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106)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106화(106/275)
밀리포레의 클럽 견학 신청서는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초대 조건의 허들이 그리 높지 않았던 관계로 포레스튼에서도 가는 귀족 학생들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레이먼은 이다음으로 다윗 가의 영지에도 가는 건 말하지 않았지만.
테디와 유타는 생활관 방이 가까웠으므로 유타의 방에 모여 함께 짐을 싸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각자의 이유로 다른 가문의 파티에 참석하는 건 처음이었다. 유타의 배낭은 터질 것처럼 부푼 반면 테디의 캐리어는 텅텅 빈 채였다.
“유타, 네 가방은 왜 그렇게 든 게 많은 건가?”
곧 있으면 지퍼가 터질 것 같은 유타의 가죽 배낭을 보며 테디가 물었다.
“속옷, 옷, 칫솔, 치약이면 충분하지 않나.”
유타가 고개를 저었다. 그가 말했다.
“다윗 가문의 영지는 근처에 높은 산이 있잖아. 별이 아주 많이 보일 테니 마법 만리경을 따로 챙긴 거야. 또 다치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는데 그때마다 마법을 쓸 순 없으니 구급약품이랑, 도적단과 조우했을 때 필요한 마법 계약서와 깃펜… 그리고.”
이어지는 장황한 설명에 테디는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그래서 정신을 빼고 들었다. 정확히 4분쯤 지나자 다행히 유타의 폭주도 멈췄다.
테디는 어떻게든 다 제대로 들은 척을 하기 위해 맨 처음에 들었던 다윗 가문의 이야기로 돌아갔다.
“다윗 가문에 대해 잘 아는군.”
“공부했지. 영지 위치도 꽤 괜찮거든. 아까 말한 그 산에 희소한 광물 자원이 난다는 소문이 있어. 가는 김에 살펴봐야지. 아, 그쪽에 유명한 옷 가게도 있으니까 가 봐. 너 옷 좋아하잖아.”
그런 것까지?
테디는 유타가 이렇게까지 자신에게 관심이 있는 줄은 몰랐다.
나 간다. 그렇게 말한 유타가 생긋 웃으며 방을 나섰다.
***
이블랭 가의 파티 당일 오후. 포레스튼은 한껏 차려입은 학생들로 가득했다. 대부분 이블랭 백작가의 생일파티를 위해 교수들로부터 외출 허가를 받은 꼬맹이들이었다. 물론, 아드리안 역시 자신의 형 레이먼을 배웅하기 위해 나와 있었다.
“잘 다녀오세요.”
“그래.”
“함부로 웃고 돌아다니지도 마시고요, 형님.”
“…왜?”
난 원래 잘 안 웃긴 하지만. 굳이? 이런 말을 들어야 하나?
아드리안은 정말 모르겠냐는 눈으로 레이먼을 쏘아봤다.
‘아니… 진짜 왜?’
그래서 레이먼도 정말 모르겠다는 눈빛을 보내주었다. 아드리안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사교회에서 함부로 웃어주었다가는 근거도 없는 소문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특히, 형님처럼 생기시면 더욱 그렇겠죠. 그러니 마음이 있는 분께만 웃어주시거나, 아니면 그냥 가만히 계시는 게 답입니다.”
…아드리안이 생각보다 더 말을 잘하게 됐군.
레이먼은 동생의 논리적인 말에 동의했다. 애초에 그도 결혼은커녕 연애 생각 자체가 없었다. 그러니 괜한 추문에 휘말리는 것보다야 아드리안의 충고대로 하는 편이 나았다.
“그래. 알겠다. 그럼 가볼게.”
동생과의 간단한 작별 인사 후 레이먼은 가장 큰 6인승 마차에 탑승했다. 레이먼이 가문에 특별히 부탁해 가져온 마차였다. 신청서를 내면 학기 중에도 마차를 사용할 순 있지만 기껏해야 4인승.
렌스와 니콜까지 태우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블랭 백작가의 저택이 자리한 곳은 수도와는 거리가 꽤 멀었다. 비행 마차로도 1시간 30분은 걸리는 장거리 여행이었다.
.
.
.
덜컹.
“드디어 내린다.”
오닉스가 기지개를 쫙 켜며 “몇 시냐?”라고 물었다. 마차 주차장 바로 옆에 위치한 시계탑을 확인하니 오후 5시. 정확히 1시간 30분이 걸렸다. 레이먼 일행이 도착한 다음부터 포레스튼의 학생들이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다.
레이먼을 비롯한 몇몇 학생들은 가슴께에 다양한 코르사주를 장식하고 있었는데, 이는 파티에 처음 참석하는 17살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초대장 확인하겠습니다.”
