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109)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109화(109/275)
이블랭 백작가에서의 취재를 마친 밀리포레의 4인방은 새로 빌린 마차를 타고 다윗 가의 영지를 향해 달렸다. 블랭킷이 줬던 정보를 따라 도적이 나온다는 방향이었다.
니콜이 마차 밖으로 고갤 쑥 빼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에서 도적단이 나오는 거죠? 평화로워 보이는데요~.”
이제 슬슬 준비해야지, 라고 답한 레이먼이 마차 안 다른 이들을 보며 물었다.
“여기서 공격 마법 마스터한 사람? 이번에는 제대로 손들어라.”
“칫.”
레이먼의 말에 오닉스와 유타가 손을 들었다. 테디 베어릴은 손을 들진 않았지만 “치료라면 가능하다.”라고 슬며시 말했다. 렌스는 엘리트 기사 출신이었으므로 전투 능력이야 의심할 것도 없었고 니콜은 몸만 봐도 가능했다. 저 정도 근육이라면 도적 3명 정도는 한 손에 거뜬히 들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이 네 명 모두가 공격할 수 없고, 렌스마저 전투에서 리타이어된다 해도 레이먼은 믿을 구석이 있었다.
[ 날 왜 보느냐. ]‘대정령의 힘을 좀 발휘해보세요.’
[ ……뭐, 잠들게 할 수는 있다. ]‘몇 명까지요?’
[ 몇 명? 흠, 세보지 않았는데. 대충 100명은 넘었던 거 같은데. ]됐네요. 레이먼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마차 창문 너머로 사람 한 명이 빠르게 지나갔다. 정확히 말하면 사람이 움직인 건 아니고 레이먼이 탄 마차가 빠르게 이동하면서 생긴 잔상을 본 것이다.
‘저건…….’
레이먼이 더 말하기도 전에 마차가 급히 멈춰 섰다. 누군가 마차 앞을 가로막은 것이다. 아마 조금 전 인영과 동료인 듯했다.
뭐지… 설마 저것들이 그 도적인가?
그들은 조각난 천을 기워 만든 후줄근한 옷을 입고 손에는 무기가 될 법한 농기구를 들고 있었다. 추리가 맞다면 저들은… 아마 도적이었다. 산속에 저런 복장으로 마차를 멈춰 세울 놈들은 소문의 그놈들 말고는 없었으니까.
그런데…
왜 저렇게 멍청하게 서 있지? 게다가 왜 자기들이 벌벌 떠는 거야?
예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모습에 레이먼은 살짝 당황했으나, 이는 얼마 있지 않아 괜찮아졌다.
“도, 돈을 내놔라……!”
“우하하, 비, 비싸 보이는 옷이로구나.”
이거…… 소꿉놀이인가? 뭐 하는 짓이지?
‘저것들보단 내가 더 도적질을 잘할 거 같은데.’
레이먼은 당황했다. 풀숲에서 사람들이 점점 더 튀어나왔다.
다 합치면 10명 남짓.
하지만 어쩐지 저 사람들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다윗 가문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기는커녕, “왜 사람을 이 지경이 되도록…!”이라는 말을 들을 것 같았다. 다들 비슷한 감정을 느낀 모양이다. 낫 한 자루를 들고 벌벌 떨며 저런 대사를 내뱉고 있는 꼴이 평범한 마을 사람처럼 보였다.
레이먼이 그들을 가리켰다.
“…저놈들 진짜 도적 맞을까?”
“맞긴 할 거다. 초보 도적이라고 생각한다. 옷은… 수선이 필요하겠군.”
“그런데 이 사람들을 다윗 가문이 정리를 못 했다고? 그게 말이 돼?”
“이유가 있을 거 같은데.”
유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레이먼이 마차 밖으로 목을 쭉 내밀었다.
그들은 수전증이 있는 사람이 쥔 연필처럼 온몸을 후들대고 있었다. 어쩐지 실곤약 같은 꼴이 저런 몸뚱어리로 뭔가를 훔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아니면…
‘설마 마법사인가?’
마법사라면 하체 부실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도적단 중에 마법사가 있는 말은 듣지 못했는데.
‘블랭킷 선배가 그런 중요한 정보를 빠트렸을 리 없고.’
“저기요.”
창틀에 팔을 걸친 레이먼이 심드렁한 얼굴로 물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데 마법 쓸 수 있어요?”
“마, 마법? 아, 아아암. 쓸 수 있다. 그, 그렇지?”
“그럼, 그럼.”
[ 눈치 특성을 발동합니다. ] [ 마을 사람의 거짓이 간파됩니다. ] [ 마법을 우리가 어떻게 합니까?! ] [ 어, 어차피 이 시기에 마법사가 이곳을 통행할 리가 없어…! 거, 거짓말이라도 버텨야지. 그래야 계속 도적인 척 버틸 수 있다고. ]도적인 척 버텨?
