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116)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116화(116/275)
“서머셋과는 무슨 이야기를 나눈 거야?”
별궁 방 안. 레이먼이 머무는 방에 모인 세 사람은 레이먼이 4왕자와 대체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궁금해했다. 정확히는, 콜로만 아르파드를 제외한 두 사람이. 그는 어디까지나 분위기에 휩쓸려 레이먼의 방으로 따라왔고 기왕이면 이 무거운 분위기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왕가의 이야기에 끼어드는 건 그때 그날 이후로 별로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나가고 싶다고 하기엔.’
너무 쫄려.
끄응. 결국 콜로만은 구석에 찌그러져 있기로 결심했다.
레이먼은 유타의 질문을 무시하는 것처럼 의자에 앉아 있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1왕자가 돌아온대. 그거 얘기한 거야.”
“형님이?”
“몰랐어?”
“몰랐지.”
“그동안 별말 없었던 걸 보니 왕실 안에서만 퍼진 소문 같아. 퍼지기 전에 서머셋이 미리 귀띔해준 거고.”
“그걸 왜 너한테 귀띔해?”
“그걸 몰라서 물어?”
레이먼이 눈을 멀뚱히 뜬 채, 유타를 바라보았다.
“내가 너무 유능해서잖아.”
“와….”
“난 자기객관화가 잘된 편이야.”
“그러네.”
“형님은 그럴 수 있는 인재죠!”
아드리안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얘는 똑똑하긴 한데 눈치는 없나? 해맑게 눈을 반짝이는 아드리안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레이먼이 말했다.
“나한테 이런 정보를 알려주면 어떤 방향으로든 행동을 개시할 거라고 생각한 거겠지. 지금은 딱히 나설 것도 없긴 한데. 그게 다야. 서머셋도 바쁜 것 같았거든.”
레이먼은 서머셋이 자신에게 한, 같은 편이 되자 등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굳이 자세히 언급하지 않았다.
유타가 물었다.
“1왕자가 언제 올지는 얘기해주지 않았어?”
“어. 나도 알면 좋겠다.”
그런 걸 알면 대비라도 할 수 있지. 물론 ‘그렇다고 네가 뭘 대비할 수 있는데?’라고 물으면 할 말은 없었다. 사실상 1왕자가 오는 순간, 레이먼은 줄을 갈아타야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1왕자가 오면 게임 끝이지.’
설령 자기가 왕좌를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가 ‘1왕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제국에 볼모로 있는 동안 어느 정도로 정신 개조가 되었을진 모르겠지만, 제국이 그가 왕위에 오르길 원한다면…. 글쎄, 그걸 거부할 힘이 스턴에 있을까?
쿠모르는 사막과 숲을 경계로 터전을 잡고 있는 거대한 제국이었다. 스턴 왕국을 5개는 합친 수준의 크기와 그 이상의 경제력을 가진 곳으로 그만큼 뛰어난 병력을 자랑했다. 쿠모르 제국은 마법 기사단과 마법사만 해도 다른 왕국에 비해 서너 배는 많은 편이었는데, 이는 엄청난 차이였다. 그나마 스턴이 비빌 수 있는 게 있다면 대마법사가 쿠모르보다 많다는 것 정도?
쿠모르 제국엔 대마법사가 하나도 없었으니까. 8서클 마법사 한 명만 있어도 어지간한 마법 기사단 하나를 순식간에 쓸어버릴 정도니 그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말하지 않아도 모두 느끼고 있었다.
일개 왕국에 불과한 스턴 왕국이 과거 전쟁에서 제국에게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볼모로 잡혀간 1왕자 역시 대외적으로는 유학이라는 명분을 유지할 수 있던 게 바로 그 덕분이었다.
“큰형님이 돌아오는구나. 한번 알아는 봐야겠다. 쉬고 있어, 레이먼. 난 궁에 잠시 다녀올게.”
먼저 일어난 유타의 뒤를 콜로만이 다급하게 따라나섰다. 그는 그냥 이 방을 얼른 탈출하고 싶었고, 과정이야 어쨌건 목표를 실제로 이루어냈다. 이제 레이먼을 제외하고 방에 남은 것은 한 사람. 레이먼의 눈이 자연스레 남은 이에게 돌아갔다.
“아드리안, 너는?”
“네?”
“너는 안 가냐고.”
하지만 레이먼 쪽으로 몸을 돌린 채 그와 눈을 맞춘 아드리안만은 떠나지 않고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방학이라서요. 형님이랑 뭔가를 더 할 수 없을까, 해서.”
“특별히 하고 싶은 거라고 있나 보지? 뭔데?”
아드리안은 귀를 쫑긋 세우더니 잠시만요! 라는 말과 함께 옆방에 있는 제 짐을 가져오겠다며 떠났다. 그렇게 해서 들고 온 건 다름 아닌 책 두 권이었는데 표지를 대충 보니 이번에 새로 나온 마법 관련 서적인 듯했다.
