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117)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117화(117/275)
궁 복도를 거닐던 매너스가 자리에 멈춰 섰다. 원래 전술 수업의 마지막 시간에 참석하기로 되어 있던 매너스였지만 다른 일정이 생겨 걸음을 옮기던 중이었다. 하지만 열린 문 너머로 들리는 학생들의 함성 소리가 그를 멈춰 세운 것이다.
“마지막 수업에서 뭘 하고 있길래 저리 소란스러운 거지?”
“전하께서 참석하기 어려워지셔서 해당 시간을 실전 마법 전술 시간으로 바꾸었습니다. 전쟁 시 사용하는 지도를 이용해 마법으로 인형을 만들고 미리 상황을 예측하는 판을 이용해서 전술 연습을 하는 시간입니다.”
“그래?”
매너스가 흥미롭다는 듯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의 충실한 심복은 무언가 불안함을 느끼고 그를 붙잡으려 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붉은 망토 자락이 뒤로 휘날리고 매너스는 곧장 방 안으로 들어섰다. 문 너머로는 앉아 있는 레이먼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동생도 있었잖아?’
두 사람이 하고 있었군.
고개를 주억이고 있자 그를 발견한 수석 마탑 마법사가 달려와 매너스에게 인사를 올렸다.
“여러분, 잠시-.”
이미 게임에 집중한 아이들은 아드리안과 레이먼을 둘러싸고 도통 눈길을 돌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녀가 박수를 쳐 아이들의 이목을 끌려 하자 매너스가 이를 말리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쉿. 그가 입술 위로 검지를 올렸다.
“조용히 구경만 하고 가겠다.”
“네, 알겠습니다.”
수석 마법사가 살짝 뒤로 물러나고 매너스는 여전히 떨어진 채로 그들의 마법을 지켜보았다. 이 전술 연습은 먼 거리에서도 구경할 수 있는 게 커다란 장점이었는데, 이는 마법으로 전술을 응용하기 때문에 그렇다. 마력의 흐름과 성질을 알면 거리에 관계없이 느껴지는 마력만으로도 각자가 어떤 전술을 쓰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법을 적극적으로 쓰는 건 아드리안 쪽인가.’
아드리안의 진영은 마법사 인형을 중간에, 기사단을 전면에 세우고 있지만 실제 공격을 퍼붓는 건 가장 후방에 자리한 고서클의 마법사들이다. 일반 기사단으로는 이를 막을 수 없을 터.
반면, 심드렁한 표정의 레이먼은 곧 하품이라도 할 것 같은 지루한 얼굴이었다. 그의 기사단이 마법에 밀려 뒤로 쓰러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레이먼! 너 지겠어!”
“동생한테 지는 형이라니.”
“하지만 아드리안이 우수하긴 하잖아. 조기 입학까지 했는걸?”
아드리안은 이기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표정에도 그게 드러나서 레이먼은 잠시 고민하긴 했으나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원래 질 생각도 있었지만 멀리서 익숙한 마력이 등장한 것으로 매너스가 방 안에 나타난 걸 눈치챘기 때문이다. 저기 저편에서 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으리라. 여기서 매너스의 마음을 사로잡으면 콩고물이라도 떨어질지 모른다.
“하아- 아드리안.”
“네?”
“한 번만 말할 테니 잘 들어라.”
아드리안이 침을 꿀꺽 삼켰다. 형이 뭘 말씀하시려고 저러는 걸까?
“네 작전은 나쁘지 않아. 오히려 정석적이지. 일반 기사단, 마검을 쓸 줄 아는 마법 기사단, 그리고 마법사가 있다면 네 전술이 당연히 옳은 선택이다. 누구나 할 법하지. 마법사는 마법을 쓸 수 있지만 근거리엔 약하니 기사단 뒤로 배치한 거지?”
“네.”
“그리고 원거리 공격. 마법 기사단은 어떻게 했지?”
보면 알잖아- 핀잔을 주고 싶은 에글린턴의 리트리와 티키였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 사실 포레스튼의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로 ‘보면 알잖아.’라며 한마디를 덧붙여주고 싶긴 했다.
“마법 기사단은 일반 기사단과 섞어 배치했습니다.”
“이유는?”
“그거야 일반 기사단으로는 마검을 온전히 막을 수 없으니까요.”
“정답이다. 하지만 그건 수적으로 차이가 별로 없을 때의 이야기야.”
“네?”
“마법 기사단 20명, 마법사 21명, 일반 기사단 52명. 여기서 마법사 3명, 마법 기사단 3명과 일반 기사단 5명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 거 같나.”
어떻게 될 거 같냐니…? 아드리안은 당황해 입을 뻐끔댔다. 그거야 알 수 없지 않은가.
“맞아, 모르겠지.”
“……네.”
“봐, 몰랐잖아.”
