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103)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103화(103/275)
사각사각. 시아누 교수의 깃펜이 양피지 위에서 춤췄다. 그는 시험 기간을 매우 애정하는 교수 중 한 명이었다. 조용하고 내성적인 시아누 교수가 자신의 의견을 투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공간, 바로 시험 문제! 학생들의 교수 평가 따위는 완전히 무시하고 문제를 내는 덕에 시아누 교수에 대한 평가는 언제나 극명했다.
– 교수님이 어렵고 시험 문제가 내성적이에요
– 시아누 교수의 수업은 공부는 열심히 하겠지만 입을 열기 싫은 학생에게 안성맞춤
그런 시아누가 처음으로 문제 출제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는 깃펜을 코와 입술 사이에 끼우고선 조금 전 처리한 학생회 임원들에 대해 생각했다.
‘레이먼이나 오닉스는 동급생이니 넣을 수 있지만… 아르파드 가문의 사람은 왜 집어넣은 거지?’
콜로만 아르파드. 아르파드 가문의 일원인 그는 작년 예언클럽에서 서머셋의 죽음을 예견한 사람이었다. 그 이후에 유타가 납치당했기 때문에 예언 클럽과 그 사건이 모종의 관계가 있으리라 생각하는 사람도 몇몇 있을 정도였다. 한참 고민 중인 와중에 누군가 그의 어깨를 톡톡 쳤다.
“시아누,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초초 교수였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시아누와 친해진 초초는 그와 반말을 쓰는 유일한 교수였다.
“아, 학생회 임원에 대해서 생각 중이었어.”
“누군데?”
“여기.”
“어디 보자…….”
명단을 확인한 그녀는 “이거 진짜야?”라고 되물은 뒤, 배를 부여잡고 깔깔 웃었다. 아무리 넣을 만한 사람이 없어도 그렇지, 저주 마법으로 유명한 가문을 학생회에 넣다니. 누가 생각한 건지는 몰라도 그리 성격이 좋은 놈은 아니리라. 초초는 레이먼의 이름을 확인한 뒤 씨익 웃으며 시아누에게 명단을 돌려주었다.
“이번 학년도 재밌겠어.”
“…응.”
“그나저나 너 시험 출제 끝났어?”
“대강은…. 왜 그래?”
“혹시 안 쓰고 남은 문제는 없어? 너도 축복 마법 담당이잖아.”
초초가 손바닥을 싹싹 비는 시늉을 하며 윙크했다.
‘그래서 갑자기 찾아왔구나?’
그 역시 평소 초초 교수가 학교 커리큘럼보다는 제 연구에 집중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같은 과목을 가르친다는 이유로 이렇게 남는 문제를 얻으러 오는 것이 처음도 아니었고.
시아누는 토할 것 같은 표정을 짓고는 작게 속삭였다.
“초초, 네가 사람이면 제발 날로 먹으려고 하지 마.”
순수한 얼굴과는 반대로, 험악한 말투에 초초가 슬픈 표정을 지으며 칭얼댔다.
“…사람도 날 것 좋아하는데 말이지.”
***
중간고사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레이먼은 평소보다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다. 이유는 바로 얼마 전 있었던 일 때문이었다.
멀쩡한 척 행동하고 있었어도 매너스의 매너만 나와도 몸이 먼저 반응했다.
“매너-.”
휙.
“-는 중요해. 저녁 식사 매너 말이야.”
“맞아. 매너-.”
휙.
“-는 귀족의 기본 소양이지.”
레이먼은 달의 탑 소동 이후 매너스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긁어모았다. 책만으로는 부족했기에 탐문 조사를 하기도 했다. 전쟁에서 적에 대한 조사는 기본 중의 기본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호불호가 갈리는 서머셋과 달리, 희한하게도 매너스에 대해서는 모든 이가 칭찬 일색이었다.
– 매너스 전하? 훌륭한 분이야. 서민을 위해서 목소리를 높일 줄 아는 왕족이시지. 물론, 에글린턴 개교와 관련된 일은 화가 나긴 해.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내 생각이 짧았다고도 생각해. 귀족에겐 포레스튼이 있지만 평민들에겐 그들을 위한 아카데미가 없으니까 말이야.
– 매너스 전하는 마법 실력도 성품도 우수해. 딱 한 번 마주친 적이 있는데 그때 내가 떨어뜨린 필기구도 주워 주셨거든.
– 마법 실력은 두말할 것도 없고 검술 실력도 훌륭하시지. 전쟁에 나가서 직접 싸운 적도 있으시잖아. 물론 대승을 거두셨고 말이야! 나는 그분이 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분명 에글린턴 개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만 하더라도 매너스의 평판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평판은 일시적이었던 모양이다.
