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135)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135화(135/275)
빛의 대정령이 계약자를 고르는 조건은 까다롭다.
100년 동안 그를 지상으로 부른 인간이 한두 명도 아니었고, 그들 모두 강대한 마력과 뛰어난 마법 실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정령 친화력도 뛰어난 편이었다. 그런 마법사들 대다수가 그에게 까인 이유는 두 가지로 추릴 수 있었는데….
– 빛의 대정령님! 저와 계약해주세요!
– 싫어.
– 어째서-. 제가 부족한 점이 있다면 고치겠습니다!
– 네 얼굴을 보고도 답이 안 나오느냐.
– 어, 얼굴이요?
바로 빛의 대정령이 봤을 때 만족스럽지 않은 얼굴과,
– 성깔이 더럽다.
– 제 성품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이 영지에 들인 돈만 해도 얼만지 아십니까? 주변 영지를 둘러봐도 마법사인 영주가 지역을 살리기 위해 이만한 돈을 기부하는 곳은 없습니다!
– 그거 말고.
– 그거 말고?
– 네놈 몸에 저주가 있다. 누가 걸었는지는 몰라도 아주 지독한 저주구나. 일전에 바람을 피운 적이 있지 않느냐?
– 그걸 또 어떻게-.
만족스럽지 않은 성품이었다.
얼굴이 잘나면 얼굴값을 한다고 했나. 뛰어난 실력에 마음에 드는 얼굴인 경우에는 성깔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성깔이 마음에 들면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다. 빛의 대정령은 지독한 얼빠에 자기 말을 잘 듣는 강아지 같은 놈을 선호했던 것이다. 그 역시 자신의 기준이 까다롭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계약자가 직접 자신을 부르는 일 없이는 지상에 내려오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어떤 미친 인간이 자신에게 ‘못생겼다’는 막말을 내뱉은 오늘.
그 인재를 찾은 것이다.
문을 여는 자세부터 예의 바르기 그지없는 허리와 눈빛 하며, 인사를 나누는 짧은 순간에도 인사를 잊지 않는 재빠른 눈치.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빨강 머리와는 다르게 자신의 갑작스러운 제안에도 순응하는 은색 머리칼까지.
마력도 충분했고, 하위 정령에게 빌린 마력으로도 대정령의 형체를 파악할 수 있는 걸로 봐선 정령 친화력도 상당함이 틀림없었다.
“계약은 어떻게 하면 되나요?”
“대정령마다 계약 조건은 다르다. 나는 나의 이름을 부르는 걸 계약 조건으로 한다. 내 이름은 이그니스. 그리고 두 번째 이름은 계약자의 성을 따지. 네 성은 무엇이지?”
드디어 자신의 이름을 말한 이그니스의 몸에서 금빛 물결이 흩어져 나왔다. 빛의 하위 정령들이 그의 주위를 휘감았고 별궁의 서재는 하나의 거대하지만 작고, 시끄럽지만 조용한 별이 되었다. 인간이라면 충분히 압도당할 분위기인데도 유타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양손을 맞잡은 이그니스의 두 손을 더욱 꽉 붙들었다. 유타가 답했다.
“스턴. 유타 스테디움 스턴입니다, 이그니스 님.”
화아아아-
화려한 빛줄기가 유타의 주위를 감쌌다.
“좋다!”
이그니스의 입꼬리가 높게 올라가고 그가 활짝 웃었다.
“오늘부로 나의 이름은 계약자 유타 스테디움 스턴에 따라 이그니스 스턴으로 명칭한다. 또한, 이그니스 스턴은 유타 스테디움 스턴에게 빛의 축복을 내릴 것을 약속한다. 대신 유타 스테디움 스턴은 남은 생, 빛의 대정령에게 자신의 빛을 잃지 않을 것임을 증명해야 한다. 그대가 빛을 잃는 순간, 이 계약은 모두 무효가 되고 그대에게 주었던 축복은 모두 거두어 갈 것이다. 이해했느냐.”
“네. 이해했습니다. 이그니스 스턴 님.”
“좋다.”
몸 주변의 모든 것이 부유했다. 유타뿐만 아니라 서재의 책장들도 레이먼도 마찬가지였다. 붉은 곱슬머리가 마치 공기 중의 먼지처럼 둥둥 떠다녔고 레이먼은 함께 떠오른 아모르를 보곤 툴툴댔다.
“아모르 님은 이런 거 못합니까?”
이런 상태가 익숙한 듯 비스듬히 누운 아모르는 하품을 쩍 벌려 답했다.
“못해.”
“감정의 대정령이 훨씬 계약하기 어렵다는데 할 줄 아는 게 왜 이렇게 없어요?”
