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1)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1화(1/275)
유태하가 깨어나자마자 본 천장은 금빛이었다.
‘나 죽었는데.’
그것도 의뢰인이 고용한 헌터 때문에 바닥에 그대로 추락해서 뒤졌다.
설령 운이 좋아 깨어난다 해도 눈앞의 광경이 화려한 금빛 천장일 리 없었고, 좋아 봐야 오염된 보랏빛 하늘일 터였다. 풍기는 향까지 좋았다. 향까지 말이다.
그럼 눈앞에 펼쳐진 이 꿈 같은 금빛 물결은 무엇인가.
금빛 천장. 화려한 장식 부조. 네 개의 기둥이 달린 호화스러운 침대와 적색 카펫이 깔린 20평이 넘는 독방. 입고 있는 옷은 떨어질 때 입고 있던 헤진 반팔이 아니라 네이비색 실크 잠옷이다.
‘사실 죽지 않은 건가?’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하다못해 누군가 그를 구했다면 눈 뜨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옆에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느릿하게 침대에서 내려오던 유태하가 문득 몸의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문제는 여기서 일어났다.
힘겹게 몸을 일으켰을 때 눈높이가 원래의 그것보다 10cm는 낮았다. 눈에 들어온 손도 그가 알던 것보다 작았다. 마치…… 어린아이의 몸처럼.
‘내 몸이… 왜 이래?’
발목과 손가락이 댕강 잘리지 않은 이상 이런 몸뚱어리일 리가 없는데.
꿈일까, 혹은 주마등일까 하는 고민이 짧게 스쳤지만 코끝을 스치는 냄새부터 선명한 통증까지, 적어도 하나는 확실했다. 지금의 상황이 죽기 전의 주마등은 아니라는 것.
‘제기랄, 대체 무슨 일이…….’
그때였다. 머릿속이 혼란한 와중에 탁탁-하는 발소리가 들려온 것은.
대리석 바닥을 가볍게 내딛는 낯선 발소리가 문 앞에서 끊어졌다.
다음으로 들려온 것은.
“레이먼 님, 기침하셨습니까.”
“….”
낯선 이의 목소리.
유태하는 침묵했다. 그의 예감이 맞다면 저 사람이 찾는 ‘레이먼’은 분명 그의 주인일 것이다. 그리고 이 방에 있는 것은 오직 자신뿐.
‘그럼 내가 레이먼인 건가?’
“아직 주무시고 계시나 보네.”
침묵이 길어지자 이번에는 구두굽 소리가 조금씩 멀어졌다. 희미해지는 발걸음 소리. 인기척이 완전히 사라진 걸 확인하자마자 유태하는 가장 먼저 방 안을 샅샅이 뒤졌다.
이 몸에 관한 정보를 찾기 위해서였다.
헌터 시절 뒷골목 정보꾼으로 활동한 유태하다. 그런 그에게 생활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방에서 정보를 뽑아 먹는 건 젓가락으로 쌀국수를 집어 먹는 것만큼이나 쉬웠다.
먼저, 그림. 벽에 걸린 초상화에는 이 가문의 가족처럼 보이는 인물들이 그려져 있었다. 염소수염이 인상적인 중년 남성, 그보다 앳되어 보이지만 온화한 인상의 여성, 그들 사이에서 통통한 볼을 자랑하는 귀여운 어린애 하나.
그리고 화목해 보이는 이들 옆에 선 소년.
붉은 머리, 살짝 올라간 푸른 눈, 높지만 굴곡 없이 직선으로 떨어지는 콧대와 웃지 않으면 우울해 보이기도 하는 처진 입꼬리. 마치 시체처럼 보이는 창백한 피부에 왜소한 몸집까지.
그는 이 얼굴을 알고 있었다.
‘이건…… 나잖아?’
그림 속 소년의 얼굴과 몸은 분명 어린 시절의 자신이 맞았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이 아니었다. 유태하에겐 이런 기억따위 없었으니까. 게다가 현대 사회에 누가 이런 방에 살고, 누가 저런 초상화를 걸어두겠는가.
유태하는 초상화 아래에 걸린 자기 키만 한 전신 거울 속 제 모습을 바라보았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은 잘 쳐줘 봐야 10대 중반의 소년이었다.
‘얼굴은 같지만 그보다 어린 몸에 빙의라고 하면… 설마 이게 책에서나 보면 평행 세계 같은 건가?’
