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13)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13화(13/275)
“으음… 흐으음….”
“그 이상한 소리 내는 것 좀 그만할 수 없냐.”
“끄으으으으응.”
왜지? 왜인 거야?
레이먼의 눈썹이 애벌레처럼 움츠러들었다 펴지기를 반복했다.
[ 조언 – 왕실의 역사를 보았을 때, 유타는 왕에 오를 수 없다. ]‘조언이면 조언답게 좀 간단하게 말해줄 수 없나? 왜 굳이 이런 말장난 같은 조언을 주는 거야? 인생 좀 쉽게 살자, 쉽게. 2회차면 좀 더 잘 살 수 있는 거잖냐. 게다가, 뭐 친밀도? 그러니까 왕 후보에 집어넣은 이후에도 얘 호감도를 계속 유지해줘야 한다는 뜻이잖아. 아, 뒤질까 그냥.’
“이-봐. 레,이,먼.”
“……아냐, 살아야지. 살았으면 또 살아가야지.”
“이게 사람 말을 그냥 무시하네.”
여전히 끙끙 앓고 있는 레이먼을 곁눈질한 오닉스가 한숨을 폭 내쉬었다.
요 근래 레이먼이 멍청해졌다. 아니, 원래도 똑똑한 건 아니었다 – 오닉스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요즘엔 문장이 아니라 앓는 소리로 모든 대답을 대신하고 있었으며 완드를 휘두르는 수업 시간에도 멍이나 때리고 있었다. 심지어는 교수님의 질문에도,
– 레이먼 학생, 22페이지의 정답이 뭐죠?
– 으어어어어어.
– …레이먼 학생?
– 으엉? 못 해!
– ……오닉스 학생이 대신 답해보죠
저러다 교수님께 완드로 처맞아 눈에 멍이나 들지 않을까, 생각하는 요즘이었다.
오닉스는 레이먼에게 특별한 정은 없었지만 친구에 대한 의리는 있었다.
그러니 레이먼에 대해서도 나쁘게는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귀족이긴 했지만 묘하게 투박하게 말하는 구석이 있어 흥미가 생겼고 무엇보다 아카데미에서 말이 통하는 애새끼가 이놈밖에 없었다. 사실 그 점이 제일 컸다. 다른 놈들이 ‘똥’, ‘방귀’거리고 있을 때 이놈만 “똥이랑 방귀는 구분해야지.”라고 말하는 지식인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오닉스 역시 그 지식인 중 한 구성원이었다.
“하아….”
하지만 그것도 다 망했다. 이놈도 이제 곧 똥방귀 인간이 되겠지. 아니, 모습을 보니 이미 됐을지도 모른다.
말이 좀 통하는 놈인가 했더니.
오닉스가 천천히 고갤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쩐지 하늘이 맑았다.
‘내 속도 모르고.’
아니, 아니까 더 맑은 걸까.
***
레이먼도 속이 복잡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며칠 동안 왕실 역사 서적을 다시 꺼내 모조리 다 뒤져보았다. 이제 도서관에 비치된 왕실 역사는 모두 머릿속에 들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유타가 사생아라서? 하지만 머리 색이 은발도 아니었던 왕도 있지 않았는가.
‘유타 그놈이 못생겨서…?’
이건 더더욱 이유가 될 수 없었다.
혹시 유타가 마법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건가? 쓸 줄 알아도 너무 미약해서 그런 거라면 혹시 모른다.
콰아아앙-. 휘유웅.
– 1학년 마법진 훈련 수업인데. 유타 학생은… 예습을 잘해온 모양이네요.
– 교육에 힘써 주신 덕분이지요.
그건 아니었는데. 왕 불가 사유를 하나라도 제거할 수 있어서 다행인 걸까.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유타가 레이먼과 친해지고 싶어한다는 점이었다. 그는 매 수업마다 레이먼의 근처 자리를 노렸고 식사 시간 때 그를 발견하면 언제나 옆자리에 와 먼저 식사를 제안했다. 그 일련의 상황은 오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봐, 같이 밥이나 먹겠어?”