…모범생이라곤 해도 이렇게까지 모범적일 줄은 몰랐는데.
레이먼의 감상이야 어쨌든, 아드리안은 기뻐 죽겠다는 듯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니콜이 같이 오지 못해서 아쉽다고 이 책들을 챙겨줬어요!”
“같이 읽자고?”
“……아, 혹시 귀찮으시면-.”
“아냐. 줘. 같이 읽자.”
뭐가 그리도 좋은지.
제 형과 함께하는 방학이라는 것이 아드리안에게는 레이먼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대단한 가치를 가진 듯했다.
뭐…… 복잡한 마음은 좀 정리할 필요가 있겠지.
레이먼은 그날 밤, 그렇게 동생과의 시간을 보냈다.
***
사락, 사락.
부드럽게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레이먼의 시선은 책장에 고정된 채였으나, 실제론 책의 내용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눈앞에 떠오른 시스템창이 대신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기 때문이었다.
[ 서머셋 스테디움 스턴의 친밀도가 하락합니다.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 문구다.
도움을 요청한 건 서머셋 쪽인데 왜 친밀도가 떨어진 거지?
3왕자인 매너스는 살짝 대화를 오래 한 것만으로도 왕 후보에 오를 정도였다. 하지만 서머셋은 지금까지 몇 번이나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러지 않았다. 이유가 있다면….
‘숨기는 게 많아서겠지.’
그러나 이번엔 서머셋도 제 욕망을 충실히 드러냈다. 눈치 특성을 통해 거짓이 보이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그가 한 말은 대부분 사실이었다.
그는 정말로 유타를 훌륭한 동생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며, 그가 5왕자라는 사실에 탄식했다. 1왕자가 돌아오니 자신의 편이 되어 달라는 것도 진심이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거 자기한테 하는 소리 아닌가, 전부?’
그가 한 이야기는 5왕자인 유타에게 해당함과 동시에 4왕자인 서머셋, 그 자신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이야기들이었다.
형들보다 훌륭한 동생. 하지만 왕위에 오르기엔 거리가 먼 왕위계승권 하위의 왕자. 1, 2왕자가 없어진 상황에서 그나마 기회를 노렸지만 1왕자가 돌아오는 순간 모두 헛수고가 되어버린다. 이대로 가면 아마 왕실에서 평생 서류 작업을 하면서 왕이 된 형을 돕는 것이 미래가 될 것이다.
‘서머셋이 바라는 삶은 그게 아닐 테고.’
왕위계승권 1순위의 1왕자는 왕위에 오르기 싫어했고, 다음 순위인 2왕자는 별생각 없이 사랑의 도피를 떠났다. 오히려 차차기 순위인 3왕자와 4왕자는 서로 왕이 되고 싶다며 제각각 힘을 키워가는 중이었다. 여기에 유타는 덤이었고,
……복잡하네.
‘하지만 서머셋한테 편지는 보내두는 편이 좋겠지. 친밀도가 떨어진 게 신경 쓰이긴 하지만 풀어나가는 것에 따라서 왕 후보에 들어오기만 한다면 나한테는 이득이니까.’
이득이 된다면 일단 시도해보는 것이 현명했다. 찜찜한 것은 하나뿐.
이건, 유타를 배신하는 행동이 될까?
그렇다고 레이먼이 유타에게 자신의 상황을 솔직히 털어놓을 순 없었다. 왕 후보 리스트에 있는 사람을 왕위에 올리지 못하면 사실 나는 죽어, 라고 말하긴 조금 껄끄럽지 않은가.
“형님 괜찮으세요?”
“응?”
“식은땀을 많이 흘리셔서요.”
“그랬나? 괜찮아. 방이 좀 더워서 그런가 보지.”
“바람 마법이라도-.”
“아니, 동생을 그런 식으로 써먹고 싶진 않아. 나도 할 수 있고. 이제 내가 너보다 마력이 많잖아?”
“마, 맞아요! 그랬었죠!”
레이먼이 가호로 증가한 마력을 처음으로 선보인 날을 떠올리며 아드리안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책은? 다 읽었어?”
“네!”
“그래, 그럼. 좀 쉬자.”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레이먼은 아드리안이 준 책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침대 이불 속으로 점프했다. 푹신한 이불 커버가 레이먼의 몸을 감쌌다.
‘전생에서는 덮어보지도 못한 비싼 이불 안에서도 목숨 걱정을 해야 하다니.’
기구한 인생아.
이불을 돌돌 만 레이먼이 고개를 푹 숙인 채 한숨을 쉬었고, 아드리안은 그런 형을 가만 바라보았다.
‘형님은…!’
‘기구한 내 인생.’
‘…이불 속에서도 책에 대해 고민하시는구나!’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두 형제였다.
***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서 오세요, 실전 마법 전술>의 마지막 수업 시간이 되었다. 강사들의 뛰어남 때문일지, 아니면 학생들의 노력 덕분일지 어느새 수업에 참가한 학생들 대부분이 완드를 액세서리 형태로 유지한 채 마법을 증폭시킬 수 있게 되었다.