그들이 안으로 파고든 건 순식간이었다. 7서클 마법사가 있는 곳까지 침범한 일반 기사단 중 한 명이 그의 목을 벤 것이다. 7서클 마법사가 그를 느끼지 못한 이유는 뭐지? 아드리안이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레이먼이 그 이유를 알려주었다.
“왜 7서클 마법사가 그를 인지하지 못했을까?”
“그러게?”
“이유가 뭐야?”
어느새 학생들은 레이먼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는 사람 없어? 라는 얼굴로 그가 주변을 둘러보자 어디선가 튀어나온 아르파드가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마력이 없어서.”
“선배, 큰 목소리로 한 번 더 말해주실……수는 없나 보네요.”
레이먼이 피식 웃었다. 콜로만 아르파드는 저 한마디에도 귓불이 발갛게 달아올라 다시 학생들 틈으로 숨었다.
“맞아. 마력이 없어서 그래. 기본적으로 대마법사쯤 되면 자신의 영역에 침범하는 사람을 알아보는 마법을 미리 쳐두지. 그렇게 해서 몸을 방어할 수 있는 거고. 하지만 사람이 지나치게 많은 전쟁이라면 그게 어려워.”
“다른 사람의 마법이랑 뒤섞여서?”
유타가 손을 들어 말했다. 레이먼은 정답- 이라며 다시 판 위를 가리켰다. 판 위에는 아드리안만큼이나 혼란스러워하는 기사단과 마법사들이 있었다.
“유타의 말대로야. 아무리 7서클이라도 이런 상황에선 위협이 되는 인물을 특정하기 마련이지. 그럼 과연 일반인이 저 기사단과 마법사들을 뚫고 자기 앞까지 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할까?”
“아니!”
누군가 크게 소리쳤다. 레이먼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말을 이었다.
“그래. 그럼 다음으로 할 일은 마력으로 존재를 특정하는 거지. 그래서 나는 평범한 기사를 옆으로 돌려 후방으로 보냈어. 마법사들도 함께. 그리고 7서클 마법사의 등 뒤에서부터 다가갔지. 대신, 다가간 순간에는 마검사와 마법사를 양쪽으로 나눴어.”
“적이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하게 하기 위해서구나?”
리트리가 고개를 쭉 내밀고 끼어들었다. 어느새 학생들 사이에서 오- 하는 탄성이 튀어나왔다. 레이먼은 너무나 기본적인 상식을 말하면서 이렇게 잘난 척을 해도 되는 건지 싶긴 했지만 꿋꿋하게 다음 말을 이었다.
“그래. 그래서 7서클을 쳤다.”
“하지만 7서클이 대장은 아니잖아.”
어디선가 나온 반박의 목소리에 레이먼이 한심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너넨 여기서 갑자기 내가 뒤지면 기분이 어떨 거 같냐?”
“어?”
“선생님도 없고 너보다 우수한 마법사가 한 명도 없는 상태가 되면 어떨 거 같냐고.”
“슬퍼?”
“그리고?”
“울…고 전의 상실?”
“그래.”
“하지만 그렇다고 전쟁에서 진 건 아니잖아.”
저놈은 자기가 논리적이라고 생각하겠지? 레이먼은 17살 된 아이의 치기 섞인 발언은 들어주기로 했다. 그는 결국 남은 이들이 힘을 합치면 될 일이며, 5서클 마법사가 여럿 있으니 아직 승패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전쟁에 나가보지 않은 아이가 할 법한 지극히 당연한 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레이먼은 알고 있었다. 전쟁은 그렇지 않다는 걸.
물론 유태하 역시 헌터는 헌터지만 정보를 취급하며 주로 전장의 뒤나 아래에서 암약했기에 실전에 참가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국가에서 활동 가능한 모든 각성자를 소집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말이다. 그랬던 그가 딱 한 번 대규모 전투에 휘말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는 눈앞에서 봤다. 대장을 잃은 세력의 기세가 얼마나 나약해지는지를 말이다. 물론 이긴 쪽이 우리 쪽이었으니 망정이지 그때 졌다면 그 역시 거기서 팔 하나는 떨어졌을 거다. 아니면 목이라든가, 다리라든가.
‘으, 그만 생각하자.’
아드리안은 입을 꾹 다문 채 레이먼의 설명을 들었다. 할 말이 없었다. 자신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진 않았으나, 형님이 더 우수했다. 질투를 할 법한데도 이상하게 그런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역시 형님이십니다. 제가 졌습니다!”
아드리안이 시원하게 고개 숙여 패배를 인정하자 주변에선 다시 한번 함성이 쏟아졌다.
“야, 돈.”
“아씨- 아드리안이 이길 줄 알았는데!”
언제 돈을 걸었는지…. 왜 남의 승패에 돈을 걸고 난리야?
‘애초에 왜 내 패배에 건 거야?’