“좋아.”
물론 레이먼 역시 이 제안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붙어 있어야 했다. 레이먼은 최대한 귀족다운 자세로 그 앞에 침착하게 앉았다. 오늘 포레스튼의 점심은 뷔페식이었는데 꽤 마음에 드는 반찬이 많았다. 예를 들어 찹스테이크라든가, 흑돼지 구이라든가, 어딘가에서 본 고기 튀김이라던가.
“먹는 거에 비해 살이 잘 안 찌는 타입인가 봐?”
“단백질 위주의 식단이니까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
“단백질 위주로 먹으면 좋은 건가?”
“유타, 근육이 붙으려면 단백질을 잘 챙겨 먹어야 해.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다니.”
“….하지만 네 몸을 보면 그 말이 신빙성이 있어 보이진 않는데 말이야.”
유타가 쿡쿡 웃으며 연어 스테이크를 한 입 베어 물자 그 옆에 앉아있던 기사도 그제야 포크를 들었다. 두 사람의 주종관계는 확실해 보였다. 기사의 이름은 ‘렌스’로 어쩐지 성스러워 보이는 게 꽤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유타 님, 여기서 식사하고 계셨군요!”
익숙한 목소리의 학생이 의자를 끌어 자리에 앉았다.
“아, 그래. 너구나.”
유타가 웃었다.
‘저 웃음과 대답은, 그거네.’
유타는 지금 이 학생의 이름도 얼굴도 기억 못 하는 거다.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도 했고.
‘이거 봐, 나도 아주 킹메이커 다 됐다니까. 이쯤 되면 보상으로 비밀을 알려주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응?’
[ ……(메롱) ]‘…개지랄 맞은 시스템.’
어쨌든 레이먼의 옆자리에 앉은 익명의 학생은 최근 유타에게 들이대고 있는 오디트 클래스의 귀족이었다.
사실 학생들이 보기에 기프트에 온 왕족인 유타는 ‘왕실에서 버려진 왕자’로 해석될 수 있었다. 그러나 저 파란 대가리는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 모양이었다.
‘현명하긴 하지.’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은 꽤 매력적이니까. 오디트 클래스 소속으로 유타와 친분을 쌓는 건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야. 아무도 배팅하지 않은 유타에게 배팅해서 대박이라도 터지면 출셋길은 한 방이니까.
‘나도 그 출셋길 위에 있지만 말이야.’
이 얼간이랑 다른 점은 ‘비밀’이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다는 건데.
‘….근데 그 비밀을 모르면 나도 얘랑 똑같은 거 아냐?’
그렇게 생각하니 좀 심란해졌다. 레이먼이 입안 가득 스테이크를 집어넣었다. 그가 한창 우물대는 와중이었다. 파란 머리는 입을 가만두질 못하고 수다를 떨어댔다.
왕실 아첨에서 이번엔 마법사의 재능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넘긴 참이었다.
파란 머리가 물었다.
“포레스튼에서는 예부터 성비 불균등이 쭈욱 이어져 왔다는 것을 아십니까?
“알지, 그런데?”
유타가 적당히 답했다. 난 계속 씹었다. 스테이크가 조금 질겼다.
…아, 힘줄을 잘못 가져왔나.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자네는 뭐라고 생각하는데?”
“그거야 당연히 ‘재능’ 탓이지요. 여성보다 남성이 마법에 대한 재능이 출중한 것은 자명한 사실 아닙니까. 그러니 보십시오. 포레스튼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시는 분들 10분 중 8분이 모두 남학생이지요. 유타 님, 그러니….”
파란 대가리는 이제야 본론이 시작된다는 듯 목소리를 낮췄다.