“레이먼 학생은 나중에 마탑에서 일할 생각이 있나요?”
“하하하. 고민 중입니다.”
“오오- 고민 중이라니! 이거 아주 미래가 촉망되는 학생이군요.”
마탑의 마법사들은 어떻게든 이곳에서 자신의 제자를 만들고 싶어 했다. 그래서 과제를 일찍 수행한 레이먼 같은 학생을 보면 그 앞으로 쪼르르 다가가 마탑에 오기를 권유했다. 그러다가 오닉스에 대해 언급하기라도 하면,
– 설마 오닉스랑 친한가요?
– 같은 포레스튼이니 그럴 수 있지요
– 그렇다면……
시선이 확 바뀌었다. 물론 좋은 쪽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마탑에서 오닉스는 있는 성깔, 없는 성깔을 죄다 부리고 다니는 모양이었다. 대단한 오닉스다!
‘하지만 마탑주는 오닉스랑 친하다고 해야 더 좋아하던데.’
자기 아들이라 그런 건가? 하긴 건물주에 건물주 아들, 아들 친구까지 같이 있는 그림을 마탑 마법사들이 반길 리는 없지.
레이먼은 음음- 고개를 끄덕인 뒤 마지막 수업 제목이 적힌 칠판을 바라보았다. 칠판에는 대문짝만하게 <실전 전술 시험>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 제목을 이해하지 못한 포레스튼의 4학년 한 명이 손을 번쩍 들었다.
“전술 시험은 정말 전쟁을 치르는 겁니까?”
“좋은 질문이지만 그렇진 않아요. 이번 수업으로 우리는 새로운 마법진이나 마법식을 배우진 않았으니까요. 대신 우리는 방법에 따라 얼마나 빠르게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지, 상황에 따라 어떻게 공격해야 강적들에게도 유효한 타격이 될지를 배웠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저희는 여러분의 이해도를 평가하기 위해 마법 전술 연습을 돌릴 겁니다.”
4학년 학생의 질문에 답한 마탑의 수석마법사가 칠판 뒤에서 접이식 판을 꺼내 펼쳤다.
평범한 나무판 두 개로 이루어진 접이식 판이었다.
“이건 이번 수업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마법 전술 게임판입니다. 자, 여기에 마력을 주입하면-.”
“우와아아-!”
“판 위에 사람들이 있잖아?”
“몇 명이야?”
“몰라. 셀 수 없이 많은데?”
마력을 주입한 뒤, 그녀가 손가락을 탁 튕기자 텅 비어있던 판 위로 기사단과 마법사 로브를 입은 사람들이 양쪽으로 갈라져 걸어갔다. 판 위는 어느새 구불구불한 길이 있는 푸른 숲으로 변했다.
“저거 마법 기사단 옷이다.”
“마법사도 있는데?”
“일반 기사도 있어.”
학생들이 우르르 앞으로 몰려나왔다. 레이먼도 함께 떠밀려 맨 앞줄까지 왔고, 기울어지는 레이먼의 몸을 유타가 잡아주었다. 학생들의 열광적인 반응에 수석마법사는 만족한 듯 활짝 웃었다.
“마법 기사단의 마검사 총 20명, 5서클 이하의 마법사 20명, 7서클 마법사 1명, 일반 기사 52명으로 이루어진 93명의 부대입니다. 이 부대는 여러분이 말한 대로 움직이고 여러분이 지시한 대로 임무를 수행할 겁니다.”
“그럼 이걸로 마지막 시험을 보는 건가요?”
“네, 맞습니다. 시험이 시작되면 판 위의 배경이 변할 겁니다. 사막이 될 수도, 숲이 될 수도, 혹은 스턴 왕국의 이 왕성이 배경이 될 수도 있죠. 여러분의 전술을 잘 활용해 승리하시면 된답니다.”
“이기면 합격인가요? 합격이면 뭐가 좋나요?”
“여러분의 스펙에 좋겠죠.”
“오….”
말 되네.
학생들이 수긍하는 사이, 수석마법사는 명단을 뒤적이며 가장 처음으로 앞으로 나설 학생을 찾았다. 레이먼은 자신의 이름이 첫 번째로 불리지 않기를 간절히 원했는데, 가급적 눈에 띄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레이먼은 스펙도 필요 없었다. 작위에 연줄까지 있는데 스펙이 무슨 상관이야. 하지만.
“레이먼 반 스플린?”
수석마법사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곧장 붉은 머리 소년을 발견하고선 잇몸이 보일 정도로 활짝 웃었다.
“학생이 먼저 해볼까요? 상대는…….”
“….”
“아드리안 반 스플린으로 하죠!”
아드리안?
그 말에 레이먼이 아드리안 쪽을 바라보니. 얼굴이 터질 것처럼 환하게 웃고 있는 동생이 보였다.
‘아, 이건 거절도 못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