레이먼이 슬쩍 곁눈질로 매너스가 있던 쪽을 바라봤다. 어느새 홀연히 사라진 그의 자리에는 마탑의 수석 마법사가 자리했다. 그녀는 웃으며 레이먼에게 다가와 소년의 머리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첫 번째 전술 연습의 승자는 레이먼 반 스플린입니다. 모두 박수!”
“와아아!”
“믿고 있었다구!”
“안 믿었잖아!”
“축하해, 레이먼.”
유타가 가까이 다가와 웃었다. 전술 연습은 계속 이어졌고 유타는 아르파드 선배와 겨루게 되었다. 학생들은 모두가 콜로만 아르파드가 이길 거라 생각했다. 비록 유타가 우수하긴 했지만, 마찬가지로 우수한 실력의 아르파드 선배는 일전의 납치 사건을 예언하기도 했고 저주 마법을 기사단 전체에 걸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승리한 쪽은 유타였다.
“어, 어떻게…….”
“미리 방어 마법을 쳐뒀거든요.”
유타의 전술은 특이했는데 극도로 공격에 치중한 전술이었다. 7서클 마법사를 앞에 두는 전술이 흔하진 않았으니까. 대신 모든 마법사가 그를 비호했다. 마법사들이 최전방에 있으니 아르파드의 저주 마법을 파훼하는 것도 손쉬웠다. 그사이 기사단들이 양쪽으로 퍼져 아르파드의 기사단을 압박했고, 먼저 전의를 상실한 쪽은 아르파드였다.
***
“와, 진짜 재밌었다.”
“성적표는 안 재밌어.”
“리트리, 너 몇 점이야? 리트리…… 너 또 필기 공부를 빼먹었구나.”
“그치만~ 티키~ 나는~.”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이 우르르 빠져나갔다. 레이먼이 나오자마자 처음 보는 얼굴이 그를 맞이했다. 아니, 처음 보는 건 아닌가. 낯익은 얼굴이었지만 대화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는 언제나 매너스와 함께 있던 그의 심복이었다. 아무도 이름을 모르고, 이름을 아는 자는 매너스밖에 없다고 소문이 자자한 자다.
“매너스 전하께서 찾으십니다.”
“형님이?”
“예. 레이먼 님만 따로 뵙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죄송합니다, 유타 님.”
“어쩔 수 없지. 다녀와, 레이먼. 아드리안은 나랑 같이 있으면 되니까.”
유타가 아드리안의 어깨 위에 팔을 턱 걸쳤다.
“그래. 괜찮지, 아드리안?”
“네! 형님! 다녀오세요.”
믿음직하게 웃는 아드리안을 뒤로하고 그는 매너스의 궁으로 향했다. 별궁과 달리 3왕자의 궁은 왕성의 중심에 있었다. 원래 1왕자가 쓰던 궁을 매너스가 쓰고 있다고 들었는데 확실히 서열이 올라가니 주변 환경도 더 좋아진 느낌이었다. 초대된 응접실에 앉아서 몇 분 기다리자 매너스가 활짝 웃는 얼굴로 등장했다.
문을 확 열어젖힌 그의 행동이 제 성격을 잘 말해주었다.
“레이먼! 어서 와!”
“스턴 왕국의 제 3왕자를 뵙습니다.”
“평소엔 격식도 제대로 안 차리면서 뭐가 그렇게 딱딱해.”
“…인사는 드려야죠.”
어째 첫인상이 전이랑 너무 다르지 않나.
레이먼은 매너스라는 인물을 이해하기 무척 벅찼다. 그는 전쟁영웅처럼 호쾌하기도 했고, 동시에 처음 만났을 때처럼 진중한 분위기를 풍기기도 했다. 오늘은 전자인 듯했지만.
“수업 땐 따로 인사를 못 해서 미안해.”
“아뇨. 괜찮습니다.”
“너와 친분이 있다는 걸 너무 퍼뜨릴 필요는 없잖아. 공작가 자제와 왕자의 친분. 유타야 친구라 그렇다지만 나랑 엮이면 파벌일 수도 있으니까.”
공작 가문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상기됐다. 매너스는 테이블 위 차를 한 번 들이켰다. 목이 타는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다. 그는 여유롭게 창문 밖을 바라보다 순식간에 치고 들어왔다.
“어디까지 알고 있어?”
“네…?”
“여기서 일주일 동안 지냈잖아. 네가 아무것도 모를 리 없을 테고. 궁에서 그렇게 대담하게 정령을 퍼뜨릴 놈은 너밖에 없을 거 같아서 말이야.”
“…….”
[ 우리 애들이 시끄럽게 굴진 않았다. ]아모르 님.
[ 진짜다, 이놈아. ]매너스가 깍지 낀 손으로 턱을 괴며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웃는 얼굴에 냉기가 서려 있었는데, 아마 웃지 않는 눈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듯했다.
“레이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