매너스 스테디움 스턴의 모든 소문은 시원시원한 성격에 호탕하고, 타국과의 전쟁에서는 호전적이지만 자국민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남자로 귀결되었다. 간혹 있는 나쁜 평판이라고는 전부 에글린턴과 관련된 게 전부였다.
생활관 방 책상 위에 양다리를 올려놓은 채, 의자를 까딱이며 레이먼은 생각했다.
‘그런 사람이 유타를 노린 이유는… 필시 왕위 계승권 때문이다. 납치 이후에도 계속해서 유타가 왕위에 관심이 있는지 물었으니까.’
그가 왕위에 관심이 있어 보였는가?
그 또한 답은 ‘예.’다.
‘그럼 내가 이 정보로 할 수 있는 건 뭐지?’
평판이 좋은 상태에서 섣불리 매너스에게 흠이 될 만한 정보를 풀었다간 오히려 이쪽이 욕을 처먹을 거다. 지금 당장으로서는 유타나 나를 믿을 사람보단 매너스 쪽에 붙을 사람이 훨씬 많았다.
그렇다면 이 정보로 매너스를 협박하는 건? 하지만 앞서 생각했던 상황을 매너스가 고려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는 자신이 유리한 고지에 있다는 걸 필시 알고 있을 터였다.
그렇다면 이 정보를 유용하게 쓰기 위해서 필요한 건.
‘대외적 평판.’
교내에서의 평판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 5왕자의 존재를 알리고 그의 존재를 각인시킬만한 사건이 필요하다. 매너스 역시 포레스튼 재학 중에도 왕자로서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전쟁에 참여하기도 했으니, 유타 역시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대로 있어 봐야 우물 안 개구리, 골목대장에 불과해. 밖을 봐야 해.’
그러기 위해선 아카데미 내부 정보만으로는 부족했다.
마법이 없는 세계에서도 수많은 사건 사고가 벌어졌다면, 마법이 있는 이곳이라면 더욱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 터였다. 그렇게 결심한 레이먼은 다음 날 곧장 그녀에게 향했다.
이럴 때일수록 누구보다도 강력한 우군이 되어줄.
***
블랭킷 아그닐은 동그란 안경을 쓰고 레이먼을 맞이했다. 항상 단정히 정리되어 있던 머리가 헝클어져 있는 걸로 봐선 취업 준비가 생각보다 힘든 게 틀림없었다. 아니, 취업 준비가 아니라 상회를 이어받을 후계자 준비일지도 모르지.
“레이먼, 무슨 일이야?”
레이먼이 답했다.
“얻고 싶은 정보가 있어서요. 5학년은 중간고사를 치지 않아서 시간이 좀 있으실 줄 알았는데….”
레이먼은 이번엔 말 대신 그녀의 머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블랭킷은 헝클어진 머리 위로 안경테를 꽂으며 웃었다.
“시간은 없지. 상회 일로 바쁘거든. 그래도 4학년일 때는 좀 빼줬는데 지금은 완전히 졸업한 사람처럼 취급하잖아.”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네요. 아그닐 상회에서 정보를 사고 싶어서요.”
“넌 언제나 물건이 아니라 정보를 사고 싶어 하더라. 그래, 어떤 정보?”
블랭킷은 ‘왜 그게 필요해?’라는 질문 대신 활짝 웃으며 필요한 상품이 무엇인지 질문했다.
“수도나 지방에서 벌어지는 재밌는 사건이나 스캔들, 범죄 같은 거요. 그거 때문에 피해 보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어요. 아, 그리고 최대한 최근 일로 아직 아무도 해결하지 못한 사건으로 부탁드립니다.”
“그런 건 쉽지.”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정보까지도요.”
마지막으로 덧붙인 말에 블랭킷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해바라기처럼 활짝 핀 미소를 얼굴에 담으며 그녀가 말했다.
“…좋아! 가격은 따로 청구할게.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라서. 언제까지 필요해?”
“중간고사가 일주일 뒤에 끝나서요. 끝나는 당일이 편할 것 같습니다.”
“오케이. 그때 청구서랑 같이 네 방으로 보내둘게.”
블랭킷은 어떠한 이유도 묻지 않고 거래 계약서를 내밀었다. 이 정도라면 굳이 이유를 캐물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계약서를 작성한 뒤, 레이먼은 자연스레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가 예상한대로 도서관은 학생들로 바글바글했고 유타도 있었다.
“아, 레이먼!”
