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114)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114화(114/275)
“에글린턴은 요즘 어때? 이제 거의 1년 다 되어가잖아.”
“애들도 그렇고 다들 잘 지내. 수도 외곽에 지어지긴 했지만, 집에 오가는 것도 편하고. 달에 한 번씩 학습비라는 이름으로 돈도 주셔서 학비 문제도 거의 없어.”
에글린턴은 매너스가 꿈꾸던 대로 잘 돌아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끊임없이 입을 놀려대는 리트리는 누가 말리지 않는다면 그대로 입술에 날개를 단 채 하늘로 날아오를 모양새였다. 레이먼은 당장에 그 입을 틀어막고 싶었지만 참았다. 환하게 웃는 얼굴로 신이 나 무언가를 잔뜩 말할 수 있는 나이대가 지금뿐인 걸 레이먼은 알고 있었다. 물론, 자신은 그렇게 살지 못했지만.
“그러고 보니! 매너스 전하께서 너를 무척이나 보고 싶어 하셔.”
“매너스 전하가?”
이미 예정된 일이긴 했지만, 레이먼은 입을 동그랗게 말아 세로로 높게 벌리고선 과장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최대한 놀란 척, 놀란 척.
“응. 이유는 모르겠어. 원래는 라 디밀레도 오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았는데 업무가 너무 많아서 참석하기 어려우신 모양이야. 바텔바흐 일 때문에 그런가 봐.”
“바텔바흐? 바텔바흐와의 전쟁은 거의 마무리 단계에 들어간 거 아니었어?”
바텔바흐 공국과의 전쟁은 애초에 승패를 가리기 위한 패가 아니었다. 이미 2왕자가 그곳으로 넘어가 결혼까지 한 시점에서 스턴 왕국이 진심으로 전쟁에 임했을 리도 없었고.
실제로 2왕자가 그 일을 일단락시키기도 했다고 들었는데. 그게 아니었나? 그게 아니라고 한다면 뭐지?
역사적으로 얽힌 문제도 거의 없었고, 식자재나 마정석 수출입을 제외하고선 왕래가 잦은 편도 아니다.
“응, 전쟁은 마무리 단계인데. 그게 아니라 동맹을 맺고 싶으셔서 그런가 봐. 그래서 각자 원하는 게 뭔지 협의 중이라고 하셨어. 오해할까 말해주는데 이거 내가 막 몰래 빼 오고 그런 정보 아니다. 전에 매너스 전하께서 아주 잠시 에글린턴에 들르셨을 때, 말해주신 거야.”
“그게 언젠데?”
“음… 한 2주 전이었나? 얼마 안 됐어. 내가 편지에도 써두지 않았어? 정확한 시기는 적어두지 않았구나. 정말 미안.”
“아니, 미안할 건 없는데-. 그거 말고는? 빈민가 일이라든가.”
레이먼의 물음에 잠시 고민한 리트리가 감탄한 듯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빈민가? 이블랭 영지 소식 말하는 거야? 그건 정말 대단하더라, 레이먼. 유타가 개발한 연극구 덕분에 영지 개선 사업이 많이 진행됐다고 들었어. 그 사업에 투자한 게 바로 너랑 밀리포레의 다른 아이들이라며? 에글린턴에도 누가 연극구를 사왔는데 정말 재밌더라! 음…다만…….”
한쪽 볼을 어색하게 긁은 리트리가 소곤거렸다.
‘연극구 때문에 다윗 가문이 그렇게 됐다는 게 사실이야?’
“응, 맞아. 그리고 그렇게 작게 얘기하지 않아도 돼. 다들 알고 있거든.”
다윗 가문은 왕실이 정한 규율을 무시하고 멋대로 세금을 올린 것을 감사관에게 걸려 막대한 벌금을 국가에 지급해야 했고, 그 벌금을 내는 바람에 갖고 있던 성채 중 2채를 팔아야 할 정도로 재정에 문제가 생겼다고 한다. 다비 다윗은 그 일이 있은 뒤로 며칠 내내 고개를 푹 숙이고 다녔다.
‘다비 다윗한테는 미안하지만, 그냥 넘어갈 일은 아니었어.’
밀리포레 1면에 싣지 않은 것만 해도 감사해야지.
“연극구에 출연한 애들은 누구야?”
“그 근처 영지 사람들.”
“우리 마을에도 극단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들도 연극구에 나올 수 있을까?”