여러 가능성을 펼친 채, 레이먼은 책상 위 편지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대부분 고모할아버지라는 사람으로부터 온 편지였다.
‘이름은 레이먼 반 스플린.’
다행히 자신이 읽은 소설이나, 혹은 플레이한 게임 중 이런 이름을 가진 놈은 없었다. 스플린이라는 성 자체도 생소했고. 스턴 왕국이라는 이름도 기억에 남은 게 전혀 없었다.
‘소설이나 게임보다는 평행 세계라고 생각하는 편이 합리적이야.’
고모할아버지의 편지를 더 읽어보니 아버지의 작위는 공작인 듯했다.
그리고 저택의 상태나 편지의 질, 가구의 품질을 살폈을 때 이 공작 가문은 꽤나 부유한 모양이었다.
‘돈 없이 명예만 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 집안은 아닌 모양이네.’
좋다. 아니, 이건 좋은 수준을 넘었다. 그는 호선을 그리는 입꼬리를 아래로 꾹 누르며 편지를 마저 읽어 내려갔다.
편지는 대강 이런 내용이었다. ‘너는 우리 가문의 수치이자 재능 없는 머저리 첫째이니 네 애비의 뒤를 잇겠다는 꿈은 꾸지도 말고 호의호식이나 하며 얌전히 짜져있거라’를 한 10줄 정도로 늘려 놓은 그런.
‘그래. 처음 뵙는 분이지만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아는 분이다.’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지만 있는 편이 좋다. 그래야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으니까.
불행히도 이젠 고인이 된 헌터 유태하는 가만히 짜져있으면 굶어 죽을 정도로 가난했기에 그럴 수 없었을 뿐이다. 목숨이 위험해질 정도의 고급 정보를 모으고 팔아야 살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었다. 호의호식하며 짜져있으라니… 그게 바로 자신이 원하는 삶이 아니었던가!
‘진정하고.’
일단 다른 단서를 찾아볼까.
‘편지 내용은 이게 다인 것 같은데.’
그럼, 다음은 방의 상태.
방을 빽빽이 채운 책장에는 마법에 관련된 서적이 빼곡했다. 즉, 이곳은 마법이 존재하는 세계였다.
‘마법에 지독하게 재능 없는 장남이 노력은 어마어마하게 한 거군.’
책의 상태만 봐도 알 수 있다. 빼내 든 책마다 상태가 너저분했다. 책 곳곳에 공부한 흔적이 역력했다.
탁-.
초상화, 방 안의 편지. 옷장의 옷이나 신발의 사이즈. 책장을 빽빽이 채운 서적을 보았을 때, 지금까지 수집한 정보는 다음과 같다.
1. 이 몸의 주인은 마법 명가 스플린의 장남 레이먼 반 스플린으로 머리는 좋으나 마력을 담아둘 서클이 없는 모양. 하지만 두 살 아래인 남동생은 엄청난 마법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사실.
2. 장남이 마법에 재능이 없는 것을 부끄러워한 스플린 공작이 장남을 포기한 채 집에만 가두고 있었다는 사실.
3. 현 시각은 오전이고 원래 이 몸의 주인이라면, 그의 계획표 상 지금쯤 침대에서 일어나 홀로 공부하고 있을 거라는 사실.
이 정도 정보만 모여도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는 충분했다. 대 각성자 시대가 열리면서 온갖 일을 다 겪었던 헌터에게 평행 세계라던가, 빙의는 그다지 새롭지 않은 일이었다. 그는 살기 위해서라면 눈앞에서 해골이 일어나 내가 네 아비다- 라고 떠들어대도 믿고 적응하는 사람이었다.
‘일단, 유태하의 신분은 버린다. 그리고 적응한다.’
그때였다. 눈앞에 익숙한 창이 반짝였다.
[ 이름 : 레이먼 반 스플린(유태하) ]시스템 창.
헌터에게만 보였던 시스템 상태창이 이곳에서도 보였다. 여기까지 따라오다니 이 정도면 광적인 집착이다.
[ 죽은 유태하의 영혼이 평행 세계의 레이먼 반 스플린에게 빙의 ] [ 레이먼 반 스플린의 영혼이 당신을 이곳에 불렀습니다. ] [ 피로한 영혼에게 적응기간 제공 : 약 한 달 ]적응 기간?
웬일로 너그럽다. 사람 하나 족치려고 세상도 멸망시키는 게 시스템인데.