“너무 낙담하지 마십쇼. 유타 님도 형님들처럼 재능이 출중하다는 뜻이니까요. 그러니 기회는 돌아올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기프트에 계시지만 출세한 기프트 출신들은 다른 마법사들보다 학연이 더욱 끈끈하다는 장점이 있지요. 통계적으로 기프트에는 오히려 잘 나가는 가문이나 숨겨진 암살 가문이 많은 걸로-.”
“그렇지. 조언 고마워….음, 그러니까.”
유타가 살풋 눈썹을 찌푸렸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생각났다는 듯 이름을 말했다.
“다비.”
“…! 예, 유타님!”
“그럼 나는 식사가 끝나 이만 일어나도록 하지. 레이먼, 다음 시간에 보자.”
“그래, 잘 가.”
“그래, 아, 내가 보고 싶으면 방으로 와. 널 위한 티타임을 마련해둘게.”
“그거 고맙지. 이거 먹고 배고프면 갈게.”
레이먼이 고기를 우물거리며 대강 답했다. 그 말투에 놀란 다비가 그를 흘깃 노려보았다. 감히 왕족에게 이런 실례를-! 이라는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눈빛이었다. 그래서 레이먼도 – 너도 이만큼 친해지던가- 라는 눈빛을 보내주었다.
유타가 완전히 자리를 떠났다. 더 이상 이 자리에서 볼 일이 없어진 다비가 홱 몸을 돌리며 말했다.
“그럼 나도 가볼게. 안녕.”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레이먼이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너 말이야. 나한테는 존대를 안 쓰네?”
떠나는 그를 붙잡을 정도의 질문이었다. 레이먼의 말에 다비가 당장에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몸을 돌려 레이먼에게로 걸어왔다.
그가 팔짱을 끼고 자리에 앉아있던 레이먼을 내려다보았다. 당당하게 쫙 편 가슴이 인상적이었다.
“우린 다 같은 학생이잖아.”
“그럼 유타한테도 반말을 써야지.”
“허. 너랑 그분이 같아? 그분은 왕족이잖아.”
“네 가문, 남작이지? 형도 있으니 네가 뭘 물려받기에도 영 애매한 위치고.”
레이먼이 포크를 테이블 위에 천천히 올려놓으며 말했다. 혹 입술에 스테이크 소스가 묻었을까 냅킨으로 입가를 살짝 정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존대를 쓸 거면 제대로 쓰도록 해, 다비 다윗.”
“……”
“다윗 가문이 언제부터.”
레이먼의 푸른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머리카락의 불타는 붉은색이 둘린 듯한 강렬한 눈빛이었다.
“우리 가문에 함부로 말을 걸 수 있는 위치였지?”
“…….그, 그게 아니라. 나, 아니. 저, 저는-!”
“농담이야.”
“뭐?”
“네 말대로 우린 다 같은 학생이잖아. 같은 학년이고. 그럼 반말이 맞지. 사회에 나가면, 또 모르겠지만.”
“…그, 그런.”
애가 또 금방 쪼네. 겨울 북풍을 거세게 맞은 마른 나뭇가지처럼 떨던 다비 다윗은 레이먼의 마지막 말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어깨를 바짝 세웠다.
그 한심한 꼴을 보고 있자니 레이먼은 더 이상 그를 놀릴 마음도 들지 않았다.
레이먼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됐다, 됐어. 꺼지기나 해. 그리고 유타도 네가 존대하는 것보다는 반말을 쓰는 걸 좋아할 거다.”
“…아, 알겠어.”
그럼 간다. 다비 다윗이 떠났다. 레이먼도 깔끔히 비운 접시를 반납한 뒤, 식당을 나섰다.
비록 다윗 가문은 작위는 낮지만 돈은 많은 가문이었다.
-‘그러니까 오디트에 갔나?’
어쨌든, 유타에게 도움이 되겠지.
권력을 얻을 땐 돈은 얼마가 있든 부족한 법이다. 하지만 내 자리를 위협하진 못할 거야.
‘난 작위도 높고 돈도 많으니까.’
어쨌든 이제 할 것도 따로 없으니… 유타 방이나 가볼까. 표정도 썩 좋지 않았던 거 같고.