레이먼의 팔찌에서 환한 빛이 나더니 검은 완드로 변했다. 포레스튼 학생회는 일반 학생들과는 달리 교외에서도 완드를 들고 다닐 수 있다는 게 매우 큰 혜택이었다. 그들은 완드를 보자마자 사색이 되어 뭔가를 숙덕대기 시작했는데, 레이먼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니콜을 불러 문밖으로 내보냈다.
“……모, 몬스터?”
“사, 사람의 근육이 저럴 수가 있나!!”
“설마 그 전설 속의 근육 난쟁이족!”
“하지만 난쟁이라고 하기에는 키가 너무 크잖아! 저기에 비하면 오히려 네가 난쟁이 아니야?!”
“도련님!! 저 반응을 보십쇼!! 제 근육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셨지요?”
그러네. 반응 좋다. 레이먼은 생긋 웃으며 니콜을 따라 내렸다. 붉은 머리에 푸른 눈. 고급스러운 어두운 케이프에 손에 든 완드. 그는 지나가던 개가 봐도 “깨갱, 귀족!”이라며 피할 수준이었고, 자칭 도적들의 눈이 미세하게 떨렸다.
“…참고로 안에는 마법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네 사람이 더 있습니다.”
움찔.
네 사람이나… 더?
‘어, 어떡할까요.’
‘……우, 우리가 해결할 수 없을 거 같은데.’
도적들의 눈이 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낌새를 눈치챈 레이먼이 곧장 입을 열었다.
“저흰 포레스튼의 학생으로 다윗 영지에 아주 아주 못된 도적단이 있다 하여 왕자님과 함께 이를 소탕하러 왔는데-.”
세치 혀 특성까지 쓸 필요도 없어 보였다. 레이먼이 마차에서 남은 놈들을 우르르 끌어 내렸다. 우악, 악- 소릴 내며 일행들이 줄지어 마차 밖으로 떨어졌다. 도적처럼 보이는 이들은 포레스튼이라는 말과 왕족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깜짝 놀라 무릎을 꿇고선 큰절을 올렸다.
“와, 왕자님을 뵙습니다!”
“근데 저기에서 누가 왕자님이야? 어디 보고 절해야 해?”
“너는 지금 그게 중요하냐? 일단 숙이고 생각해!”
“그보다 저희는! 그러니까… 이거 말을 해야 하나요, 촌장님?”
“왕자님께 거짓을 고할 수는 없지 않나. 저 의복을 보니 거짓이 아닐 게야.”
다 들린다….
심드렁한 얼굴로 팔짱을 낀 채 대답을 기다리는 레이먼을 향해 촌장이라 불린 남자가 고개를 납작 조아린 채로 말을 이었다.
“죄송합니다! 저흰 도적이 아닙니다!”
“영지에 세금으로 낼 돈이 없어 도적단 행세를 했을 뿐입니다! 세금을 내려고 그런 것이지 결코 나쁜 마음은 없었습니다!”
다윈일 마을은 다윗 가의 영지 중에서도 꽤 부유한 축에 속하는 마을이다. 그런데 도적단 행세라니. 근데 잠깐만…… 세금 때문에 마을 전체가 그랬다고?
“도적단은 없습니다! 제발 저희 얘기를 들어주십쇼, 왕자님!”
“와, 왕자님!”
아무래도 유타가 누군지 모르는 모양인데. 하긴 5왕자의 생김새가 평민들에게까지 알려진 것 같지는 않으니. 레이먼은 은근슬쩍 유타를 앞으로 밀어주었다. 눈치 빠른 마을 주민 몇몇은 곧바로 유타 쪽으로 머리 방향을 틀었고, 그들은 어쩔 수 없었다며 눈물까지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할까?”
유타가 그들을 달래며 물었다.
레이먼은 뚱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연민을 느끼냐고 물으면 그건 아니다.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하냐고 물으면 그것도 아니었다. 꽤 복잡했다. 레이먼이 복슬복슬한 붉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쏘아붙이듯 말했다.
“행인들의 돈을 도적질한 것도 사실, 그 돈으로 세금을 낸 것도 사실이지. 그리고 아무리 마을 사람이라고 해도 돈을 훔쳤으면 다 도적이야. 세금 낼 돈이 없으면 그 시간에 도적질을 할 게 아니라 일을 해야지. 일할 시간에 숲에 처박혀서 행인들 돈이나 뜯는 게 아니라. 들어나 보자. 얼마 빼앗았어요?”
“…어, 얼마 빼앗지는 못했습니다. 저희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도 빼앗기는 좀 그래서….”
……이 애매하게 착한 건 또 뭐야.
“그래서 영지세도 사실상 밀려있는 상태고… 하지만, 올해는 정말 수확할 게 없었어요!”
“그런 상황에 세금을 두 배나 올려버리면….”
“처음에는 어떻게든 마을 창고에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만 도저히 불가능한 숫자가 되고 나니-.”