멀리서 유타가 손을 흔들었다. 오닉스, 유타, 테디, 파릭사, 아드리안이 한자리에 있었다. 레이먼도 그들 옆으로 가 앉았다, 중간고사 공부를 거의 하진 못했지만 2학년 시험까진 어찌저찌 만점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레이먼은 적당한 책을 골라와 읽기 시작했다.
오닉스는 그런 레이먼 옆으로 다가와 질문을 미친 듯이 던져댔다.
“이 마법 주문 말이야….”
“마법진의 이 문자는 이런 형태가 아니라…….”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내가 맞는 거 같은데….”
귀찮다. 레이먼은 혼이 빠진 붕어 같은 눈동자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내가 의뢰받았을 때도 뭘 이렇게 자세히 설명해준 적은 없는 것 같은데.’
그땐, 시커멓게 다 큰 어른들이 떼거리로 몰려와 어떤 정보가 필요하고 가격은 어떤지에 대해 물어봤던 거라 그런 건가.
레이먼이 슬쩍 고개를 돌려 오닉스와 다른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때마침 오닉스가 홱 고개를 들더니 레이먼에게 다가왔다.
‘볼 때마다 적응이 안 된단 말이야.’
평소 모습이랑 너무 다르지 않나? 평소에는 그냥 시비나 터는 양아치 같은데.
“네 설명 이거 틀린 거 아니냐? 너 이거 공부 안 했지. 야.”
물론 밑도 끝도 없이 시비를 걸어대는 입은 여전했지만. 레이먼은 귀찮다는 감정과는 조금 다른 한숨을 한 번 내뱉은 뒤, 책상에 몸을 바짝 붙였다.
“나한테 그런 말을 하기엔… 1등은 난데?”
“하하하.”
“…흡.”
아드리안이 웃음 열심히 참았고 유타나 테디는 참지 않았다. 파릭사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입술 위에 검지를 갖다 댔다. 조용히 좀 하라는 은밀한 신호였다.
***
“끝났다!”
“야, 오늘 소여 스트릿 갈 거냐?”
“망했어, 망했어, 망했어.”
“정답 몇 번이야? 3번? 3번 맞지?”
“다 들리게 정답 맞추지 말라고! 방에 들어가서 맞추드가!”
중간고사가 끝이 났다. 강의실을 나서는 학생들의 다양한 소리를 들으며 레이먼을 쭉 기지개를 켰다.
“레이먼.”
마침 같은 시험을 끝낸 유타가 레이먼의 어깨를 톡톡 치며 물었다.
“시험은 잘 쳤어?”
레이먼이 심드렁하게 답했다.
“아마.”
유타는 나가기 시작한 학생들을 가리켰다.
“그럼 이제 뭐 할 거야? 다른 애들처럼 내려갈 거야?”
“아니, 오늘은 받아야 할 게 있어서.”
유타가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받아? 뭘?
“블랭킷 선배한테 부탁해둔 게 있거든. 너는? 나가려고?”
“글쎄. 별생각 없는데.”
“그럼 선배가 준 거, 밀리포레에 가져갈 테니까 클럽 하우스에서 볼래?”
“좋아. 오닉스랑 테디도 한 시간 뒤에 시험이 끝나니까. 그때로?”
“어.”
1시간 뒤, 클럽 하우스에서 만나기로 한 두 사람은 헤어졌고 레이먼은 곧장 생활관으로 향했다.
“빠르네. 괜히 아그닐, 아그닐 하는 게 아니라는 건가.”
약속한 대로 문과 문지방 사이에 갈색 서류 봉투가 깔려 있었는데, 의뢰한 본인 외에는 꺼내 볼 수 없는 봉인 마법도 함께 걸려 있었다.
그리고 레이먼은 청구서의 가격을 먼저 확인했는데… 놀랍게도 ‘공짜’였다.
– 아빠가 이번에는 무료로 해주래. 저번 소여 스트릿 사건 때의 빚을 갚는다고 하셨어. 원하는 정보가 없으면 서비스도 제공하니까 확인하고 연락 줘.
레이먼은 지프 아그닐에 대한 짧은 감사를 표하며 침대에 점프하듯 앉아 서류 봉투를 열었다. 다양한 스캔들과 찌라시, 자연재해, 인재(人災) 등이 있었으나 그중에서도 레이먼의 눈에 들어온 사건은 딱 두 개가 있었다.
[ 그녀의 사랑은 누구? 백작 영애의 첫사랑을 알고 싶다. ] [ 갑자기 늘어난 도적들, 마을 사람들이 굶어 죽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