파티장까지 들어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공작가 신분으로 오닉스를 데리고 들어오는 것도 쉬웠고. 예상했던 대로 서머셋과 매너스는 참석하지 않았다. 당일 별도 일정이 있다는 걸 확인하고 온 보람이 있었다.
주인공이 나타나지 않은 파티는 각기 다른 살롱 출신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예술, 역사, 정치 등등 다양한 주제로 토론이 오갔다. 유타와 레이먼의 관심사는 파티장의 대화에 자연스레 섞여 들어갔다.
“뱅엄 백작, 함께 대화를 나눠도 괜찮을까요?”
“5, 5왕자 전하를 뵙습니다-!”
“소문대로 아주 훤칠하십니다. 포레스튼에서도 아주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계신다고-.”
“과찬이십니다. 최근 영지의 포도밭에서 나는 와인이 아주 맛있다고 하던데요.”
“아, 알고 계셨습니까?”
“관심 있는 분의 근황은 미리 알아두려고 하는 편입니다.”
“영광입니다! 자, 안쪽으로 와서 더 많은 말씀을 들려주시면-.”
5왕자의 사교계 첫 등장은 주목할 만했다. 더군다나, 미혼 영애의 생일파티에 참석하다니.
설마? 혹시?
실시간으로 수많은 거짓 소문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유타가 들어서자마자 그에게 달려와 옆을 지킨 이블랭 백작은 온종일 유타의 옆에 붙어 그가 하는 말마다 “그럼요, 맞습니다!”라고 대답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대화하긴 쉽겠는데.’
포레스튼에서의 정보가 그들에게도 퍼진 모양이었다. 그들은 대화 내내 유타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달콤한 아첨에 재빨리 적응한 유타는 곧장 각 가문의 가주와 이야기를 나누며 이블랭 영애에 대한 정보를 모았다.
가주를 중심으로 이야길 나누는 그와 달리 레이먼은 살롱을 중심으로 모인 레이디를 찾았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레이먼 공자님 포레스튼에서의 활약은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행히 스플린의 평판 역시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부인들의 곁에는 그들의 여식도 함께 있었는데 그들 모두 레이먼을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17살이 된 레이먼은 주변 친구들보단 작았으나 그리 작은 키는 아니었고, 어딜 가나 빠지지 않는 얼굴에 집안까지 두루 갖춘 남자였다. 로맨스 소설 속 완벽한 남자 주인공에 가까운 그에게 뭇 영애들과 그 부모들의 시선이 쏠리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다.
“이블랭 영애의 결혼 소식은 들으셨나요?”
“결혼이요?”
“어머, 모르셨어요? 훌륭한 가문에서 프러포즈를 한 모양인데 이블랭 영애는 필사적으로 거절하는 모양이에요. 그 이유를 모르니… 이블랭 백작도 고생이 많겠어요.”
“더 아시는 건 없습니까? 이블랭 영애라면 뭇 백성들의 귀감이 될 만큼 훌륭한 귀족이라는 소문을 익히 들었는데…… 막무가내로 혼사를 거절하실 분이 아닌 것 같던데요.”
그 말에 자작 부인 한 명이 부채로 얼굴을 가리며 물었다.
“스플린 공자께서도 이블린 영애께 흥미가 있으신가요?”
“…저는 아직 연애를 할 생각이 없습니다.”
“흠, 들어보니 이블랭 영애는 포레스튼 졸업 후 영지에서 일만 한 모양이에요. 그 일을 하는 도중에 다른 남자라도 생긴 게 아닐까요?”
“설마요. 이블랭 가의 장남이 인맥 관리를 위해 한참 돌아다니는 동안에도 이블랭 영애는 밖에 나가는 일 없이 영지 안에서 문서 작업만 했다는 걸요?”
“그럼 설마…… 하인과?”
“그 이블랭 영애가요?”
그 이블랭 영애?
“혹시 그 이블랭 영애라는 게 어떤-.”
그때였다. 레이먼이 다음 질문을 하려던 찰나, 무도회장 중앙에 위치한 나선형 계단 위 새하얀 문이 양쪽으로 활짝 열렸다. 꽃과 새가 조각된 반원 장식물 아래에 설치된 문으로 나온 얼굴은 이 자리의 어느 장식물보다 더욱 화려하게 빛났다.
‘……저 사람이 리나 이블랭.’
확실히… 예뻤다.
차가운 인상이지만 냉정하기보단 이지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입고 있는 절제된 푸른 드레스는 그녀의 외양과 잘 어울렸고 계단을 타고 아래로 내려오자 그 외모가 더욱 빛났다.
화장기가 거의 없는 윤기 나는 피부, 오뚝한 콧대와 풍성한 속눈썹. 그 아래로 비치는 검은 그림자는 그녀의 흰 피부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바닥만 바라보던 눈동자가 앞을 바라보자 레이먼보다는 어두운, 하지만 그 매력만은 뚜렷한 푸른 눈동자가 있었다.
