 경기 같은 것보다, 한 가지 의문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관중석의 누군가에 대한 의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