“연극구 사업은 지금 나나 유타가 관리하고 있는 게 아니라서. 이블랭 영애에게 따로 물어볼게.”
으레 인사치레로 하는 말에 리트리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는 레이먼 바로 앞으로 튀어나와 그의 손을 덥석 쥐었다.
“고마워, 레이먼!! 그 애가 연극구를 보고 자기도 꼭 나오고 싶다고 말했었는데! 정말 고마워!”
“아니, 뭐. 결정된 것도 아니니까 그렇게 좋아하진 마.”
“그런가? 내가 너무 설레발이었나?”
리트리는 잔뜩 상기된 얼굴로 축제를 돌아다녔다. 에글린턴에는 아직 라 디밀레 같은 축제가 없다고 했다. 클럽도 아직 활성화되지 않아 수업을 들으면 기숙사로 돌아가는 날이 대부분이었고 원하는 학생들만 마법 연구를 위해 주에 3일 정도 학교에 남는다고 했다. 마침 최근에 연구한 건 아티팩트 관련이었기에 이번 라 디밀레가 더욱 흥미롭다며 리트리가 말했다.
“역시 축제가 최고야!”
“…음.”
“왜 그래?”
“아니. 이 축제의 목적과 네가 즐기는 축제는 좀 다른 거 같다는 생각을 했어.”
리트리의 양손에는 아티팩트 대신 닭꼬치와 과일 설탕 조림이 들려 있었다. 라 디밀레는 아티팩트 중심으로 부스가 세워졌기 때문에 먹을 걸 파는 곳을 찾기도 쉽지 않은데 리트리는 귀신같이 그런 곳만 찾아다닌 모양이었다.
“레이먼, 축제에 목적이 어딨어. 축제는 즐기기 위해 있는 거잖아. 레이먼 너는 이 축제가 즐겁지 않니?”
“…뭐, 즐겁지?”
“진심이야?”
“아마?”
“이봐, 레이먼. 넌 곧 3학년이 된다고. 놀 수 있을 때 놀아둬야 해. 졸업하면 어떡할 거야? 공작가로 돌아가는 건가? 아니면 왕실 마법사?”
“왕실 마법사가 되겠지.”
그래야 왕 후보를 밀어줄 수 있을 테니까.
“좋다! 나도 그럼 왕실 마법사를 해야겠어. 타일이나 티키는 왕실 마법사가 아니라 감사관이나 마탑 소속 연구원이 될 거래. 그래서 내가 한 소리 해줬지. 그 직업을 가지려면 연구 성과를 두 개 정도는 올려놔야 가질 수 있을 거라고 말이야. 그 두 명은 공부하는 것처럼 보여도 나보다 성적이 안 좋거든.”
“네가 꼴찌일 줄 알았는데.”
“그렇지, 내가 꼴찌… 뭐?! 내가 그렇게 보여?”
리트리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아니, 그게 울 일은 아니지 않아?
아니야, 아니야. 그냥 해본 소리야- 라며 성숙하지 못한 동년배 소년의 마음을 달래주는 사이 에글린턴의 견학 시간이 슬슬 끝나갔다. 레이먼은 훌쩍이는 리트리를 데리고 처음 에글린턴의 학생들을 안내해주었던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다행히 그들은 말을 잘 들었고, 레이먼은 별 어려움 없이 그들을 데리고 식당으로 향했다. 곳곳에 묻어나는 가장 오래된 마법 학교의 모습에 중간중간 탄성이 터져 나왔지만, 레이먼은 별다른 뿌듯함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레이먼, 너는 방학 때 뭐 할 거야?”
“특별한 계획은 없어. 왕실 프로그램 있으면 참여하려고.”
“그럼 나랑 같은 거 신청하면 되겠다.”
“뭔데?”
“이거.”
어린 돼지고기 스테이크 바로 옆으로 내민 종이에는 <어서 오세요, 실전 마법 전술>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정말 의심스러운 문구다. 이게 대체 뭐야?”
“매너스 전하께서 만든 프로그램이야. 그래서 첫 수업이랑 중간 점검, 그리고 마지막 수업 때 매너스 전하께서 직접 오셔서 전술을 알려주신대.”
“…이런 걸 갑자기 왜 하는 건데?”
바텔바흐도 그렇고 왕국이 전반적으로 뒤숭숭한가?
