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113)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113화(113/275)
[ 가호의 위험성은 유명해. 엘프뿐만 아니라 난쟁이족이나 우리 정령들도 모두 알고 있을 정도니 말이야. 붉은 치야, 잘 생각해봐라. 그래서… 가호를 가진 게 싫진 않지 않으냐? ]“……그거야, 뭐.”
레이먼은 그의 질문에 함부로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만약 싫지 않습니다! 라고 답한다면 아모르가 얼마나 으쓱대며 제 자랑을 할지는 불 보듯 뻔했고, 그렇다고 싫은데요? 라고 하기엔 작은 서클을 키우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보다야 가호가 나았으니 말이다. 비유하자면 타고 있던 차를 엄청난 할부를 받고 신차로 바꾼 기분이라고 할까.
‘이자는 무서운데 도저히 바꾸질 못하겠단 말이야.’
[ 거 봐라. 너도 사실 좋지 않으냐. 게다가 가호가 그리 나쁜 것도 아냐. 네 몸에도 분명 제어 장치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을 게다. ]레이먼이 물었다.
“제어 장치요?”
[ 그래, 엘프들이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그 감각. ]완두콩에서 작은 인간으로 변한 아모르가 책상 위에 두 발을 가볍게 톡 놓았다. 작고 귀여운 인형이 된 아모르가 그에게 뚜벅뚜벅 걸어와 손가락으로 코를 톡 쳤다. 그가 말했다.
[ 계약자를 그렇게 쉽게 죽게 두진 않는다. 걱정 마라. 괜히 대정령이겠느냐. ]“아모르 님….”
[ 오냐. ]“그렇게 말씀하신 것 치고는 한 게 없습니다.”
[ 크흠. ]***
정령학 수업이 끝나고 레이먼은 학습관을 빠져나왔다. 2학년 2학기가 되고 난 이후부터 슬쩍슬쩍 바빠지기 시작한 스케줄은 어느새 턱 끝까지 차올라 레이먼을 괴롭히고 있었다.
레이먼은 2학년 기프트 클래스장에 블랭킷 선배가 5학년이 된 이후부터는 밀리포레의 클럽장까지 겸임하고 있다! 게다가 학생회까지.
제기랄!
레이먼은 몸이 3개라도 부족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건 유타의 명성이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고 있다는 것과 종종 에글린턴에서 오는 편지들, 그리고 착실히 늘어나고 있는 전용 특성과 계좌 잔고 정도였다.
에글린턴의 편지가 레이먼의 행복에 끼어있다는 건 꽤 놀라운 일일 텐데, 사실 레이먼의 입장에서 보면 그릴 놀랄 일도 아니었다. 리트리버는 말이 많은 금발 꼬맹이였고 그런 놈들은 자신의 주변에 대해 떠들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타일이나 티키가 그 입을 틀어막지 않는다면 리트리버는 아마 자기 엉덩이 점 개수가 몇 개인지도 말해줄 게 틀림없다.
레이먼은 서랍장에서 읽지 않은 리트리버의 편지를 보았다.
내용은 대강 이랬다.
[ 오늘은 학장님의 수업을 받았어. 마탑주님은 정말 대단하신 거 같아.최근에는 재밌는 연구를 하시더라. 뭐였지?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불러오는 마법?
사령술이었나? 아주 옛날에 맥이 끊긴 마법이라고 하셨어.
그리고 네가 물어봤던 소식은 아직이야. 우리도 최근에는 매너스 님과 자주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있거든. 아주 많이 바쁘신 거 같아. 바텔바흐와의 전쟁이 끝났는데도 말이야. 어째서일까? 내 생각인데 바텔바흐 쪽에 뭔가 있는 거 같아. ]
이는 레이먼의 생각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았다. 전부터 바텔바흐에서 켕기는 일이 좀 많았기 때문이다. 챈들러 선배는 영법사들이 포레스튼에 온 이유가 아티팩트를 그쪽으로 훔쳐 가려 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으니까….
‘바텔바흐 쪽에 뭔가 변화가 있는 건가?’
생각하면 할수록 레이먼은 매너스를 다시 만나 한 번 더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떤 주제로, 어떤 대화를 하게 될진 모르겠지만.
그날 이후부터 레이먼은 목이 빠져라 방학이 오기를 고대했다.
여름방학이 되면 3학년. 3학년이 되면 왕실 프로그램에 더욱 활발히 참여할 수 있게 된다. 레이먼은 이번에는 직접 프로그램에 이름을 넣을 요량이었다.