“실속이 있어야지, 실속이. 저놈은 축복 해제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잖아.”
“아모르 님도 뭐….”
“나는 속마음도 읽을 수 있다.”
그런 것도 할 줄 알아?
하지만 [눈치] 특성이면 읽을 수 있는 걸 굳이 대정령한테 힘을 빌릴 필요는 없잖아.
레이먼이 답했다.
“그건 저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렇군. 네가 대정령 할래?”
“됐어요. 귀찮습니다.”
계약이 끝나자 모든 것이 제자리도 돌아왔다.
“계약이 끝난 건가요?”
“그래.”
유타는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하고선 낮게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간단하네요.”
“몸은 힘들지 않고?”
“괜찮습니다.”
“계약하기 위해 꽤 많은 마력을 썼을 거다. 지금 내 모습은 계약자인 네 마력을 통해 유지되는 것이니 머리가 어지럽거나 구역질이 올라온다면 말하도록.”
계약을 마치고 들려온 것은 조금 전보다 나긋하고 권태로워진 음성이었다.
완벽하게 형체를 갖춘 빛의 대정령은 정말로… 잘난 얼굴이었다.
긴 금발을 한데 올려 묶은 머리와 올라간 눈매는 날카로운 인상을 주었지만 마찬가지로 올라간 입꼬리가 그 분위기를 중화시켰다. 빛을 거두어들였음에도 빛나는 금빛 눈동자 속 물결은 평범한 사람을 홀리기에 충분했다. 그가 왜 자신의 외모에 자신을 가지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계약하고 난 뒤에는 곧바로 이그니스 님의 능력을 쓸 수 있나요?”
“그렇다.”
“그럼 당장 사용하고 싶습니다. 제 아버지가 저주에 걸려 병상에 누워 계십니다.”
“그 사람을 살리고 싶다, 이 말이구나. 좋다. 계약자의 첫 부탁이니 어디 한번 보자꾸나.”
“감사합니다. 레이먼, 가자.”
“그래.”
유타와 레이먼은 곧장 본성으로 향했다. 인간체로 현현했던 대정령들은 작은 완두콩과 솜뭉치 형태로 변해 그들을 따랐다. 서둘러 본성으로 향하는 두 사람을 본 모양인지 익숙한 얼굴이 그들에게 따라붙었다.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
“매너스 님.”
익숙한 얼굴의 정체는 바로 매너스였다. 왕을 대신해 서류 업무를 처리하고 있던 매너스는 유타에게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기운을 바로 눈치챈 듯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 짧은 시간에.”
“저주를 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곧장 아버님을 알현해야 합니다.”
“방법을 찾았다고? 그게 정말이야? 허어…….”
매너스는 지금 이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왕실 마법사, 성직자, 유명한 의원이 수없이 붙었는데도 해결하지 못했던 저주다. 아직 아카데미도 졸업하지 못한 애송이들이 풀 수 있는 저주가 아니란 말이다. 도저히 믿을 수 없었지만 매너스는 그 말에 그럴 리 없다는 말을 덧붙일 수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는 장소엔 늘 레이먼이 있었고, 그는 늘 유타의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번에도 ‘그럴 수’ 있었다.
***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전과 마찬가지로 지독한 냄새가 훅 퍼졌다. 이그니스 역시 냄새를 느꼈는지 곧바로 계약자의 몸을 지키기 위해 유타에게 축복을 덧씌웠다. 그 덕분에 유타 역시 코를 막거나 인상을 찌푸리지 않고 멀쩡한 상태로 왕의 앞에 설 수 있었다.
왕은 여전히 시체처럼 침대를 지키고 있었다. 솜뭉치로 변해 유타의 어깨에 파고들었던 이그니스가 얼굴을 폭 내밀었다. 솜뭉치가 셔츠 안을 빠져나가 죽어가는 왕의 명치에 뛰어들었다. 유타가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를 뻔했지만 겨우 침착한 얼굴을 유지한 채 이그니스를 바라보고 생각했다.
‘이그니스 님, 들리십니까?’
[ 잘 들린다. ]‘…이 병, 아니. 이 저주는 풀 수 있는 저주가 맞습니까?’
[ 계약자야, 지상에 내가 풀 수 없는 저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축복이란 본디 저주를 몰아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몸에 쓰인 저주가 지독하긴 하나 풀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 지금 바로-!’
[ 하지만 이 저주는 며칠은 봐야겠구나. 하루로는 안 돼. 그만큼 정교하다. 이 정도 저주라면 한 명이 만들었을 리가 없어. ]‘일주일이면 가능한가요?’