하지만 저 ‘적응 기간’은 왜 주는 거지? 그런 시간을 시스템이 준다고? 시스템이 그런 기간을 자신에게 줄 만큼 친절하고 우호적이었나?
‘기분이 갑자기 싸한데.’
그렇게 잠시 고민하던 유태하… 아니, 이제는 레이먼 반 스플린이 되어버린 그가 한 차례 고개를 털고는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입을 열었다.
“아, 몰라.”
이내 그는 문을 활짝 열어 복도의 시종을 불렀다.
“거기 누구 없어요? 나 일어났는데? 나 배고픈데?”
배가 고프니 일단 호화스러운 만찬을 즐길 생각이었다. 아니, 아직 낮이니 오찬이라고 해야겠지.
“일단은 먹고 생각하지, 뭐.”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우선 즐길 수 있는 것은 즐기고 생각하는 것이 나았다.
그 시작은 ‘호화스러운 삶’부터다.
***
깨어난 지, 2주가 흘렀다. 그간 레이먼은 유유자적하게 지금의 삶을 즐겼다. 초상화 속 아버지는 자신을 찾지 않았고 어머니는 종종 레이먼의 방에 들려 오늘 읽은 책의 내용에 대해 질문했다.
처음 그녀를 마주했을 때, 레이먼은 혹여 자신의 정체를 들킬까 걱정했다. 부모라면 응당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녀는 제 아들이 이제 제 아들이 아니란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어쩌면 레이먼이 우수한 연기를 펼쳤을지도 모른다.
– 오늘 읽은 책은 어려운 책이네
– 예.
– …그래. 오늘 기분은 괜찮니? 밖을 산책하고 싶진 않고?
– 예.
– 평소와 같네, 우리 아들. 우울하다고 집 안에만 있지 말고. 마법을 못 쓴다고 쓸모없는 인간이 되는 거 아니야. 알지?
– 예. 알죠.
이전 레이먼이 얼마나… 얼마나 침울하게 살아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여하튼 레이먼은 나름대로 이곳에 잘 적응하고 있었다. 몸에 적응하면서 이곳의 기본 지식이 자연스레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왔고 신체에 누적된 마법 지식은 완벽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레이먼은 2주 만에 처음으로 가족과 함께하는 식사 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중앙 회랑을 지나 아침 식사가 이뤄질 식당으로 향했다. 흰 테이블보가 깔린 직사각형의 테이블의 끝에는 아버지인 테리안이, 그 옆으론 어머니 사샤와 남동생 아드리안이 앉아 있었다. 단출하지만 적당한, 초상화 속 가족 구성원 그대로였다.
어머니는 종달새 같은 목소리로 종알종알 계속 공작에게 말을 걸었고 공작은 묵묵히 그녀의 말을 들었다. 간혹 레이먼을 곁눈질했으나 말을 걸진 않았다. 레이먼은 그 시선이 아무렇지 않았다.
근 2주 동안 이 몸으로 살아본 결과, 스플린 공작이 마법을 쓰지 못하는 장남을 전혀 아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식사 자리에서 어머니 사샤만이 유일하게 레이먼에게 정답게 말을 걸었다.
“오랜만에 밥을 같이 먹으니 좋구나, 레이먼. 늘 나오려 하지 않더니 이번엔 나와줘서 고마워.”
“…아니에요.”
원래 레이먼은 가족과 밥을 같이 안 먹었구나? 이런 음식들을 사양하다니, 복에 겨웠군.
단답으로 슬쩍 상황을 넘긴 레이먼은 테이블 위 스프에 다시 고갤 처박았다. 낮아진 시선으로 이번엔 어린 남동생, 아드리안을 곁눈질했다.
‘생각해 보니 얘가 그 마법 천재지.’
대단하군. 저 작은 몸으로 천재라고 인정받다니.
‘어라. 생각해보니.’
스프를 한 입 뜬 레이먼은 문득 자신도 마법을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스턴 왕국에선 마법 가문의 작위는 자식 중 가장 마법에 재능있는 자만이 이을 수 있었고, 마법을 쓸 줄 알아야지만 가문의 재산을 일부라도 물려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장남만 재산을 모두 물려받는다는 못된 국법이 있다면 훨씬 좋았을 텐데.
스프 건더기를 오물거리며 레이먼은 앞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다.
‘원래는 아예 마법을 못 썼던 것 같은데…… 혹시 달라졌을 수도 있으니까. 일단 마법 선생부터 불러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