리트리는 주위를 경계하듯 몇 번이나 둘러본 후에 레이먼의 맞은편 자리에서 바로 옆자리로 좌석을 옮겼다. 순식간에 가까워진 거리가 불편했지만, 레이먼은 내색하지 않고 견뎠다.
‘쿠모르 제국에 1왕자 전하께서 볼모로 계시잖아. 내 생각인데… 1왕자가 곧 돌아오실 거 같아. 그래서 매너스 전하가 그렇게 바쁘신 거 아닐까?’
리트리는 상상력이 뛰어난 17살이었고, 레이먼은 상상력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20대 초중반의 사내였다. 그래서 레이먼은 리트리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았기 때문에 대화가 더 이어지기 전에, “생각해볼게.”라는 식으로 대화를 갈무리했다.
***
“오늘 즐거웠어, 레이먼!”
“어, 어.”
라 디밀레의 첫날이 끝나고 레이먼은 생활관 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다시는 인솔자 역할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욱신거리는 몸을 작은 욕탕에 담갔다 뺀 뒤, 책상으로 와 앉았다.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감싼 뒤, 그는 서랍장에 넣어뒀던 일기장을 꺼내 펼쳤다.
전 레이먼이 써뒀던 일기장은 통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신경 쓰일 때마다 찾아 읽어야 하는 게 귀찮긴 했다.
이 귀찮은 일을 오늘 하겠다고 결심한 까닭은 ‘바텔바흐’와 ‘1왕자’, 그리고 ‘매너스’ 때문이었다.
분명 뭔가 있어!
일기장의 종이가 시원하게 넘어갔다. 촤라락- 넘어가던 종이들이 한쪽에서 멈췄다. 레이먼의 일기장의 내용은 이제 거의 반을 넘어가 있었다.
스턴력 462년, 462년… 여름….
읽을 수 있는 페이지가, 여긴가?
바텔바흐 공국과의 전쟁은 완전히 막을 내렸다고 한다! 2왕자 전하의 힘이 매우 컸다고 주변에서 말하는데… 대체 어떤 도움을 준 걸까?
동생이 왕실 프로그램에 가게 되었다. 엘리트들만 선정된다고 하는데! 나는 왕실에 갈 일은 앞으로도 없겠지만 동생만큼은 잘되었으면 좋겠다. 아버지는 이 소식을 알고 계실까? 어머니한테는 따로 편지를 해야겠다!
읽을 수 있는 페이지를 모두 읽고 난 뒤 레이먼이 일기장을 덮었다.
이럴 수가.
‘이렇게까지 아무 도움이 안 될 줄이야.’
하다못해 아이들이 겨울방학 숙제로 내는 그림일기도 이것보단 잘 썼을 거다. 이 새낀 원래 대가리가 나빴던 건가? 그래도 열심히 공부해서 포레스튼에 입학까지 성공한 걸 보면 그렇게까지 멍청한 건 아닌 거 같은데. 그래도 그렇지 일기의 반이 동생 얘기랑 바텔바흐는 뭐가 맛있고 뭐가 맛있고, 뭐가 맛이 없고- 인 게 말이 되는 건가?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건….’
레이먼은 리트리가 줬던 종이를 펼쳤다. 종이 뒤로 흰빛이 스며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실전 마법 전술>
‘누가 봐도 수상한 이름 아냐? 사이비처럼 보이는데.’
레이먼은 <어서 오세요, 실전 마법 전술>의 시간표를 스윽 훑었다. 제목 아래 있는 프로그램은 총 일주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그중 1일 차와 3일 차, 그리고 마지막 7일 차에 매너스가 특별 참가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대신, 이 수업을 총괄로 누가 가르치는지 어떤 주제로 가르치는지, 선생이 몇 명인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수업이라고 대놓고 아래 박혀있는 걸로 봐선 선생이 있을 게 틀림없는데.
‘포레스튼에서 오가는 건가? 에글린턴의 교수 대신? 아니면… 저번처럼 상회에서 올 수도 있겠어. 블랭킷 선배한테 여쭤봐야 하나?’
어쨌든 레이먼은 리트리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차피 왕실 프로그램에 참여할 거였다면 목표물이 가까이 있는 쪽이 좋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 레이먼이 그토록 기다리던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형님!! 방학 때 뭐 하세요?!”
아무래도 레이먼만 기다리던 건 아닌 듯싶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