‘티타임에는 뭘 준비해뒀으려나.’
***
바쁜 걸음이 중앙 회랑을 가로질렀다.
탁탁탁.
어쩐지 화가 잔뜩 난 듯한 걸음걸이. 그에 맞춰 걷던 기사가 주인을 멈춰 세웠다. 렌스가 차분히 말했다.
“유타 님.”
“……”
“흥분하셨습니다.”
주인은 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걸음이 대신 답해주었다. 그의 발소리가 서서히 느려졌다. 그러나 한 번 오른 흥분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학생들이 들어찬 식당과 달리 클래스로 향하는 회랑에는 두 사람뿐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 이상 말을 섞지 않았다. 만약 이 둘을 누군가 마주쳤다면 주인에게 큰 결례를 저지른 하인과 그에 화가 난 주인으로 보였을 테다. 두 사람은 생활관으로 돌아갔다. 유타는 능숙하게 방에 방음 마법을 걸었다. 이미 아카데미에서 배우는 1학년 과정은 완벽히 숙지한 지 오래였다.
그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다시 내쉬었다. 얼굴은 평온했다.
수면 위. 모두에게 보이는 백조의 모습은 언제나 아름다워 보여야 하는 것처럼.
주인이 입을 열었다.
“렌스.”
“네, 왕자님.”
“조금 전 식사 자리에서 내 표정에 변화가 있었는가?”
“아뇨, 완벽했습니다.”
“불쾌감이 조금이라도 드러났나?”
“아뇨.”
눈썹이 살풋 찌푸려진다. 유타가 물었다.
“정말로?”
“예.”
그런가. 유타의 무감한 시선이 이번엔 렌스의 숙인 정수리로 향했다. 유타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후회 섞인 숨소리.
“렌스, 왜 나는 그 우둔한 놈의 말에 휘둘렸을까?”
렌스가 답했다.
“그자가 우둔하기 때문입니다. 멍청한 자들은 종종 생각 없이 말을 내뱉으니까요.”
“그럼에도 난 흥분해선 안 됐어. 우둔한 놈들에게 휘둘려선 안 되니까.”
“그 자리에선 충분히 잘하셨습니다.”
잠시 흐른 정적. 유타가 재차 질문을 던졌다.
“렌스, 나는 재능이 없는가?”
“이 왕국의 누구보다 뛰어나십니다.”
“렌스, 나는 타인의 위에 설 자격이 없는가?”
“이미 제 위에 서 계십니다.”
렌스, 이리와. 부드러운 목소리에 종이 홀리듯 이끌렸다. 고개 숙인 종이 주인의 시선 아래에 몸을 조아린다.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그는 주인의 손등에 이마를 맞추었다. 제 주인이 그를 이런 목소리로 부를 때면 언제나 같은 것을 요구했다.
“말해.”
기사의 맹세. 기계적인 어조로 그가 진심을 내뱉었다.
“기사 렌스. 가문이 아니라 하나의 존재로서 눈앞의 찬란한 태양 아래 서 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하나의 심장으로 단 한 명의 주인을 섬길 수 있으며, 그 주인의 심장을 대신해 명운을 달리할 것입니다.”
맹세를 읊는 목소리를 침착했다. 맹세를 듣는 주인의 눈 역시 가라앉은 채였다.
“제 운명을 왕국이 아닌 주인의 심장에 바칩니다. 제 심장을 왕국이 아닌 주인의 운명에 바칩니다.”
그러나 그의 주인이 바라는 건, 단순한 긴 치장의 말이 아니었다. 렌스가 천천히 고갤 들었다. 사랑에 빠진 사내의 눈이었다. 그의 눈동자에 유타의 얼굴이 비쳤다.
“왕녀, 유리아 스테디움 스턴.”
아니, 정확히는 유타가 아닌 ‘유리아’의 얼굴이 비쳤다.
“나의 유일한 주인이시여.”
당신이 가는 길에 언제나 제가 함께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