“제 딸 이블랭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여주신-.”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어느새 유타의 곁에서 떨어진 백작이 잔을 높이 들어 인사말을 전했다. 리나 이블랭은 아무 말 없이 자리에 서 있었다. 중간중간 양쪽을 번갈아 봤는데 한쪽은 유타가 있는 방향이었고, 다른 한쪽은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남자가 얼굴을 붉힌 채, 입을 헤벌리고 있는 걸 봐선.
‘저쪽이 프러포즈를 했다는 후작가의 장남인가?’
때마침 유타가 천천히 레이먼 쪽으로 다가와 속삭였다.
‘저 사람 같지?’
‘프러포즈한 인간?’
‘어.’
‘그러네. 어떡할 거야?’
‘네가 저 남자한테 가봐. 내가 리나 영애한테 가볼게.’
‘오닉스랑 테디는 어쩔 거야?’
‘필요할 때 부르면 돼.’
하긴. 레이먼도 그에 동의했다. 두 사람은 이런 방면보다는 다른 쪽에서 도움이 될 거다. 니콜과 렌스는 벽에 기대어 선 채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레이먼은 손을 흔드는 니콜에게 짧게 인사해준 뒤, 유타와 반대 방향으로 향했다.
***
리나 이블랭은 파티장 곳곳에서 축하 인사를 받았다. 동시에 프러포즈에 관한 소문도 들었다.
‘……x벌. 이게 다 뭐하는 짓이야.’
물론, 속으로는 이런 생각을 했지만 말이다. 그녀는 말을 거는 이들에게 대충대충 짧게 웃어주며, “호호, 아직 어려서 모르겠어요. 어머, 제가 결혼하기엔 늦은 나이인가요?”라는 말만 던지고선 대화를 빠져나오길 반복했다. 불행 중 다행인 건, 당장에라도 그를 데려와 자신 앞에 대령할 줄 알았던 아빠가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슬슬 그녀를 찾는 사람이 줄자 리나는 몰래 발코니로 빠져나갔다.
“겁나 지루하네. 이딴 걸-.”
“지루해?”
“……!”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놀란 그녀가 뒤로 돌자, 드레스가 꽃봉오리처럼 예쁘게 피어났다. 은발의 청년은 “드레스는 예쁜데? 불편하긴 하겠지만.”이라며 그녀에게 물이 든 잔을 내밀었다. 물이 든 잔은 – 딱히 너에게 무슨 짓을 하려고 온 건 아니야 – 라는 뜻을 내포한 것 같기도 했다.
은발의 청년이 누구인지 금세 알아본 리나 이블랭이 재빨리 고갤 숙였다.
“5왕자 전하를 뵙습니다.”
“5왕자 전하는 무슨. 여기, 우리 둘뿐이기도 하고 오늘 파티의 주인공이잖아. 너무 그렇게 격식 차리지 않아도 돼. 아, 옆에 서도 돼?”
“물론이죠, 전하.”
리나가 옆으로 슥 빠졌다. 그녀는 물잔을 쥐고 잠시 우물쭈물하다 입을 열었다.
“……그 혹시 다 들으셨어요?”
“어떤 거? 난 아무것도 못 들었어.”
“……거짓말이시죠?”
“하하하. 응. 미안. 그래도 욕은 안 했잖아?”
“…그건 속으로 했습니다.”
유타는 또다시 크게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왕성에 있는 제 모습과 좀 닮아 보이기도 해서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그런데 리나 영애의 목소리… 포레스튼에서 누구 닮았다고 들은 적 없어?”
“있기야 한데, 설마 그 교수님 아직도 계세요?”
커튼은 친 발코니에서 두 사람은 난간에 기대어 앉아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좋아하는 음악, 좋아하는 책, 좋아하는 마법사와 그의 이론 등등, 리나 이블랭은 오랜만에 결혼이나 정치에서 벗어난 대화 주제에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그녀가 드레스에 푹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냥 파티 같은 거 안 하고 밖으로 나가고 싶어요. 주인공이 하나도 즐겁지 않은데 무슨 필요가 있어요?”
“그래?”
리나 이블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잠시만-. 그때, 유타는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커튼 너머 파티장을 확인했다. 돌아온 그가 활짝 웃으며 리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웃는 모습… 예쁘시다-.’
리나 이블랭은 순간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왕자님을 보고 자신보다 예쁘다는 생각을 하다니.
얼굴이 벌게진 리나를 향해 장갑을 낀 흰 손의 주인이 말했다.
“나랑 밖으로 나가자, 레이디 이블랭.”
“네…?”
“밖으로 나가고 싶다며? 나가자고. 놀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