그들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레이먼이 순간 말끝을 흐렸다.
“잠깐만, 두 배? 근데…… 생각해보니 조금 이상하긴 하네. 다윗 가문 영지에서 걷어야 할 세금이 그렇게 많던가? 영지 특수성 때문에 국가에 낼 세금도 면제받고 있는 걸로 아는데…….”
레이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통 영지세는 영주의 자율에 맡기지만 기본적으로 왕실이 정한 법령에 따른다. 게다가 수도에서 꽤 떨어진 이블랭이나 다윗 가문은 왕성에 납부할 세금 일부를 면제받는 특성상 걷을 돈이 그리 많지 않을 텐데.
보통의 이유였다면 지금까지 별말 없이 잘 살던 영지민들이 도적질까지 하면서 세금을 낼 필요가 없었다.
한데 이곳의 영지민들이 세금을 내기 위해 도적단 행세까지 해야 한다고?
“이렇게 생각하면 확실히 뭔가 찝찝하긴 한데……”
레이먼이 고민하는 사이, 유타가 먼저 입을 뗐다.
“난 이거 파보는 게 더 좋은 기삿거리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때, 레이먼?”
“내 생각도 그래.”
“됐네, 그럼 도적… 아니, 우리 마을 분들. 그럼 마을로 가서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봐도 괜찮을까요?”
“넵넵! 물론입니다!! 모시겠습니다!!”
마차 앞을 막아서던 이들은 이제 마차를 마을로 안내하는 선량한 마을 주민이 되었다. 그렇게 레이먼 일행은 마차를 타고 편히 마을 안으로 향했다.
다윗 가 영지 중 가장 안쪽에 위치한 마을 ‘다윈일’은 초록 지붕과 초록 울타리로 이루어진 싱그러운 마을이었다. 그들은 레이먼 일행을 촌장 집으로 안내했고 다윈일이 어떤 식으로 붕괴 중인지 매우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자지 마라.”
“흐어-!”
불행히 니콜은 이해하지 못해 그만 졸고 말았고, 렌스가 결국 그를 깨워주었다. 니콜은 잠에 들지 않기 위해 촌장이 떠드는 1시간 동안 열심히 스쿼트를 진행했다.
***
“돈이 문제야.”
마을 주민들이 마련해준 작은 여관방에 둘러앉은 가운데, 레이먼이 말했다.
“영지세를 한 번에 2배나 올리는 게 말이 안 되잖아.”
세상만사 어딜 가나 늘 일을 어렵게 만드는 건 돈이다.
그렇다. 행복은 돈으로 가질 수 없다는 말은 구라였다. 행복하지 않다면 돈이 부족하지 않은지 생각해보라는 말은 왜 있겠는가? 레이먼은 죽어라 일해서 번 돈을 쓸 때가 가장 행복했다. 사람답게 살 수 있는 20평짜리 자가를 서울에 마련했을 때는 울 뻔했다. 대출 없이! 대출 없이 말이다! 그런데… 그런데!
‘그 집에 짐을 옮기지도 못했어. 큰맘 먹고 인테리어 시공까지 맡겼던 건데.’
레이먼이 전생의 슬픔에 목이 메는 사이, 테디 베어릴이 질문했다.
“하지만 다윗 영지에서 세금을 올린 이유는 뭐지? 아무리 영주 마음대로라고 해도 근거 정도는 있어야 하잖아?”
“국경 가까이 있는 지역은 전쟁이 났을 때 세금을 더 내야 해. 바텔바흐 공국과의 전쟁 때문에 일시적으로 세금이 올랐었겠지. 그걸 여태 내리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오히려 더 올린 거고.”
“다시 내리면 되지 않나.”
레이먼은 테디 베어릴이 종종 의견을 낼 때마다 그가 본투비 귀족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철저히 기득권층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속으로 한 번 혀를 찬 레이먼이 답했다.
“원래 돈을 받는 인간들은 한 번 올린 가격은 죽어도 내리려고 하지 않으니까.”
유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왕실에 찌르고 감사가 들어가면 내릴 수 있겠지만, 여기도 약초 재배 외엔 수입원이 없다는 게 문제야. 밀리포레에서 돕는다 해도 한계가 있어. 도울 만한 근거도 없고. 그들이 왕실 눈치를 보다 다시 올리면 그만이야.”
레이먼도 이에 동의했다. 아마 다윗 영지도 이러한 사실을 어느 정도 알고는 있을 거다. 지금이야 마을 사람들의 연극에 속아주고 있지만…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언젠가는 강제성을 띠게 되겠지. 그렇다고 영지민들이 도적 활동까지 하면서 세금 내는 것을 묵과한다면 그들은 폭리를 취하는 걸 멈추지 않을 텐데.
레이먼은 고민했다.
탁탁탁.
습관처럼 테이블을 탁탁 치는 그에게 유타가 의견을 제시했다.
“이렇게 하는 건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