[ 가능하다. ]그렇게 유타와 이그니스가 한참 대화를 나눌 때였다. 입을 완전히 열지는 않았지만 작게 달싹이는 입 모양을 반복하는 유타의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던 매너스는 입을 꾹 다문 채 고민에 빠졌다.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평소 당당한 체를 하긴 했지만 5왕자에 불과한 유타는 그에게 제대로 된 의견을 피력한 적이 몇 없었다. 하지만 조금 전 유타가 그에게 보인 모습은 이전과는 달랐다.
초조한 기색 하나 없이 확신이 담긴, 견고한 눈동자.
‘정령…인 건가?’
매너스의 눈에는 이그니스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잠시 헤맬 수밖에 없었다. 반쪽이나마 정령의 눈을 가진 자신의 기사는 밖에 있었고 그가 언질을 주었기 때문에 정령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두 사람이 어떤 대화를 어떻게 나누고 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유타. 혹시 저주를 풀 수 없는 거야?”
“아뇨. 풀 수 있다고 하십니다. 대신 일주일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셨어요. 괜찮으시면 형님께서 포레스튼 측에 편지를 보내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일주일 동안 매일 본성에 찾아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정도는 쉬운 일이다. 다행이구나. 아직 돌아가시면 안 될 분이시다.”
“예. 맞는 말씀입니다.”
대화가 끝난 뒤, 유타와 레이먼은 별궁의 방으로 돌아왔다. 매너스가 본성에 방을 마련해준다고 했지만 어쩐지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다음 날부터 유타는 아침이 밝자마자 왕의 방으로 향해 꼬박 일주일간 축복 의식을 치렀다.
마침내 일주일이 끝나는 해의 날 저녁, 레이먼과 유타가 왕성을 떠나는 마차에 오르기 직전 매너스가 직접 찾아와 그들을 배웅했다. 시종인들은 부쩍 가까워진 3왕자와 5왕자의 사이를 입방아에 올리기 바빴으며 당사자인 두 왕자 역시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더 친해 보이게 손도 잡아주세요.’
‘우리 막내가 더 똑똑해졌구나.’
[ 이봐라, 레이먼. 저 착한 애가 너한테 물들었잖냐. ]두 사람이 속닥이는 소리를 들은 아모르가 레이먼의 어깨에서 통통 튀며 화를 냈다. 레이먼은 ‘저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빛의 대정령도 저놈 인성 하나는 인정하지 않았느냐’며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마차에 올라타고 유타가 빛의 대정령과 계약한 사실을 밀리포레에 실을지 말지 고민하는 사이, 그들은 포레스튼에 도착했다. 마차에서 내린 뒤, 레이먼은 조용히 이그니스를 향해 질문했다. 계약자는 아니었지만 정령의 눈을 가진 레이먼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그니스 님.’
‘이그니스 님.’
‘이그니스 님.’
레이먼의 말을 몇 번 씹던 이그니스가 5번쯤 이름을 불렀을 때야 퉁명스레 답했다.
[ 왜. ]‘하나만 물어봐도 되나요?’
[ 쯧. 물어봐라. ]‘오늘 매너스 왕자님도 만나셨잖아요. 그분은 어떱니까?’
[ 뭐가. ]‘만약 오늘 서재에서 유타가 아니라 그분을 처음 마주쳤다면 그분과 계약했을 것 같습니까?’
레이먼은 궁금했다. 레이먼의 마음속에서 이미 왕 후보는 두 명으로 추려진 상태였다. 두 사람이 가장 가능성이 있었고 지금으로선 자신이 가장 납득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빛의 대정령과 계약하고 왕이 깨어난다면 후계자 판도가 완전히 뒤바뀌어 버릴 수도 있는 상황.
이미 왕성의 실무를 맡고 있는 매너스에게 빛의 대정령이 갔었다면 그가 단숨에 1왕자보다 유력한 오를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이그니스가 잠시 고민하는 듯 뜸을 들였다.
[ 그놈이라. ]‘…….’
[ 계약하지 않았을 거다. ]이그니스의 대답에 레이먼의 심장이 쿵쾅쿵쾅 빠르게 뛰었다.
‘이유는요?’
[ 얼굴이 취향이 아니다. ]‘진심입니까?’
[ 그럼. 매일 볼 사이인데 얼굴이 중요하지. ]생각보다 쉽게 나온 이그니스의 답에 순간 말을 잃었던 레이먼이 잠시 침묵하더니 멀리 보이는 산을 바라봤다.
‘아. 미친놈이다.’
레이먼은 처음으로 아모르가 좀 더 정상적인 대정령이라고 생각했다.