챈들러 선배는 “역시 너도 명예욕을-.”이라며 착각 어린 시선을 보냈고 크리스는 기뻐했다. 하지만 크리스는 아드리안을 좀 더 탐내는 것 같긴 했다. 마검사로서의 재능이 엿보인다는데… 그냥 아드리안이 여기저기 재능이 넘치는 것뿐이다.
학생회는 시험 기간이 다가올수록 바빠졌다. 라 디밀레 준비부터 시작해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이쯤 되니 다른 임원들이 사실 엄청난 능력자였구나-! 라는 걸 깨닫게 됐다.
그나마 다행인 건 유타가 서류 작업에 미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5학년은 라 디밀레에 참석하지 않아.”
“맞아.”
“나는 이번에도 정령 관련으로 부스를 낼 거야. 아르파드 너는?”
파릭사는 어느새 아르파드와도 친해진 모양이었다. 연극구 사업 때 콜로만 아르파드가 많은 도움은 줬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 아르파드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고 생각한 그녀는 매우 친절히 콜로만의 답을 기다렸다. 조금도 답을 재촉하는 일 없이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나는…타로점을……봐주려고.”
“타로점? 재밌겠다! 예언이야?”
“……응. 저주는……싫어서.”
콜로만 선배는….
‘대체 평판이 왜 그렇게 안 좋았던 거야?’
***
깃펜의 사각거리는 소리가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유타의 밤은 길었고, 오늘도 새벽까지 깨어있을 요량으로 이블랭에게 편지를 보내고 있었다. 다행히 빈민가 거리는 연극구 사업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개선되고 있는 모양이었고, 연극구 사업을 위해 만들어진 극단 역시 승승장구하는 모양새였다. 이블랭이 보낸 편지 사이에는 ‘감사합니다!’라고 삐뚤빼뚤하게 적힌 쪽지도 함께였다. 골목길에서 본 아이의 이름이 파밀이라는 걸 유타는 이제야 알게 되었다.
“하아….”
편지를 보낸 뒤에는 학생회 업무를 봐야 하고, 그 뒤에는 시험공부를 해야 했다.
이번에는 레이먼을 이길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야.
유타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렌스, 이제 그만 자러 가지?”
원래라면 모든 시종인이 방으로 돌아가야 했을 시간이었으나, 그는 여전히 문 바로 옆에서 유타를 지키고 서 있었다.
“먼저 주무시고 난 뒤에 가보겠습니다.”
“네가 그렇게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는데 말이야-.”
끼익, 끼익.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던 유타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종종 생각한다. 왕이 되고자 하는 건 너무 큰 욕심이 아닐까- 하고.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다.
태어난 이상 정상을 노려야 한다고. 네 성별을 말하지 않는 건 밝혀서 득이 될 게 없기 때문이라고. 버려진 왕자라는 소문을 낸 이유는 그렇게 해야 포레스튼에 입학해 아카데미의 보호를 받을 때까지 편안하게 살 수 있을 테니까.
어머니의 모든 행동엔 이유가 있었고, 유타는 이해해야만 했다. 유리아가 아닌 유타라는 이름으로 불릴 때도 말이다. 그래서였을까. 어느 순간부터 유타는 자신이 왕을 탐내는 건 당연하다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의 인생이 통째로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유타 스테디움 스턴은 어쩌면 생각보다 능동적인 사람은 아닐지도 몰랐다. 그녀가 왕을 노리는 이유는 ‘어머니가 원했고, 자신도 원하게 되었으니까.’라는 것 하나뿐이었다. 명확한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오늘 그 이유가 생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손에 들린 쪽지를 다시 한번 눈에 담았는데, 삐뚤빼뚤한 글씨가 어쩐지 살아 움직이는 기분이었다.
‘감사합니다, 왕자님! 왕자님이 최고예요!’
“귀여워.”
유타가 읊조렸다.
“꼬맹이들은 참 귀여운 것 같아, 그렇지. 렌스?”
“예.”
“거짓말. 그렇게 생각 안 하면서. 이제 정말 자러 가. 기사의 건강을 신경 쓰는 것도 주인이 해야 할 일이야.”
“하지만-.”
“명령이야. 이제 그만 자러 가. 나도 옷 갈아입고 곧 잘 테니까.”
“명 받들겠습니다.”
명령이라는 말 한마디에 렌스는 단박에 주변을 정리한 뒤, 방을 나섰다. 철커덕거리는 검집 소리가 사라지고 한참 뒤에도 유타의 방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불이 꺼진 시각은 새벽 4시가 다 되었을 무렵이었다.
***
“구름 다이빙 클럽에 어서 오세요!”
“쟤네 클럽은 어째 매해 발전이 없냐?”
“먹으면 몸이 둥둥 뜨는 솜사탕입니다! 구름 다이빙 클럽에 가기 전에 들러서 먹고 가세요. 죽음 방지 가능!”
“틈새 영업 금지!!”
커다란 폭죽 소리와 함께 여름방학 전 마지막 축제인 라 디밀레가 시작됐다. 올해 레이먼은 부스를 내지 않았다. 딱히 내고 싶은 것도 없었고, 유타가 따로 부스를 내고 싶다고 말했기에 밀리포레에는 유타의 단독 기사만 실릴 예정이었다.
유타가 이번 라 디밀레에 들고나온 것은 문자를 익히기 위한 마법 그림책이었다. 문맹률이 높은 외딴 시골 마을을 위해 개발했다고 하는데, 그림을 보고 목소리를 내면 그 단어에 맞는 문자가 허공에 그려지는 식이었다. 색깔도 지정이 가능했고, 크기부터 필체까지 선택할 수 있는 걸로 보아 꽤나 복잡해 보였다.
“이블랭 영지에도 보낼 거야?”
레이먼의 말에 맞춰 허공에 노란색 문장이 그려졌다.
‘음성 인식이 어지간한 ai 스피커보다 정확하잖아?’
“응, 그러려고 만들었는데 뭐.”
“파는 건?”
“팔진 않아. 무료로 배포할 거야. 그렇게 쓰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아티팩트잖아.”
고가의 아티팩트를 그렇게 사용한다고? 레이먼의 사고로는 유타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는 그러려니 하고 넘기기로 했다. 뭐, 왕 후보라고 내가 굳이 이해를 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대충 부스를 훑은 레이먼은 포레스튼의 정문 쪽으로 걸어갔다. 마차 주차장에 학생들이 바글거렸다.
사실 레이먼이 부스를 내지 않은 데에는 이 이유도 컸다.
“안녕하세요. 이번 축제 인솔자를 맡은 밀리포레 2학년 레이먼입니다. 에글린턴 학생분들 맞으신가요.”
“레이먼-!”
“이름부터 확인하겠습니다. 한 줄로 제 앞에 서주세요.”
바로 에글린턴의 1, 2학년들의 축제 견학 인솔자가 레이먼이었기 때문이다.
“레이먼-!!!”
그만 불러라, 이 새끼야. 레이먼은 속으로 리트리의 이름을 몇 번이나 외치며 닥치라고 중얼댔지만, 리트리는 멈추지 않았다. 주변에 타일이나 티키가 있었는데도 그들도 라 디밀레에 한눈이 팔려 그를 말리지 않았다. 결국 금색 털 강아지는 레이먼의 바로 앞에 온 뒤에야 이름을 외치던 그 입을 다물었다. 망할 리트리.
“리트리버.”
“응!”
“그래. 체크했어. 다음…… 나와, 리트리. 네가 비켜야 다른 애들이 올 거 아니야.”
“아, 미안해. 오랜만이라 반가워서 그만.”
“나도 반갑다. 나중에 얘기해.”
그 말이 리트리버에게 이상하게 작용한 모양이다. 헉- 소릴 낸 리트리버가 알았다며 큰 소리로 대답하고선 옆에 서서 내내 레이먼을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똘망한 시선이, 차라리 동네 단골 식당의 주방장이 자신을 알아보고 서비스 메뉴를 주는 편이 덜 부담스럽다고 느낄 정도였다. 명단을 모두 확인한 레이먼은 담담히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라 디밀레는 정문에서 살짝 떨어진 곳에서부터 시작되었고 시작점과 끝점에 가장 인기 있을 만한 부스가 설치되어 있었다. 작년에는 크리스를 상대하는 마검사 결투가 라 디밀레의 구경거리였지만 이번 해에는 아쉽게도 마격 클럽의 격투 경기만 볼 수 있었다.
“여기서부터 라 디밀레가 시작됩니다. 부스 안내 지도는 옆쪽에서 확인하면 되고 지도는 이쪽에서 가져가시면 됩니다. 또 궁금한 점은… 없으신가 보네요. 그럼 지금부터 딱 2시간 뒤에 다시 이 장소에 모여 점심을 드시러 가겠습니다.”
“우리 저기 가보자!”
“대박! 저거 봐! 마법네컷이야!”
“찍으러 가자!”
에글린턴의 학생들은 벌레 흩어지듯 금방 사라졌다. 불행히도 금발 바퀴벌레는 레이먼의 눈앞에 남아 있었다. 레이먼은 명단을 탁 덮으며 그를 환영했다.
“리트리.”
“응, 레이먼!”
“넌 왜 따라가지 않지?”
“그거야. 네가 대화하자고 했으니까. 약속을 지켜야지.”
“그렇군.”
이놈은 빈말을 하면 안 되는 타입이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